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안방극장 ‘악녀의 유혹’ 에 빠지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20:08

안방극장 ‘악녀의 유혹’ 에 빠지다



김서형ㆍ이혜영ㆍ이시영 등

개성넘치는 악역들 맹활약

절대적 선악 붕괴…공감 폭 넓어져

시청자에 대리만족ㆍ쾌감 선사


드라마 속 악역(惡役)이 넘쳐난다. 악행을 일삼지만 과거에 비해 캐릭터가 다면화해 있다. 그래서 복수극을 펼치는 악녀가 각광받기까지 한다.

▶브라운관을 장악한 악녀=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인기는 악녀의 활약 덕분이다. 그중 신애리(김서형 분)는 친자매 같던 친구 은재(장서희 분)의 남편과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파탄내는 악녀다. 이에 대항하는 은재의 복수극도 만만치 않다. 남편과 친구에게 배신당하자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해 결국 애리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는 설정이다.

젊은 배우도 악녀 대열에 동참했다. MBC 일일드라마 ‘사랑해 울지마’에서 오승현이 맡은 극중 민서영은 여자의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보여준다. KBS2 ‘꽃보다 남자’에서 이시영이 열연한 극중 오민지도 준표에 대한 집착으로 몹쓸 짓을 저지르는 악녀 중 악녀다.

▶역대 악녀는?=TV 드라마 속 악녀의 전성기를 꼽자면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과 사랑에 악착스럽게 매달리며 비윤리적으로 상대를 짓밟는 여성 캐릭터가 악역을 도맡았다.


‘미스터큐’(98) ‘토마토’(99) ‘이브의 모든 것’(2000)에 출연한 송윤아 김지영 김소연 등의 악녀는 심지어 사랑조차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여성의 욕망을 강조했다. 이들이 독한 캐릭터가 된 것은 사회적 성공이라는 목표 때문이라는 전제가 깔렸다. 선악의 기준도 명확했다. 콩쥐 아니면 팥쥐, 계모 아니면 신데렐라 공식이 전반적으로 통했다.

▶누가 악녀일까=하지만 요즘 드라마 속 악녀는 본뜻 그대로 ‘악녀’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개인적인 상황으로 악해지거나, 악인으로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심지어 스스로 독한 성격을 이겨내지 못해 망가지기를 일삼는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는 시도 때도 없이 욱하는 성질 때문에 ‘버럭애리’로 등극했다. 악녀가 분노의 대상이 아닌 웃음의 코드로 다가간 것은 이례적이다. 이처럼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던 악녀가 망가지면서 시청자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즐기게 된다.

악녀의 감정 표현은 전반적으로 더 독해진 반면, 선악의 절대적 기준은 무너졌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 입장에서 보면 구은재가 천하에 몹쓸 악인이 된다.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누가 악인이고 선인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악녀가 뜨는 이유는=이처럼 시청자가 극중 신애리와 같은 악역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한 것은 캐릭터상 절대적인 악인의 개념이 붕괴되면서, 완전히 악하기만 한 캐릭터가 없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드라마 속 악인이 절대적인 선을 긋는 악당에서 벗어나면서 인간미 넘치는 납득 가능한 캐릭터로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인간의 내면이 본래 선악이라는 양면이 있다. 악역이 ‘왜 악한 행동을 하는가’의 충분한 이유를 보여준다면 충분히 설득되고 매력이 생긴다. 게다가 사람들의 이기적인 세태가 부각 되는 요즘, 개개인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분위기를 드라마 속 캐릭터가 반영하면서 시청자의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악녀를 좀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드는 데는 제작진의 몫도 크다. 본래 지나치게 강박적인 ‘도덕적 선악관’을 벗어날수록 시청자가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게 마련이다. 나아가 제작진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계도하려는 태도보다는 인간 자체의 악한 속성을 이해하는 태도를 갖고 접근하면 그 재미는 배가된다.

거기에 드라마 속 악역이 시청자에게 주는 쾌감도 있다. 드라마 속 인물이 처한 상황 그 자체를 즐기는 시청자가 늘면서 ‘저런 나쁜 짓을 하다니’라는 감정몰입과 함께 때로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된다는 지적이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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