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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자로 태어난 게 죄인가’ 한국의 혼외자 접근법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3:13
‘혼외자로 태어난 게 죄인가’ 한국의 혼외자 접근법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혼외자식의 정치적 이용은 반인권적이다
[0호] 2013년 09월 29일 (일)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media@mediatoday.co.kr
드라마 <허준>에서 주인공 허준은 기생이었던 어머니와 사또 사이에 태어난다. 혼외 자식이었다. 혼내 자식이었던 형은 항상 허준을 무시하고 멸시한다. 자신의 출생에 좌절한 그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함께 방탕하게 산다. 국가에서 금지한 밀무역을 일심다가 참형의 위기에 처한다. 그의 어머니가 기생이 아니었다면 참형을 받을만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외 자식이라는 딱지는 사람의 행동을 반사적으로는 물론 개인을 파멸 시킬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허준의 어머니도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혼외로 태어난 것이 죄인가
 
<사생아, 그 위대한 반전의 역사>에서 주레 피오릴로는 15명의 사생아 출신의 역사적 인물을 살펴보고 있다. 그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부인이었던 에바 페론(Eva Peron)의 아버지는 후안 두아르테로 부유한 농장주였고, 어머니는 요리사였다. 후안 두아르테는 유부남이었고, 마침내 그의 아내는 쫓아와 에바를 비롯한 가족들을 내쫓았다. 주레 피오릴로는 에바가 지독한 가난과 차별을 느끼고 인생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녀의 몸과 외모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차별한 세상에 대해서 뭔가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체로 혼외 자식의 삶은 주목되지 않고 스캔들만 주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소설이나 영화에도 반영되고는 한다. 파올로 벤베누티 감독의 영화 <푸치니의 여인>에서는 가려져 있던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여인과 그 혼외자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6년간의 고증을 거친 영화는 푸치니가 혼외정사 상대는 하녀 도리아가 아니라 도리아의 사촌인 줄리아 만프레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는 스캔들에 초점을 맞출 뿐 그 혼외자식이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이 없다. 이탈리아에 살며 자신이 푸치니의 혼외 손자라고 주장한 나디아 맨프레디는 자신의 아버지가 평생 가난에 시달리고 출생의 비밀을 감추어야 했다고 밝혔다. 
 
혼외자식의 용도
 
보통 현대 텔레비전 드라마에 혼외 자식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조연에 머문다.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마홍주(심이영 분)를 생각할 수 있다. 주인공이 혼외자식으로 몰리거나 뒤바뀌기도 한다.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 이순신(아이유 분)이 이유신(유인나 분)의 아버지의 혼외자식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혼내 자식으로 남는다. 혼외 자식은 악당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성격이 비틀어진 욕망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KBS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KBS
 
혼외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식은 문제덩어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에서 이렇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대부분 혼외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은 혼내 자식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혼외자식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주인공으로 혼외자식이 적극적으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주인공의 관점에서 그들의 삶과 마음을 그려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현재의 한국은 일부일처제가 더욱 강화되어 있는 사회다. 전통 사회에서는 첩 제도가 용인되어 그들의 신분이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대 국가에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금기시되거나 부정된다. 어떻게 보면 전통사회보다 더 차별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이다. 
 
보통 때는 사람들이 혼외자식에 관심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려움이 없는지 관심을 기울일 바가 아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질 때도 있다. 그때는 혼외자식을 수단으로 누군가를 공격할 때다. 혼외자식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상대방이 뛰어난 사람일 때 그의 흠을 잡는데 혼외자식은 좋은 포인트가 된다. 누군가를 거꾸러뜨리려 할 때도 혼외자식이라는 점은 훌륭한 구실이 된다. 
 
혼외 자식은 누군가의 비정상적인 행위, 엉터리 인간임을 증명하는 물건이 된다. 물건이라고 한 이유는 증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심장이 뛰고 감정과 이성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가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무너뜨려야하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 무너뜨려야할 사람이 없다면 다시금 버려진다.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불륜은 정당하지 않아도 그 남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혼외 자식의 정치적 이용은 반인권
 
채동욱 검찰 총장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채모군의 신상명세, 사진, 거주지와 출입국내역 등이 언론매체에 그대로 공개된 바 있다. 개인의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여 동의 없이 공개하여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 아동의 신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누출하여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기도 했다. 이는 아동복지법에 저촉될 뿐만 아니라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도 어긴 것이다. 
 
UN아동 권리 협약을 위반했지만 무엇보다 학생을 보호해야할 학교가 적극 정보제공에 나섰다는 점은 우려스러웠다. 본인인 채모 군은 물론이고 어머니가 느낄 고통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공인이 아닌 그들이 알 권리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으니 그로인해 부당하게 고통을 받는 일도 절대 없어야 했다. 
 
자식으로 태어나는 일이 개인의 선택 사항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 땅에는 혼외자식이라는 태생적인 족쇄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번 혼외자식 논란은 더욱 큰 상처를 주고 있다.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는 그들에게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다. 특히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 폄훼를 주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점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니 불륜은 미워하되 그 사이의 생명을 가혹하게 대해서야 되겠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을 부정당하는 담론은 존립할 수 없다. 혼외자식이라고 그 존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더욱 반생명이며, 반인권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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