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과 유재석. 이 두 사람을 빼놓고 '예능'을 얘기할 수 있을까.
남녀노소 폭넓은 팬 층을 바탕으로 '국민MC'라 불리며 KBS, MBC, SBS의 주요 예능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들은 각기 다른, 아니 정확히 그만의 개성이 담긴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씨름 천하장사 출신으로 개그맨이 된 강호동의 성공 리더십과 정통 개그맨 출신으로 MC로서 빛을 발하고 있는 유재석의 실패 리더십이 눈길을 끈다.
지난 주말 '무한도전'은 동계올림픽특집으로, '1박2일'은 설악산 종주로 각각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12일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깃발 뽑기' 경기에서 허우적대는 길을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다그쳐 눈길을 끌었다. 늘 배려하는 그였기에 '호통'을 치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색다른 모습이었다.
13일 '1박2일'에서 강호동은 설악산에 오르며 힘들어하는 멤버를 직접 적으로 크게 돕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스스로 묵묵히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감격스럽게 정상에서 일출을 맞았다.
강호동과 유재석, '국민MC'라는 공통점 외에 이들의 리더십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강호동은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강심장' 등 각 방송사의 '1등 예능'을 이끌고 있다. 이들 프로에서 강호동은 강한 리더십으로 멤버들 혹은 출연자들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그들의 잠재능력을 살려 낸다.
큰 목소리와 거대한 덩치로 대변되는 그는 외면 자체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로, 프로그램 전체를 압도한다. 결과 또한 좋아 잘 나가는 프로는 더욱 잘 나가고 있고, 부침이 있는 프로조차 경쟁 프로와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는 '성공'이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멤버들을 채찍질하고, 이를 이뤄낸다. '독려'가 그의 리더십의 또 다른 모습이다. '미션'을 완수했을 때 그가 하는 '포효'는 이러한 성공 리더십의 성취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유재석의 리더십은 어떤가. 그를 '맞수' 강호동과 비교하면 '실패 리더십'에 가깝다.
유재석의 첫 시작이 순탄한 적은 없었다. 대표 프로그램인 MBC '무한도전'은 첫 시작 당시의 이름 '무모한 도전'답게 별 기대 없는 상황에서 시작해 지금의 '무도'를 만들어 냈다.
SBS '런닝맨'은 어떤가. '패밀리가 떴다2'의 부진에 따라 이를 폐지하고 신설된 '런닝맨'은 초반의 불안함을 극복하도 어느새 10% 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서서히 인기를 더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8년 한 자릿수 시청률로 출발, 이후 일요 예능 프로 '왕좌'에 오랜 기간 군림했던 '패밀리가 떴다'를 연상 시킨다. 그는 "'1박'이나 '무도'의 아류"라는 지적을 받았던 '천덕꾸러기' 프로그램을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히트상품'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는 비록 '성공'이 아득해도 숱한 실패를 거듭하며 끝내 '성공'을 만들어내고 만다. 이는 그만의 '배려'를 통해 이뤄지는 일이다. 스스로 '실패'의 쓴 맛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이끄는 멤버들은 늘 그를 만만하게 본다. 그 스스로도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발현이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지난 5년간 국내 예능계를 양분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의사에 상관없이 늘 '맞수', '경쟁자'란 단어로 수식된다. 이 '강호동-유재석 예능제국'을 대체할 이들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두 사람의 각기 다른 공고한 리더십이 계속해 이어지는 한 당분간 이들의 '제국'은 계속될 듯하다.
독설가 김구라가 강호동보다 유재석을 높게 평가했다. 김구라는 15일 방송되는 KBS2 ‘승승장구’ 최근 녹화에서 ‘유재석, 강호동 중 한명과 2MC를 선다면 누구?’라는 질문에 유재석을 택했다.
김구라는 “나는 유재석과 잘 맞는 것 같다. 유재석 주변도 슬쩍 바꿔 줄 때가 됐다”면서 “강호동은 부담스럽다. 성격도 세고, 나 역시 세니까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구라는 “메인 MC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서 “돈만 맞으면 패널이 훨씬 편하다”고 털어놨다.
또 이날 김구라는 자신은 2인자 MC인 탁재훈, 박명수, 김국진, 김구라 가운데 3위라고 말하며 “1위는 김국진이다. 개그맨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고, 제작진들과 함께 진행하는 MC들에게 신뢰를 주는 개그맨이다”고 평가했다.
김구라가 출연한 '승승장구'는 15일 오후 11시 15분 방송된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수성 뛰어난 호랑이 = 강호동은 카리스마 리더십과 서번트 리더십을 동시에 갖고 있다.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리드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함께 그들이 돋보이도록 스스로를 낮추는 배려와 겸손함도 갖췄다. <강심장>의 박상혁 PD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타인의 거부감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강호동씨는 뚱뚱하다거나 무식하다는 식으로 자기를 낮추거나 희화화하면서 시청자에게 친근감을 준다”고 말했다. 박 PD는 “특히 <강심장>처럼 20여명의 연예인 출연자들을 쥐락펴락하며 오케스트라 지휘자같이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강호동씨 한 사람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무릎팍도사> 박정규 PD는 강호동을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수성 뛰어난 호랑이”라면서 우락부락하지만 센서티브한 면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PD는 “녹화할 때 보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금방 빨려들고 게스트가 울면 자기도 따라 운다”며 “이처럼 상대방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천성”이라고 말했다. <스타킹>의 배성우 PD도 “강호동씨에게는 톱스타에게 보기 어려운 낮은 곳으로 임할 줄 아는 진정성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겸손함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배 PD는 “어린 나이에 씨름으로 성공도 해봤고, 전혀 낯선 연예계에 들어와 밑바닥부터 다진 내면의 깊이와 넓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특히 <스타킹>처럼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MC가 친화력, 포용력, 이해력을 순간적으로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성패의 관건인데 그런 점에서 강호동은 최고의 적임자”라고 덧붙였다. 개구쟁이의 심술궂은 이미지를 겸비한 것도 강점. 설령 게스트에게 실례되는 질문이더라도 그가 하면 밉상으로 보이지 않아 시청자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것을 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주 월요일 <스타킹>(정오부터 자정까지 녹화), 수요일 <무릎팍도사>(게스트 시간에 맞춰 5시간 정도 녹화), 목요일 <강심장>(격주 2회분 녹화 10시간), 금~토요일 <1박2일>을 녹화한다. 수시간에서 길게는 연이틀을 촬영하는 각각의 프로그램만 해도 충분히 진이 빠질 터. 그러나 타고난 체력으로 이를 모두 소화해낸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무색할 정도. <1박2일>에 함께 출연 중인 은지원은 “호동이 형은 아무리 힘든 촬영이라고 해도 절대 체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며 “늘 동생들보다 더 열심히 하니까 동생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속사 관계자에 따르면 강호동은 연예계 입문 뒤 단 한 번도 방송펑크를 낸 적이 없다.
두뇌회전도 빠르다. <무릎팍도사> 박정규 PD는 “첼리스트 장한나부터 작가 공지영까지 다양한 분야의 게스트들에 대한 핵심을 빨리 파악해서 일목요연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그의 두뇌가 비상하다는 걸 방증한다”고 단언했다. 이는 동물적인 순발력과도 맥이 닿는다. <1박2일> 등에서 강호동은 함께 출연하는 동료가 웃음 포인트를 찾으면 받쳐주고, 포인트를 못 찾고 헤맬 땐 자기가 앞장서서 웃음을 유발한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와 딱 맞아떨어진 운대 = 강호동이 자타공인 예능MC 1인자의 자리에 오른 것은 <1박2일> 등 리얼버라이어티가 꽃피기 시작된 2007년부터.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개그맨, 배우, 가수 등 모든 예능인들이 장르의 부침에 따라 뜨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며 “지난 5년간 한국에서 붐을 이룬 리얼버라이어티가 강호동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원 교수는 “연출된 대본과 세트의 영향을 받는 스튜디오 녹화와 달리 야외촬영에선 의외의 변수가 많은데 강호동은 그 변수를 현장감 있게 살려내는 감각이 뛰어나고 체력까지 받쳐주면서 1인자로 부상했다”고 덧붙였다.
<스타킹> 배성우 PD도 “리얼버라이어티 전에 ‘몰래카메라’처럼 MC가 제왕으로 군림하던 시절이었다면 강호동 캐릭터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배PD는 “그러나 리얼버라이어티를 통해 목소리 크고 덩치가 큰 강호동에게 센서티브한 면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스타킹>과 같은 휴먼버라이어티 프로에서까지 시청자의 호감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확고한 신념 = 강호동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박2일> 나영석 PD는 “강호동씨는 녹화 전날엔 약속도 안 잡고 체력을 비축해둔다”며 “감기에 걸리는 것도 방송에선 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끊임없이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것도 강호동의 철칙. 매주 1회 이상 지인들과 산에 오르고 테니스도 친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항상 귀를 열어놓는다’는 것. 나 PD는 “최정상이면 아류나 독단에 빠지기 쉬운데 강호동씨는 그렇지 않다”며 “프로그램 촬영 때도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편견 없이 제작진의 의견을 100% 수용한다”고 말했다.
강호동은 지적 호기심도 크다. <무릎팍도사>의 박정규 PD는 “녹화 후 명사들과 식사를 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면서 좋아한다”며 “지식이나 지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큰 것은 예능 MC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강호동은 또 평소 아끼는 후배들에게 “겸손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예능 MC 최강자인 그가 “나는 최고가 아니고 내일 최고의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오늘 죽을힘을 다해 노력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맥이 통하는 부분이다. 배성우 PD는 “강호동씨가 자주 하는 말이 정점이 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관계자들은 그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있다. 최고 MC로서 향후 20년, 30년까지도 건재할 것이라는 중론이다. 운동선수 시절부터 강호동과 절친했던 한 후배는 “대인배인 데다 의리의 사나이인 호동이 형은 우리에게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멀리 내다보며 오늘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