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감독의 차기작이자 천의 얼굴 하정우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 ‘터널’이 제작보고회를 열고 본격적인 개봉 전야제를 치렀다. ⓒ 쇼박스
재난영화는 오랫동안 여름철 흥행 영화로 각광을 받아왔다. 울리히 벡의 말대로라면 예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크게 공포감을 갖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재난일 것이다. 그것이 위험사회로 점점 치달아가고 있는 인류의 운명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운명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를 영화를 통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재난을 어떻게 다뤄내는가가 관건이 되겠다.
재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연 재해이고 다른 하나는 인재다. 자연 재해는 말 그대로 화산이나 지진, 해일, 폭풍 같은 자연 현상 때문에 일어나는 재해다. 인재는 인간이 만들어낸 재해를 말한다. 예컨대, 신종 변종바이러스나 독극물, 원전붕괴, 가스 방출, 건물 등의 붕괴를 말할 수 있다. 두 개가 결합되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 예컨대 원전 등이 파괴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일어날 것이다.
영화 ‘해운대’는 한국형 자연 재해 영화로 크게 흥행을 했다. 소재는 지진해일로 불리는 쓰나미였다. 인도양 지진해일과 같은 재해가 한국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에 따라 만들어졌다. 영화 ‘부산행’은 인재를 소재로 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오 기업에서 만들어진 변형된 바이러스가 좀비들을 만들어낸다는 가정에 따라 서사가 전개된다.
넓은 범위에서 보면, ‘괴물’도 인재 재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에서 방출된 독극물이 변형된 괴물체를 만들어내 그 괴물체가 사람들을 습격했기 때문이다. 영화 ‘감기’(2013)는 변형된 조류독감을 소재로 하고 있었는데 처음 발생은 자연 재해 가까웠다. 그러나 그것의 확산은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과정을 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러스의 확산은 한국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재난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감염바이러스가 공포를 주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이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물린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전지구가 고밀접 네트워크 사회가 되면서 언제라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의 대중심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겨냥하여 대중영화들이 제작된 셈이다. 영화 ‘부산행’의 기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월드 워 Z’도 이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참극이다.
영화 ‘터널’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인재를 다룬 작품이다. 우리 사회는 삼풍백화점 참사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갖고 있다.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도 있었으니 부실한 날림 공사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여전하다. 그러한 불안과 공포을 토대로 영화 ‘터널’은 우리가 늘상 이용하는 터널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동안 산악이 많은 지형의 한국에서는 수많은 터널을 만들었는데, 영화는 그 터널들이 공사기간이나 비용을 우선하여 날림으로 지어졌다는 불안 심리를 전제한다. 만약 터널이 붕괴되고 사람들이 갇힌다면 어떻게 될까.
이 영화는 대형 재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은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는 마치 ‘그레비티’나 ‘마션’에서처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무조건 정부 자체를 비난하는데 힘을 쏟지 않는다. 그것을 활용하려는 정치인 행태나 미디어 태도만을 꼬집을 뿐이다. 그 안에서 살아 있다면 참사 상황 자체는 비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정상성이 작동하지 않으므로 희극이 된다.
하지만 그들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극을 넘어 참사가 된다. 시간에 따른 상황과 변동, 심리의 변화의 관계, 한국에서 그 점을 영화가 제대로 담아낸 적은 없었다. 재난이든 일상이든 개인은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국가를 무조건 비난하거나 타도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노력에 공공제도가 결합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점을 영화는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형 재난 영화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재난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위험을 만들면서 압축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에게는 재난 영화라고 할 때 자연재해를 넘어서서 인재를 적극적으로 다뤄낼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인재는 우리 스스로 예방하거나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비 바이러스도 인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그것은 영화적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다뤄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바이러스가 발생한다면 인류를 순식간에 멸종한다. 이를 위해 오락영화는 끊임없이 괴생명체를 통해서 인간의 안전을 부각하는 방식을 계속 진화시켜왔을 따름이다. 이에 비해 전국에 있는 수많은 터널은 언제라도 붕괴될 수 있다. 그때에 대비한 매뉴얼이 과연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위험사회 틀에서 보자면 한국 사회는 예외가 아니다. 원전은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전력난은 언제라도 블랙아웃을 예고하고 있다. 원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블랙아웃 상황에 있을 때 수많은 시스템이 멈출 텐데 그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영화만이 상상하여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재난 영화가 다뤄야 할 것은 단지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여 대중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찰하고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사회 담론화 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바람직 할 것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