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43) 해리 포터와 포획이론
▧ 부패로 얼룩진 마법부
▧피규제자가 규제자를 포획?
▧저축은행 사태와 포획이론
☞ 경제 용어 풀이1997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닻을 올린 해리 포터 시리즈는 2007년 마지막 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공개됨으로써 10년간의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67개 언어로 번역되어 4억50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워너 브러더스(Warner Bros.)에서 제작한 영화 시리즈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정부보조금을 받던 가난한 이혼녀 조앤 K 롤링(J. K. Rowling)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으로 인해 엘리자베스 2세보다도 더 큰 부자가 되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 부패로 얼룩진 마법부
해리 포터 시리즈가 국경을 초월하여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작품 전반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들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법사의 학교 호그와트(Hogwarts)와 가상의 스포츠 퀴디치(Quidditch), 모두가 두려워하는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Voldemort) 등은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충분하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소재들은 많지만 필자의 눈길을 가장 끌었던 것은 마법부(Ministry of Magic)라는 조직의 존재다. 런던 지하에 위치한 마법부는 마법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정부기관으로, 마법부 장관은 수상만이 만날 수 있다. 마법부는 시리즈의 첫 작품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부터 언급이 되며,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처음으로 내부가 공개된다.
마법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나라 이곳저곳에 아직도 마녀·마법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머글(Muggle·마법사 사회에서 인간들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업무는 죄를 지은 마녀·마법사들을 체포하고 그 죄를 다스리는 것인데,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마법부는 부패로 얼룩지고 무사안일이 일상화돼 있다. 또한 어둠의 세력과 결탁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악한 마법사들을 규제해야 할 마법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쩐지 우리 모두에게 낯설지가 않다. 현실에서도 정부의 규제기관들이 본래 목적을 망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피규제자가 규제자를 포획?198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1911~1991)는 정부의 규제를 분석대상으로 하는 규제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스티글러는 1960년대 초부터 규제정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고, 1971년 <경제 규제의 이론>(The theory of economic regulation)이란 논문을 발표하여 ‘포획 이론’(capture theory)’으로 명명되는 독특한 모형을 제시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포획한다는 것일까?
포획이론에서 포획을 당하는 주체는 규제자이고, 포획을 하는 주체는 피규제자이다. 피규제자가 규제자를 포획하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규제권한을 가지고 있는 규제자가 피규제자를 포획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 왜 반대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정부의 각종 규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며, 규제권한을 부여받은 규제기관이 규제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규제기관은 피규제자가 없으면 조직과 인력이 유지될 수 없다. 그리고 피규제자는 일반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나 특정 이익집단인 경우가 많다. 피규제기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제기관에 로비를 할 수밖에 없고, 규제기관은 피규제자를 보호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곳으로 바뀌게 된다. 이로 인해 일반 개인의 이익은 결국 무시되고 만다. 즉 규제정책은 실제로는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와 포획이론스티글러에 의하면 규제정책의 도입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중의 요구에 대한 의회의 반응을 상징하는 것일 뿐이다. 스티글러는 소비자를 위해 가격과 투자정책을 규제하는 기관들이 본래 목적과 달리 생산자를 위해 활동한다고 지적했으며, 이는 포획현상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결국 포획현상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의 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스티글러의 포획이론은 올해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금감원은 금융감독권을 쥐고 있는 기관으로서 저축은행의 부실과 비리를 철저히 단속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실태를 파헤쳐보면 스티글러 포획이론이 그대로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감원은 저축은행의 부실을 사전에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하였고, 전직 금감원 인사들은 여러 불법적 행위에 가담하였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 감사는 금감원 출신이 맡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피규제자인 저축은행은 감사직을 미끼로 금감원 인사들을 포획했다. 그 결과 저축은행에 취임한 감사들은 저축은행 비리를 앞장서서 덮어주는 선봉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임직원들이 영업정지 전날 밤 친인척과 VIP에게만 예금을 인출해 주었는데, 당시 부산저축은행에는 금감원의 감독관이 3명이나 파견돼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객예금을 무단으로 송금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공문만 보냈을 뿐 사실상 특혜 예금인출을 방관했다.
피규제자기관에 포획된 규제기관은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획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든 규제기관을 없애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규제기관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차단할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규제기관 내부의 자정 노력 또한 필요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도 해리가 악의 수장 볼드모트를 물리친 후 마법부는 건강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고, 해리는 마법부에서 죄를 지은 마법사들을 체포하는 일을 맡게 된다. 앞으로는 규제기관들이 포획현상에서 벗어나 공익에 봉사하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되기를 바란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
▧ 포획이론(capture theory)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글러가 제시한 이론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규제기관이 피규제기관에 의해 포획당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게임의 룰 없는 '정글경쟁'…정부 인위적 공정도 문제
◆ 분노의 시대 ① ◆
1970~80년대 급속성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건실한 편이다.
한국은 지난해 6.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 터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앞으로 성장 전망도 어둡지 않다. OECD에 따르면 중기(2010~201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3%로 칠레(4.8%)와 이스라엘(4.4%)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장기(2016~2026년) 성장률 전망치가 2.4%로 크게 낮아졌다고 하지만 9위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성장에 냉담해졌을까. 대다수 한국인들은 경쟁 과정에서의 '게임의 룰'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취에 대한 갈망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회'라고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엠브레인과 함께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인의 인생목표를 방해할 요소를 꼽으라'는 질문(복수응답)에 "노력해도 성공이 어려운 사회"라는 답변이 43.3%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금전 부족이라는 답변이 39.4%, 학연ㆍ지연 등 사회적인 차별이 36.5%로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반면 능력부족(22.1%), 시간부족(9.8%), 대인관계 미숙(9.4%) 등 내부적 요소로 보는 비중은 낮았다. 최인수 엠브레인 대표는 "특히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인식했다"고 말했다.
성공에 대한 인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금전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4.6%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인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56.9%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국민 83.5%는 인맥을 활용하면 목적을 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30.1%는 목적을 위해 학연ㆍ지연ㆍ혈연 관계를 활용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고, 응답자 13.6%는 목표를 위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적이 있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인식 저변에는 포획이론(capture theory)이 깔려 있다. 특정 이익단체가 전문성이나 안전을 핑계로 정부를 설득해 불필요한 규제 장치를 확보하고 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불공정 행위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 많다는 방증이다.
보이지 않는 규제는 곳곳에 있다. 작게는 자영업 창업에 대한 규제부터 크게는 영리의료법인, 로펌 설립까지 넓고 다양하다.
네일아트숍을 열려면 이와 무관한 이미용사자격증이 필수라든지, 국기원 공인 태권도 관장이 되려면 4단 이상, 사범자격증,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에선 로스쿨 졸업 후 동기들끼리 뜻을 모아 로펌을 설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5월 변호사법 개정으로 로펌 설립 요건이 '구성원 5명 중 10년 이상 경력자 1명'에서 '구성원 3명 중 5년 이상 경력자 1명'으로 완화되긴 했지만 진입 장벽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변호사들 반대가 심해 이마저도 간신히 얻은 성과"라며 "이런 불필요한 규정은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료법인 설립 또한 의사자격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규제를 철폐하면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생산성도 향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산업이다. 저비용 항공사 설립 직전만 해도 기존 항공사들은 안전을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하지만 2004년 저비용 항공사 도입으로 경쟁에 불이 붙었고 항공산업 생산성도 높아졌다. 능률협회에 따르면 2004년 8만4400원 꼴이던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김포~제주노선 운임은 지금껏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항공사가 창출하는 일자리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 이진우 차장 / 이지용 기자 / 강계만 기자 / 이상덕 기자 / 최승진 기자 / 고승연 기자 / 정석우 기자 / 정동욱 기자]
담합 주도 CJ가 형사처벌을 면한 비결은…
[이권경제에서 혁신경제로 ③] 이권경제의 극복방안 (1)[프레시안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
국제금융과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는 박창기 (주)엔오푸스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일제당에 15년간 재직했습니다. 이 15년 중 8년은 런던과 뉴욕지점에서 근무했습니다. 1999년 증권정보 제공 인터넷 기업인 (주)팍스넷을 창업해 4년간 경영했고, 그 후 다양한 분야의 투자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브이소사이어티 창립 주주이며, 희망제작소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박 대표는 이권이 지배하는 경제를 극복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주제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조만간 발간될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부조리한 이권평형은 인간 불행의 근원이다
차별적인 인센티브가 있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특별한 이권을 얻기 위한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업인 협회가 잘 유지되는 이유는 '자격증' 부여 등 차별적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비교적 소수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모여서 수많은 협회들을 만드는 것도 소수라는 특성과 차별적인 인센티브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가 많은 소비자집단, 납세자집단, 빈곤자조직이나 실업자조직은 좀처럼 형성되지 않는다.
특정한 이득과 권력을 갈망하는 소수의 집단은 그 이득을 얻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열광자로 구성된 작은 집단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그 주변의 소수가 조직되어 '전쟁이라는 집단재'를 만들어나갔다. 히틀러에 반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염원이던 '평화를 위해 군대에 가지 않는 모임'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수많은 독일인들이 군대에 들어가 히틀러의 범죄행위에 협력자가 되었다. 역사상에 수없이 나타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착취'(exploitation of the many by the few) 현상은 이런 방식으로 일어났다. 부조리한 이권평형 현상이 인간의 고통과 인류사회의 악의 근원인 빈곤과 착취와 전쟁 발생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권집단'들이 '침묵하는 다수'를 착취하는 부조리에 저항하여 이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이러한 실패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간파하지 못한 탓이 크다. 앞에서 설명한 집단행동의 원리를 응용하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조리한 이권평형을 극복할 수 있는 세 가지 정책의 예를 제안한다.
정책 1. 설탕 수입관세 30%를 없애자.
정책 2. 담합범죄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벌하자.
정책 3. 병역의무 이행 퇴직금을 1000만 원씩 지급하자.
[정책 1] 설탕 수입관세 30%를 없애자
내가 제안하는 첫 번째 정책은 "설탕 수입관세 30%를 철폐하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고 법적으로 처벌도 받은 설탕 담합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세를 없애는 것이다. 시장이 개방된 상태에서는, 한국의 설탕가격이 높으면 전 세계의 수많은 설탕 공급자들이 싼 가격에 설탕을 공급할 것이므로 담합은 불가능하고 국민들은 값싼 국제시장가격에 설탕을 구매할 수 있다. 이것이 담합을 하는 세력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일이다. 이는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시장경제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국민에게는 이익이 돌아간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불법과 부패가 줄어들고 정의로운 세상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더 이상 정부나 관료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설탕이 독과점품목에서 제외될 것이고, 지식경제부가 가격을 관리할 필요도 없어진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공무원들이 할 일이 줄어들어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담합을 위해서 국회의원, 언론인, 학계, 관료, 판사, 검사들을 포섭하고 향응을 제공할 이유도 없어진다. 더 청렴하고 깨끗한 사회가 되는 것이고, 뇌물 등의 지하경제도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생긴다.
일부 진보개혁세력들과 다수의 공무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권집단들이 만들어놓은 관세장벽 같은 교묘한 규제를 없애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
규제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이권집단에 역이용당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입증한 경제학자가 있다. 198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1911~1991) 교수는 이런 현상을 '규제의 포획이론'(Capture theory of regulation)으로 설명했다.
조지 스티글러가 1971년에 발표한 '규제의 경제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를 무조건적으로 배격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업들은 특정 규제를 조장하고 이를 이익창출의 기회로 삼는다는 원리이다. 시장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독과점 제품이나 전문성을 띤 산업분야에서, 관료들은 이익집단의 그럴듯한 주장과 설득에 사로잡혀 이익집단의 의도대로 규제정책을 펴기 쉽다는 뜻에서 '포획이론'이라는 말이 쓰인다. 다시 말해 기업이나 이익집단들이 관료와 언론을 논리와 뇌물로 포획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드는 것이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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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제일제당 홈페이지. ⓒCJ |
[정책 2] 담합범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시키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없애자
라이신 담합사건은 앞에서 제시한 부조리한 이권평형의 국제적인 확장으로 보면 된다. 5개 공급사가 전 세계에 있는 축산농가로부터 연간 3000억 원가량 갈취하는 담합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의 축산인들은 이것을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알아도 나서서 해결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은 이런 범죄를 징벌적으로 처벌한다. 미국에서 몇 년간 3000억 원 정도를 부당하게 이익을 본 사건에서 벌금이 수천억 원이었다. 그리고 관련자들인 회장급, 사장급 인사들이 3년 내지 9년까지 실형을 살았고, 이에 더해 개인적으로 막대한 벌금도 물었다. 회사는 법의 처벌을 받는 동시에 피해 소비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했다. 또한 경영진들은 주주들로부터 '회사경영을 잘못한 것'에 대한 배상까지 하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미국의 법률체계는 담합을 징벌적으로 처벌해야만 자본주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만약 CJ제일제당이 미국 회사였다면, 경영진은 구속되어 여러 해 감옥살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담합에 대한 벌금과 소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수조 원을 변상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경영자로서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고 회사의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쫓겨났을 것이다.
한국에서 설탕 담합으로 수십 년간 1조 원이 넘는 부당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의심받는 CJ제일제당에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114억 원이었다. 법원은 이 범죄행위에 대해 1억 원의 벌금만을 부과하고 누구도 구속하지 않았다. 하수인들을 가볍게 처벌했을 뿐이고 정작 의사결정자인 대표이사는 처벌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사부재리의 원리를 활용하여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그동안의 범죄행위를 면책해주었다. 이것이 한국에서 끊임없이 담합이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이처럼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법질서까지 농단하는 이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살기 힘든 나라가 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범죄집단처럼 조직적으로 담합을 은폐하며 오랫동안 범죄행위를 해온 제당회사들을 적당히 봐주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아니면 무능했거나. 검찰도 이를 가볍게 처리했다. 국회에서는 강력한 로비가 작동한다. 2009년 민주당의 한 의원이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어쩐 일인지 슬그머니 그만두었다. 이러한 일들을 비단 설탕업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담합이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리니언시 제도
2008년 9월 17일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보면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당 3사 설탕 매출액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약 2조6400억 원이며 이 기간 동안 매출이익률은 일반 제조업체의 두 배가 넘는 최하 40%에서 최고 48%에 달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과징금이 세 회사를 합쳐서 511억 원에 불과했다. 업체별 과징금 규모는 CJ제일제당 228억 원, 삼양사 180억 원, 대한제당 104억 원 수준이다. 이 중 CJ제일제당은 조사과정에서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해 형사고발을 면했으며 과징금도 50% 감면받았다.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 leniency) 제도가 적용된 것이다. 리니언시란 '관대', '관용', '자비'라는 의미의 말이다. 기업이 카르텔 결성 등으로 담합했던 것을 자진신고할 경우 과징금을 면제해주거나 경감시켜주는 제도이다. 기업 간 담합은 내부자 고발이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이 제도를 시행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도를 악용하여 범죄행위를 면책받는 경우가 많아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범죄를 저지르고 자수하거나 공범을 신고하여 벌을 경감받은 후 홀가분해진 몸으로 또다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오랫동안 지속했던 담합범죄에 대한 면책을 받는 동시에 벌금도 줄이는 수단으로 이 제도를 이용해왔다. 2006년에는 8년간 지속해오던 밀가루 담합사건과 11년간의 합성세제사업 담합범죄도 이 제도를 이용해 면책받았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
설탕 담합사건에 대해 2011년 8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삼양사와 대한제당만 1억 원대의 벌금형을 받았다. 대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하지 않은 CJ제일제당에 대해선 원심의 공소기각 판결을 인정, 벌금형을 면하도록 했다. 자진신고를 했기 때문에 리니언시 규정에 따라 공정위는 CJ제일제당을 형사고발하지 않았고, 고발이 없었으므로 법원이 형사처벌을 못한다는 논리였다. 정작 주범인 CJ제일제당은 형사처벌을 면한 이유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담합이나 하도급 비리 같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할 수도, 고발할 수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만이 고발할 수 있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일인데 아직까지 버젓이 유지되는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 관료들이 끈질기게 이 이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불공정행위를 계속해온 재벌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공정위의 몇몇 관료들만 포획하면 범죄행위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해왔다. 담합행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 제도는 이권경제를 장악해온 대한민국 재벌이 국민들을 손쉽게 갈취할 수 있도록 한 사법적인 장치가 아닐까?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없애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