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중가요사

한국 걸그룹의 진화 궤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1. 14. 10:14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한다면 최초의 걸그룹, 걸그룹의 할머니는 1939년‘저고리 시스터즈’였다. 멤버는‘목포의 눈물’의 이난영,‘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었다. ‘저고리 시스터즈’는 일본공연까지 했고, 일본 잡지에도 등장했으며, 2013년에는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뮤지컬로 그들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저고리 시스터즈’는 대물림을 하며 걸그룹을 만들어낸다. 김형찬의 '한국대중음악사 산책'을 참고하면, 김시스터즈를 적극 만든 이들은 열성적인 어머니들이었다. 김시스터즈의 멤버는 가수 이난영과 작곡가 김해송의 딸이었던 숙자와 애자 그리고 이난영의 오빠 작곡가 이봉룡의 딸 민자였다. 연예인 활동이 아직도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때부터 기인한 셈인가 싶다.

2015년 8월,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는 한국 최초의 걸그룹으로 평가받는 김시스터즈의 멤버 김민자가 방문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김시스터즈는 본격 한류 걸그룹이었다. 김시스터즈의 김민자가 방문한 이유는 이 영화제에서 김시스터의 미국 진출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다방의 푸른 꿈이 상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1959년 김시스터즈가 아시아 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에 진출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김시스터즈는 가야금, 장구, 기타, 색소폰, 트럼펫 등 13개가 넘는 동서양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뤄내 미국인들의 눈길을 잡아 끌었다. 사실상 김시스터즈가 미국에서 한류 걸그룹으로 성공했고, 영향을 받아 그 뒤에 한국 걸그룹은 펄시스터즈, 바니걸스, 희자매, 이시스터즈로 이어졌다.

이런 공헌 때문인지 지난 8월 16일, 걸그룹 미미시스터즈와 바버렛츠는 김시스터즈를 위한 헌정공연을 홍대 앞에서 열기도 했다.

많은 걸그룹 가운데 펄시스터즈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다른 걸그룹들이 주로 번안곡이나 트로트 장르를 부른데 비해서 펄시터즈는‘커피 한 잔’, ‘님아’ 등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신중현의 음악적 기획과 프로듀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을 ‘케이 팝 0세대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었고, 이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탄생했다. 펄시스터즈는 0.5세대 정도였다.

한동안 걸그룹은 잠잠하다가 대외적으로 케이팝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팝뮤직 차원의 걸그룹은 9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특히 본격적인 댄스음악 걸그룹들이었다. 케이팝 1세대 걸그룹의 탄생이었다. 그 자극제는 일본 걸그룹이었다.

케이팝 1세대 걸그룹 예컨대, 핑클이나 SES, 베이비복스 등은 한국적 특징이 있음에도 일본 걸그룹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콘셉트나 안무구성, 캐릭터 조합, 음악적 스타일도 비슷해 보였다. 걸그룹의 기본 모델을 일본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이었다.

1세대 케이팝 걸그룹 이후 후속으로 등장한 팀들은 제대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대중의 기호는 다변했고 이에 맞추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다. 대형자본과 시스템을 갖춘 SM조차도 여기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주로 보이 그룹에 치중하고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권 소녀팬들을 겨냥해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2007년 JYP의 박진영은 걸그룹 원더걸스를 출격시킨다. 원더걸스의 대표곡 ‘텔미’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큼의 인기를 끈다. 이때 한국 걸그룹역사에서 원더걸스가 공헌한 점은 미국이나 일본 걸그룹 이미지를 벗겨내 버렸다는 것이다. 일본 걸그룹이 갖고 있던 섹슈얼리티와도 결별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적 걸그룹 스타일을 만들어냈으며 시스템 운영도 세밀하고 치밀하게 체계적이었다. 본격적인 걸그룹의 세세한 상품화와 마케팅 전략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섹시 컨셉의 걸그룹 AOA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내 대표적인 섹시 컨셉의 걸그룹 AOA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렇다고 한국적 전통에 바탕을 둔 음악을 선보인 것은 아니었다. 팝송의 레트로 음악을 결합시키고, 안무는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섹슈얼리티에 집중했다. 이는 일본방식의 걸그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뒤에 SM의 소녀시대는 음악과 안무 자체보다는 시각적 비주얼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특히 다리의 각선미를 강조하는 집단적 섹슈얼리티로 일본의 걸그룹과 완전히 다른 콘셉트를 갖게 된다.

이로써 차별화된 정체성을 갖게 된 한국의 걸그룹들은 다양하게 스핀오프(spin-off) 한다. 마니아틱하거나 B급 감성의 노래와 안무,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국가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걸그룹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케이팝 걸그룹의 한류현상을 일으켰다. 비록 많은 걸그룹이 탄생하고 다른 색채를 추구해왔지만, 결국 수렴이 노출의 섹슈얼리티였다. 2세대 케이팝 걸그룹의 정체성이었다. 원더걸스가 놓친 점은 이것이었다.

1세대 걸그룹의 경우에 작은 노출에도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여성의 노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둔감해졌다. 노출에 대한 강력한 금기의식은 촌스럽게 간주됐다. 오히려 노출의 용인은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인식이라고 생각됐다.

따라서 어느 순간 노출을 금지하는 방송사나 방통위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고 갈수록 노출 규제의 수준은 낮아졌다. 상대적으로 걸그룹의 노출 수위는 높아졌다.

이러한 면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걸그룹의 특징이 됐다. 비록 처음에 음악성 자체를 통해 경쟁에 나선 걸그룹도 결국 노출로 선회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또한 대표적인 걸그룹이 AOA였다. 이 걸그룹은 처음에 여성밴드를 표방했고, 일정한 퀄리티 이상의 음악성을 선보이려 했다.

하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뒤에 AOA는 크게 변신을 꾀한다. 그 변신은 바로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여성밴드 콘셉트는 버려졌다. 그만큼 경쟁은 격화됐고 걸그룹에 요구되는 점은 좁혀졌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원더걸스가 그 밴드 콘셉트를 주웠다. 이제는 안될 것 같은 밴드를 그냥 주워 입은 것은 아니다. 일단 원더걸스가 밴드가 아니기 때문에 밴드를 장식으로 걸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밴드 실력을 갖추는데 주력했다. 여기에 육체적 섹시함을 가미했다. 만약 단지 섹시함만을 가미했다면 받을 비난을 밴드 실력으로 돌파하려 했다.

그것은 일정 정도 성공했다. 복고풍의 수수한 걸그룹으로 복귀했다면 한스밴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 될 것이다. 어쨌든 개성을 크게 내세우지도 않고, 팝 컬쳐의 섹시함을 적절하게 믹스해온 JYP다운 선택으로 보였다. 즉 섹시콘셉트는 박진영의 콘셉트이면서 JYP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요컨대 원더걸스의 섹시밴드의 콘셉트는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밴드는 언제나 버릴 수 있는 소재로 보인다. 밴드 그 자체가 핵심 정체성으로 유지됐던 적은 록그룹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원더걸스의 태생적인 운명이자, 한국 걸그룹의 토대였다. 언제든 AOA처럼 밴드를 버리고 섹슈얼리티를 내세우며 활동할 것이며, 그런 흐름 속에서는 복고코드도 힘을 잃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원더걸스가 3세대 걸그룹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 안에 있다. 걸스데이나 브라운아이드걸스, 쥬얼리 등은 처음에는 섹시미를 강조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섹시 컨셉으로 회귀했다.

하지만 2NE1은 여전히 자신들의 크러시걸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크러시 걸은 아저씨 팬들만이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에프터스쿨, 시스타, 미스에이, 포미닛, 카라 등은 여전히 섹시이미지를 유지하려 한다. 그것이 장신의 각선미나 컬트 이미지, 귀여운 섹시미를 교차하면서 조금씩 유사개별화하고 있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는 모른다. 여전히 댄스가수의 정체성이 한국 걸 그룹의 특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책은 걸그룹의 민낯을 살짝 언급한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성공을 담보로 스스로 노골적인 상품이 되어야 한다. 즉 아티스트의 관점이 아니라 상품화를 용인해야 한다.

갈수록 나이는 어려지고 자아는 저버리고 섹시함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걸그룹 사이에서 아이유는 상대적으로 순수한 보컬 솔로의 상품성을 특화했지만, 제제논란에서 보였듯이 섹슈얼리티의 감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대로는 어쩌면 계속 그 감옥 안에 걸그룹들이 잔존할 것이지만 그 운명은 빤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새로운 걸그룹의 탄생이 잉태되고 있는지 모른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