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 동영상 화면 캡처. |
드라마 '각시탈'은 낮에는 바보로 밤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형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동생 조선인 일본 순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허영만 원작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각시탈은 가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활동의 시공간을 넓혀주는 매개물이다. 대개 가면이나 복면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좀 더 자유로운 활동의 영역을 확보하는데 일조한다. 고전적캐릭터로 일지매는 복면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인물이기도 했다. 자신을 숨기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도둑이나 쓸 수 있는 복면은 의적에게 사용되면 긍정적인 캐릭터가 된다.
단지 자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효과를 스스로에게 미치기도 한다. 영화 '반칙왕'(2000)에서는 주인공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가 등장한다. 스스로 마스크를 쓴 그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직장인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자신감에 찬 프로 레슬링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마스크는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주면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되면서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도 갖게 만든다.
할리우드에서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영웅은 아이언맨과 같이 강화된 첨단 기술의 힘을 얻는 웨어러블 가면으로 진화해 등장했다.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힘을 주는 가면은 주술적인 힘을 주는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마스크'(1994)에서는 가면이 전혀 다른 초능력을 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게 한다. 마스크가 갖는 점은 현실의 자신을 뛰어넘어 이성적이고 바람직한 자신과 그 주변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중문화계에 때 아닌 가면 혹은 복면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개봉작 영화 '간신'에서 단희(임지연)와 마찬가지로 임숭재(주지훈)는 장터에서 풍자적인 공연 끝에 소를 해체하는 백정으로 살아가지만 가면을 쓰고 활동한다. 그것은 자신을 가면 뒤에 감추면서도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주기 위한 설정이었지만, 속죄적인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드라마 '복면 검사'에서는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현실 속에서 낮에는 검사로 밤에는 의로운 영웅으로 활동하는 주인공을 담고 있다. 검사의 신분이라면 법적 절차와 법률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범죄자에 대한 한계를 갖고 있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법이지만, 범죄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대중적인 법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기존에 많이 봐왔던 마스크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은 마스크를 예능 프로그램에 다른 맥락에서 적용시킨 사례였다. 가수에 관한 블라인드 테스트 같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마스크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이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기시감도 있다. '나는 가수다'의 가수 경연방식과 '히든 싱어'의 숨겨진 가수를 맞추는 방식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마스크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 유발 효과는 가창력이 훌륭할수록 궁금증을 더 증폭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창력 가수를 재발견시킨다는 점에서 트렌드에 민감한 대중가요계에 가벼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각적인 외모주의가 음악성 자체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마스크가 각광을 받는 것은 이중적인 삶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대중심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처럼 사회적 입지나 권력적 관계에서 할 수 없는 언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가면은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가려주고 객관적으로 그 대상을 본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스스로 시각적인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각적인 미혹함에 잊을 수 있는 가치들을 다시금 인식하게 만드는 가면과 복면이어야 할 이유가 되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