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딸랑~ 딸랑~ 일상에 지친 영혼 깨우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20:06

딸랑~ 딸랑~ 일상에 지친 영혼 깨우다



[동아일보]

■ 워낭소리, 다큐영화 관객 첫 100만 돌파 눈앞

“노인과 소 40년 우정 감동” 중장년층 폭발

17일 현재 83만명… 주말쯤 새기록 세울 듯

“요즘은 모든 게 빠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강요되는 세상인데 그 호흡을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우리 스스로 유배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워낭소리’의 세계에는 속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서 삶을 돌아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문학평론가 김갑수)

40년에 걸친 노인과 소의 ‘속 깊은 정(情)’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100만 관객을 앞두면서 ‘워낭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제작사 인디스토리 측은 17일 현재 83만630명이 봤으며, 21일이나 22일에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어서는 것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이다.

▽하루 6만 명씩 본다=제작사 측은 “16일 5만6670명으로 일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17일에는 6만7688명이 봤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1월 15일 개봉한 이래 이달 17일까지 83만여 명이 관람했다. 지금까지 독립영화의 최고 흥행 기록은 2007년 ‘원스’의 22만6220명이었으며 지난해 개봉작 100편 중 100만 명 이상 본 영화는 16편뿐이었다.

‘워낭소리’는 이달 초 10만 고지를 넘었으나 이후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이 몰리면서 20여 일 만에 1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토요일인 14일에는 하루 동안 11만2037명이 보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최근 40,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가세하면서 흥행 탄력이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에는 50대 관객이 2∼3%에 그쳤지만 2월 들어 15%로 크게 늘었다고 CJ CGV가 밝혔다. 17일 오후 서울 신촌 메가박스에 이 영화를 보러 온 대학생 양미도 씨(22)는 “어머니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라고 추천해 친구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일상에 지친 영혼을 일깨워=우리가 잊고 살았던 순수를 화면 가득히 채운 이 영화는 일상에 지친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어두운 소식만 들리는 시기에 사람과 동물의 정을 그린 이야기가 잔잔하지만 큰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경제위기로 미래가 불안한 시점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친 노인과 소의 ‘진득한 관계’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며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너 나 할 것 없이 팍팍하게 지내는 요즘 이런 관계를 지켜보는 경험이 찡한 울림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스스로를 잊고 살아가기 쉬운 요즘 세태에서 인위적인 가식과 헛된 욕망을 걸러 낸 ‘워낭소리’ 속의 원초적 삶이 관객들에게 삶의 근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는 “오락거리처럼 사람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드라마, 자극적인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시대에 ‘워낭소리’는 삶의 밑바탕에 있는 묵직한 진심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야기가 극적이진 않지만 현대사회에서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허전한 마음을 (영화가) 건드렸다”며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답을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이충렬 감독

“50만명 예상했더니 제작자 ‘현실 모른다’ 질책”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인디스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43·사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언론 시사와 개봉 초기 관객 반응을 보고 제작자에게 ‘50만 명 정도 들 것 같다’고 말했다가 ‘독립영화의 현실을 모른다’는 질책을 듣고 말다툼을 벌였죠. 그런데 50만 명을 넘어 100만 명이라는 수가 손에 잡힐 듯한 상황이 되니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독립영화 대표 감독처럼 알려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15년 동안 다양한 소재의 TV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이 감독은 6년 동안 전국을 떠돌다가 2005년 경북 봉화군에서 영화 주인공 최원균 씨(80)와 그의 늙은 황소를 만났다. 그는 “영화 데뷔작으로 뜻밖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지만 스스로 아직 영화감독이 아닌 다큐멘터리 PD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 하면 정치적 메시지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시선이 있죠. 하지만 그런 제한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인과 소의 관계를 통해 삶의 따뜻한 정서를 화면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예상보다 관객에게 반갑게 받아들여진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