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한국 미디어 아트를 책에 담아내야 할 이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2. 7. 6. 07:55

-‘한국미디어아트의 흐름리뷰

 

미술계에서 다른 세부 장르와 달리 그 명성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미디어 아트는 버거운 면이 이미 내재 해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창작 과정에서도 다른 미술보다 힘겨운 점이 있고, 그것을 보관하는데도 어려움이 더 있다. 예컨대, 백남준의 작품들이 제대로 보관이 안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부품 등을 주기적으로 갈아주어야 하는데, 어떤 때는 그 부품을 구입하기도 힘들다. 때문에 본인도 보관이 힘들뿐더러 공공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미디어 아트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는 더욱 더 힘들다. 이미 지나간 작품을 새삼 작가들조차 재현을 하기가 힘들다. 작가나 관객이나 모두 자신들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고 이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다반사이다.

강미정·장현경의 한국 미디어아트의 흐름은 이런 미디어아트의 한계를 오히려 넘어서는 책이다. 책이 어떻게 미디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싶은데 오히려 책이 그 가능성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을 마주하고 생각하게 된다. 재현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작품들을 사진을 통해서만이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자못 대단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한국에 이렇게 많은 미디어 아트 작가와 작품이 있었고 그 계보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가 있다.

물론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 책은 미디어 아트의 개념정의부터 예술적인 이론들의 적용을 통해서 정립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까지 읽어내야 하는 등 이 책이 학술서 같은 느낌에도 내용은 학술서와는 다른 구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시초라는 백남준의 작품들은 비록 그의 작품들이 오래되었어도 쉽게 인터넷을 검색만 하면 볼 수 있다지만 뒤에 등장한 1960년대 본격 활동을 했던 작가들, 한국 미디어 아트의 기틀을 만들어간 김구림, 박현기, 김순기의 작품들은 그 구체적인 작품 이름은 고사하고 그 이미지도 확인하기 쉽지 않다. 이후의 작가들은 주로 작품의 구현 과정에서 어려운 점들을 주로 말하는데, 비해서 이들은 그들의 활동 시공간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말이 생소했고 차별과 무시를 하기 일쑤였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더구나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감시의 눈초리를 끊지 않았던 정치 권력까지 그들의 창작과정과 발표 현장에도 개입했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지만, 막상 생생한 그들의 육성으로 듣는 것은 감흥이 남다르게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가 인터뷰의 구성이다. 형식상 37명의 작가 인터뷰라고 되어있고 목차에도 그 작가의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통상적인 인터뷰 대담 방식의 텍스트가 본문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 내용들의 중심 사실들을 따로 요약해 제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채롭기도 하고 들인 노고를 다시 생각하는데 때문에 학술적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학술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그들의 인터뷰 정리의 내용들이 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 담론이 남다르고 흥미로운 것은 작가들이 그 작품을 어떤 컨셉과 주제의식을 가지고 표현했는지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개 전문 연구자나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내용보다 생생한 설명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 해설이라는 점 이외에도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거나 작품을 선보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도 소략이나마 흥미롭게 담겨 있다. 본래 인터뷰 내용이라고 하면 더욱 재미있을만한 내러티브들도 상당하다. 아마도 이런 것이 실마리가 되어서 좀 더 대중적인 미디어 아트 관련 서적들이 나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접근은 단지 미디어 아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예술 관련 서적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대중이나 관람객에서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괜히 스토리텔링이 개입하는 것이 아님은 웬만하면 다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미술서들의 한계를 벗어나는 기획 가운데 하나는 한 작가의 과거의 작품만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나 관심사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래에 창작될 작품을 짐작하게 한다. 이는 그들이 여전히 현역 작가이고 특정 작품 하나로 섣불리 규정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작가는 끊임없이 규정을 거부하지만, 그것을 가두려는 연구자나 평론가의 잣대를 거부하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 그 자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또한, 작가로만 그들을 남겨두지 않고 동시대 미술과 미디어 아트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반드시 담아내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평론가나 전문연구자들보다 더 깊이와 사유, 혜안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로써 역시 작가에 대한 통념을 전환시킨다.

앞으로 미디어 아트 관련 책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매체적 기록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축적과 전달이 안되었다고 하면 지금은 그 다양성과 스펙트럼화 때문에 종합적으로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물리적 공간에서 그 많은 작품을 구현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책에 축적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카이빙하는 작업이 운명처럼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과 같은 시도가 많아질 필요가 있다.

다만 미디어 아트의 지형도 전개와 구축에서 아쉬움이 있다. 미디어 아트의 운명은 팝 아트의 운명과 같아지고 있다. 팝아트는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서 예술의 새로운 관점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담아냈다. 마찬가지로 미디어아트도 대중미디어를 적극 오브제로 수용해 주제의식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드러냈다. 당연히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관람객의 외연이 확장되는 실제적인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예술성의 추구가 대중성과 갈수록 멀어지는 것은 팝 아트나 미디어 아트가 공통점이 되고 있다. 예술화되는 것이 운명이라지만 그 첫출발의 떨리는 긴장을 기억해야 할 즈음이기도 하다. 처음처럼.

/김헌식(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정책박 박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