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루저의 난과 남보원의 공통점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1. 13. 10:20


-남녀 불균등성에 대한 소외감의 문화 심리

요음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 코너 가운데 하나가 <개그콘서트>의 ‘남보원’이라는 코너다. 남보원은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의 줄임 말이다. 세 명의 남자는 다분히 항의와 농성을 주도하는데, 말투는 격앙되고 눈매는 예리하며 때로는 애절하다. 이들은 그동안 여성과 데이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성토한다. 특히 구호로 요약해서 주장하는데, 약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니 생일엔 명품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커피값은 내가 내고, 쿠폰 도장 니가 찍냐! 니가 찍냐 니가 찍냐 10개 모아 나도 먹자!’, ‘커피 값은 내가 냈다 진동 오면 니가 가라! 니가 가라! 내가 여기 알바하냐!’, ‘운전은 내가 한다 기름 값은 네가 내라 기름값도 내가 냈다 톨비도 내가 내랴!?’, ‘니 옷은 신상이고 내 옷은 왜 이월 상품, 이월 상품 웬말이냐 교환환불 안된단다.’, ‘잠깐 구경 한다더니 4시단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웬말이냐, 주차요금 니가 내라.’, ‘커플링은 내가 샀다. 이벤트는 니가 해라 니가 해라 니가 해라 트렁크에 풍선 넣라.’ , ‘커플링은 내가 샀다. 헤어질 때 반납해라, 내가 샀다 내가 샀다. 억울하다 더 사귀자.’,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가방 들고 소변봐라! 집에서는 귀한 아들, 너한테는 짐꾼이냐!’, ‘왜 이렇게 안 나오냐 영화 이니 시작했다! 안 나오냐 안나오냐, 그안에서 담배 피냐!?’...

전체적으로 그 내용을 보면 사소해서 별거 아닐 수 있겠다. 하지만 남성들이 불만을 느낄만한 내용들이다. 그 사안의 경중에 비해 매우 진지하고 격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항상 결론은 마마보이의 투정같이 우습게 맺어진다. 그래서 남보원은 찌질남들의 성토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남성다움에 가려진 그늘을 드러내주기 때문에 특히 남성들에게서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남성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보장해주어 성립하는 데이트 문화는 거꾸로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여성은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남성다움과 허세적 배려는 저성장, 양극화의 심화와 비정규직의 심화로 이제 불가능해졌는지 모른다. 그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남성들은 한 여성도 감내할 수 없는 모두 찌질남이 되어야 한다.

최근 ´루저의 난´, ´루저 원정대´ 패러디 물이 화제다. ‘남보원’을 보는 것 같다. 사태(?)는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여성 출연자가 한 발언 때문에 빚어졌다. 키가 작으면 루저라는 발언이다. 잠시 본인은 우스개로 한 내용이고 루저라는 말은 영어권 국가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라지만, 사태는 매우 심각해졌다. 여기는 한국이고 루저가 남성의 신장에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더구나 제작진은 영어자막까지 넣었다. 그 여성에 대한 공격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된장녀 발언과 비슷하다는 말도 나왔다. 만약 된장녀가 예쁘지 않았다면 남성들이 이 말을 만들고 유포시키지 않았을 것이며, 키와 관련한 루저 발언도 예쁘지 않은 여성이 했다면 달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담론은 다양해졌다.

중요한 것은 왜 남성들이 심각하게 아니 진지하게 증폭 시키냐는 거다. '남보원'에서도 남성의 키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뽕 넣는 거 인정한다, 키높이도 인정해라. A컵도 인정한다, 백육십도 인정해라.’ 미수다의 발언에서 남성의 키는180cm는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럼 위너라는 얘기다.

증폭시키는 남성들의 마음을 남보원식으로 접근할 수 있겠다. 키가 작다면 루저라는 것인데, 키야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자기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것 아닌가. 그럼 태어날 때 부터 루저인가? 이보다 더 가혹한 운명이자 고통스러운 천형이 어디 있을까.

´미녀들의 수다´가 아니라 ´미남들의 수다´에서 "여자 키가 작은 것은 루저"라고 발언했다면 이렇게까지 들끓을지 의문이다. 남자를 무조건 키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여성을 외모로만 차별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남성이 ´외모´로 여성을 승자와 패자로 구별하는 것이 차별이라면 여성이 남성을 키를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로 판단하는 것도 차별일 수밖에 없다. 그간 키가 작은 남성을 놀리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었다.

‘남보원’식으로 말하면, 인권적인 차원에서 키 작은 것 가지고 문제삼는 것은 성희롱이자 인권침해다. 성희롱은 비단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에게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보다 키가 작다고 말하는 것이 치명적인 것이기에 그것은 성희롱 혹은 (정신적) 성폭력이다. 남보원들에게는 무심코 하는 말이 가슴을 아리게 할 것이다.

"키가 작아서 사윗감으로 안 된다.", "키가 작아서 힘이나 쓸 수 있겠냐", "남자는 모름지기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야 듬직한데, 걔는 너무 작아서 안돼!", "키가 작은데, 어린 시절에 엄마가 아프셔서 엄마 젖도 못 먹었니?"

이런 말에 기분 상해하는 표정을 보일라치면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 "남자가 소심하게 그런 말에 상처 받냐? 남자답지 못하게"

남보원과 루저 발언에 대한 반응은 적극적인 자기 권리와 주장을 표방하는 인터넷 문화의 산물이다. 키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오프라인에서 대놓도 말하지 못한다. 남보원 성토도 결국 여성앞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내용들이다. 어쨌든 그들의 행동을 단순히‘루저의 난’이라고 보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난(亂)은 불법적이고, 반역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남성들의 억울함과 소외감이 작용하고도 있다.

여성의 권리는 많이 부각되지만, 남성의 권리와 그들의 고충은 별로 주목받지 못해왔다. 사실 기성세대 남성들은 여성을 배려하지 않고도 우월한 권리와 권력을 누렸지만 젊은 남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들어주어야 할 요건은 많아지고 갖추어야 할 조건도 많아졌지만, 자신들이 누릴수 있는 권리는 적어지거나 불투명하다.

이전의 기성세대보다 많은 일들을 함에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평가절하 된다. 남보원과 루저 발언에 대한 반응은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도 있겠다. 한편으로 기성세대 남성을 부러워 하거나 된장녀 사태에서와 같이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예쁜 여성에 대한 소유욕이 작용하고 있다.

어쨌든 그들의 말대로 위인 가운데 에는 키가 작은 이들이 많다. 더구나 여성 자체가 남성보다 키가 작지만 많은 일들을 해낸다. 그렇더라도 여성에 대한 폭력성이 가감 없이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남자가 그런 발언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공격할까. 지나치면 콤플렉스의 발동으로 보인다. 출연자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없기를. 묻는다면 방송에서 그것을 걸러내지 않은 책임에 따져야 한다. 키에 따른 차별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남성이 여성의 외모를 따지는 것도 되돌아 보아야 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