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져 있다시피 이 드라마는 일본 후지TV에서 2006년 12부작으로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일본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배우 김명민을 ‘발견’하게 한 걸작 <하얀 거탑>(2007년 1~3월),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꽃보다 남자>(2009년 1~3월)도 일본의 히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한국 드라마다. <결혼 못하는 남자>를 포함해 세 작품이 모두 남자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문화평론가들은 이 세 편의 드라마가 한·일 양국에서 살아가는 남성들의 모습과 가치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각을 특색 있게 조명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드라마 속 여성 심리도 변화 <하얀 거탑>은 야마자키 도요코의 1969년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도 60년대 일본 의료계다. 1978년과 2003년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누린 이 작품의 주인공인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김명민)은 자신의 야망과 출세를 위해 권모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드라마 전체 틀도 의사들 간의 권력다툼과 음모, 처세술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이 드라마는 한국과 일본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출세 지향적 인간형, 그리고 인맥 중심의 파워게임과 가부장적 권력질서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꽃보다 남자>는 가문과 재력, 외모까지 갖춘 재벌과 평범한 세탁소집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F4로 불리는 구준표·윤지후·송우빈·소이정은 외모가 출중한 꽃미남들이다. 단순히 잘 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스타일도 뛰어나 그들의 옷차림, 액세서리 하나하나가 화제가 될 정도였다. 10대는 물론 2030 여성들까지 이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꽃미남’ 신드롬과 ‘메트로섹슈얼’(패션에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성) 열풍을 엿보게 한다.
<결혼 못하는 남자>의 주인공인 건축가 조재희(지진희)는 독신주의자다.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식사도, 쇼핑도 혼자서 해결한다. 혼자 클래식음악을 틀어놓고 지휘하는 것도 좋아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하얀 거탑>의 장준혁은 육식남, <꽃보다 남자> 주인공들은 꽃미남, <결혼 못하는 남자>의 조재희는 초식남”이라며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한·일 양국의 남성상을 이 세 드라마가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식남’은 강인함을 강조하는 전통적 남성상인 반면 요즘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초식남’은 성격이 초식동물처럼 순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며, 연애와 결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젊은 남자를 말한다. 실제로 1인용 전자제품과 가구, 심지어 성상품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상품이 결혼생활을 대체할 만큼 다양하게 발달돼 있다. 돈만 있으면 혼자 불편 없이 살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가족을 꾸려서 종족을 번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의무감이 사라졌다. 초식남의 확산이 가능한 배경이다. 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자기의 삶을 독립적으로 누리고 싶어 결혼을 꺼리는 남자들의 태도는 21세기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초식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본 드라마를 거의 각색 없이 똑같이 한국 드라마로 만들어도 한국의 젊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버지의 재력을 무기로 의사인 장준혁과 결혼한 <하얀 거탑>의 민수정. 재벌과 결혼하면서 신분이 수직상승하는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 공부와 일에 몰두하다 결혼시기를 놓친 <결혼 못하는 남자>의 장문정(왼쪽부터). |
김헌식씨는 “<꽃보다 남자>는 여성이 원하는 남성상을 많이 가미했다면, <결혼 못하는 남자>는 여성의 이상형을 남자주인공으로 삼았다기 보다는, 그 연령대의 여성의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상일 뿐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풀이했다. 실제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최근 미혼남녀 419명(남 248명, 여 171명)을 대상으로 초식남에 대한 견해를 물었더니 미혼여성의 90%가 “애인으로 초식남은 싫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한국 방송가의 잇따른 일본드라마 리메이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하재근씨는 “불륜, 출생의 비밀, 선과 악 등 극단적인 설정으로만 치달아 막장드라마의 범람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달리, 일본 드라마는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도 확인되듯이 소시민의 일상을 섬세하고 세련되게 담아내는 특징이 있다”며 “한국 드라마에 이 같은 일본 드라마가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리메이크를 통한 일본드라마 유입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일본, 소시민 심리 섬세하게 다뤄 하씨는 일본드라마와 한국드라마를 서유럽 영화와 할리우드(미국) 영화에 비유했다. 사회복지가 잘 돼있는 서유럽 국가의 영화가 자극적이기 보다는 보통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 예술영화의 느낌이 많은 반면, 양극화가 심한 미국은 영화도 선과 악이 분명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극적 소재가 많기 때문이다. 하씨는 “우리나라도 양극화가 심하다보니 화려한 인생역전 이야기나 센 이야기에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봉석씨는 “일본은 방송사도 많고 한 해 제작되는 드라마 편수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으며 제작시스템도 선진화해 있어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우리보다 높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마왕> 등 한국 드라마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 붐에 비판적 시각도 공존한다. 문화평론가 김원씨는 “일본에서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한국 드라마로 만들면 중간은 간다는 식의 안일한 제작방식은 재고해야 한다”며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하더라도 <하얀 거탑> <꽃보다 남자>처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각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결혼 못하는 남자>는 거의 그대로 베낀 수준이어서 문화적으로 퇴행한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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