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B급 코드, '병맛'에서 뮤지컬, 연극까지.. 확산 어디까지
한국경제TV 편집국 입력2015.04.04. 10:46 수정2015.04.06. 11:10기사 내용
▲ B급 콘텐츠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영화 '다찌마와 리'(사진 = '다찌마와 리' 스틸컷)뮤지컬 '난쟁이들'은 B급 뮤지컬이다. 정확하게는 B급 코드 뮤지컬이라고 불린다.
B급이라면 대개 우선순위에서 밀린 느낌을 주기 마련이지만 이와는 관계없는 것이 B급 코드라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오히려 B급 코드라면 더욱 자기 정체성과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직관적으로 드러내 준다. 유치함 그리고 병맛 코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보이지만, 가볍지 않은 삶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기도 한다.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영화 '다찌마와리'를 연상하게 만든다. 포스터 자체가 이 영화와 비슷한 콘셉트를 지니고 있다. 무협과 액션을 B급 코드를 통해 자유스럽게 활용한다. 과장된 몸짓과 말투, 뜻밖의 효과음, 극단화된 상황설정은 B급 코드를 적절하게 버무려낸 작품으로 언급될만할 것이다. '오락실 무협게임', 'B급 무협액션판타지쇼' 같은 단어들이 이런 공연의 특징을 잘 담아내고 있는 듯싶다.
최근에 대중문화계의 B급 코드는 광고에서 연극이나 뮤지컬까지 적극 확산 그리고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새로운 확산과 진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 것일까.
우선 연극이나 뮤지컬이 B급 코드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은 대중성을 지향하는 전략 때문이다. 공연계의 위기를 B급 코드의 활용을 통해서 외연을 확장시키려는 것이다. 더구나 B급 코드는 마니아틱한 측면 때문에 강력한 응집력과 소구력을 보여준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거나 주류 문화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력한 쾌락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또한 순수예술이 가질 수 있는 답습적인 점을 벗어나서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 반영해내는 것으로 간주돼 소비될 수 있다.
이런 B급 코드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캐릭터는 만화적이고, 동화적이다. 이른바 '키덜트(kidult)' 측면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비록 어른이라 해도 아이와 같은 감수성과 행동거지를 보인다. 그들의 행동과 말투는 부풀려지고, 과잉 감정과 태도를 드러내 보인다. 일상의 소소한 사물이나 감정상태까지 잡아낸다. 가벼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벼움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가벼움 속에서도 주제 의식을 놓치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B급 코드는 재미와 유희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콘텐츠나 작품을 평가할 때, 재밌는 B급 코드의 대사와 유머라는 단어가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다. 웃음과 재미 같은 감칠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페이소스같이 주제의식도 담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한 주제의식이 없다면 B급 코드를 살려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다양한 장르들이 융합되는 측면도 특징이다. 만화, 동화, 로맨스, 호러, 스릴러, 액션 등등 대중문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장르들이 적극적으로 융합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V가 영원한 삶을 사는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가 중심인데 뱀파이어 호러와 SF장르가 결합돼있는데다가 멜로이면서 코믹장르 특징도 있는지라 B급 웃음 코드를 적극 대사에 녹여내고 있다.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투영해내고 있기 때문에 '병맛'('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 코드의 대사들이 있다고 해도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니게 된다.
애초에 B급 코드의 콘텐츠들은 할리우드 B급 영화에서 파생돼 나왔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기본 영화 사이에 잠깐 채워줬던 낯선 영화들이 바로 B급 영화였고, 그것이 하나의 장르적인 특징을 갖춰나갔다. 마치 근대 시기 전통 공연극장에서 막간에 악극을 보여줬던 것과 같았다. 그런데 B급 영화들은 본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작품들이었다. 주류 영화에서 아직 받아들이지 않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전위적이거나 인디 시네마와는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시대와 사회의 상황에 맞게 대중들의 감수성과 욕망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것을 끊임없이 작품화했던 것이 B급 영화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의 작품세계만을 고집하던 아방가르드 코드와는 다른 것이었다. 끊임없이 대중성을 모색하면서 삶의 메시지와 깨달음을 공유하려는 시도의 결과물들이었다. 대중적 성공과 맞물려 있었고 꼭 대중적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B급 영화의 운명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B급 콘텐츠 전반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의 B급 코드를 활용한 콘텐츠들은 무늬만 B급 코드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정답이 있는 것처럼 구는 태도에서 파생한다. 또한 재미와 유희를 겉으로만, 차용해 마치 당의정처럼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두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
'병맛코드'가 B급 코드의 하나의 양상인 것은 분명하며 등치관계일 수 없는 것은 항상 견지해야할 점이기도 하다. B급코드가 성적인 대사와 유치한 담론, 뻔뻔한 언행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의 공감을 유도하지만, 그 공감 안에는 진실성을 담으려는 노력들이 더 값있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영화 '다찌마와 리' 같은 유형의 콘텐츠들이 B급 콘텐츠를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형화된 B급 콘텐츠를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B급 문화라기보다는 B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고 친숙해진 코드들은 더 이상 B급 문화 자체는 아닐 것이며 오히려 상업적으로 성공한 주류문화의 범주에 들어간 것이다.
B급 문화의 운명은 절대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어느 순간 그 B급 콘텐츠들은 자리를 내주고, 다른 콘텐츠들에게 양보를 해줘야 한다. 언제나 새로운 B급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다시 다양한 문화창조와 생성에 영감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B급은 규정할 수 없다. 아무도 그 정답을 모른다. 오로지 주류 문화에 대해서 새롭고 낯선 사유와 세계관을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통해 전달할 뿐이다. 오로지 B코드들만이 규정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이미 검증되고 인정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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