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남자들이 예~뻐~" 그루밍 열풍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2. 4. 20. 12:18

"남자들이 예~뻐~" 그루밍 열풍

[머니투데이 김진욱 기자][[머니위크 커버]그루밍족이 대세다/남성화장품 시장 '1조원' 시대]

'이름 있는 헤어 디자이너만 고집하며 일주일에 2번 미용실을 찾는 남자'

'미용실에서 면도 등 부가서비스도 받기 때문에 한번에 최소 4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남자'

'한달에 2~3번 피부 관리실에 들러 관리받는 남자'

'매주 백화점에 들러 최고급 브랜드에 어떤 신상품이 나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습관인 남자'.

남성들이 '예뻐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예뻐지려는' 남성들이 많이 늘었다.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갖고 패션과 미용 등에 적극적으로 비용을 투자하는 남성들, 즉 '그루밍(Grooming)족'들의 확산이 거세다. 여성의 '뷰티(Beauty)'에 해당하는 남성의 미용용어인 그루밍은 최근 피부, 두발, 치아관리는 물론 성형수술까지 그 범위가 훨씬 다양해졌다.

 

◆꽃중년·꽃미남 열풍…급증하는 그루밍족

네이버에 개설된 남성 패션 카페 '디젤매니아'는 회원수가 무려 28만7000명, 즐겨찾는 멤버만 4만명에 육박한다. 해외 매장 정보, 명품 의류 수선법, 메이크업 비결 등의 정보가 주종을 이루는데 '선크림은 어디 것 쓰시나요?'와 같은 화장품 브랜드를 묻는 질문은 이젠 '옛것'으로 취급받는다.

지난 201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남성 전용 화장품 매장인 '맨 스튜디오'의 경우 오픈 첫해에 20%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현재 이곳을 찾는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200여명. 주말에는 1000명도 족히 방문한다고 한다.

남성의 화장품 소비 비중도 실제 늘었다. 최근 부산지역 롯데백화점이 지난 2009~2011년까지 자체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장품 구매고객 중 남성고객 비율은 16%(2009년)에서 18%(2011년)로 2%가량 늘어났다. 큰 폭의 변동률은 아니지만 남성 구매객수가 2만여명, 구매 금액으로는 약 55억원 가량 증가한 수치다.

성형외과의 풍경도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꽃중년'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중년 남성들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최근에는 얼굴처짐, 볼처짐, 팔자주름, 목주름을 효과적으로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주름수술인 '트리플리프팅'이 인기시술로 자리잡았다.

김혜균 우송대 뷰티디자인과 교수는 "여권신장으로 남성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남성들 사이에선 외모가 새로운 자기경쟁력의 수단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 그루밍족과 같이 '꾸미는' 남성들의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치열해진 남성화장품 시장, 1조원 시대 '활짝'

그루밍족이 늘어나면서 가장 성장하고 있는 곳은 남성화장품 시장이다. 스킨과 에센스 같은 기초화장품은 물론 비비크림과 같은 색조화장품까지 인기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작년 한해 한국 남성이 기초화장품에 쓴 돈은 약 4445억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 국내 화장품 시장의 규모는 매년 15% 이상씩 성장을 이어온 끝에 올해 드디어 '1조원대'에 진입할 것이 확실시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폭풍이 몰아쳤던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도 화장품 시장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남성화장품 시장은 2008년 5700억원, 2009년 6500억원, 2010년 8000억원에 이어 지난해 9000억원 규모를 형성했고 올해는 1조원 돌파가 가시권에 있다.

남성화장품 시장의 이 같은 급성장세에 힘입어 현재 국내 화장품 시장에선 기업들의 치열한 '남심' 공략 경쟁이 한창이다.

남성화장품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LG생활건강의 '보닌'은 축구스타 박지성 선수와 함께 개발한 남성용 피부 항산화 화장품 '보닌 JSP 라인'을 지난달 선보이며 남성 소비자를 '자극'했다. 해외 고급브랜드들의 공세에 프리미엄급 제품을 내세운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여성 한방브랜드 '한율'도 최근 늘어난 중년 남성고객을 잡기위해 '남성용 한방 안티에이징 진결 라인'을 출시하며 이에 맞불을 놨다.

 

◆스킨, 로션에서 고기능 에센스로 취향 선회

중저가 브랜드숍의 경쟁도 치열하다. 더페이스샵은 화장하는 남성을 위해 남성전용 아이브로우, 아이라이너, 비비크림, 컨실러 등 메이크업 라인을 강화했고 네이처리퍼블릭과 토니모리 역시 기존 인기 남성제품을 리뉴얼해 출시하는 등 남성고객 공략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해외 업체들의 국내 남성화장품 시장 진출 붐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일본제약업체인 오츠카제약은 최근 한국오츠카제약을 통해 남성화장품 브랜드 '우르오스'를 국내에 선보이며 출사표를 던졌고, SK-II도 이미 지난해 10월 남성전용 화장품 'SK-II MEN'을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처음 공개했다. 특히 'SK-Ⅱ MEN 페이셜트리트먼트 에센스'의 경우 출시 4일 만에 한달치 물량이 모두 팔리기도 했다.

더페이스샵 관계자는 "기존에는 스킨, 로션처럼 기본적인 스킨케어를 담당하는 제품군들이 남성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고기능성 에센스나 아이크림 같은 기능성 제품들을 많이 찾는다"고 열기를 전했다.

◆남녀간 사회적 평등화가 '예쁜 남자' 불러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리고 왜 '예쁜' 남성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경제발달과 더불어 사회가 변화하면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 원인이라고 해석한다.

서강대 전상진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들이 이제껏 외모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책임감으로 그 욕구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 뿐"이라며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활발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축을 담당하는 지금 남성들이 미적 욕구를 분출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혜균 우송대 교수도 "남성의 사회참여도와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거의 동등한 수준까지 다다랐다"고 간주하고 "이제 남성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능력이 비슷하다고 가정할 경우 외모 또한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그루밍족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아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기로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예전에는 거친 마초, 터프가이가 여성들이 선호했던 남성의 표본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부드러운 남자, 예쁜 남자들을 선호하면서 사회적으로 화장하는 남자가 주목받기 시작했다"며 "이제 남성들도 관리를 해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도 외모가 곧 자산이라는 인식이 커졌다"고 말했다.

 

"마초남 대신 친근남이 대세"

-김혜균 우송대 뷰티디자인과 교수

-그루밍족이 늘어난 이유는.

▶ 사회전체적으로 볼 때 남성의 사회참여도와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거의 같아진 것이 원인이다. 예전만 해도 남성이 경제권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여성도 과거 남성만큼의 경제권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됐다. 따라서 동등한 조건이라고 가정하면 남성도 여성처럼 외모를 가꾸고 (기업 등의) 선호유형에 맞게 스타일링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언제부터 '예쁜 남자' 붐이 일었다고 보나.

▶ 대학교육 등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을 70~80년대로 볼 때, 그들이 사회로 나가기 시작한 90년대말이나 2000년대 초가 바로 그루밍족이 붐을 일으킨 시기로 볼 수 있다.

-초기 그루밍족과 지금 그루밍족의 차이는.

▶ 여성의 남성 선호 유형이 바뀌었다. 예전엔 강한 경제력을 지닌 남성이 인기였지만, 지금은 부드럽고 여성과 친화력이 높은 남성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따라서 초기의 그루밍족에 비해 현재의 그루밍족은 좀더 여성성이 강조된 측면이 있다.

-그루밍족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 예전엔 보수적인 남성들이 주를 이뤘던 것에 반해 요즘엔 남성도 외모를 가꾸게 되면서 자신의 커리어나 개인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하게 됐다. 따라서 여성과의 교류나 친화력을 더 중시하는 남성들이 많아진 점은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된다. 다만 지나치게 외모에만 치중하다보면 자신의 능력 함양에 소홀할 수 있으므로 이 점은 유의해야 한다.

 

<용어 설명> 그루밍(Grooming)족= 패션·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를 일컫는 신조어. 가죽이나 털을 다듬다, 말의 갈기를 빗질하고 목욕시키는 마부라는 뜻의 단어 'groom'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