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커버스토리]낚고 낚이는 세상…新강태공의 낚시질 당신을 노린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7:36

[커버스토리]낚고 낚이는 세상…新강태공의 낚시질 당신을 노린다



[동아일보]

《한 마리의 싱싱한 잉어. 입맛을 다시며 매운탕을 생각하는 사람도, 한 밤에 찌를 바라보다 낚아채는 짜릿한 손맛을 떠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게다. 하지만 웃음을 참지 못해 킥킥거리는 무리도 있다. 잉어가 ‘마빡이’라도 되는가. ‘신(新) 강태공’은 잉어만 보면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들은 잉어를 잡듯이 인간을 낚는다. 미끼는 갖가지 속임수(Fake)다. 이들의 ‘떡밥’을 덥석 물어 발버둥거리는 사람들은 “앗, 또 낚이다니…”라고 비명을 지른다. 이들의 낚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누구든지 낚여만 다오. 

‘속았다’라는 뜻으로 퍼진 유행어 ‘낚였다’는 말 한 마디에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신 강태공, 이들의 논리는 기본 논리는 단순하다. ‘어차피 속고 속이는 세상, 낚고 낚이는 세상 아닌가…’

‘양치기 소년’을 읽고 자란 세대들은 거짓말이나 속임수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속임수가 엄연한 문화의 키워드가 된 세상이다. 낚시에 걸려 파닥거리는 잉어를 보며 모두 같이 외친다. 

오늘도 한 번 속이고 속아보자고….》

# 新강태공론 fake1

○ 리얼리티는 속임수의 기본

영업용 택시운전사 A 씨. 얼마 전부터 귀가 시간이 부쩍 늦다. 이를 수상히 여긴 A 씨의 부인 B 씨는 한 방송사에 의뢰해 A 씨의 뒤를 밟았다. 그 결과 모 술집 여성과 함께 있는 A 씨를 발견했다. B 씨는 이들이 함께 있는 경기 남양주시의 모처에 들이닥쳤다. 긴장감이 팽팽히 고조됐다. 경찰을 불러야 할까? 이곳은 케이블 채널 tvN의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다음 주 방송분 촬영 현장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상의 사건을 마치 실제 사건처럼 재구성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즉 가짜 다큐멘터리다.

“속임수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리얼하게 현장을 재구성 하냐죠.”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박찬욱 PD는 사실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사프로그램 출신 PD 5명이 다루는 주제는 불륜. 흥신소나 가정상담소, 이혼 전문 상담 변호사 등을 통해 소재를 구하고 있다. 택시운전사 불륜사건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택시운전사들의 교대시간, 은어, 한 달 수입 등을 연구했다. 가짜 다큐멘터리지만 왜 사실성에 목을 매는 걸까.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속았다’는 등의 비판도 받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얻지 못하는 짜릿함을 원하더라고요. 진짜 같은 리얼한 가짜 다큐멘터리…. 시청자들도 그 순간만큼은 몰입할 수 있거든요.”

“1주일 촬영 기간은 내 삶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재연배우 손윤상 씨. 주로 ‘내연 남’을 연기하는 손 씨는 사실감을 자아내기 위해 대본보다 촬영 당시 ‘애드리브(즉흥연기)’에 의존하는 편이다. 감정이 고조됐을 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주먹을 휘두른다. 

“시청자들은 제 연기를 보며 ‘세상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죠. 일반 드라마에서는 접할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을 즐기면서 카타르시르를 느낀다고나 할까요.”

# 新강태공론 fake2

○ 속임수는 ‘놀이’

‘속임수=나쁜 것’이라고 무조건 치부하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일까?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처럼 속임수를 약방의 ‘감초’로 여기는 이른바 ‘페이크(fake) 컬처’가 대중문화에 넘쳐 나고 있다.

‘페이크 컬처’의 최대 히트작은 패션에서 나타났다. 이른바 ‘눈속임 티셔츠’의 등장이다. 민무늬 셔츠에 넥타이, 조끼, 리본, 여성 가슴 등이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마치 넥타이를 매거나 조끼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성 가슴이 그려져 있으면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특히 10, 20대 젊은 여성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눈속임 티셔츠’는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5월 600장 정도 팔렸으나 지난달에는 무려 1800장이 넘게 팔려 나갔다. ‘G마켓’에서도 조끼 형태의 눈속임 티셔츠가 8월 첫째 주 2900장이나 판매됐다. ‘옥션’의 패션 담당 전항일 카테고리 매니저는 “스타일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고계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행위예술가 낸시 랭이 실종됐다고 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이는 LG전자의 LCD모니터 ‘플래트론’의 광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한 사원이 “부장님 제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세요”라며 만든 셀프카메라는 마치 ‘직장인의 하소연’ 같은 UCC를 연상케 하지만 실은 금호아시아나의 기업 광고다. 매일유업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는 광고도 “바나나는 원래 흰 색”이라고 주장하는 한 중년 남성을 추적하는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제작됐다. 마치 ‘추적 60분’과 같은 고발 프로그램을 연상케 한다. 이들 광고는 ‘튀는 장면’으로 시청자를 낚는다. 광고대행사 JWT의 김현진 국장은 “광고 같지 않은 광고로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븐, 휘성, 이수영 등 가수들은 음반 발매 전 음원 유출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짜 신곡 파일을 인터넷 공유 사이트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들의 가짜 파일은 1절 부분만 담긴 ‘맛보기’용. 또 최근 UCC로 홍보하는 가수들의 경우 기획사에서 음반 발매 직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나 춤 연습 동영상 등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촬영해 인터넷 동영상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다. 아이비, 손담비 등의 댄스가수나 밴드 ‘얼바노’ 출신 뮤지션 전영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속여서 낚아라, 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가 이들의 주제다.

# 新강태공론 fake3

○ 일상을 낚는 강태공 양성소, 인터넷

이 같은 ‘페이크 컬처’는 속임수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신 강태공들의 양성소이자 근거지는 바로 인터넷. 미니홈피 홍보, 악성코드 치료 프로그램 설치, 허위 사실 유포 등 누리꾼들을 손쉽게 ‘낚는’ 글이 하루에도 수백 건 게시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따르면 타 이용자 간의 게시물 관련 신고 건수가 일일 평균 400∼600건에 이르고 있다 

스스로 신강태공임을 밝힌 대학생 양희경(23·여) 씨. 1년 전 5인조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기사를 보던 중 ‘이곳을 클릭하면 동방신기의 미공개 동영상을 볼 수 있어요’라는 한 누리꾼의 솔깃한 글을 발견했다. 클릭하자 모니터에 ‘동방신기’의 동영상이 아닌 컴퓨터 악성코드를 치료하는 한 사이트가 떴다. 여러 차례 속임수를 접한 양 씨는 “내가 당한 만큼 남들에게도 똑같이 해 보고 싶었다”며 다른 게시판에 똑같은 수법으로 글을 남기고 자신의 미니홈피를 링크시켰다. 그는 누리꾼들에게 “그만 하라”는 악성 댓글을 받고 미니홈피를 잠시 폐쇄했다.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개인기’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인터넷에 개설된 크고 작은 거짓말 카페는 수십 개에 달한다. ‘사람 다치게 하는 속임수는 금지’, ‘어른들에겐 하지 말 것’ 등의 강령을 내걸고 기발한 속임수 아이디어 공모도 하고 있다. 또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토크박스’ 대회를 열어 ‘페이크 재치꾼’을 선발하는 곳도 있다. 한 카페 회원인 정모(26) 씨는 “착한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늘 당하는 것 같다”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속임수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 가입했다”고 말했다. 

# 新강태공론 fake4

○ 속임수는 개인기, 좋은 것만 바라보자

사람들은 신강태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의 속임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본보가 인터넷 쇼핑몰 ‘G마켓’과 함께 누리꾼 26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속임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낸 응답자가 과반수 이상인 61.1%를 차지했다. ‘문화, 놀이로 가볍게 받아들인다’는 긍정적 의견을 낸 응답자는 38.9%였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10대의 경우 긍정적 의견이 51.4%, 부정적 의견은 48.6%였다. 20대는 각각 44.5%, 55.5%로 젊은층일수록 속임수에 대해 관대했다.

속임수의 허용 한계에 대한 질문에선 ‘물질적 피해가 없을 정도’까지 괜찮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3.2%였다. 역시 10대(52.8%), 20대(57.8%)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반면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라는 응답은 전체의 32%에 그쳤다. 40대 응답자의 경우 41%여서 세대간에 차이가 나타났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속임수를 금기의 영역으로 여겼던 기성세대와 달리 신세대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속임수가 의도된 것이고 ‘가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즐겁고 재미있다면 어떤 속임수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세대들은 심형래 감독, 만화가 이현세 씨 등의 학력 위조설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신정아, 이지영 씨 등 일부 유명인의 학력 위조에 대해 격렬한 비난의 댓글이 붙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김 씨는 “신세대들은 작품이나 자신에게 끼친 영향만 생각할 뿐 그 외의 상황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 新강태공론 fake5

○ 속임수 뒤 ‘의심’이라는 그림자

하지만 기만은 물의를 일으키고 파장을 낳는다.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올해 초 ‘미혼’으로 호적을 위조한 한 이혼남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회원 가입 시 서류 심사가 까다로워졌고 위조 시 단계별 손해배상 금액 가이드라인을 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가도 강사들의 학력 위조로 뒤숭숭하다. 서울 노량진의 한 대입학원 실장은 “만약을 대비해 선생님들의 동의를 받아 졸업증명서를 학교 측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놀이나 즐거움이 아닌 학력 위조, 프로필 위조 등 굵직한 ‘물의성’ 낚시질이 온오프라인에서 범람하고 있다. 속임수가 문화가 아닌 잇속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최창호(HR 컨설팅 대표) 사회심리학 박사는 “상대를 속이는 순간 긴장과 이완이 반복돼 마치 엔도르핀이 나오는 것 같은 쾌감을 준다”면서 “속인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는 허위성 장애 환자나 속임수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중증 낚시꾼들은 놀이나 문화로 바라볼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신(新) 강태공:

특정인이나 특정집단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속임수를 부려 주목을 끄는 사람. 

강태공은 중국 주 왕조 시대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평생 공부만 하며 때를 기다리면서 바늘 없이 낚시를 했다. 강태공은 ‘낚시꾼’을 일컫는 단어가 됐다. 사람의 주목을 끄는 행위를 ‘낚시질’이라고도 한다. 허위 정보를 흘리거나 사람을 속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이들은 ‘신 강태공’으로 자처하기도 한다. 이른바 ‘튀는’ 시대를 맞아 이웃, 친구, 연예인, 유명인사 등 많은 이들이 신강태공으로 변하기도 한다.

글=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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