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헌식(박사, 평론가, 한국연구소)
흔히 재난이나 참사에 관해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을 떠올리지만, 스위스 치즈 모델(The Swiss Cheese Model)도 매우 중요하다. 보험회사 미국의 트래블러스의 위험관리부서에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보험사고를 예방하여 회사의 손해율을 낮추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사례를 통해 하나의 도식을 만들어낸다. 바로 1:29:300 법칙이다. 이것이 하인리히의 법칙으로 1건의 큰 상해(major injury)가 발생하면 앞에 29건의 작은 상해(minor injury)가 일어나고, 같은 원인으로 상해를 당할 뻔한 300건의 무재해 사고(300 accidents with no injuries)가 있다. 그의 이론은 작은 것을 간과하면 나중에 큰일을 당하는 점을 강조했기에 도미노 이론으로도 불린다.
그의 도미노 이론은 크게 5단계를 이룬다. 1단계 유전적 사회적 환경(Ancestry & Social Environment), 2단계 개인적 결함(Personal Faults), 3단계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Unsafe Act & Condition), 4단계 사고(Incident), 5단계 재해 등이다. 1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환경인데, 교육 70%, 관리 20%, 기술 10%를 차지한다. 관리는 안전수칙 미비나 인력배치, 지시 부적절 등이 속한다. 기술은 관련 재료, 기계, 장비와 시스템의 미비를 말한다. 이런 사회적 환경이 인간의 유전적 속성과 결합 되어 문제를 일으킨다. 개인적 결함은 개인의 태도, 지식 여부, 숙련도, 신체 조건을 말한다.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는 개인이 안전조치를 하지 않거나 위험한 공간에 노출된 점을 말한다. 그는 88%가 개인의 원인이고 10%가 물적 원인 다른 2%가 불가항력적이라고 했다. 그는 1931년 이런 내용을 과학적 접근(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정리했다. 이후 10년간 미국의 산업 재해 조사에 그의 지적이 대부분 맞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하인리히의 도미노 이론은 거의 개인에게 원인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1969년, 프랭크 버드(Frank Bird)와 로버트 로프터스(Robert Loftus) 개인적 원인 외에도 사업주의 관리 통제요인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적 태도나 결함은 기본원인이고 사업주나 관리자 측면의 원인은 직접 원인이라는 '수정 도미노이론'(Updated the domino theory)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 지적도 한계가 있다. 개인의 행동이 원인이나 관리자의 통제 미흡이 원인이라고 해도 상황적 조건이 나쁜 쪽으로 맞아떨어질 때 사고나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스위스 치즈 모델(The Swiss Cheese Model)이다. 1990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구멍이 숭숭 뚫린 에멘탈 치즈를 보고 착안했다. 참사나 재난은 어느 하나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기능과 장치가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봤다. 하인리히와 버드의 이론은 매우 단선적인 연쇄 효과를 주안점에 두지만, 리즌의 스위스 치즈 모델은 다차원의 다중 원인이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환경 속에서 개인의 사고와 태도만을 언급하는 하인리히와 리드의 관점과 달리 리즌은 조직사고(Organizational Accident)로 확장했다. 개인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예컨대, 조직원의 피로, 의사소통 부족이나 오류, 적절하지 않은 협력 등이 발생하고 의사 결정상의 에러가 발생하고 이상 조치가 발생하게 된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면 하인리히 법칙처럼 매년 위험 요소가 있었고 이를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지구촌 축제에서는 더 많은 인원이 왔지만 잘 치러냈다. 개인들이 많이 몰려 위험 소지가 있었지만 각 지자체와 기관이 역할 분담하고 관리 통제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0월 29일은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다른 때보다 3배 이상의 개인들이 모여 인파를 이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로 3년 만에 노마스크데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고 핼러윈데이는 10월 31일이었지만, 주말에 쉬는 개인은 평일보다 많은 인파를 형성하고 이태원 거리를 수용력을 넘고 말았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대통령실의 용산으로 경찰력은 분산되었고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피로에 있었다. 아울러 주말 집회가 많아서 경찰은 그곳에 집중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약 특별 수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마약 수사대가 암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력이 드러내놓고 활동할 수 없었다.
1조 원이 투입된 최첨단 재난 안전통신망은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 소방, 자치단체, 해경 등 재난 관련 업무의 기관 8종(총 333개)이 소통할 수 있는 전국 단일 통신망인데 무용지물이 되었다. 연간 30억 원의 관리비가 들어가는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도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이 다른 통신망을 사용하고 관련 합동 훈련을 한 적도 없었다. 물론 시스템과 매뉴얼의 구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인력, 시설의 배치를 위한 의사결정이 미비했다. 이태원 상인들은 자신들의 주최 행사가 없었기에 미처 안전에 간과했다. 몰려든 인파에 영업에 몰두하기 바빴다.
결국, 하나의 원인으로만 볼 수 없는 다중적인 인과관계가 작동했다. 그러므로 사회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조직 문화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걸친 안전문화의 확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사소하게 보이는 에멘탈 치즈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시스템 자체나 매뉴얼에 매몰되게 하거나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나 사회문화보다는 자발적 요인과 동기부여를 장려하는 안전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