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초딩까지 가세 ‘디지털부머’ 그 빛과 그림자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58

초딩까지 가세 ‘디지털부머’ 그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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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5월 중순 청계천에서 만난 여중생들은 한 손엔 촛불, 다른 손엔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의 문구는 “될 때까지 모여라”.

#장면2. 촛불의 열기가 식어가던 지난달 17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의 고등학생 10여명은 전혀 다른 피켓을 들고 있었다. “저희 학생들이 시작한 촛불, 저희 학생들이 끄겠습니다!”

늘 제한된 ‘1인 공간’에 머물던 청소년들을 현실의 광장으로 불러낸 원동력은 무엇일까?

2차대전 직후 ‘베이비 부머(boomer)’ 세대가 미국 사회의 신주도계층이었다면 2008년 한국에는 ‘디지털 부머’가 있었다. 디지털 부머는 10대 중고생들이 미국 쇠고기 반대집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초딩’들까지 가세했다. 마산 모 초등학생들이 조계사를 방문, 방명록에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험한 욕설을 적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다음 아고라에 게재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비주류였던 이들은 촛불시위의 주력군이었고 ‘조직 없는 조직’으로 맹위를 떨쳤다. 시발점은 중고등학생이었지만 차츰 사이버 공간에 머물던 다양한 계층의 부머들이 동참했다.

평소에는 아고라 등에 빠져들던 이들이 사이버 세상을 벗어나 현실에서 만나게 되면서 또 다른 파워를 만들고 있다. 개인주의적이고 즉흥적이지만 같이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흔히 인터넷 카페 동호인들을 만나 공통의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면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과 흡사하다. 주동자는 없지만 그냥 따라 하고 추종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동참하는 과정에서 집단 정체성도 만들어간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사이버라는 제한된 공간에 있던 청소년들에게 촛불시위는 일종의 쇼가 펼쳐진 것”이라며 “가상에 머물던 소통의 수단이 현실의 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파급력이 엄청나게 커졌다”고 진단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이버 공간의 쇼가 현실로 침투해 심지어 현실의 대세를 형성하면서 불확실성과 혼란이 가중된다”며 “가상의 공간이 현실로 바뀌는 현실 앞에서 주류집단은 매우 당혹스럽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렇다 보니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말발’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괴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치 진실처럼 둔갑하는 현실에서 두려움을 넘어 무기력감마저 들었습니다.” 쇠고기 정국 대처에 미온적이라며 청와대로부터 질타를 받았던 모 경제부처 장관의 말이다.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광우병 파동의 내면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디지털 부머의 손길이 엉뚱한 곳으로 뻗치기도 했다. 공기업 민영화 대목에서다.‘하루 물값 14만원’ ‘감기 치료 10만원’. 그 파장은 대단했다. 정부는 결국 전기, 가스, 수도는 애초부터 민영화 대상이 아니었다며 뒷걸음질 쳤다. ‘MB 독도 포기’ 등 독도 얘기도 괴담에서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쇠고기 파동과 유사한 사회ㆍ정치적 이슈가 재발했을 때 디지털 부머가 재차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유사한 현상이 재연될 수는 있겠지만 그 폭발력은 의문”이라며 “양치기 소년 우화처럼 몇 번은 공감하겠지만 사람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구성원들이 정부에 대한 나름의 불만 때문에 동참하는 것이지 특정 집단에 의한 계속 주도는 호응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

그는 또 촛불시위와 관련, “극단이 지배할 때는 늘 자정기능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그간의 사회적 현상이자 학습된 경험”이라며 “과도기로 판단할 문제로서 크게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다”며 비교적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디지털 부머라는 표현 자체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단어 자체에 촛불시위의 순수성을 왜곡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물론 국민 모두가 처음부터 의식을 갖고 광장에 모인 것은 아니지만 우연성만 강조돼서는 안 되고, 이는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비록 개인주의적 경향은 컸지만 많은 개인주의들이 모여 매우 합리적으로 작동했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과거처럼 특정 조직이 주도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번 촛불시위는 ‘이성적 군중’과 ‘합리적 집단주의’의 작동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도 “국민은 광우병의 위험을 잘 알 만큼 지적 수준은 높았던 반면 정부는 계속해서 거짓을 강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라며 “이번 촛불시위는 국민의 과학적 인식에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 확보, 민주화 경험 세 가지가 맞물린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형곤 기자(kimh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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