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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박사 "`기생충` 만든 나라의 영화 산업구조가 불평등...부끄러운 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0. 6. 15. 08:24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서종빈 앵커
○ 출연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전문]

문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고 대안을 생각해보는 <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박사와 함께 이른바 `포스트 봉준호법`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평론가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영화인 1325명이 영화산업의 구조 개선을 담은 포스트 봉준호법에 서명했다고 하는 데 포스트 봉준호 법이란 뭔가요?

▶온라인으로 많은 영화인들이 서명운동을 했습니다. 이른바 ‘포스트 봉준호법’은 대기업의 영화 배급·상영 겸업, 특정 영화 스크린 독과점, 독립·예술영화 지원 제도 등 영화계의 모순에 관한 개선책을 담은 법안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 수상 이후 제2, 제3의 봉준호가 활동할 수 있으려면 이러한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영화산업구조 개혁 법제화 준비모임은 21대 국회에서 법제화할 수 있도록 이런 서명운동을 해왔습니다. 포스트 봉준호법은 구체적으로 대기업의 배급업·상영업 겸업 제한, 특정 영화 스크린독과점의 금지,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등이 중심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갑자기 제기된 것이 아니고 그동안 줄기차게 지적된 것이지만 실현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미래 영화인들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개선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포스트 봉준호 법을 만드는 건 영화 산업 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준비모임이 "97% 독과점의 장벽에 갇힌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씨제이·롯데·메가박스의 멀티플렉스 3사는 현재 극장 입장료 매출 9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뿐더러 배급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심각한 문제는 극장과 결합한 배급사들이 부당하게 극장을 살찌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미래의 봉준호들이 반지하를 탈출하는 데 쓰일 자금이 극장으로 흡인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항상 언급되는 판례이자 사례인데요.“미국은 이미 1948년 배급·상영 겸업을 금지하고 있고 그것에 준하여 계속 배급 상영 겸업을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도 규정하고 있는데, 제119조 제2항 경제민주화에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대기업이 기획 제작 배급 상용의 ‘겸업 제한’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대기업 수직계열화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지적을 하고 있는데 비단 해외 사례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매우 비정상적인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의 사례를 적용시킬 수 없을 만큼 변형된 영화 산업 구조이자 시장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 스크린 독과점 문제 아닌가요?

▶법제화 준비모임은 “지난해 한 인기 영화의 경우 무려 81%의 상영점유율을 기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상영점유율은 전체 상영횟수 대비 작품별 상영횟수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 영화가 배당받을 수 있는 스크린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 수 있는데, 프랑스는 영화영상법과 편성협약에서 8개 이상 스크린이 있는 극장에서는 영화 한편이 일일 상영 횟수의 30%를 넘을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15~27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도 아무리 대작 영화라고 해도 일일 최다 4개 스크린만 할당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을어 법제화 준비모임은 ‘스크린 상한제’를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한 것입니다.

또 “독립·예술영화의 현실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독립 예술 영화의 전체 비중에 비해서 관객 점유율이 적다는 것입니다. “독립·예술영화는 전체 개봉 편수의 9.5%에 이르지만, 관객점유율은 0.5%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멀티플렉스에 독립·예술영화 상영관을 지정하고 일정 기준 이상 상영하도록 규정하고, 이에 관해서 국가는 해당상영관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영화관련법 개정을 제안했습니다. 당장에 인기있을만한 영화를 스크린 독과점을 통해 극장 수익은 올릴 수 있으나, 관객의 영화 선택의 자유를 침해받습니다. 해외 영화제 상을 받은 한국 영화도 스크린 독점에 밀려 상영 기회조차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한 시민단체가 스크린 독점을 이유로 관련업체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사례를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최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들도 차기에 구성될 21대 국회에서 추진해야 할 `영화산업 경제민주화 제도 마련 요청문`을 발표했다면서요?

▶영진위원 요청문을 통해서 "새로운 국회의 관심과 역할에 힘입어 한국영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영화정책이 마련되고, 더 나아가 제2, 제3의 봉준호 감독이 등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영화 생태계가 반드시 형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습니다. 역시 봉준호 감독과 그의 작품들이 계속 나오려면 영화 산업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위원들이 언급한 내용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1)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설치 제도화와 재정적 지원책 마련, 2)스크린(상영회차) 상한제 도입, 3)대기업의 배급·상영 겸업 등으로 발생하는 불공정성 문제 해소, 4)영화발전기금 부과 기간 연장 추진 등 입니다.

영진위원들도 "한두 편 영화에 대한 상영기회 몰아주기가 가능한 것은 전체 스크린의 97.2%를 3개 회사가 집중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독과점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즉 "형식적으로는 배급사가 따로 있지만 실제로는 이들 시장지배적인 영화관 기업들이 영화 배급까지 좌우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또한 공정한 기회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즉 "한국의 영화산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릴 만큼 심각한 경제활동에서의 불공정성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구조의 개선은 민주화의 과정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번 제도개선 요청은 이런 불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영화산업 경제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습니다. 기생충을 만든 나라가 영화 산업 자체부터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자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자가 약자에 기생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고 자칫 숙주 자체를 죽게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인들의 요구에 대해서 극장 측이 반박 성명을 냈다는데요. 스크린 상한제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나섰다는데 어떤 이유를 들어 반박하고 있는 건가요?

▶극장 등 상영업체들이 회원인 한국상영발전협회는 "다양한 영화, 소형 영화에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은 스크린 상한제 규제 등 극장 규제로 실현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스크린 상한제에 대해서 반대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소비자 관객 주권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또한 "법으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최대 비율을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 관객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스크린 제한이 다른 영화를 희생시킨다고도 했습니다. 즉 “수요가 높은 영화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다른 영화 상영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오히려 산업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선택하지 않은 영화들을 봐야 하고, 원하는 영화들을 보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근거가 약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스크린 상한제가 한국 영화계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기업의 수익 및 운영권을 침해하고. 투자가 줄면서 자본이 필요한 대형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형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한국 영화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최근 대형 영화들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이를 말해줍니다.


▷이렇게 주장해도 스크린독과점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사안인데, 현재 영화비디오법 개정안들은 이미 다수 발의돼 있는데,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면서요?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와 그리고 스크린독과점은 영화계는 물론 영화 산업의 구조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법적 규제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입법 노력이 계속돼왔다. 하지만 법안 한개도 통과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국회에 계류 중인 영비법 개정안은 모두 13개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기업 규제 및 불공정 구조 개선에 관한 법 개정안들입니다. 2016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10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참여연대와 영비법 개정안을 만들었는데, 공통적으로 주목되는 대목은 `대기업이 영화상영업과 배급업을 겸업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019년 4월에는 우상호 의원이 한 영화가 특정 시간대에 스크린 50%를 갖지 못하게 법안도 발의되었지만 상정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크린독과점에 관해서는 4개의 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습니다.

조속한 통과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다음 차기 국회로 넘어갈 듯 하기 때문에 영화계가 포스트 봉준호법을 요구하고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영진위위원들이 "한국영화를 둘러싼 산업구조적 문제를 비롯해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를 안고 있는 영화계로서는 보다 적극적인 국회의 역할을 요청드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 바를 국회가 되새겨야 하는데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들었으면 합니다.


▷최근에 또 하나의 법안이 발의되었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은 27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한 영화가 40%를 초과해 스크린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는 종전의 개정안 보다 스크린 수를 10%정도 더 제한을 하는 것입니다. 동시간대에 최소 3개 이상의 영화가 상영되도록 했습니다. 황금 영화 관람 시간대뿐만 아니라 기타 시간대에도 40% 제한을 적용해 주 영화 관람시간대에서 상영횟수를 제한당한 독점적 영화가 조조·심야 등 기타 시간대 스크린까지 독식하는 현상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인위적으로 대기업들의 영화 수익을 줄이려는 행위라고 비판하자, 적절한 점유율 통해 오랜기간 동안 상영할 수 있게 하려는 조치라고 입법 취지를 말합니다.독립·예술영화 등 저예산 영화의 상영, 관람객의 영화 선택권에 관한 영화비디오법 개정안들과 영화의 스크린 점유 제한 내용을 담은 법안들이 통과되어야함에는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영화 구조는 단기적인 정책일뿐 장기적으로 미래 비전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 `기생충` 제작진·배우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 유통 구조에 있어서도 독과점을 막을 스크린 상한제가 빨리 도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죠. 정부나 문체부의 태도는 어떤가요?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 산업 종사자들의 복지를 챙기고 영화 유통구조에서도 독과점을 막을 스크린 상한제가 빨리 도입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생충이 보여준 사회의식에 깊이 공감한다"며 "문화예술계도 기생충 영화가 보여준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제작현장이나 배급 상영 유통구조에서도 여전히 붙평등이 남아 있다"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불평등이 하도 견고해져서 마치 새로운 계급처럼 느껴질 정도가 됐다"고 했습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19년 4월 "스크린 독과점을 막을 상한제가 필요하다"며 국회와 조율, 법률을 개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박양우 장관이 CJ 사외이사 출신 경력이라는 점 때문에 의구심을 영화계에서 갖게 만들었는데 이를 지켜보는 영화계의 시선이 냉철합니다.


▷네, <문화로 읽는 세상>, 오늘은 이른바 `포스트 봉준호법`에 관해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 살펴봤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20-02-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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