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칸, 왜 <박쥐>에 기립박수거나 나가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5. 19. 11:04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대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기립박수를 치거나 나가는 모습도 목격된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기립박수가 흔하지 않지만 그들 문화권에서는 흔하다.
무엇보다 2004년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을 한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
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예우는 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기립박수는 해주어야 한다.

한편으로 민감한 기독교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이에 대한 반응은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 이는 수상가능성은 낮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그 행동을 보았을 때, 박찬욱의 박쥐에 대해서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다.

너무나 식상한 주제일뿐만 아니라
상을 받기 위해서 여러가지 요소들은 조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옥빈의 캐스팅 이유까지 말이다.)

뱀파이어를 통해 페이소스를 만드려고 하지만, 그것은 매우 관념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관념적인 일상을 다루고 있지도 않다. 결국 어중간한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박쥐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마저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칸의 출품 제목은 '갈증'(Thirst)이다. 이것 마저도 너무 식상하다.  어떻게 이정도 컨셉을 생각했을까.)

뱀파이어가 된 계기도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최소한 가지고
있어야한 인과적 개연성마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만다.
차라리 뱀파이어 오락영화를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굴욕적인 것은 한국 사람이 뱀파이어 영화를 만들어가지고
상을 받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뱀파이어는 한국적인 소재가 아니기에
그것은 보편성과 특수성 원칙에서 벗어난다.
이는 마치 서부영화 소재를 가지고 미국땅에서
상을 받겠다거나 흥행을
해보겠다는 것과 같다.
그들이 보기에 얼마나 같지 않을까?
만약 서양인들이 한국의 원귀를 소재로
영화로 만든다면 얼마나 낯설까?
아니 그런 굴욕적인 창작행위를 유럽인들이 할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나아가 과연 박찬욱이 잘 할 수 있는 영화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영화 <박쥐>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상투성과 키치적인 요소를 덧붙여 정말
뱀파이어같이 살아있으되 죽어있는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