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의 공진화
김헌식(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근래에 글쓰기 책이 유행을 해왔지만 글쓰기 책은 오히려 시대에 뒤쳐진 것은 아닐까. 이미 우리는 말하기 시대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기 즉 강연 영상은 인터넷에 넘치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강연 잘하기 책이 더 필요해 보일 정도다. 이를 헤아려 보면 참 의외라고 생각이 들 수 있었다. 21세기는 탈(脫) 지식인의 사회라는 데 오히려 사람들은 강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탈지식인이라고 하면 지식의 권위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다. 영화 선택조차 평론가보다는 네티즌 평점을 우선한다. 아울러 이미지의 시대 혹은 영상의 시대라는 말도 더 많이 회자되어 왔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문학 강연이나 ‘어쩌다 어른’, ‘세바시’, ‘TED’와 같은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식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오히려 강연은 소환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식과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혜안과 사유가 없으면 말짱 헛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를 모아놔도 그것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강연에서 얻고자 하는 점은 단순히 입시교육처럼 강박하는 암기 지식이 아닐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살아 있는 지식, 살아가면서 얻은 지식, 삶의 지혜와 혜안을 얻고자 듣는 것이다. 기존의 책이나 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영역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낸 이들의 경험적 지혜를 생생하게 듣고 싶은 것이다. 삶의 생생한 말, 그것이 사상이고 인문학일 수 있다.
예전에 인문학이라고 하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나아가 논어나 장자 등등 유명 고전과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삶의 이야기와 경험담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조건이나 환경은 매우 달라졌다. 하나의 길이 있다고 할 수 없게 사회 미래 지형도도 많이 바뀌었고 급속하게 바변동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경청이라는 단어가 더욱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어떤 경청과 강연인가가 중요하다. 강연은 듣는 청중과 피드백을 통해 교감이 생명이다. 이미 만들어진 연출된 영상 콘텐츠에서는 느낄 수 없다. 글은 더욱 더 교감의 여지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글을 읽는 사람이나 모두 일면적이고 자주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청중이 없이 카메라 앞에서 이뤄지는 강의는 경직되고 밋밋하기 마련이다. 살아있는 말이 나올 여지는 그만큼 더욱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 나아가 청중과 강연자가 교감을 하는 모습은 이를 콘텐츠로 접하는 이들에게 생동감 있는 영상 텍스트로 전달되는 매력도 있다.
책읽기는 정적이지만 강연은 하나의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강의와 다른 것이다. 강연자의 시선은 항상 그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 무대 위에서 강연이라는 하나의 공연 작품을 올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방식에서 선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공유하고 싶어 하고 그 행위를 통해서 교감하는 관계에 목말라있다.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벽에 갇혀 개인으로서 고독하게 일만 한다. 공연 현장은 무수한 사람들이 강연 대상을 두고 알 수 없이 무수히 공유, 교감하는 현장일 수밖에 없다. 그곳에 가면 살아 있음을 느낀다. 혼자만 생각하고 느꼈던 점들을 사람들과 같이 공감하게 만들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거꾸로 청중의 반응에 따라 강연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강연의 재미는 이러한 심리에 기반한다.
무엇보다 강연은 책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용의 핵심을 짚는다. 핵심을 짚는 강연의 인기, 현대인들이 한편으로 너무나 바빠진 것은 아닐지 생각할 수 있다. 짧은 시간 내에 뭔가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어느 때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다. 강연은 말하기이기 때문에 의미 구조보다는 직접적인 직관이 중심이기에 이러한 욕구에 쉽게 부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다 다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계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연 콘텐츠들이 인기가 많은 것은 무엇보다 영상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 중심에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Z 세대라고 일컬어지고는 한다. 예컨대 네이버나 다음이라는 포털이 크게 성공한 이유는 검색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르는 내용을 포털에 물어봤고 이 때문에 방문자가 늘어나면서 이를 바탕으로 포털의 성공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러한 검색은 주로 텍스트였다. 하지만 밀레니얼 그리고 Z세대들은 문자 형태의 지식을 검색하여 학습하기보다는 이미지와 영상으로 한다.
스마트 모바일 환경은 더욱 더 이를 강화하여 준 면이 있다. 이동 간에 언제라도 영상을 볼 수 있는 스트리밍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버퍼링 등의 지연 위험이 줄었고 이점은 방해 요인 없이 영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러한 강연 콘텐츠들은 매우 긴 분량이 아니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영상 플랫폼의 등장은 이러한 다양한 강연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환기되고 회자될 수 있는 마당이 되었다.
마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서 선택을 하듯이 우리가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분야나 주제/소재의 강의를 접할 수 있고, 그것에서 지적이거나 실용적인 만족이나 자극을 얻을 수 있다. 예전에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생각하지 못한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는 효과와 같다. 거꾸로 하나의 강연자와 강연에 매몰되거나 맹목적인 태도를 갖게 되지 않는다. 언제나 비교검토하고 바람직한 선택과 행동을 하는데 디딤돌이 되기 때문에 강연 콘텐츠 플랫폼에 좀 더 자유롭게 집중한다.
무엇보다 이런 강연 열풍의 중심에는 강연의 민주주의 원칙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강연은 특정 학술연구자들 나아가 아주 유명한 셀럽들만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사람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참여가 가능하다. 지금의 강연 트렌드는 청중과 강연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지식인의 권위가 붕괴 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지식인은 사람들에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일방적인 힘의 행사가 아니라 상호 작용을 통한 공감의 지식인 그러한 이들이 하는 강의가 중요해졌다.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고 지지를 받은 살아 있는 체험적 지식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보통신기술의 힘으로 텍스트와 암묵 지식으로 있는 지혜들이 이제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교감되고 그것은 다시 영상 콘텐츠로 무한 회자되고 있는 순환 고리의 시대에 들어섰다. 당연히 강연을 매개로한 지혜의 영속적 공유는 앞으로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칫 사람들에게 강연 현장에서만 통할 수 있는 감각적인 내용들만이 우선되는 현상들은 여전히 고민의 화두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강연자가 엔터테이너에만 머물 수는 없고 지혜를 빚는 사람이어야하는 점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김헌식(문화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카이스트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