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진보와 보수라는 양날개로 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수행 교수가 정년퇴임으로 물러난 자리에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를 임용해야 한다는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의 주장이 논란을 일으킨 지 꽤 되었다. 경제학과만이 아니라 인접학과 대학원생들, 심지어 전국의 경제학과 교수들까지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의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마르크스 경제학은 의미가 없다고 여기던 주류 경제학 지지자들에게는 얼토당토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문제다. 더구나 꼭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임용할 필요는 없다. 대학원생은 마르크스를 떠나서 진보적인 경제학 연구자를 원하고 있다. 지금은 학문적 다양성을 위한 최소한의 균형회복과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권리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학교도 학생들이 원하는 학문, 학자들을 불러올 의무가 있다.
경제학에도 보수주의 경제학과 진보주의 경제학이 있다. 보수주의 경제학은 경제학과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보수적인 경제학에는 시카고학파로 통화주의자인 프리드먼 신고전파 경제학이 속한다. 여기에 수정자본주의 경제학으로 대변되는 사뮤엘슨 경제학이나 케인지언도 주류경제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정부의 간접적인 개입을 추구하는 사뮤엘슨 류나 케인지언도 좌파 경제학이 된다.
진보주의 경제학을 단순히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현대의 마르크스 전통을 이어받은 경제학은 분화되었다. 자본과 시장의 모순, 부의 불평등과 빈곤, 반생태학적 환경파괴, 전일적 금융체제의 문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떠올리거나 현실에서 실패했다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더구나 주류경제학에서는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시장과 가격기구의 안정성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간접적인 개입도 결국 이 시장과 가격기구의 작동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과 가격기구로 해결될 수 없는 경제적 현상은 많다. 사회가 개인이 기능적으로 구성된 집합만은 아니고 이해 상충의 갈등 속에 있기도 하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기의 수요에 맞게 선택하기에 제한되어 있으며, 개인은 집합 속에서 구속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가설 검정을 통해 모델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실증주의적 방법론만을 우선시 한다. 개인의 행동을 추상적 가정을 통해 법칙을 유도하다. 그러나 실증주의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경제현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추상적인 개인의 행동을 법칙화 하지 않았다고 현상 자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없는 경제학이라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갈수록 경제현상은 분석보다는 통찰을 원하며 시장은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경제 법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다.
보수주의, 진보주의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만 판단하지는 말자. 주류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이 같이 날아야 경제학은 온전히 날수 있다. 더구나 복잡계 경제학, 진화 경제학, 역사 제도적 경제학 등 수많은 비주류경제학들이 경제 모순을 설명하고 풀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은 학문의 다양성을 기본으로 한다. 한국 대학의 경제학과는 전부 일색으로 빈, 로잔느, 케임브릿지 학파를 포괄하는 신고전파 경제 이론을 맹신하는 학자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에서 실제 현실 설명력 있는 성과물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미국 유학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제의 종속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학문의 획일적인 식민지성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 정점에 서울대학교가 있다.
▲ 김헌식 문화평론가 | ||
진보주의 경제학이라고 했을 때, 반드시 정통 마르크스 경제학만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훨씬 다양한 분파와 연구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진보주의 경제학자 임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구시대적이라는 평가는 타당하지 않다. 더구나 경제는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진행형이다. 기존의 모순은 여전히 존재하며, 설명되지 않는 경제 현상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얼굴을 지니지 않는 경제학 일변도에 진보주의 경제학은 더욱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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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codessss@hanmail.net)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