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경영 이론과 사고법 100

'비키니 효과'(bikini effect)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3. 1. 8. 19:17

'비키니 효과'(bikinieffect)

[책과 지식] 선택은 자유라고 … 그런데 왜 강요당한 느낌이지?

테마 읽기 내가 모르는 나

우리는 종종 자기 확신에 빠집니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고, 내 선택이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현대과학은 그런 우리의 오만에 경종을 울립니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라고 권합니다. 신간 『마음대로 고르세요』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마음대로 고르세요

켄트 그린펠드 지음 정지호 옮김, 푸른숲

320쪽, 1만3000원


우스갯소리 하나. 호수 위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가 아래를 내려보다가 때마침 헤엄쳐 지나가는 물고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새가 물었다. “그 물 어때?” 물고기가 대답했다. “웬 물?”

 이 책을 읽다가 시쳇말로 '빵 터진' 대목이다. 우리의 문화 환경은 물고기가 사는 물처럼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주지만 실상 우리는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쇼핑부터 대통령 선거 투표까지 우리가 하는 선택이라는 것, 알고 보면 그만큼 환경의 제약을 받는다는 의미다.

 어디 환경뿐이랴. 요즘 쏟아져 나오는 뇌과학 책들은 뇌야말로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고 조작하는 주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책도 (자발적) 선택이라는 개념의 허점을 낱낱이 파헤친다. 지은이는 “그 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선택이란 없다”라고 단언한다. 그러니까 “선택은 자유다”라거나 “선택을 했으니 책임지라”는 말은 사실상 우리의 타고난 한계를 무시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강일구] 원제가 『선택의 신화』(Myth of Choice)인데,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깊이와 재치, 유머를 두루 갖춘 매력적인 책이다. 수백 개의 TV채널, 다양한 맛의 커피 등 선택을 둘러싼 지극히 소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뇌과학과 경제학, 정치이론을 거치며 사회 소통문제와 공공정책 범주로까지 논의를 확장해나간다.

 지은이는 미국 보스턴대 법학과 교수. 2003년, 2004년 미국 법대 총학생협회에서 뽑은 '올해의 법학 교수'로 선정됐다는 얘기가 전혀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췄다.

 저자는 법 분야에서 찬성·동의·자의 등 많은 이름을 갖는 선택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문제가 있으면서도 인기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선택에 개인책임이라는 주문이 따라 붙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100년 전 미국의 램슨이라는 공장 노동자는 작업장 선반이 떨어지면 중상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일을 하다가 중상을 당했다. 고용주는 선반을 고쳐주는 대신 램슨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든지,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는데 형편이 어려운 램슨은 직장을 떠나지 않고 일해왔던 것. 당시 법원은 사고의 책임은 램슨에게 있다고 했다. 위험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또 다른 예도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미리 대피하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20만 명의 주민은 집에 남았다가 봉변을 당했다. 그렇다면 이 재난 규모가 커진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당시 재난 관리 당국은 주민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안을 둘러싸고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의 의료보험 의무가입이 핵심인 개혁안에 반대하며 '자기 몸은 자기가 돌봐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지은이가 이런 사례를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의 자율성을 추켜올리고 개개인에게 자기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우는 게 과연 정당하냐고 묻기 위해서다. 선택이 그 무엇보다 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얘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남성들이 아름다운 용모와 야한 옷차림의 여성을 보면 맥주를 마시고 싶어한다는 '비키니 효과'(bikini effect)도 그 중 한 예다. 이게 모두 뇌의 욕구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문화 환경, 권력, 시장 마케팅 등 선택을 강요하고 조종하는 요소들은 우리 생활에 지뢰처럼 깔려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개인책임을 선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정부 및 법적 태만과 아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데 한계가 있고, 때로 잘못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직시하고, 책임을 공유하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의견이 달라도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상대의 믿음과 행동을 평가할 때 상대가 처한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을 고려하며 더 많이 관대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자신의 선택 능력을 좀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말, 대선을 앞두고 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같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