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춘향이를 엎어 무얼 얻으려느냐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18

<김헌식 칼럼>춘향이를 엎어 무얼 얻으려느냐

 2010.06.05 10:50

 




 [김헌식 문화평론가]최근 남원시 춘향문화선양회는 상영되고 있는 영화 < 방자전 > 의 상영금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상경해서 춘향을 너무나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이 영화가 절개의 주인공 춘향을 포르노 배우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계속 상영된다고 하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상영을 막겠다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애써 부정하거나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영화가 춘향이의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한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목적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춘향이의 절개 높은 이미지가 보존될 때 선양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에는 영화의 구체적인 주제나 함의는 배제되어 있다. 

여하튼 새삼 춘향이가 유명해졌고 영화 < 방자전 > 에서 훼손된 춘향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은 문화주체의 당연한 문화적 반응이겠다. 춘향은 그간 고전 작품의 주인공으로 고정화 되어 있는 캐릭터인데 모처럼 대중에게 재각인되었다. 물론 영화 < 방자전 > 의 춘향 이미지와 고전 속의 춘향이는 너무나 다르다. 어쨌든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춘향이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가 이러한 맥락에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논쟁의 출발은 영화의 장르적 특성부터 되짚는 데서 시작해야 겠다. 영화 < 방자전 > 은 일종의 패러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패러디 영화가 어떠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는 있다. 패러디의 묘미는 본래 단순히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통쾌한 풍자의 미학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 슈렉 > 의 경우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일격을 가했다. 여타 동화책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 방자전 > 은 무엇을 비틀고 있는가? 이 영화에서 이몽룡(류승범)과 춘향(조여정)은 결국 순수하지 않은 인물이다. 변학도는 오히려 순진하게 성적으로 이들에게 당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모종의 계략을 꾸며냈기 때문이다. 

이몽룡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춘향이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해 이몽룡과의 절개를 지킨 것으로 꾸몄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조선사회가 여성의 절개와 지조를 매우 강조한 윤리 시스템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한 시스템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여성의 절개와 지조를 강조하는 사회를 풍자 비판하는 것인가? 우리 시대에 왜 그런 영화가 필요한 것일까? 여성의 절개와 지조를 강조하는 사회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조선시대의 윤리적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은 현대성을 갖기에 부족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중심 시선은 방자다. 춘향이 사랑한 연인은 몽룡이 아니라 방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춘향은 자신과 계급적 위치가 비슷한 방자를 사랑했지만, 현실적인 모순이나 여건 때문에 이몽룡을 선택했다. 

여전히 현대사회에서도 경제적 사회적 여건 때문에 결혼에서 사랑을 버리는 일은 여전하다. 여기에서 방자는 현대의 또다른 남성이며 춘향은 다른 여성인지 모르겠다. 양극화 사회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 지방에는 박석고개 민담이 있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질타가 있는 이야기다. 원래 춘향은 박색이었는데, 월매의 계략으로 이몽룡은 춘향과 동침하지만 그 얼굴을 보고 도망했고, 춘향은 원혼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민담에서 몽룡은 복수를 당하지는 않고, 원혼을 달래는 모종의 조치를 취하는데 그치며 남은 생은 잘 살아간다. 이러한 민담에도 신분제 질서에 대한 선망과 유지 심리가 들어가 있다. 

영화 < 방자전 > 은 이러한 계층적 질서에 대한 질타가 들어 있는 듯 싶다. 춘향과 방자는 이러한 질서의 희생자이다. 그러나 영화 < 방자전 > 은 춘향전을 색 다르게 해석했다는 점과 선정적인 장면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패러디 장르의 특성을 살려 현대적 의미를 해석하는데는 부족한 감도 있다. 방자는 제외하고라도 춘향은 순순히 이몽룡과 결혼해서 사회적 계층적 상승을 이룬다. 이러한 결말은 슬프고도 현실 안주적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추수하는 방자의 태도는 무력감을 주기 때문에 힘 빠지게 한다. 그에게 동일시를 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그것은 춘향에 동일시를 하는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춘향의 성적 이미지보다는 그 너머에서 오히려 이러한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더구나 영화에서 일탈적으로 춘향이 부각된 부분을 강조할 수록 영화는 더욱 흥행이 잘 될 것이며, 그것은 결국 춘향의 이미지를 더 훼손하는 일이 될 뿐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