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는 큐레이터가 되면 안될까.
김헌식(박사, 평론가)
책을 않는 시대에 서점이나 도서관은 변화해야 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동네 서서점의 변신은 매번 신문과 방송에서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동네서점이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더니 이제는 다양한 전문성을 띠기도 한다. 어쨌든 공통적인 점은 동네서점에서 책만 팔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작은 서점들에게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서점도 이런 복합문화공간화를 추구하고 있다. 단지 문화콘텐츠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고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서점 자체를 그렇게 디자인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해서 작은 동네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행사들을 마련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출판사들은 책이 출간 되면 적극적인 행사들을 마련한다. 북토크쇼 외에도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책과 독자를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여러 프로그램을 하는데에는 일정한 관점과 그에 따른 기획력이 중요해진다. 이제 책은 단지 실내 공간에 앉아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읽는 매체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특정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공유하고 즐기는 대상으로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는 반드시 텍스트를 종이에서 해방시켜 디지털 파사드같은 미디어 매체로 변환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경의선 책거리는 열차모형의 도서부스 등으로 약 250m 규모로 조성한 전국 최초의 책 테마거리다. 그 시대적 가치 때문인지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이라는 국제비즈니스대상에서 경의선 책거리가 금상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책은 이제 실내 공간이 아니라 실외의 공간성을 바탕으로 공유되는 상황이 되었다.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출판관련 종사자들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을은 책이 팔리지도 않고 도서관에서 대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즉, 책을 사지도 잘 읽지도 않기 때문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캠페인을 벌여온 것이다. 가을은 야외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붙들고 있을 여건이 되지 못한다. 특히 가을은 일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햇빛을 좀 더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실내에서 책을 읽기보다는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데 반드시 야외 활동과 독서활동은 분리될 필요가 있을까. 경의선 책의 거리처럼 야외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책을 매개로한 공유공간의 확장이 필요할 것이다. 비단 책의 거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종이책을 본다는 독서행위에만 한정되지 않고 책을 매개로한 행사들이 기획되고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고정형식이 아니라 그 안의 텍스트가 중요하다면 그것을 잘 살릴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은 얼마든지 기획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이나 화랑 그리고 미디어가 미술작품을 매개로 해서 다양한 전시와 활용이 가능한 것처럼 책도 그런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결국 책도 미술관의 큐레이터같은 전문 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는 동네 서점이나 대형 서점, 국공립도서관과 동네서점, 출판사, 공연장을 막론하고 모두 공통되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얼마 전 문제가 되었던 문체부의 '공공도서관 사서배치 개선(안)' 검토에 따르면 사서의 정원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그나마 있던 사서까지 줄이려고 하는 것은 책에 대한 낡은 인식 때문이다. 사서를 단지 책을 정리하고 옮기는 인력쯤으로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더구나 디지털 매체의 증가와 독서인구의 감소를 반영하듯 사서도 쉽게 정리할 대상으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책을 매개로 해야 할 문화콘텐츠 작업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도서관의 사서는 이제 도서관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사서가 오히려 더 많이 필요해진다. 무엇보다 큐레이터는 단지 도서를 골라주는 사람이 아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큐레이터는 책을 매개로 그 안의 내용을 다양한 기획이나 프로그램, 전시, 야외 활동 등으로 전달해주는 전문가이다. 넓게는 출판인들은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책을 단지 종이책안의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대하며 그것을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닫힌 책에서 열린 책으로 저변을 넓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