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50년대로 회귀한 추석 선물의 사회사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04

<김헌식 칼럼>50년대로 회귀한 추석 선물의 사회사

 2010.09.22 07:04

 




[김헌식 문화평론가]트리클다운(Trickle-Down)하면 부시 정부에서 이루어진 경제정책을 떠올리지만, 본래 이 개념은 경제정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개념을 주창한 사람도 경제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였다. 개념을 만들어낸 목적도 경제 분석이 아니라 유행의 분석이었다. 

1904년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유행의 변화에 대한 가설로 트리클다운 효과를 만들어냈다. 유행은 하위집단이 상위집단의 상품소비를 흉내 내면서 이루어진다. 상위집단이 소비하는 상품은 상위집단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하위집단은 그것을 소비한다. 상위집단은 하위집단이 자신들의 상품소비를 따라 하기 때문에 차별성을 가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위집단은 다시 다른 상품소비로 이동한다. 

이러한 분석이 베블런의 관점과 다른 것은 베블런의 관점이 과시적 소비행태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 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짐멜은 트리클 다운 원칙에 따라 한 사회의 유행을 예측하는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상위층이 소비하는 상품은 곧 사회 전반에 유행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만약 상위층에서 주로 소비하는 선물은 얼마 후에 하위층의 선물 소비의 대상이 된다. 

선물은 두세 가지 용도가 있다. 우선'고마움'에 대한 응대이다. 이는 다분히 과거의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행동이지만, 미래의 관계를 더 돈독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관계에 대한 보상이지만 선물은 미래의 잠재적인 관계의 지속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정(情)을 나누는 것이 부각될 것이겠다. 마음을 전하는 상황에서 선물은 가치 평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한 정적인 사회만이 아니라 비교대상이 없는 균일한 공동체 사회일수록 선물에 대한 고민은 적을 것이며, 그 선물의 가치보다는 선물 행위자체에 더 의미를 둘 수밖에 없다. 

선물 행위에는 '평가'에 대한 용도도 있다. 사회적 관계 상에서 선물을 줄만한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 인정하고 이를 표시하는데 선물이 사용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게 된다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점은 선물의 크기나 가격과 비례하기도 한다. 비싼 선물이거나 진귀한 것일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심리가 만들어진다. 

이는 선물이 사회적 지위나 직위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선물을 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자신의 부와 지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교양과 기호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예컨대, 가격만 비싸고 품위가 없다면 이는 선물의 가치만이 아니라 그 선물을 제공한 사람의 정체성까지도 품위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회에서 추석선물은 균일에서 비균일의 상태로 진전되었다. 공동체적 사회의 특징은 사라지고 개인의 특징이 더 강하게 되었고, 선물은 더욱 비교의 대상이 되거나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존재론적 가치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상류층의 선물이었던 물목들은 점차 하향 이동하게 되고, 다시 하류층으로까지 내려간 선물은 다시금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1950년대 당시는 먹고사는 문제가 급선무였다. 구호미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반 사회에서 선물은 쌀이나 계란,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1차 식료품들이었다. 여기에 제사로 사용되는 청주가 오가기도 했다.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이러한 식료품은 최고의 선물이었겠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직접 생산한 식료품은 공산품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생산력의 발달과 경제건설의 영향 때문이었다. 이제는 단순한 식료품은 좀 더 흔해지기 시작했다. 이 때 선물의 향배를 움직이는 것은 상류층이었다. 국내에선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가 칫솔과 치약을 52년에 처음 선보였고 이것을 상류층은 선물로 상용했다. 일반인들은 1960년대에 칫솔과 치약을 선물로 명절 선물로 쓰게 된다. 설탕의 경우에도 1950년대에 상류층에서만 선물로 이어진 것인데, 일반인들에게는 1960년대에 보편화 된다. 그 보편화의 중심에는 바로 백화점이 있었다. 

1965년 백화점에서는 추석 선물 카탈로그를 선보인다. 오늘날과 같이 화보집이 아니라 1장짜리 광고전단이었다. 이 광고전단은 추석선물로써 손색이 없는 공산품이 중심이 된다. 이때 등장하게 되는 것이 '세트 상품'이다, 라면 50개들이 한 상자, 맥주 한상자, 설탕 6㎏, 인스턴트포장 커피와 같은 식료품등이 선을 보였다. 세탁비누 30개 세트, 통조림 6개들이 세트, 전기 냄와, 석유 곤로도 추석선물로 추천되었다. 설탕과 밀가루, 조미료 등 3백(白) 식품이 등장했고, 상품 종류는 100가지가 채 안됐다. 터져나갈 듯한 귀성열차에 오른 귀성객들은 이러한 추석선물하나 옆에 꿰어 차는 것이 꿈이기도 했다. 

1970년대는 라디오, 스타킹, 빨간 내복, 식용유, 조미료, 양산과 같은 제품들이 일반인들의 선물 목록에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거꾸로 상류층들의 선물목록에서는 제외되기 시작한다. 커피문화가 대중적으로 크게 확산되면서 커피세트 상품이 많이 팔렸다. 아이들에게는 여러 과자 종류를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가 인기를 모았다. 전기밥솥, 가스레인지, 보온밥통이 추석선물로 추천되었고, 70년대 후반에 이를수록 흑백 TV가 추석선물로 꼽히기도 했다. 

1976년 12인치 TV를 6만5700원, 14인치 TV를 7만8200원에 판매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품들은 1980년대 너무 대중화되면서 선물의 가치로서 입지를 많이 잃게 된다. 포니자동차가 1975년 출시되었다. 이 포니는 마이카 시대의 포문이 열리는 상징이었다. 이 포니를 시작으로 1980년대 들어서서 마이카의 대중화는 본격적으로 고속도로정체라는 단어를 회자되게 한다. 이를 두고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왔다. 

컬러 TV가 등장했던 1980년대는 다양화와 집적화로 추석선물의 특징이 요약된다. 먹을거리 선물세트는 점차 고급화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정육세트가 등장한다. 과일도 고급화되고 참치 캔의 등장은 규격식품의 양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놓았다. 선물의 집적 현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식품 외에는 스카프, 지갑, 벨트 등 잡화가 가장 일반적인 선물이 되기도 했다. 

추석선물의 일반화와 다양화가 이루어진 것은 백화점들이 대거 늘어나 경쟁을 벌이고, 배달서비스에 알맞은 품목이 각광을 받는 가운데 무엇보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선물의 평준화 현상과 기호의 다각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배달 서비스는 세트선물의 종류를 늘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의 세트화 시키기에 이른다. 3조 호황의 자신감과 민주화의 진정은 선물의 기호를 다양화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1994년에 본격적으로 발행된 상품권이다. 상품권은 이제 하나하나 선물을 받는 사람의 기호를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선물 받는 사람이 자기 취향에 맞게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언제든지 간편하게 휴대하고 다니다가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백화점 상품권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주유상품권, 관광상품권, 외식업체상품권 등 각종 상품권이 다양화 되었다. 한편 선물목록을 더 이상 확장 없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존의 상품은 고급화 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고급 정육세트는 30만∼40만 원대로 상승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IMF 외환위기 직전에는 이러한 고급화가 절정에 달하게 된다. 1996년과 1997년에는 수입양주가 100만 원대를 넘김에도 불구하고 선물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웰빙-참살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상류층은 지역특산물과 토속식품이 관심을 모았다. 또한 골프, 헬스기구 등 운동과 레저 관련 선물도 증가했다. 후반 외환위기이후에는 선물에 대한 고급선호는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대신 저가 실속형 상품이 선호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은 어려워졌고 한편으로 양극화의 심화로 고급선물은 계속 증가했다. 수백 만 원대의 과일 바구니, 갈비 세트 등이 선을 보였다. 친환경 청과, 유기농 가공식품에 대한 선호는 전 계층에 걸쳐 보편적으로 일어났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이 중저가 선물세트였던 식용유가 웰빙 열풍 때문에 2003년 이후 올리브유로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미료와 식용유 세트에 끼워 팔았지만 곧 독자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와인은 2005년 이전까지 항상 명절 선물 1위 자리를 지키던 위스키 세트를 물리치고 1위 자리에 올랐다. 

무엇보다 이러한 상품들에서는 브랜드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생산자, 생산지를 강조하는 브랜드 신뢰를 강조했다. MP3, 디지털카메라 같은 디지털기기와 닌텐도 등 게임 제품도 인기 선물이 됐고. 휴대전화가 필수품이 되면서 모바일 상품권도 선보이게 됐다. 어느새 빵이나 케익대신 떡이 고급선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선물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1950년에는 사람들이 가공하지 않은 천연의 식품들을 먹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소중해보이지는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인공적이지 않은 천연의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발전이 눈부셨다고 해도 결국 1950년대의 생활 양식으로 환원 되었다. 숨가쁘게 달려온 결과 수십년전의 일상을 선호하게 된 셈인데 이는 경제발전의 딜레마이자 과제일 수밖에 없다. 너무 쉽게 가치없다고 버린 것들이 최고의 선물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개발지상주의 한계에 대한 경고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