인터뷰논평

수다 잡담을 만들어내는 오락프로그램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6:30

[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수다 잡담을 만들어내는 오락프로그램



SBS 오락프로그램 ‘야심만만’에서 지상렬의 가짜 애인으로 거론돼 때아닌 홍역을 치러야 했던 장윤정이 결국 자신의 팬 카페에 열애설을 해명하는 글을 남겼다. 장윤정은 최근 자신의 팬 카페에 “왜 제 이름이 거론된 건지 저도 당황스럽지만 사실이 아닌 이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면서 “이번 해프닝으로 인해 같은 방송일을 하는 후배로서 선배님이 곤란해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고 썼다.

지상렬은 왜 자작 열애설을 밝혀야 했는가? 이는 한국의 토크형 버라이어티 오락프로그램들이 수다와 잡담 경연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오락프로그램에서 주고받는 말은 대부분 토크(talk)라기 보다는 잡담(chat)이다.

출연자의 사담(私談)에 치중하다 보니 수다 잡담의 중복 현상도 자주 발생한다. 애견 ‘도로시’를 잃어버린 이혜영이 잠옷 입고 거리를 활보한 사연, 이경규가 난처할 때 와이프에 대처하는 요령(술 취한 척, 자는 척, 미친 척, 죽은 척) 등은 재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다와 잡담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다. 오락물에서는 어느 정도 오락성 잡담이 들어가야 맛이 난다. 어떤 의미에서는 1대1 토크보다는 집단 잡담이 우리 정서에 더 맞을 수도 있다.

‘상상플러스’에서 본론이라 할 수 있는 ‘우리말 퀴즈’에 돌입하기 전 MC들의 입담을 시청자들은 즐기고 있고, ‘불량아빠클럽’도 냄비퀴즈 이전 출연자들의 이야기가 프로그램의 재미를 크게 좌우한다.

문제는 수다와 잡담이 획일화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토크형 오락프로그램 대부분이 인위적으로 감동적이거나 강도가 센 이야기 소재들을 유도한다.

가령, 테이가 ‘야심만만’에서 19살때 여성과 키스를 나눈 경험을 말하는데 평범하게 말하면 실격이다. 테이가 순진할 줄 알았던 여자친구에게 분위기를 잡았더니 키스하기 위해 자신을 껴안는 게 거의 아나콘다 수준이었다고 말해야 되는 것이다. 자막에는 ‘아나콘다의 힘’이라는 글자가 올라오고 이때 여성 출연자인 장나라와 공동진행자 강수정의 표정을 살짝 비춰준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 같은 오락물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실컷 말해봤자 평범해서 편집될 게 뻔하다. 소재와 소재 강도의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연예인의 매니저들이 웃기는 이야기, 남의 특별한 사례를 모으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 소재가 없는 이들에게 토크쇼 지향 프로그램은 거북스러울 뿐이다. 어디 현실이 그렇게 웃기고 감동적인 일만 있을까? 아무리 천하의 재담꾼이라도 곧 한계에 이르고 만다”면서 “그래서 장기간 같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다보니 갈수록 자신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폭로 전으로 치닫게 된다. 사담 수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웃음의 희생양으로 삼기에 주저함이 없다”고 말한다.

수다와 잡담의 비슷비슷한 형태의 반복은 출연자들을 제한하게 만들었다. 토크쇼에는 다양한 성향의 연예인이 등장해야 하는데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잡담 전문 연예인이다. 소위 ‘진지한 연예인’들은 출연을 꺼릴 수밖에 없다.

잡담전문연예인들만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오늘은 또 어떤 독한 얘기로 시청자를 한번 웃겨볼까” 하고 궁리하게 되는 게 토크형 오락프로그램의 본령이 돼버렸다. 출연자를 좀 더 다양화해 ‘작위’ ‘과잉’의 잡담 중심에서 ‘생활형’ ‘현실형’ 토크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떠나가는 시청자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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