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헌식 칼럼>´소시´가 소녀들을 죽인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7:30

<김헌식 칼럼>´소시´가 소녀들을 죽인다?

2010.02.12 11:41

 




[김헌식 문화평론가]빈부의 격차가 극도로 심한 나라는 부가 어느 정도 분배가 된 나라보다 유행이 빠르게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때 부자가 입는 옷 스타일을 가난한 이들이 모방할 여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로마와 그리스의 귀족과 부자들은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살았지만, 이를 평민들이 흉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중세 영주들은 화려하게 살았지만, 백성들은 빈곤하고 처참한 생활을 감내해야했다. 17세기 스페인 궁정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공간이었지만 스페인의 일반 국민들은 극도의 빈곤 속에서 생활했다. 유럽에서 상인계급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은 영주들의 의복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는 것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이전에는 모방할 수 없었던 상류층의 옷을 입는 것이었다. 

영양이 결핍이었던 시기에는 풍만한 여성에 얼굴빛이 보름달과 같이 환해야 했다. 농촌에서 여성들은 햇빛과 흙먼지에 시달려 얼굴빛은 검었다. 또한 서민 여성들은 오랜 노동으로 허리가 굽거나 관절염으로 팔자걸음을 걷기도 했다. 하지만 귀족이나 양반가의 여성들은 꼿꼿하고 단아했다. 서민들은 보름달과 같이 환하고 둥그런 얼굴을 가진 여성을 최고의 미인으로 쳤고, 그런 여성들과 아내로 맞기를 원했다. 귀족과 부자들이 선호하는 여성을 대리모방하는 것이었다. 

농촌의 해체와 산업화는 새로운 여유층들은 대거 양산하면서 기존의 선호 여성에 변화가 주어졌다. 영양은 결핍되지 않고, 오히려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서 과잉에 이르렀다. 더구나 그 과잉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었다. 즉 누구라도 쉽게 살이 찔 수 있는 환경에서 마른 몸매는 부와 여유의 상징이 되었다. 더구나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비만 체질 보다 마른 몸매가 건강하고 더 나은 건강한 자손을 잉태하고 교육시킬 수 있는 잠재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마른 몸매에 대한 열풍은 그것을 일반인들이 모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더 폭발력을 가질 수가 있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이상적 여성의 기준은 '여성 스타'였다. 여성들은 그 스타를 멀리서 선망했지만, 차츰 자신이 그 스타가 되기를 갈망했고, 곧 뛰어넘고자 했다. 스타시스템은 이상적 여성 을끊임없이 만들어내었고,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면서 수익을 노렸다. 

아울러 대중문화산업은 그것을 가능하도록 각종 부대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성형과 다이어트, 화장술, 각종 패션장신구 따라하기는 이를 나타낸다. 스타의 몸매를 가꿀 수 있는 시간과 가용자원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스타의 몸매는 하나의 시장을 염두 해 둔 포석이다. 즉 누구라도 여성스타와 같은 몸매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심리가 팽배할수록 다이어트 열풍은 심화된다. 물론 비만에 대한 과잉된 공포가 이를 부추기면서 관련 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데 활용 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예쁘고 화려한 꾸밈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이때 복잡한 언어와 행동은 불필요하다. 남성 중심주의에서 소녀(여성)는 복잡한 사유구조를 보이면 안 된다. 예쁘고 아름답게만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면 된다. 소녀그룹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단순 반복적이다. 소녀시대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소녀그룹과 달리 외모 면에서 그들은 긴 다리와 허벅지를 자주 노출 시킨다. 또한 명색이 소녀그룹이기 때문에 상위 노출은 되도록 삼간다. 야한 동영상이 디지털 공간에서 넘치는 상황일 때 이는 거꾸로 희소성을 갖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남성을 위해 존재하며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시'의 여성들은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소녀들이다. 더구나 집단적으로 더욱 불가능하다. 소녀시대의 '오'는 아예 오빠를 향한 노래다.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많이 많이해"라고 말할 소녀는 없다. 어쨌든 현실에 없는 소녀로 어필하고 있으니 소녀시대는 인기가 많겠지만, 현실의 소녀들은 모방할 수가 없다. 현실의 소녀들은 더욱 비참해 보인다. 

'소시'는 정체불명의 귀족 소녀들이다. 이런 귀한 소녀들에게 거친 노동과 스트레스로 정신적 육체적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원 봉사까지도 점수 때문에 골치를 앓지 않아도 되고 새벽부터 야자와 수업이 시달리지도 않는다. 시급 몇 천원 알바에 피곤이 찌들 염려도 없고, 짓눌리는 마을버스와 전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언제든 비정규직에 내몰리는 답답함이 없다. 매우 메말랐음에도 머릿결과 피부는 눈부시고 영양 상태는 항상 충만해 보인다. 언제나 그들은 고민과 방황에서 자유롭고 환하며 유쾌하다. 

그녀들의 각종 멋진 패션 스타일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 20~30대가 흉내낼 수 없으며 줌마렐라나 미시족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소녀그룹의 희소성은 더욱 증가한다. 소녀 같지만 소녀 같지 않은, 현실에서 여성들이 흉내 낼 수 없지만 남성들이 좋아하는 이미지가 상품성의 핵심이 된다. 더구나 그들은 한 명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일상에서 소녀들이 모방할 수 없다. 집단으로 소녀시대의 복장을 추구할 수는 없다. 

'오'를 통해 극대화 되었듯이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이성에 대한 좋은 이미지 주기이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오빠들에게 집단군무와 합창으로 각인시킨다. 여기에서 오빠는 비단 몇 살 차이가 아니라 '저씨' 세대 까지 포괄한다. 현실의 소녀들은 그러한 소녀들을 흉내 내기에는 시간과 가용자원이 없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사회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화려한 외모가 이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패션과 외모 가꾸기는 적어도 현실의 소녀들에게는 예외적이다. 즉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화의 생물학적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바람처럼 사라질 운명이다. '소시'를 모방하는 소녀들도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들은 포르노물안의 벌거벗은 여성이 결국 점선에 불과한데도 성적인 흥분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놓친 것이 있다. 어쨌든 남성들은 점과 선은 실제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학습한다. 소녀시대의 소녀이미지는 결국 하나의 점과 선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