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났다’ 극본을 쓴 김수현. |
역시 ‘김수현’이었다. 지난 2일 첫 방송된 KBS2 TV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연출 정을영·극본 김수현)의 기세가 무섭다. 첫회부터 25.3%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2회는 29.6%로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였다. 전작 ‘며느리 전성시대’의 인기를 고려하더라도 기록적이다.
실제로 드라마는 ‘찰지다’. 감칠맛 나는 대사와 빠르고 일관된 이야기 전개, 거기에 일상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캐릭터들까지 정교하게 엮었다. 김수현 작가의 30년 넘은 기본 내공 때문이다. 게다가 만인이 공감하는 ‘엄마’ 얘기다. 엄마 ‘김한자’로 등장하는 김혜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내레이션으로 조용히 읊을 때,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기본 형태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들과 변호사, 회사원인 딸 둘을 둔 엄마(김혜자)와 그 일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는 전형적 주말 홈 드라마. 그 안에서 신·구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한다. “연애도 왜 약게 못할까”라는 엄마에게 과년한 딸이 “욕심 부리지 마세요”하는 식이다. 현실의 가족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그래, 맞아 맞아”를 연발하게 된다.
가치관의 충돌은 단선적이지 않다. 주된 화자인 엄마는 구세대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을 초월해 있다. 엄마는 결혼도 안한 사고뭉치 아들의 아이를 배고 느닷없이 나타난 연상의 여자를 탐탁지 않아 하다가도, “다른 건 몰라도 나이 5살 많은 게 걸려”하는 아버지에게 “남자는 10살, 12살 많아도 되고 여자는 그러면 안 되는 이유가 뭐야?”라고 한다. 이는 여성으로서의 연대감이기도 하고, 그래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다.
‘엄마가 뿔났다’의 주인공역을 맡은 김혜자. |
이러한 디테일은 총출동한 중년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배가된다. 이순재, 백일섭, 김혜자, 강부자 등 김수현 사단의 중년 연기자들은 맛깔 나는 그의 대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백일섭과 쌍둥이 오누이로 등장하는 강부자의 넉살 연기는 웃음의 핵이다. 김수현표 대사의 속도감 있고 쫄깃한 말맛 역시 여전히 살아있다.
한계는 있다. 요즘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대가족을 등장시켜 현실감이 떨어지고 김수현의 기존 드라마와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주말, 일일 드라마에 으레 등장하는 대가족은 현실에선 찾을 수 없는 판타지”라며 “높은 시청률은 상당 부분 한국인들이 가진 대가족 판타지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족 형태는 다문화 가정, 싱글맘, 독거노인 등으로 다양화돼 있는데 ‘먹고 살 만한’ 중산층 대가족을 중심으로 삼아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섭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김수현이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이 뭐길래’ 등에서 보여줬던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이순재, 백일섭 등이 연기하는 남성 캐릭터는 시대에 발맞춰 가부장적인 색을 많이 뺐지만, 여전히 자기 주장이 강한 젊은 딸, 가족의 중심에서 고충을 겪는 어머니 등 기본적 캐릭터의 전형성은 변하지 않았다.
〈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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