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사신기’의 태왕 담덕(배용준)은 관미성을 치면서 부하들에게 절대 죽지 말고 살아 있으라고 명한다. 왕을 위해 죽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담덕은 자애롭고 부드럽다. 항상 자신의 부하와 백성을 생각하기 때문에 심지어 적국인 백제의 백성들까지 담덕을 따른다. 문제는 늘 신하다. 신하들은 역적이 아니면 결핍의 존재들이다.
연씨 집안과 연호개는 반역을 도모하고, 신하들은 태왕의 완벽함에 경외를 보내는 어딘가 부족한 존재들이다.
완소왕의 대표는 정조다. 뮤지컬 ‘정조대왕’, ‘화성에서 꿈꾸다’를 비롯해 드라마 ‘한성별곡-정’,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 ‘이산-정조’는 한결같이 정조를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불의에 맞서고 개혁을 추진하는 완소남으로 그린다.
드라마 ‘이산-정조’에서는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영조조차 괴질에 걸린 백성을 직접 돌보다 자신이 이질에 걸려버리는 완소왕이다. 정조도 백성의 안위만 생각하고, 부정부패를 없애려는 소중하고 훈훈한 왕이다. 반면 문제는 신하들이나 왕후다. 그들은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홍국영조차 백성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한다.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고구려를 망하게 한 것은 보장왕이 아니라 부기원이나 남생 같은 신하들이었다.
이는 조선이 망할 때도 마찬가지다. 개봉 흥행작인 영화 ‘식객’에서는 육개장을 먹고 조선 백성의 삶을 생각하며 우는 순종의 모습이 묘사된다. 역시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왕이 아니라 신하들이었다. ‘왕과 나’에서 조치겸과 김처선은 왕을 무조건 받드는 데서 같다. 왕실의 권력욕이 다른 드라마들보다 현실적이지만 정작 성종보다는 왕후들이 문제다.
주몽, 대조영, 광종, 세종, 정조, 대무신왕, 무왕 등등 왕들의 리더십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심지어 제왕의 리더십을 묶은 책도 왕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왕의 귀환은 정치와 국정운영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한 면이 있다. 완소남이나 훈남과 같은 리더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을 대신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은 왕일 뿐이다. 그들은 전제군주다. 정조도 왕권강화와 주자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다. 당연히 역사는 왕이 혼자 만들어가는 것도 영웅 혼자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다. 대중지성의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더구나 21세기 국정운영에선 대통령 개인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김헌식〈문화평론가〉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