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잡스이즘

잡스·게이츠, 서로 상대보다 똑똑하다 생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11. 9. 23:35

[스티브 잡스 전기]잡스·게이츠, 서로 상대보다 똑똑하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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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평생 라이벌 관계였다. 둘은 기술과 비즈니스 영역에서 비슷한 야망을 품었지만 성격과 스타일, 사업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월터 아이작슨은 24일 공개한 스티브 잡스 전기에서 “성장 배경이 다른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둘 다 자신이 상대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잡스는 게이츠가 미적 감각과 스타일에 둔감하다는 면에서, 게이츠는 잡스가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른다는 점에서 서로를 깔봤다”고 적었다.

게이츠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람을 매혹시키는 잡스의 능력을 부러워했지만 잡스가 이상하고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게이츠는 잡스를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잡스가 상대방을 ‘쓰레기’라고 말하거나 회유하려는 태도를 불쾌하게 생각했다. 잡스도 게이츠에 대해 “(게이츠가) 환각제를 좀 하거나 아시람(힌두교 휴양지)을 방문했다면 사고가 좀 더 넓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사업 운영에서도 정반대였다. 잡스는 직관적이고 낭만적인 완벽주의자인데 비해 제품에 대한 요구사항이 많았다. 잡스는 모든 것을 통제하길 원했다.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패키지로 통합하는 디지털 전략의 모범을 만든 것도 잡스의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반면 게이츠의 사고방식은 잡스보다 실용적이고 질서정연했으며 분석적인 능력이 앞섰다. 게이츠는 MS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다양한 제조사에 제공하는 방향을 택했다.

둘의 관계는 MS가 1983년 11월 애플의 전유물인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이용해 ‘윈도’를 만들면서 급격히 나빠졌다. 잡스는 MS가 매킨토시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발명품을 훔쳤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잡스는 게이츠와 회견장에서 만나자마자 “당신이 우리 뒤통수를 쳤다”고 소리쳤다. 게이츠는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훔치려던 TV를 당신이 먼저 훔쳤다”고 응수했다. 제록스의 GUI를 애플이 먼저 훔쳤을 뿐이라는 지적을 한 것이다. 이틀에 걸친 협상 끝에 잡스는 “좋아.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거랑 너무 똑같이 만들진 마시오”라고 했다.

하지만 게이츠와 잡스의 관계는 말년에 회복됐다. 게이츠는 올해 5월 팰러앨토에 있는 잡스의 집을 찾아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함께 3시간 이상을 보내기도 했다.

<백인성 기자 fxman@kyunghyang.com>

“IT 제국 절대 군주 잡스 따라잡자”
[1107호] 2011년 01월 05일 (수) 이철현·이은지 기자

   
ⓒAP연합

지난 한 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잇따라 내놓으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의 카리스마와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를 추종하는 마니아들에게 애플은 하나의 종교에 가깝다. 제2의 빌게이츠가 되기를 염원하던 IT 분야 창업자들은 이제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은 왜 잡스와 애플에 열광하며 어떤 IT 미래를 꿈꾸는 것일까.

지난 한 해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2010년의 인물’로 선정하며 그가 아이패드를 공개하던 순간을 ‘현대 기업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복귀였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메시아처럼 군림한다. 아이폰과 맥북에어 마니아에게 애플은 종교에 가깝다. 탁월한 마케팅 기법과 프레젠테이션 능력으로 소비자를 매료시킨다. 잡스 앞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고전 경제학의 기본 가설은 부정된다. 이상길 이노션 마케팅담당자는 “스티브 잡스는 종교 교주에 가까운 아우라(후광)를 가지고 있다. 소비자 눈에 콩깍지를 씌워 사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어 합리적 소비자마저 애플 제품 구매에서만큼은 로직(논리)을 상실한다”라고 말했다. 잡스의 리더십이 탁월한 것은 아니다. 리더십 수준으로 따지면 4류에 불과하다. 최하위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다. 잡스 없는 애플은 상상할 수 없는 탓이다. 최상위 리더는 자기가 없어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는다. 이에 반해 잡스와 애플은 동일체이다. 잡스의 카리스마와 역량이 애플을 지탱하는 축이다. 애플은 잡스라는 태양 주위를 도는 위성에 불과하다.

잡스의 카리스마는 초인에 가까운 역량과 혜안에서 비롯된다. 김동신 파프리카랩 대표는 “잡스는 탁월한 프로덕트 피커(Product Picker)이다. 무슨 제품이 되고, 무슨 제품이 안 되는지 골라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수만 가지 제품 가운데 무엇이 소비자에게 가 닿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안목은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없다. 김기현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MC) 연구원은 “잡스의 눈은 언제나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을 꿰뚫는다”라고 말했다.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감각은 섬세하고 화려하다. 온갖 마케팅 장치가 동원된다. ‘미니멀리즘의 극치’라는 애플 제품의 디자인같이 마케팅 메시지도 단순하면서도 감성적이다.  

   
▲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이 201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의 개발자 회의에 참석해 아이폰4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AP연합

 애플이 주도하는 새로운 IT 생태계 구현

이상길 이노션 마케팅담당자는 “마케팅 전문가에게 잡스는 완벽한 롤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제품 완성도에 대한 그의 집착은 상상을 불허한다. 김기현 LG전자 연구원은 “잡스는 개발 제품의 완성도가 자기가 만족하는 수준까지 오르지 않으면 절대로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경쟁 업체들은 개발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품질이 적당한 수준까지 오르면 출시한다. 김기현 연구원은 “잡스 사전에는 ‘적당한’은 없고 ‘완벽한’이라는 단어만 있는 듯하다. 단말기 개발자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존 시장 판도를 뒤엎을 만한 파괴력을 지닌다.

잡스는 파괴된 IT 시장 위에 애플이 주도하는 새로운 IT 생태계를 구현한다. 이동현 런파이프 대표는 “애플은 인터넷 서비스업체가 독점하던 무선인터넷 시장을 해방시켰다. 앱스토어라는 인터넷 장터를 만들어 1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를 대량 양산했다”라고 말했다. 파괴는 창조로 이어진다. 아이패드를 출시해 태블릿PC라는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전세계 PC 메이커는 아이패드의 뒤를 쫓아 태블릿PC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잡스는 천재가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은 탁월하나 견해를 주고받는 의사소통에는 형편없다. 잡스는 고집불통으로 유명하다. 아이폰4 사용자가 ‘데스그립(내장 안테나 주변을 손으로 쥐면 통신 장애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불평하자 잡스는 ‘그렇게 쥐지 마라’라고 답변했을 정도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공개해 모바일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으나 애플은 소스 코드를 공개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동형 대표는 “애플은 패쇄적인 왕국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폐쇄성은 시장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애플 매킨토시는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도스나 윈도)보다 탁월했으나 폐쇄성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김기현 연구원은 “잡스가 패쇄성을 고집하면 모바일 시장에서도 제2의 매킨토시 같은 실패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폐쇄성이 갖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롱테일 전략을 구사한다. 한 국가나 지역 시장에서 1위에 오르기보다 전세계 시장 곳곳에서 충성도 높은 마니아 집단을 만들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이호성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마니아에게 팔리는 제품은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으나 애플 제품만큼은 비싸더라도 전세계 시장 곳곳에서 고르게 호응을 얻고 있다. 특정 시장에서만 보면 2, 3위에 불과하나 전세계 판매량을 합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익성을 자랑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제2의 빌게이츠를 꿈꾸던 IT 분야 창업자들은 이제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잡스도 사람이었네... '애플교 바이블'을 만나다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
▲ 24일 낮 12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첫 판매를 시작한 스티브 잡스 전기. 민음사에서 만든 한글판과 함께 영어 원서(사진)도 판매됐다.
ⓒ 김시연

흰색 바탕에 회색빛 애플 마크.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표지 디자인조차 애플 제품을 닮았다. 굳이 얼굴 사진이 없더라도 '스티브 잡스'란 책 제목이 모든 걸 설명한다.

24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스티브 잡스 공식 전기는 그동안 그를 '애플교' 교주처럼 떠받들어온 이들에겐 '바이블'이다. 더는 키노트 '설교'를 들을 수 없겠지만 후세에 유서를 대신해 책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스티브 잡스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갔다.       

인간으로 돌아간 애플교 교주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에요."

 

스티브 잡스 전기 첫 장을 펼치면 '양아버지' 폴 잡스에게 안긴 두 살배기 꼬마가 등장한다. 이제 50줄에 접어든 스티브 잡스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티뷰 주택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울타리를 만들 때 눈에 안 보이는 곳까지 꼼꼼히 챙기는 양아버지 모습은 컴퓨터를 만들 때 케이스에 가려진 회로도의 미적 배치까지 신경 쓰는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또 잡스는 어린 시절을 보낸 디아블로가 분양 주택의 깔끔한 디자인과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기능에 대한 호감 때문에 맥 컴퓨터와 아이팟을 만든 열정이 생겨났다고 고백한다(구글 지도에서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디아블로 286'을 검색하면 그 집과 울타리를 직접 볼 수 있다). 

▲ 양아버지 폴 잡스에 안겨있는 두살배기 스티브 잡스
ⓒ 민음사 제공

잡스 전기, 잃어버린 반쪽을 채우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듯 저자 월터 아이작슨 손을 빌려 오늘날 자신의 열정과 창의성을 만든 원천을 전한다. 이 책이 제3자가 쓴 '전기(biograpy)'이면서도 많은 이들이 '자서전(autobiograpy)'처럼 받아들이는 이유다.

지금까지 스티브 잡스를 다룬 책들은 많았다. 서민 가정에 입양아로 들어가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2로 20대 갑부가 된 극적인 인생부터,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것도 모자라 픽사 애니메이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음악, 휴대폰, 태블릿 등 숱한 분야에서 업적으로 남긴 잡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누구나 탐내는 소재였다.

정작 잡스는 남들이 자기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주변인들만 취재한 반쪽 전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맥월드> 편집자 출신 제프리 영과 윌리엄 사이먼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 <아이콘>도 훌륭했지만 역시 '반쪽짜리'였다. 아이팟 출시 시점인 2005년까지 다룬 탓에 픽사 성공에 큰 비중을 뒀을 뿐 아이폰 이후 애플에서 보여준 업적은 다룰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잡스의 창조성과 대비되는 '독불장군'식 경영 방식과 인색하고 괴팍한 성격을 신랄하게 꼬집으면서도 잡스 자신의 '반론'은 넣을 수 없었다.

죽음을 예감한 탓일까?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잡스는 벤자민 프랭클린과 아인슈타인 전기를 쓴 아이작슨을 찾아 자신의 전기를 의뢰했지만 5년 뒤에야 결실을 맺는다. 두 번째 병가로 사실상 '시한부' 삶을 살던 시점이었다. 앞서 마운틴뷰 인터뷰를 포함해 2년 동안 40여 차례에 걸친 인터뷰는 잡스가 인생 막바지 자신의 전기에 얼마나 매달렸는지 보여준다.     

혹 저자가 잡스의 '마법'에 걸려 편파 중계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노파심에 불과했다. 잡스는 2009년 집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내용을 미리 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2년 뒤 잡스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내용도 많이 들어가 있겠죠"라고 묻는 게 전부였다. "좋아요. 그럼 사내 책자 같진 않겠군요. 당분간은 안 읽을 겁니다. 열 받고 싶지 않으니까. 1년쯤 후에나 읽어보지요.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 24일 낮 12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첫 판매를 시작한 스티브 잡스 전기 취재 열기가 뜨겁다.
ⓒ 김시연

구글 안드로이드에 맞서 선전포고

한국 독자들은 실망스럽겠지만 이 책에서 한국은 물론 최근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패드를 만들 때 애초 잡스는 인텔 아톱 칩을 쓰려했지만 임원들의 반대로 A4라는 맞춤형 칩을 개발해 '한국의 삼성'에서 만들게 했다는 게 고작이었다.

다만 안드로이드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구글을 향한 '폭언'에서 최근 '특허 전쟁'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잡스는 2008년 구글 본사에서 안드로이드 개발 책임자인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과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잡스는 계속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고 아이폰의 멀티터치 기능을 도용하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HTC가 2010년 1월 아이폰 외관과 비슷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하자 애플은 자사 특허 20개를 침해했다며 고소했다. 당시 잡스는 "빌어먹을 구글, 당신들은 아이폰을 훔쳤어, 우리를 완전히 벗겨먹었다고"라며 힐난하고 "난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것이고 기꺼이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폭언도 참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세 번째 병가 중 구글 공동창업자이자 당시 막 CEO를 맡은 래리 페이지가 찾아오는 것까지 막지 않았다.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 않은 제품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구글 창업 당시 '멘토'였던 잡스의 '애증'과 함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민주당 지지자'인 잡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010년 가을 실리콘 밸리를 찾은 오바마를 만났을 때는 "지금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공장 설립 규제 완화 등 기업 친화적 정책과 교육 개혁을 주문했다. 오바마가 잡스가 제안한 현장 엔지니어 3만 명 양성론을 받아들이자 2012년 대선 때 오바마 정치 광고 제작을 돕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2011년 8월 애플 CEO 사임을 앞둔 잡스는 "그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화를 내는 일을 주저해서 적절하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오바마 리더십에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난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기도 했다.

▲ 스티브 잡스가 성장한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서니베일 집. 이집 차고에서 애플이 탄생했다.
ⓒ 민음사 제공

애플도 HP 전철 밟을까 노심초사

이때쯤 그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CEO직에서 퇴임한 날 휼렛패커드(HP)가 태블릿을 포기했다는 소식에 승리감에 도취한 다른 임원과 달리 잡스는 슬퍼했다. 어린 시절부터 HP 창업자와 인연을 맺었던 잡스는 "휼렛과 패커드는 훌륭한 회사를 구축했고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HP는 분해되고 무너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사후를 걱정하는 듯한 그 다음 말은 더 의미심장하다.

"애플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가 그보다 좀 더 강력한 유산을 남긴 거라면 좋겠군요."

이 책은 잡스가 애플 CEO에서 물러난 시점에서 멈춘다. 잡스의 사후, 책을 마무리했음에도 그의 죽음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작가는 마지막 41장 '유산'에서 잡스가 남긴 글을 길게 인용하는 것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바로 이 글이 스티브 잡스가 후세에 남긴 유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잡스는 이 글에서조차 IBM이나 MS 같은 기업이 쇠퇴하는 이유가 제품의 질을 경시하고 세일즈 마케팅에 집중한 탓이라며 애플에서 자신을 쫓아낸 존 스컬리와 MS CEO인 스티브 발머를 비난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독설'을 아끼지 않는 그의 변함없는 면모가 드러난 대목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오늘날 자신을 이끈 원동력을 이전 시대 업적 덕으로 돌리며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보다 역사 앞에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준 원동력이다."


번뜩이는 창의력… 지독한 완벽주의… 애플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스티브 잡스
■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스스로를 '빅뱅 가이(big bang guy)'라고 부른다. 

평소 언론 노출을 극히 꺼리고 신상품 출시에 관한 정보를 일체 극비에 부쳤다가 한꺼번에 터뜨리곤(big bang)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비밀주의를 통해 언론의 끊임없는 추측보도를 낳게 만들고 대중의 관심을 항상 붙들어둔다.

애플 하면 잡스 CEO를 떠올릴 정도로 그는 이제 회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애플 방식이라고 하면 잡스 CEO 특유의 번뜩이는 창의력과 지독한 완벽주의를 뜻하게 됐다.

그는 27일(현지시간) 공개할 태블릿PC에 대해 "내가 지금껏 선보인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제품이 될 것"이라고 한껏 자신감을 내비쳤다.

태블릿PC는 사실 10여년 전에 이미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태블릿PC가 이처럼 대중과 업계 전반의 큰 기대를 모으는 것은 '잡스가 하는 일은 믿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덕분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잡스 CEO는 그동안 공짜의식이 팽배했던 다운로드 관행에 '단말기를 통한 다운로드에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는 생각을 자리잡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아이팟•아이폰 등의 단말기와 아이튠즈 등 콘텐츠 거래시장을 통해 이러한 의식을 정착시켰다.

이는 불법 다운로드로 고사상태인 음반•게임업계를 살리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미디어업계가 앞다투어 애플의 태블릿PC에 유료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인터넷 게임사이트인 일렉트로닉아트의 트립 호킨스는 "관심 있는 기사가 있다면 태블릿PC를 통해 기꺼이 돈을 내고 콘텐츠를 즐길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 CEO는 또한 경쟁자들을 동업자로 만들어 결국 시장을 장악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포브스는 "애플의 적이 과거 IBM에서 MS•인텔을 거쳐 현재는 다시 MS가 됐다"면서 "애플의 세계에서는 오늘 영원할 것 같았던 적이 내일 가장 빨리 친구로 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언젠가는 구글이 적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애플이 PC 제조업체인 MS, 반도체칩 업체인 인텔과 경쟁과 협력을 거듭했던 것을 언급하며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승현기자 pimple@sed.co.kr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의 두 얼굴



[한겨레21] [경제] 중국 NGO들이 발간한 보고서 ‘애플의 이면 II’ 살펴보니… 인권 침해, 환경 오염 등 지역 사회 파괴 넘어 인접국에도 악영향 끼쳐

은퇴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전자우편으로 소비자와 활발히 소통했다. 잡스는 스웨덴 음악 프로듀서의 질문에도, 한 업체의 질문에도 직접 확인한 뒤 답을 했다. 지난해 한 누리꾼과 전자우편을 통해 폭스콘의 노동착취와 관련한 논쟁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이 예렉스라는 누리꾼은 잡스에게 아이폰·아이패드 등을 조립하는 중국 폭스콘에서 일어난 연쇄 자살사건과 관련해 “스티브, 애플은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짧은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러자 잡스는 “모든 자살이 비극적임에도 폭스콘의 (자살) 비율은 중국 평균보다 훨씬 아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누리꾼이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표현에 의문을 제시하자, 잡스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다시 답한 전자우편에서 “당신 스스로 숙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지구에서 어떤 기업보다도 더 잘하고 있다”며 애플의 사회적 책임 경영 사이트를 소개했다. 애플의 하청업체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애플 하청업체, 중금속·오폐수 방류 

잡스의 말대로 애플은 하청업체의 사회적 책임을 정말 자신할 수 있을까? 지난해와 올해 내놓은 애플의 보고서를 비교하면 자신감은 많이 퇴색했다. 2010년에 발간한 ‘협력업체와 공급업체에 관한 보고서’는 자신만만했다. 보고서는 “애플은 우리 제품이 만들어지는 어느 곳에서든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확실히(ensuring)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와 거래하는 모든 기업은 애플 제품이 만들어지는 어느 곳에서든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를 존중하고,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제조 과정을 반드시 갖춰야만(must)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월에 발간한 보고서에는 미묘하지만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이번에는 몇 개의 문구를 바꿔 “애플은 부품 제조업체 모두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를 독려하고(driving) 있다. 우리는 애플 제품이 만들어지는 어느 곳에서든 부품 제조업체들에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를 존중하고,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제조 과정을 갖추도록 요구하고(requiring) 있다”고 밝혔다.

‘의무’(must)가 ‘요구’(require)로 내려앉았다. 1년 사이의 변화다. 확신에 찬 태도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애플은 하청업체에서 벌어지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침해, 환경오염 등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화려한 디자인의 애플 로고와 제품 뒷면에는 추악한 모습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보고서가 또 나왔다. 중국의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NGO)들은 지난 1월 ‘애플의 이면’을 발간한 데 이어 8월31일 ‘애플의 이면 II’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각지에 퍼져 있는 애플의 하청업체가 일으키는 환경오염과 지역사회 파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이들이 초래한 환경오염은 심각했다. 27개 애플 하청업체들이 니켈·구리 등 중금속을 기준치를 초과해 토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내륙의 우한시에 있는 메이코일렉트로닉스는 2005년 공장이 세워진 이후 줄곧 중금속을 방류했으며 한 해 1만2천t의 오수를 방류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오·폐수가 흘러들어간 난타이쯔 호수의 물을 조사한 결과 중금속인 구리가 기준치의 56~193배에 이르렀다. 이 호수의 물은 양쯔강으로 흘러들어가 더 많은 지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 지역 주민은 “우리 세대는 오염된 물을 마시지만, 다음 세대는 독이 든 물을 마실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 업체는 애플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모토롤라 등에 휴대전화 필수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 등을 공급하고 있다. 

사정은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와 인접한 쿤산시의 캐다일렉트로닉스도 이미 2006년에 기준치가 넘는 오·폐수를 방류해 10만위안의 벌금과 추가 증설 금지 등의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오염된 배기가스와 오·폐수 유출로 지역 주민들은 자녀를 다른 지역의 학교로 보내고 있다. 공장과 인접한 한 마을에서는 2007년 이후 60명의 주민 중 9명이 암으로 숨지거나 앓고 있다. NGO의 조사 도중에는 지역 주민들이 이들에게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달라”는 하소연까지 했다. 이 밖에도 이비덴·폭스콘 등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NGO들은 1차 보고서에서 노동자들이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노말헥산에 중독돼 이른바 ‘앉은뱅이병’에 걸리는 등 심각한 노동환경을 고발했다. 중국 내 폭스콘을 비롯한 롄젠테크놀로지, 동관, 다푸 등의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번 추가보고서에서 다시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다음 세대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셈이다.

“제발 살려달라” 호소하는 지역 주민들

애플의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비극은 중국에서만 그칠까? 경제학에서는 ‘외부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경제활동과 관련해 제3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면서도 그 대가를 받지도, 비용을 내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매년 미국에서만 5억5천만 개가 팔리는 맥도널드의 ‘빅맥’ 가격은 단돈 4달러다. 쇠고기, 노동력, 안전검사, 임대료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고 애쓴 결과다. 하지만 빅맥을 생산하며 발생시킨 12억kg의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물 사용과 토양 파괴 등의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뇨병·심장병 같은 질병의 치료 비용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외부효과에 대한 비용은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그 비용은 맥도널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불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주 비용, 더 높은 보건의료 비용 따위가 그에 해당한다. 인도 과학환경센터는 숲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땅에서 사육된 소의 고기로 만든 햄버거값은 족히 200달러는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아이폰4나 아이패드의 경우는 어떨까? 하청업체들은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환경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중국의 자연을 오염시키고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있다. 인접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컨대 우한시의 메이코일렉트로닉스의 오·폐수가 양쯔강으로 흘러드는 상황에서 이는 농수산물 오염으로 확산될 수 있다. 그 농산물을 한국에서 수입해 소비하므로 한국도 영향권에 드는 셈이다. 

아이폰4(16G)와 아이패드2(16G)의 국내 출고가는 각각 81만4천원, 78만4천원이다. 빅맥처럼 이 가격에는 외부효과에 따른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보고서를 보면 그 비용을 중국은 물론 한국 사회가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폰의 국내 사용자는 9월 기준으로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의 20%가량인 300만 명이다.

애플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자랑하는데,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외부효과’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한국·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폭스콘 등 다른 업체가 이를 조립하는 형식이다. 값싼 부품과 노동력을 이용해 무척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93억7900만달러였으며, 영업이익률은 32.8%에 달했다. 1만원을 팔면 그중 3280원이 애플의 이익이 된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9.5%, LG전자는 1.1%의 영업이익률로 큰 격차를 보였다. 국내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애플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한 국내 제조업체 관계자는 “아이폰의 성공 이면에는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노동자 착취와 환경파괴 등이 있어 애플식 경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히 애플은 이윤 추구를 위해 자체 생산공장 대신 인건비가 싸고 관리가 허술한 지역의 협력업체와 거래 중이며, 이들 업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런 비판에 대해 아무런 공식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2차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마준 공공환경연구소(IPE·Institute of Public & Environmental Affairs) 사무국장은 <차이나다이얼로그>와의 인터뷰에서 “하청업체들이 애플과 거래를 하는지, 그리고 이들 기업이 법규를 어기고 있는 것과 이로 인해 비판이 반복되는 사실을 아는지 질문했지만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마준 사무국장은 애플의 ‘비밀 정책’으로 어떤 기업이 애플의 하청업체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워 조사가 매우 힘들었다고 밝혔다. 애플은 하청업체 리스트를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감춘다. 자사 보고서에도 아동노동·인권침해 등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했다는 내용은 있지만 기업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 부품 공급이나 생산과 관련된 계약을 맺을 때는 비밀 유지 조건을 꼭 내세운다. 아이폰4에 탑재된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이 LG디스플레이 제품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스티브 잡스가 제품을 설명하며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다양한 압력으로 기업 문화 변화 요구해야”

마준 사무국장은 “보고서에서 언급된 캐다일렉트로닉스의 경우 지난해 애플의 아시아 제조 관련 계약 책임자가 아시아 기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체포된 일이 있어 애플 공급업체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애플의 이런 ‘블랙박스’ 정책으로 환경오염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회사를 하청업체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초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애플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며 “애플의 잘못된 정책을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회사에서 생산되는 최신 제품을 결국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잡스의 은퇴에 따른 애플의 태도 변화 여부를 묻자, 마준 사무국장은 “변화가 있기를 희망하지만 기업 문화가 오랜 기간 형성된 것이어서 다양한 압력 없이는 변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애플코리아의 박정훈 부장은 “어떤 업체의 부품을 쓴다거나 하청을 한다는 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특별하게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횡설수설/김순덕]‘나쁜 잡스’ vs ‘착한 철수’

[동아일보]

지난주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가 위대한 CEO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이노베이션(혁신)의 화신’ ‘디지털 시대의 미켈란젤로’ ‘예술가의 감동과 기술자의 비전을 독창적으로 결합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 같은 칭송이 넘쳐난다. 그런데 잡스가 ‘착한 CEO’라는 찬사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석 달 전 미국의 CNN은 잡스가 그 뛰어난 인재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모습을 전하며 “애플은 철저한 책무성을 요구하는 잔인한 일터”라고 소개했다. 2009년 미국의 포천지(誌)는 ‘최근 10년의 CEO’로 잡스를 꼽으면서 “폭군적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그가 아이팟으로 음악산업을, 아이폰으로 휴대전화 시장을, 아이패드로 미디어세계의 판을 뒤엎을 수 있었던 건 이런 폭군적 천재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음반업체와 동반성장만 중시했다면 아이팟 같은 킬러앱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한국인이 좋아하는 CEO에 꼭 들어가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잡스와는 상반되는 이미지다. 의사이면서 밤새워 컴퓨터바이러스백신을 만들어 공짜로 깔아주고, 벤처기업을 차려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고, 1000만 달러에 V3를 팔라는 미국 회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안철수연구소의 사사(社史)는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 얘기처럼 훈훈하다. 모두를 살맛나게 하는 철수를 여야 정치권에서 영입하고 싶어 안달이다. 그가 ‘착한 CEO’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지만 기업가로서 안철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최근 주간 미디어워치에 정해윤 객원논설위원이 쓴 ‘안철수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화제다. 한국 사회에선 선량한 기업가를 위대한 기업가로 인식한다는 거다. 그가 만든 기업이 기술적 혁신을 했는지, 투자자들을 부자로 만들었는지, 인력채용을 많이 했는지 같은 본질적 문제로 판단할 때 기업가로서의 안철수는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착한 CEO만 원하는 정부, 이병철 정주영을 전태일보다 홀대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나라에서 위대한 CEO는 나오기 힘들다. 우리에겐 ‘착한 철수’뿐만 아니라 ‘나쁜 잡스’ 같은 CEO도 필요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아이폰4 불량, 우린 왜 건드려”…잡스에 비판 세례

[지디넷코리아]“물건 잘못 만들어 놓고 우리는 왜 끌어들이나”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또 적들을 양산했다. RIM(림)과 노키아 등 CEO들이 잡스가 아이폰4 방어를 위해 경쟁사 제품을 왜곡했다며 비판 세례를 퍼부었다. 

잡스는 16일(이하 현지시간) 아이폰4 수신감도 저하 문제 관련 특별 기자회견에서 “다른 제품들도 똑같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블랙베리(RIM), 드로이드 에리스(HTC), 옴니아2(삼성전자) 등의 제품을 프리젠테이션에 나열하며, 수신감도 저하는 다른 스마트폰도 겪는 문제라는 내용을 강조했다. 

그는 “직접 실험해보니 옴니아2나 블랙베리도 안테나 수신 결함이 발생한다”며 경쟁 제품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모습도 보였다.
▲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에서 옴니아와 블랙베리 등 경쟁제품도 안테나 수신감도 저하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피해자(?)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림의 공동창업자 마이크 라자리디스와 짐 발실리 등은 17일 성명에서 “애플이 스스로 자초한 대실패(debacle)에 림을 연결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애플의 위기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그는 “림은 안테나 디자인 분야의 글로벌 리더”라며 “애플은 안테나 디자인에 대한 이용자들의 이해를 왜곡시켰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넘어 아이폰4도 도마 위에 올렸다. 한 마디로 성능 부족한 물건이라는 주장이다. 

발실리는 “블랙베리 이용자들은 통화를 위해 외부케이스를 쓸 필요가 없다”며 “애플은 경쟁사 비판보다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안테나 수신감도 저하를 방지할 외부케이스를 무료 제공한다는 잡스의 정책을 비꼬은 것이다. 

모토로라와 HTC, 노키아 등의 반응도 비슷하다. 

산제이 자 모토로라 CEO는 "우리 제품 드로이드X는 자체 시험 결과 아이폰4보다 뛰어난 수신감도를 보였다"며 "애플의 이번 주장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HTC와 노키아 측도 “수신불량 문제를 모든 휴대폰이 가졌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을 언론에 알려왔다.

[박성희의 곁에두고 싶은 책] 잡스도 알고보면 '아이디어 도둑'…빌리는 것도 '혁신'의 한 방법

바로잉 |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지음 |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420쪽 | 1만8000원

좋은 화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임모(臨摸)와 사생(寫生)이다. 글쓰기의 기본도 다르지 않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많이 읽고(배우고),메모하고,잘 썼다 싶은 글은 베껴 봐야 한다. 이왕이면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써 보는 게 좋다. 원초적 호기심과 세심한 관찰 · 질문 · 분석 · 종합적 추론은 그 다음 덕목이다. 

'바로잉(Borrowing · 빌려오기)'의 저자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모방은 창조를 위한 실행의 첫 단계"라고 말한다. 모든 위대한 창조물은 모방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이론,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바탕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뭔가 창조하고 싶으면 복사부터 해보라고 얘기한다. 빌리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많다. 파블로 피카소는 일찍이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일갈했고,스티브 잡스는 '혁신과 창의성은 특별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의 것을 배우고 익히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머레이가 다른 건 빌리는 방법과 그것을 새 아이디어로 만드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는 점이다. 그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를 쓴 대니얼 핑크의 정의를 빌려 정보시대를 넘어선 개념시대로 오늘날을 규정했다. 동시에 정보시대엔 기존 정보 관리만 잘하면 됐지만 개념시대엔 그것들을 가공,새로운 정보를 내놔야 한다고 적었다. 

기업과 개인 모두 창의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기업과 개인이 어떻게 혁신적이고 창의적일 수 있는지 바로잉, 곧 빌려오기 6단계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다. 책에서 보여주는 '모방을 통한 창조의 6단계'는 다름 아닌 '정의하고,빌리고,결합하고,숙성시키고,판단하고,끌어올리는' 것이다. 

첫 단계는 정의하기.문제를 해결하자면 무엇보다 핵심이 뭔지 파악 · 분석하고 확인한 다음 이해해야 한다. 관찰하고 또 관찰하는 것도 필수다. 다음 단계는 빌리기.동업자와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경쟁자와 반대편에서도 빌려야 한다. 경쟁자에게 빌리면 모방이 되지만 다른 분야에서 빌리면 창의적인 행위가 된다. 

세 번째는 결합하기.결합은 창의성의 본질이다. 결합이 없으면 창조도 없다. 시나리오 작가 월슨 마이스너의 말은 결합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전한다. '한 사람을 모방하면 표절이 되지만 두 사람을 모방하면 연구가 된다. '네 번째는 숙성시키기.내용이 분명해질 때까지 숙성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일정 기간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다. 

숙성 과정을 거쳐 해결책 내지 아이디어가 나오면 장단점을 따져 본다. 이 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1537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을 써보는 것도 괜찮다. '악마의 대변인제'란 것으로 시성식(諡聖式) 전 악마의 대변인이 성인 후보자의 성품이나 행적을 비판하게 함으로써 행여 몰랐을지 모를 문제를 뒤져보는 방식이다. 

마지막은 끌어올리기다. 최종안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베끼고 훔치는 데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을지도 모를 독자를 위해 저자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모방 더하기 약간의 개선이 쌓이고 쌓인 게 인류 문명의 본질이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애플 잡스, 사과는 없었다

[아시아경제 이의원 기자] “신기술이 도입되면 사회는 적응과 교육의 시간이 필요하다” “애플은 사용자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고 사람들은 지난주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산하 온라인 매체 ‘올싱즈디지털’과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객 위치정보 문제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잡스의 해명은 애플의 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사용자의 무지를 질책하는 듯한 발언을 해 더 큰 원성을 사고 있다. 

애플은 이날 성명에서 사용자들의 위치추적을 부정하며 애플은 아이폰 사용자 주변 기지국과 와이파이 지역 정보를 저장해 사용자들이 필요할 때만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어 와이파이 지역과 기지국 위치만으로 사용자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면서 애플이 사용자의 아이폰으로부터 제공받는 정보도 익명이라고 전했다. 

잡스 또한 인터뷰에서 “애플은 위치추적을 하지 않았다”면서 “사용자들이 발견한 위치정보는 수많은 아이폰 사용자들로부터 얻어진 것이고 익명으로 제공받은 것이다”라고 되풀이했다. 다만 아이폰에 저장된 위치정보는 고의가 아니었고 프로그램상의 오류(bug)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잡스와 애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폰 트래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사용자들의 이동경로와 시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자개인정보센터(EPIC)의 마크 로텐버그 센터장은 블룸버그 TV 인터뷰에서 “와이파이존과 기지국 정보로 아이폰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애플사는 위치 정보 수집 의미를 혼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플은 이에 대해 아이폰에 저장된 위치 정보를 줄이고 와이파이 지역 정보와 기지국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잡스는 “애플은 미국 의회와 다른 규제당국 앞에서도 명확하게 밝힐 것”이라면서 “규제당국의 청문회 요청에 정중하게 응할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언론이 애플의 위치추적 문제와 관련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라면서 “일부 언론은 애플의 작업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애플 전문 매체 맥루머는 애플과 관련한 문제에 잡스가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잡스는 선지자 아닌 기회주의자"



"전혀 새로운 것 아닌 기존 제품 연결해 새 제품 만들어"

[워싱턴=CBS이기범 특파원]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그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그의 업적을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나오고 있다.

미 경제전문지인 '포브스'는 최근 기명칼럼을 통해 "잡스는 선지자(visionary)가 아니라 좋은 의미의 기회주의자(opportunist)"라고 평가했다.

포브스는 "기회주의자의 의미가 기회와 주변여건을 이용해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잡스는 기회주의자"라며 "이는 선지자와는 정반대"라고 주장했다.

포브스는 "잡스가 사상 처음으로 작고 싸고 간편한 컴퓨터 애플 2를 만들었을 때 실제로 그것을 만든 사람은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었고 그는 아이디어만 제공했었다"며 "모든 부품은 당시 이미 존재해 있었고 잡스는 그것을 조합하는 아이디어만 냈다"고 밝혔다.

애플의 다음 제품인 매킨토시 컴퓨터 역시 '애플2' 컴퓨터에다 잡스가 제록스사를 방문했을 당시 봤던 제록스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합쳐 놓은 것이라며 포브스는 "새로운 조합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포브스는 "잡스가 애플에서 해고된 뒤 세계 최고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에 매달렸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그 컴퓨터는 성능은 좋았지만 매우 비쌌고 그래픽 성능을 중시했다"고 밝혔다.

이 컴퓨터를 팔기 위해 잡스는 짤막한 디지털 만화영화를 만들어 시연했는데 컴퓨터 보다 이 애니메이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결국 잡스는 방향을 틀어 컴퓨터 대신 애니메이션에 집중했다. 그에게 대박을 가져다준 픽사 애니메이션의 '토이스토리'이다.

포브스는 "잡스는 뭔가 새롭고 더 개선된 것을 위한 비전을 포기했었다"며 "이는 기회주의자의 행동"이라고 밝혔다.

"애플의 대표 제품인 아이맥,아이팟,아이튠스,아이폰,아이패드 모두 애플이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다"며 "인터넷 시대가 되자 다른 기회주의자처럼 잡스도 기존의 제품을 조합해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했다"고 포브스는 밝혔다.

포브스는 "잡스도 생전에 이같은 점을 IT전문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정했다"며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창조란 사물을 단지 연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도 최근 기사를 통해 "잡스에 대한 찬사가 대통령이나 교황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과도한 찬사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CSM은 "잡스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애디슨이나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또는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와 같은 반열에 둘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CSM은 "애디슨의 전구발명으로 가정은 화재로부터, 직장은 사고로부터 더욱 안전해졌으며 포드의 값싼 자동차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세계를 작게 만들었다"며 "이에 비하면 잡스는 경쟁자들에게 아름다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는데 영향을 미쳤을 뿐"이라고 인용보도했다.

CSM은 또 "애플의 사용자들은 스스로 프로그램을 탑재할 수 없고 애플이 통제하는 애플의 서버에서 내려받을 수 있을 뿐"이라며 "애플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엇이든 검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hope@cbs.co.kr

PC 탄생 30주년…IBM, 스티브 잡스 '폐쇄 경영'에 일격

스마트 톡톡

1981년 8월12일,IBM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연회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필립 에스트리지 부사장은 이날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를 발표했다. 모델명 'PC 5150'(사진).오늘날 개인용 컴퓨터를 가리키는 일반명사 'PC(personal computer)'의 첫 모델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 컴퓨터는 인텔이 만든 4.77㎒ 8088 프로세서와 64킬로바이트(KB) 메인 메모리가 장착돼 있었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와 83키 키보드,흑백 모니터가 기본으로 달려 있었다. 하드디스크나 CD롬드라이브 등 저장 장치는 물론 마우스도 없었다. 가격은 1565달러.그 당시와 현재 컴퓨터 속도를 비교하기란 쉽지 않지만 단순히 CPU의 클럭 숫자만 해도 수백 배 이상 빨라진 셈이다. 

PC가 출시될 당시만 해도 데스크톱 시장의 최강자는 애플이 1977년에 만든 '애플 Ⅱ'였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IBM이 PC를 출시하면서 데스크톱 시장의 판세가 바뀌게 됐다. 애플 컴퓨터와 호환되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제작하려면 애플이 제시한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했다. 

반면 IBM은 PC의 구조와 설계방식을 모두 공개했다. IBM이 아니더라도 PC와 호환이 가능한 본체와 주변기기,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설계해 생산할 수 있었다. 많은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PC와 호환되는 컴퓨터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IBM은 1986년까지 24만2000여대의 PC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1981년 8월 출시 이후 1주일 만에 목표치를 뛰어넘었다. 컴팩,델과 같은 컴퓨터 제조업체가 가세하면서 판매량은 더욱 급증했다. 1983년 12월에 미국 타임지(紙)는 올해의 인물로 PC를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애플은 경영 실패 책임을 물어 스티브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이성주의 건강편지>잡스, 욕을 먹을수록 팬이 늘어난 광인



스티브 잡스! 건강편지에서도 몇 번을 소개한 시대의 아이콘. 세상을 떠난지 1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 

잡스는 한때 자신이 북유럽 출신이라서 스티브 랍스로 불러야 한다고, 뿌리까지 거짓말을 한 광인(狂人)입니다. 

자신이 사생아이면서도 친딸의 존재를 부정하고 양육비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자신은 불임 환자라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컴퓨터 이름에 ‘리사’라는 딸의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잡스는 10대 말에 게임회사 아타리에서 일했습니다. 회사 창업자인 놀란 부쉬넬이 잡스에게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게임의 설계를 지시했습니다. 잡스는 5년 연상의 ‘친구’이자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찾아갑니다. 게임을 만들면 수익의 반을 주겠다고. 회사에서 1000달러를 받았지만 ‘형’ 워즈니악에게는 600달러를 받았다며 300달러만 줬습니다.

애플이 처음으로 주식을 공개했을 때 잡스는 함께 고생한 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워즈니악이 자신의 주식을 나눠주자 “일을 잘못한 사람에게 주식을 나눠줬다”고 화를 냈습니다. 워즈니악이 이런 저런 일에 실망해 회사를 그만 두자 “그 사람은 지금 별로 하는 것이 없다”며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20대에 대학을 중퇴하고 힌두교 사원에서 굶주림을 해결했지만 자선에는 인색했습니다. 애플에 복귀한 뒤 자선기부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애플은 지금 50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선에 돈을 쓴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애플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방법. ①먼저 잡스에게 아이디어를 말한다 ②잡스로부터 “말도 안된다”는 면박을 받는다 ③몇 주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④잡스로부터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연락을 받는다 ⑤잡스의 지시에 따라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아이디어를 낸 직원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면 잡스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습니다. 어쩌면 애플 내부 최고의 칭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회사에도 IQ 세 자리가 있네.”

우리나라에서는 매장을 당했을 사람이지요.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겁니다. 기업가 이전에 인간이 되라는 비난이 앞길을 가로 막았을 겁니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저는 남을 쉽게 단정 짓지 말아야 할 이유를 잡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누군가의 작은 흠이라도 찾아서 비난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를 욕하는 것이 ‘정의’인양 취급되는 사회는 병든 사회가 아닐까요? 

그런 뜻에서 대한민국이 걱정됩니다. 누군가 애매하게 비난받을 때 그 사람을 옹호하면 덩달아 나쁜 사람이 돼버립니다. 치기와 어설픈 증오가 정의로 포장돼 여론을 지배하는 이 문화를 어떻게 하면 고쳐나갈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누군가의 숨겨진 장점을 제대로 보는 것을 멋지게 취급하는 그런 사회가 될까요? 

오늘부터라도 이런 말투를 퍼뜨리는 것은 어떨까요? 

“그 사람, ~~할지 몰라도 ……하는 배울 점이 있어!”

※스티브 잡스의 장점은 벌써 몇 번 보여드린 아래 동영상에 있다고 봅니다. 지독한 난관을 극복한 불굴의 정신, 남의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세가 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강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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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디자인 나의 창조물인데 잡스, 자기 것처럼 말해 속상했다"

조너선 아이브
애플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스티브 잡스가 나의 창조물을 자신의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깊은 상처가 됐다. 때로는 몸에서 가시가 돋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애플사의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를 설계한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44) 부사장이 자신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스티브 잡스를 향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오는 24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되는 스티브 잡스 전기(傳記)에 작가 월터 아이잭슨이 아이브를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중국시보는 이런 내용 등이 담긴 전기 내용 일부를 입수해 17일 소개했다.

아이브는 "잡스가 강단에서 모든 게 자신의 창의력에서 나온 것인 양 연설하는 것을 지켜볼 때가 있었는데 이런 경험은 불편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잡스가 우리 뒤에서 끊임없이 일을 추진해나가고 각종 압력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세상에 선보인 제품과 아이디어는 하늘 위 구름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 생전의 잡스는 아이브를 "애플의 핵심 이념을 이해하는 사람" "애플에서 마음의 동반자가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아이브"라고 치켜세워줬다.

또 지난 1976년 잡스와 애플을 공동창업했다가 결별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14일 미국의 IT전문 매체인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잡스와 나눈 마지막 통화내용을 공개했다. 잡스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대"라고 말했다고 한다. 워즈니악은 인터뷰에서 "잡스는 내가 회사로 돌아왔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난 기술을 잘 모르잖아'라고 하더라"면서 "애플의 미래가 약간 걱정된다"고 말했다.

워즈니악은 특히 잡스가 사망하기 전날 열린 '아이폰4S'의 발매 기념행사를 그 예로 들었다. 그는 "(설명회에서) '듀얼코어 프로세서'나 '스플릿 안테나' 같은 전문용어가 들렸다. 잡스가 있었다면 '그런 단어는 빼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기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애플 제품을 쉽고 친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는데, 앞으로 애플이 기술만을 강조하다가 소비자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애플이 (한때 세계 최고였던)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 대학 내 교회에서는 16일 잡스의 추모식이 열렸다.

“잡스 완벽주의는 양아버지 때문” 전기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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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매사에 완벽주의를 추구했으며 이는 어릴 적 그의 양부로부터 받은 교육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그의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이 밝혔다. 아이작슨은 23일 미국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잡스는 완벽주의를 원했다”면서 “그는 피카소처럼 완벽하지 않은 것은 가치없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잡스의 그런 성격 때문에 매우 예민했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까칠하게 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런 성격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기’를 만들어낸 힘이 됐다”고 밝혔다.

이런 성격은 어릴적 그의 양아버지의 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아이작슨은 밝혔다. 양아버지는 “집앞 담장처럼 집 뒤 담장도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고쳐야 한다. 그게 완벽한 것”이라고 라고 가르쳤으며 이때부터 잡스의 완벽주의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잡스는 그의 양부모를 매우 사랑했지만 한편으로는 ‘생물학적인 뿌리’ 찾기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잡스는 친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 차례 만나 악수를 한 적이 있지만 자신의 정체를 아버지에게 밝히지는 않았다. 

잡스는 2004년 신장 결석 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몸에서 암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수술을 미룬 채 그가 인터넷에서 찾은 허브요법과 침을 통한 치료를 계속했다. 2008년 그는 암이 완치됐다고 말했지만 그때까지도 비공개 치료는 지속했다. 하지만 암은 그 당시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Who]스티브잡스는 프리젠테이션의 달인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프레젠테이션(PT )의 달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인터뷰를 하거나 주주들과도 대화를 잘 하지 않았지만 애플의 최고경영자로서 세계적인 쇼맨(showman, 흥행사)으로 돌변해 비전과 함께 제품을 팔았다고 CNN은 25일(현지시간) 전했다.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소개한 장면은 그가 PT의 달인임을 입증했다. 검은색 터틀넥 상의에다 청바지, 운동화를 신은 잡스는 3가지의 '혁명적인 제품'을 소개할 것이라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터치로 이용하는 넓은 스크린을 가진 아이팟. 혁명적인 모바일폰, 멋진 인터넷 통신기기가 하나로 합친 것을 아이폰라고 소개했고 참석자들은 열광했으며 시장은 폭발했다. 잡스는 이보다 앞서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사에서 미혼모 입양, 대학중퇴,췌장암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조언을 남겼다.

잡스 "너희는 B급… 난 원래 이래, 필터 없는 사람이야"


(왼쪽부터)생부 잔달리, 양부 폴 잡스, 존 바에즈.

[본인은 읽지 못한 스티브 잡스 전기, 전 세계 동시 발간… 국내선 첫날 재판 돌입]

타임지 前 편집장이 잡스 주변 100여명 인터뷰

"사전에 안 보여준다" 조건… 독설·모순·천재성 입체조명

기분 잡치게 하는 말의 대가 - "양부모는 1000% 내 부모, 생부는 내 정자 은행일 뿐"

애인이 낳은 딸 인정하면서도 "통계적으로 美 남성 28%가 그 아이 아버지일 수 있다"

그는 필터 없는 사람 - 사람은 영웅 아니면 머저리, 제품은 예술 아니면 쓰레기

중간없이 속마음 그대로 표현


24일 전 세계 동시 발간된 스티브 잡스 전기 '스티브 잡스'(민음사)가 국내에서도 초판 10만부가 모두 출고되고 바로 재판 8만부 인쇄에 들어가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인 타임지 전 편집장 월터 아이작슨은 2009년부터 잡스를 40여차례 인터뷰했고, 100여명의 인터뷰로 살을 붙여 잡스를 입체적으로 비추고 있다. 필자 뜻으로 잡스는 이 전기 내용을 생전에 보지 못했다. 드러난 스티브 잡스의 삶은 '모순'과 '극단'으로 압축된다. 불꽃처럼 56년 삶을 완전연소한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마지막에 늘 했던 말을 연상시키는 책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잡스는 기분 잡치는 말의 대가" 

그의 말은 극단적이었다. 잡스는 양부모를 일컬어 "1000% 내 부모"라 했지만 생부 잔달리와 생모 조앤 시블에 대해선 "나의 정자와 난자은행일 뿐"이라고 했다. 이 어법은 처음이 아니다. 매킨토시 출시 이후 직원 4분의 1을 해고하면서 "너희들은 B급"이라 했고, 납품사가 일정을 못 맞추겠다 하자 "빌어먹을 고자 녀석들(Fucking dickless assholes)"이라고 욕했다.

애플 공장을 방문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컴퓨터 대신 직원 복지와 근로조건을 계속 묻자 그는 말했다. "그렇게 복지에 관심이 많으면 직접 와서 일하라고 해." 통역자는 "영부인께서 방문해주셔서 고맙다"라고 거짓말했다. 2009년 병상에서도 그는 "디자인이 다른 마스크 5개쯤 가져오면 골라 쓰겠다"고 투덜거렸다. 애플 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는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방법을 잘 알고 그것을 실천했다"고 했다.

◇"나는 필터가 없는 사람"

그에게 사람은 '영웅 아니면 머저리'였고, 제품도 '예술 아니면 쓰레기'였다. 중간은 없다. 동시에 그는 모순적이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해놓고 자신은 엄청난 스톡옵션을 챙겼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다 했지만, '기부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 냉소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면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It's simply who I am, This is who I am)." 이런 말도 했다. "그게 나야" "나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야" "나는 필터가 없는 사람이야."

◇"미국 남자 28%가 리사 아버지?"

버려진 아이였던 잡스는 동거녀(브레넌)가 낳은 아이를 버렸다. 당시 23세. 이후 친자 확인 검사결과 '94.41%'라는 수치가 나왔다. 기자에겐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미국 남성의 28%가 리사(딸)의 아버지일 수 있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여자는 "내가 미국 남자 28%랑 잤다는 얘기냐"며 분노했다. 평소 오만하게 굴다가도 새 제품을 '타임'이나 CNN방송에 노출하고 싶을 땐 타임 편집장이던 이 책의 저자 아이작슨에게 전화해 친한 척했다. 전기를 부탁할 땐 이렇게 말했다. "전기를 쓴다면 나만큼 흥미로운 주제도 없을 것."

◇"서구의 광기를 봤다"

74년 그는 인도에서 7개월을 보냈다. "저는 서구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습니다." 이후 그는 힌두교, 선불교 등 동양사상에 심취했다. 단순한 디자인의 애플 제품, 가구가 없는 잡스의 자택, 모두가 '선(禪)' 스타일. 소년 시절엔 하루 종일 사과만 먹은 날도 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애플.

수술을 거부하고 대체의학을 고수해 병세가 악화됐다. 그래도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암을 이겨낸 최초의 사람이 되겠어."

◇"존 바에즈는 사랑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는 딱 두 명. 티나 레지와 로렌 파월이다. 존 바에즈도 사랑한 줄 알았지만 그냥 무척 좋아한 거였다." 잡스는 1982년 14세 연상의 포크 가수 존 바에즈와 1년간 연애했다. 바에즈에게 그는 '수수께끼' 같았다. 저녁 내내 "당신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봐놨다"고 얘기하다가 막상 매장에 가서 바에즈가 그 옷을 입자 "당신 돈으로 꼭 사라"고 했다. 대신 컴퓨터에 서툰 그녀에게 최신 애플 컴퓨터를 선물로 안겼다. 잡스의 청혼을 거절한 애플재단 직원 티나 레지는 이렇게 말했다. "함께 했다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

잡스가 찾는 여자의 조건은 상호 모순적이었다. ▲똑똑하면서도 가식이 없고 ▲독립적이면서도 남자를 위해 양보하고 ▲털털하면서도 천사 같고 ▲팔다리가 긴 금발 미인이며 유기농 채식주의자. 1989년 만난 7년 연하 대학원생 로렌 파월이 그런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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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안드로이드와 핵전쟁도 벌이겠다”

타계한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생전 “애플의 아이디어를 훔친 안드로이드를 파괴해버리겠다”며 “애플이 보유하고 있는 400억 달러를 모두 사용하더라도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말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20일 주요 외신들은 스티브 잡스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의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故 스티브 잡스와 구글 CEO 에릭 슈미트는 잡스가 죽기 직전까지도 관계가 좋지 못했다.

잡스는 작년 구글의 모바일 OS 안드로이드가 대만 HTC 스마트폰을 통해 나오자 “저것은 훔친 제품”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구글과 핵전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거친 표현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고 아이작슨은 전했다.

스티브 잡스와 에릭 슈미트의 관계가 애초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2006년부터 애플의 사회이사직 임원을 수행하기도 했던 슈미트와 잡스의 관계는, 그러나, 양사의 주력 사업이 경쟁 관계를 띄게 되면서 급격히 멀어졌고 결국 2009년 이사회에서 퇴거당하기에 이른다.

그 밖에도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에는 잡스의 다양한 개인사가 담겼다. 생부와 만난 적이 없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생전 친아버지를 여러 번 만난 사실과 대안치료를 우선시하다 췌장암 치료를 9개월 정도 지연시킨 안타까운 사연 등이 소개됐다.

전자신문미디어 테크트렌드팀 trend@etnews.com

잡스의 '안드로이드 도둑놈' 공개되자…애플빠들도 "이건 아니잖아"

지난해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의 카페에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마주앉아 있는 모습이 정보기술(IT) 전문 인터넷매체인 기즈모도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24일 발간되는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면 당시 잡스는 동갑내기 슈미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돈을 달라는 게 아냐.50억달러를 줘도 안 받을 거야.나도 돈 많아.안드로이드에 우리 아이디어를 쓰지 말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야."

안드로이드는 구글이 개발한 모바일 운영체제(OS)로 안드로이드폰의 핵심이다. 잡스는 안드로이드에 대해 "(애플 아이디어를) 훔친 제품"이라며 "애플 돈 전부를 들여서라도 박살내겠다" "핵전쟁이라도 치르겠다"고 말했다. 

잡스의 이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구글플러스 글에는 엔지니어들이 100개가 넘는 비판 댓글을 올렸다. 미국 버펄로에 사는 개발자 조영 씨는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애플과 잡스를 용서할 수 없다…협력해야 하는 장을 소송으로 더럽혔다"고 꼬집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김윤수 씨는 "잡스가 아이폰으로 구축한 에코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한 것"이라고 썼고,늘봄 씨는 "iOS(아이폰 OS)도 여기저기서 차용한 것"이라며 "왜 지금은 안드로이드를 따라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밖에 "멀티터치도 아이폰 이전에 나왔던 개념이다"(늘봄) "(화면 확대 기능인) 투핀치줌도 아이폰 이전에 나온 기술이다"(임민섭) "애플의 그래픽 유저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MP3도 도용한 것이다. 누구도 도둑이라고 말할 수 없다"(채석병,캐나다 넥스소프트) 등의 의견들도 줄을 이었다. 

애플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맥루머스에도 비판적인 댓글들이 눈에 띈다. "무얼 훔쳤단 말이냐"(something3153) "iOS와 안드로이드는 너무 달라서 베꼈다는 말은 엉터리다. 터치 UI도 아이폰 이전에 나왔다"(parapup) 등의 글들이다. 

지디넷은 잡스가 안드로이드를 '훔친 제품'이라고 비난했다는 기사 끝에 잡스의 발언에 동의하느냐고 묻는 설문을 붙였다. 23일 현재 '동의한다'는 26%,'동의 안 한다'는 67%에 달한다.

<스티브 잡스 사망> '쇼맨십' 빛났던 순간들


스티브 잡스(EPA=연합뉴스) 지난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간담에서 애플 최고경영자가 신형 아이포드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5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많은 연설과 언론 노출을 통해 쇼맨십을 발휘하며 명실상부한 'IT업계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아 왔다.

미 CNN 인터넷판은 '비전'과 함께 제품을 판매해 온 잡스의 쇼맨십이 가장 빛났던 순간들을 소개했다.

◇아이폰 발표…"아이폰이면 다 된다" = 지난 2007년 아이폰 소개 현장은 잡스의 쇼맨십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현장이었다.

잡스는 먼저 자신이 혁신적인 상품 3개를 소개할 것이라고 밝힌 뒤 터치 기능을 포함한 와이드 스크린 아이팟, 혁명적인 휴대전화, 그리고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 기기를 언급했다.

자신의 뒤편에 있는 대형 화면에서 3가지 기기를 뜻하는 아이콘들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다 마침내 하나로 합쳐진 순간, 그는 말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것들은 3가지 다른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기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웰컴 투 '애플 스토어' = 지난 2001년 애플의 오프라인 매장인 '애플 스토어' 발표 당시, 전문가들은 한 업체의 IT제품만 판매하는 매장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애플 스토어 1호점이 될 매장에서 촬영한 비디오에 직접 출연, 매장을 돌며 여러 가지 기기들을 소개하면서 애플 스토어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상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애플 스토어의 "절반은 솔루션을 위한 것"이라며 "사람들은 더는 PC만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PC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아이패드는 '매직패드' = 2010년 1월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소개하면서 아이패드를 노트북 이상의 기계라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눈부신'(gorgeous),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unbelievably great), '꿈의'(a dream) 같은 수식어를 덧붙였다.

이어, 그는 소비자들이 아이패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 졸업식 = 잡스는 수많은 프레젠테이션 현장에 나섰지만, 개인사를 언급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잡스는 지난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행한 졸업식사를 통해 자신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입양된 사실과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게 된 사연을 털어놨고, 췌장암과 죽음에 대한 견해도 이야기했다.

그는 "당신의 인생은 유한하다. 따라서 타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와의 '포커페이스' 인터뷰 = 2007년 한 콘퍼런스에서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미래의 컴퓨터'인 태블릿 컴퓨터를 항상 갖고 다닌다고 밝힌 게이츠는 사람들이 "전면이 스크린으로 돼 있는 기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태블릿PC의 전망과 가능성을 소개했다.

이 때는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2년 전이지만, 이미 잡스는 이 태블릿PC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잡스는 인터뷰에서 '태블릿'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된 순간, 앉아 있던 회전의자를 살짝 돌리며 입술을 깨물었을 뿐 인터뷰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cindy@yna.co.kr
 

[스티브 잡스 1955∼2011]잡스 1985년 왜 쫓겨났나… 스컬리 “매킨토시 포기” vs 잡스 “값 낮춰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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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현실적 이익이 중요”… CEO 손 들어줘

[동아일보]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1985년 왜 쫓겨났을까. 뉴스위크는 7일 당시 이사회 멤버들 인터뷰를 통해 잡스 해임과정을 둘러싼 뒷얘기와 잡스를 쫓아낸 그들의 현재 심경을 전했다. 그들은 해고결정이 통찰력이 없는 행위였다고 뒤늦게 후회하면서도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잡스 자신이 초빙했던 존 스컬리 최고경영자(CEO)와의 충돌이었다. 잡스가 1984년 만든 고가의 매킨토시는 실패작이었다. 충돌이 빚어진 것은 1985년 초. 스컬리 씨는 매킨토시를 포기하고 기존의 성공작인 개인용컴퓨터(PC) ‘애플Ⅱ’ 판매를 통한 이익 실현을 강조했다. 펩시콜라 재직 때 소비자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콜라 맛을 비교하도록 한 이벤트를 통해 획기적인 매출 신장을 이끌어낸 ‘펩시 챌린지’의 기획자 스컬리 씨에겐 기업의 현실적인 이익 추구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그러나 잡스는 매킨토시 가격 인하로 판매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사회는 매킨토시 부서장인 잡스를 해고하며 스컬리 씨의 손을 들어줬다.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인 잡스의 태도가 이사진을 불편하게 만들어 해고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있다. 이사회 멤버였던 피터 크리스프 씨는 잡스나 애플사 직원들이 얼마나 규율과 거리가 멀었는지를 설명했다. 벤처캐피털인 벤록의 파트너였던 그는 애플 직원들과 함께 데이비드 록펠러 씨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다음날 록펠러 씨는 그에게 “애플 매니저들과의 파티가 즐거웠다. 다만 내년에는 우리 집 화장실 거울에 애플사 로고를 붙여놓지는 말라고 부탁해 달라”고 말했다. 애플 직원들이 록펠러 씨 집 화장실에 알록달록한 애플사의 로고를 여기저기 부착하는 무례를 저질렀던 것.

다른 이사회 멤버 아서 록 씨도 잡스에 대한 인상 비평을 늘어놨다. 인텔 창립에 관여한 벤처캐피털을 운영한 록 씨는 “인도를 다녀온 잡스는 염소수염에 긴 머리를 한 데다 한참을 씻지 않았다”며 “청바지를 입고 사무실에 나타난 잡스의 복장은 당시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스티브 잡스 전기]암 수술 후 “완치됐다”며 식이요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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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만든 제품들에는 그의 성격이 반영돼 있다.” 전기 집필자 월터 아이작슨은 이렇게 말한다. 잡스는 애플의 모든 제품에 대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한 ‘엔드투엔드’의 통제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에게 병 치료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잡스는 2003년 10월 췌장암 선고를 받고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내 몸을 여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다른 방법들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요.” 잡스의 췌장암은 진행 속도가 느려 완치율이 높은 희귀성 종양으로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9개월 동안이나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집하며 침술과 다양한 약초 요법을 병행하는 등 민간요법과 대체의학에 의지했다.

주변의 애원에도 잡스는 막무가내였다. 전립샘암과 싸워 이겨낸 인텔의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는 잡스에게 “미쳤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맹렬히 초점을 맞추는 그의 경이로운 능력 이면에는 자신이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걸러내는 습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내 로렌 파월은 “그는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시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그가 자아도취에 빠지는 방식”이라고 토로했다.

2004년 7월 종양이 다른 곳에 전이됐을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자 잡스는 결국 절제 수술을 받아들였다. 전부는 아니었다. 췌장을 절제하면 단백질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 잡스는 우유나 다양한 고기, 생선 등을 섭취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했다. 10대 때부터 실천해온 극단적인 식이요법을 잡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완치됐다”며 암과의 사투를 비밀에 부쳤다.

잡스는 2005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서 “죽음이 가져다준 깨달음”을 설파했지만, 암 선고 이후에도 그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의사들에게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을 들었지만 겸손한 태도는 주입되지 않았다. 잡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망신을 주고 사소한 일들에 불같이 화를 냈다.

2008년 초 암은 재발했다. 단순한 ‘호르몬 불균형’이라는 그의 변명과는 달리 잡스는 암이 전이된 간을 절제하고 이식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누워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는 “마스크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식단 또한 과일 스무디만을 고집했다. 2009년 6월 말 그는 회사로 복귀했으나 첫날부터 마케팅 기획서들을 찢으며 성과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 후 2010년 1년간은 가장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으나 결국 2011년 세 번째 암 재발을 맞고 8월에 최고경영자(CEO)직을 넘겼다.

아이작슨은 “잡스는 선 수행을 해왔지만 내적 평온은 기르지 못했다”며 “이런 성격은 카리스마와 영감이 넘치게 만들어주었지만, 이따금 ‘또라이’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잡스는 죽음에 대해서도 믿지 않으려 했다. 어느 화창한 오후, 잡스는 자택 뒤뜰에 앉아 아이작슨과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 남는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버리는 거지요.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번호판 없는 잡스 벤츠' 논란…교묘한 방법으로 합법화



 

[TV리포트]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잡스가 번호판 없는 벤츠 승용차를 이용했던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번호판 없는 벤츠를 타고 다녔지만 법률사의 유예기간을 절묘하게 이용해 벌금을 내지 않았던 것.

지난 26일(현지시각) 외신은 잡스가 벤츠에 번호판을 부착하지 않은 채 운전할 수 있었던 비법을 공개했다.

캘리포니아 자동차법은 차를 새로 구입한 사람은 6개월 안에만 번호판을 받아 달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잡스는 벤츠 리스회사와 계약을 맺고 6개월마다 똑같은 차종으로 바꿔 탔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이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잡스가 번호판 부착을 꺼린 이유는 평소 신비주의 전략대로 신분을 숨기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했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이를 두고 잡스가 주정부의 특별한 배려를 받은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치자 캘리포니아주 차량국은 누구에게든 특혜는 없다며 부인했다.

아이폰4S=iPhone For Steve? “스티브 잡스 위한…” 구매심리↑

Posted : 2011-10-07 22:48 KST 박소라 기자 angela@ibtimes.co.kr

5일(현지시각)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사망하자 최근 발표된 ‘아이폰4S’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6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아이폰4S의 뜻은 iPhone For Steve(스티브 잡스를 위한 아이폰)’라고 해석한 네티즌들의 주장이 눈에 띄었다.

지난 2004년 췌장암 판정을 받으며 세 차례에 걸쳐 병가를 낸 스티브 잡스가 최근 건강이 악화되면서 애플 측이 그의 사망을 미리 예측, 이를 위해 급하게 ‘아이폰4S’를 출시했다는 설명이다. 즉, 아이폰4S는 스티브 잡스만을 위한 제품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작년 스티브 잡스가 발표한 아이폰4와 디자인이 같은 아이폰4S는 속도면에서만 향상된 모델로, 이를 뒷받침한다는 해석이다.

아이폰4S는 출시 당시 아이폰5를 기대했던 전 세계 언론매체 및 소비자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이유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네티즌들은 “감동이다”, “주위가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유작을 사야겠다는 분위기”, “나도 왠지 아이폰4S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아이폰4S 흥할 기세”,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나를 위한 아이폰은 없는 것인가”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스티브 잡스의 사망 원인은 췌장암의 일종인 ‘신경내분비암’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은 뒤 2009년 호르몬 이상으로 간 이식 수술을 감행한 바 있다. (사진출처=애플)

'영웅' 스티브 잡스, 그가 영웅으로 받들었던 사람은


/스티브 잡스

1998년 미국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다. 밥 딜런은 언제나 실패의 위험을 감수했다"

잡스는 1976년 부모님의 집 창고에서 애플컴퓨터를 창업한 뒤 하루종일 컴퓨터를 조립하는 일에 지칠 때면 마당에 나가 기타를 치며 딜런의 노래를 불렀다.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난 1985년의 어느 날 밤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 내내 딜런의 노래만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일어섰다.

애플은 5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의 첫 화면을 스티브 잡스의 흑백 사진으로 바꾸어 놓고 이 사진의 파일명을 'The Hero'라고 했다. 그만큼 잡스는 애플의 전부였고, 영웅 그 자체였다. 

그런 잡스에게 영웅이자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 딜런과 그의 노래였다. 미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화가였던 딜런은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맨이지만 영국의 유명 시인 딜런 토마스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성 조차 딜런으로 바꿔버린 괴짜이기도 하다. 

그의 'Blowin' in the Wind' 'The Times They Are a-Changin' 등은 1960년 대 젊은이들에게 저항 노래의 대표곡으로 불리며 칭송받았다.

60년대 중반 포크에 록을 결합시킨 음악을 발표하며 포크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컨트리, 블루스 등으로 음악 색깔을 끝없이 넓혀나갔다.  

잡스와 함께 딜런의 노래에 열광했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서전에서 그를 비틀스와 비교하기도 했다.

"딜런의 노래는 삶과 삶의 가치, 삶의 소중한 것들이 담겨 있다. 반면 비틀스는 소소한 행복들을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영혼의 현을 울렸다. 세상의 옳고 그르뫄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다음은 1984년 잡스가 컴퓨터 사용 환경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매킨토시'를 세상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낭독했던 딜런의 노래다. 

For the loser now will be later to win (지금의 패자들은 훗날 승자가 되리니)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다)

Come senators, congressmen, please heed the call (국회의원들, 정치인들, 충고를 경청하라)

Don't stand in the doorway, don't block up the hall (문을 막지 말고 홀을 봉쇄하지 말아라) 

For he that gets hurt will be he who has stalled (상처입는 것은 문을 잠그는 자들이 될 것이다) 

There's a battle outside and it is ragin'(바깥세상의 싸움은 점점 더해가고 있고)

It'll soon shake your windows and rattle your walls (곧 그대들의 창문을 흔들고 벽을 두들길 것이니)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다)

The slow one now, will later be fast (지금은 느린 변화는 훗날 점점 빨라질 것이라)

As the present now will later be past (현재는 훗날 과거가 되리라)

The order is rapidly fadin' (세상의 이치는 빠르게 변해가고)

And the first one now will later be last (지금 정상에 있는 자들이 나중에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사설] 스티브 잡스가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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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공동창립자인 스티브 잡스가 5일 세상을 떠났다. IT업계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하면서 글로벌 IT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 주요 IT업계 CEO들은 잡스의 상상력과 창의력,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CEO로 그의 창의력이 놀라운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도 "스티브 잡스처럼 영향력이 있는 인물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잡스는 혁신과 상상력으로 글로벌 IT업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온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1955년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지 몇주만에 입양됐다. 대학교에서 6개월만에 중퇴하면서 힘든 생활을 했다. 스티브 위즈니악과 양부모의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해 1977년 개인용PC `애플Ⅱ'를 선보였다. 애플Ⅱ는 컬러 그래픽이 가능한 세련된 외관을 갖춰,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잡스는 그래픽 사용자환경(GUI)을 적용하고 마우스를 도입한 매킨토시 컴퓨터를 내놓으면서 컴퓨터 사용환경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애플Ⅱ의 후속작으로 내놓은 `애플Ⅲ'와 그래픽 사용자 환경에 맞춰 출시한 `리사' 등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설상가상으로 1985년 경영권 분쟁이 일면서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아픔도 겪었다. 잡스는 실패와 아픔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았다. 파산위기에 직면한 애플에 복귀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IT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도전과 실패, 성공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잡스가 IT업계에 남긴 성과는 상당하다. 그는 2010년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포스트PC시대를 열었다. 또한 아이폰으로 휴대전화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손안의 컴퓨터로 불리는 아이폰은 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애플을 일약 글로벌 IT업계의 강자로 만들었다. 이들은 잡스의 혁신과 창의성을 대표하는 제품이다.

잡스가 세상을 바꿔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 것은 실패를 딛고서 끊임없는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도 생겨나지 않았을 지 모른다. 잡스가 한국 IT산업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하드웨어 중심의 불안정한 한국 IT산업에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하드웨어만 발전해서는 글로벌 IT업계의 리더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애플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IT산업에 융합의 바람을 일으킨 인물도 잡스다. IT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한 아이폰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을 없애면서 새로운 산업 융합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우리나라가 융합시대를 강조하면서 창의적 융합인재에 관심을 보이는 데도 잡스의 역할이 컸다.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의 미래 흐름을 제시한 탁월한 리더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대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이는 잡스가 IT업계에 남긴 과제나 다름없다. 한국의 IT기업은 잡스의 혁신과 창의력,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IT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 "암 수술 늦게 해 후회"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 및 전임 CEO가 암 수술을 빨리 받지 않은 것을 후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은 CBS 뉴스의 “60분(60 Minutes)” 쇼에 출연해 스티브 잡스 생애 최후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췌장암이 완치되었다”고 말했지만 비밀리에 치료를 계속하고 있었으며 수술을 빨리 받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가 말하기를, (수술로)신체를 여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기를 원치 않았었다”며 “그러나 그 결정을 후회했다”고 전했다. 

 스티브 잡스의 췌장 암세포는 서서히 자라고 있는 상태였으며 스티브 잡스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 대신 섭생과 명상으로 치료하려 했다. 이 때문에 췌장암 수술을 9개월이나 지연된 상태에서 하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2004년 8월 1일 병원에서 동료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수술로 암세포를 성공적으로 제거했으며 자신의 상태가 별 것 아니라고 이야기해왔다.

 스티브 잡스 생애 마지막 인터뷰어인 월터 아이작슨의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는 이달 24일부터 판매된다. 

[스티브 잡스 전기]“디자인 아이디어, 서슴지 말고 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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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만큼 디자인에 집착한 이도 드물다. 24일 출간된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애플 특유의 둥근 직사각형 모서리 디자인이 잡스의 집념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그는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면 제품 제작이 어렵다는 디자인 책임자와 함께 회사 주변을 산책하며 자동차 창문과 게시판, 거리의 표지판 등 17가지 예를 찾아내 디자인 담당자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매킨토시와 컴퓨터 대화상자, 창들은 둥근 모서리를 갖게 됐다.

잡스는 애플과 거래하던 색상 전문업체 팬톤이 새 제품 케이스 색상으로 2000가지에 이르는 베이지색을 내놓았을 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거부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매킨토시 컴퓨터 케이스, 포장재 색상과 디자인을 50번가량 수정하도록 지시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잡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회로기판도 일일이 검사했다. 한 엔지니어가 이의를 제기하자 잡스는 “박스 안에 들어 있다 해도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훌륭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장롱 뒤쪽에 저급한 합판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서 얻은 교훈이었다.

잡스는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해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애플은 제록스 팔로앨토연구센터에서 본 그래픽 방식의 사용자 환경을 매킨토시에 적용했다. 현재 데스크톱 컴퓨터의 바탕화면이 여기서 나왔다. 

잡스는 디자인을 훔친 데 대해 “역사에 등장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 자신이 하는 일에 접목해 활용하려 한 노력”이라며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다는데 나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기는 “잡스가 애플 직원들이 타인의 것을 서슴지 않고 훔치기도 하는 도적떼처럼 행동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스타일 블로그】스티브 잡스, 검은색 터틀넥과 그의 소유욕


▲ 스티브 잡스, 생전 그의 50세 생일 파티

[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스티브 잡스, 검은색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과 리바이스 501 청바지, 뉴발란스의 스니커즈로 기억됩니다. 그가 이렇게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이유, 10월 24일 동시 출간된 <스티브 잡스>에 설명되어 있네요. 

왜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만 입었는가?

잡스는 자신이 입을 유니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편리할 뿐 아니라(이것이 그가 주장한 이유였다.) 특징적 스타일을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이세이에게 제가 맘에 들어 하던 그의 검은색 터틀넥을 몇 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그 옷을 100벌 정도 만들어 주더군요.” 이 얘기를 듣고 내가 놀라는 걸 본 잡스는 옷장에 쌓여 있는 검은색 터틀넥을 보여 주었다. “이게 제가 입는 옷입니다. 죽을 때까지 입어도 될 만큼 있지요.”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세이 미야케를 통해 수도 없이 많은(그리고 같은) 검은색 터틀넥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시그너처 룩으로 활용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그의 소유욕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돈과 소유욕을 어떻게 정립했는가?

▲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5

“애플의 많은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만지기 시작하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고급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몰기 시작하고 집도 여러 채 장만하더군요. 각각의 집에 지배인도 두고, 나중에는 그 지배인을 관리할 또 다른 누군가를 고용하고요. 그들의 아내는 성형수술을 자꾸 해서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신 나간 짓이에요. 나는 돈이 내 인생을 망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물질적인 소유물에 대한, 특히 디자인이 뛰어나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예를 들면 포르쉐와 메르세데스 자동차, 헨켈 칼과 브라운 가전제품, BMW 오토바이, 언셀 애덤스의 사진들, 뵈젠도르퍼 피아노, 뱅앤올룹슨의 오디오기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사는 집은 부자가 된 이후에도 결코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으며, 가구도 거의 없이 단출해서 셰이커교도(기독교의 한 종파로, 금욕적이고 단순한 생활양식을 추구했으며 장식을 배제하고 본래 의도에 충실한 소박한 가구를 즐겨 썼다. 옮긴이)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그는 수행원이나 개인 경호원도 두지 않았다. 근사한 차를 소유했지만 항상 직접 운전해서 몰고 다녔다. 

불교에 몰입하던 시절 잡스가 배운 교훈은 물질적 소유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방해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웬만한 CEO들은 보안과 안전에 아주 세세하게 신경을 쓰지요.” 그가 말한다. “심지어는 집에도 경호원을 두더군요.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겁니까? 미친 짓이지요.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겁니다.”

잡스는 최소한의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우드사이드 저택에 가구를 들이지 않았다. 침실에는 옷장과 매트리스, 식당으로 쓰는 공간에는 카드놀이용 테이블과 몇 개의 접이의자가 전부였다. 그는 주변에 자신이 감탄할 수 있는 것들만 놓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저 나가서 많은 가구를 사들이는 일 자체가 힘에 겨웠다. 하지만 이제 아내와,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평범한 동네에 살게 된 그는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쉽지는 않았다. 그들은 침대와 옷장, 그리고 거실에 놓을 스테레오 시스템을 구입했지만, 소파와 같은 가구들을 사들이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사실상 8년 동안 가구를 구입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한 셈이에요.” 파월이 회상했다. “우리는 반복해서 우리 자신에게 물었죠. 소파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가전제품을 사는 것도 단순한 충동구매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인 과업이었다. 

집이 너무도 검소해서, 빌 게이츠는 아내와 함께 방문했을 때 조금 당황하기까지 했다. “가족 모두가 여기서 사는 거예요?” 게이츠가 물었다. 그는 시애틀 인근에 6000㎡의 저택을 짓는 중이었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이후에도 집에 안전 요원이나 상주 관리인 들을 두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부로서는 드문 경우였다. 낮에는 뒷문을 열어 놓기까지 했다.

좀 더 소상한 그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여한 유일한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 Steve Jobs>를 통해 상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국내는 민음사 출간으로 안진환 옮김입니다. 

잡스가 아이패드를 만들게 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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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IT] 스티브 잡스의 비난을 받아온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애플 아이패드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숨은 이야기가 공개됐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에는 잡스의 분노가 7인치짜리 터치스크린인 아이패드를 창조하는 힘이 됐다는 내용이 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기에 따르면 어느 날 MS의 한 직원이 잡스와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들이 혁신적인 태블릿PC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줄기차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분노한 잡스는 집으로 돌아와 거친 욕을 내뱉으며 “그 녀석에게 이제 진정한 태블릿 PC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그는 아이패드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아이패드를 내놓은 데 이어 올해 아이패드2까지 출시했고 현재까지 총 3980만여대를 판매했다.

잡스와 게이츠가 사사건건 대립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잡스는 게이츠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갔다며 거침없이 비난해 왔다. 전기에도 잡스는 30년이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그날의 일에 대해 화를 참지 못했다.

잡스는 게이츠를 향해 “상상력이 부족하고 파렴치하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베끼기만 한다”고 비난했다.

잡스의 폭언은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도 피해 가지 못했다. 슈미트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애플 이사회 임원이었다. 그러나 구글과 애플의 경쟁 관계가 격화되면서 사임했다.

잡스는 아이작슨과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계와 관련 ‘거대한 도둑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는 필요하다면 마지막 숨까지 바칠 것이며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라면 은행에 예치해둔 애플의 400억 달러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훔쳐간 제품인 안드로이드를 없애겠다. 이에 대해 핵융합 전쟁도 기꺼이 치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애플은 구글의 안드로이트 운영체제를 쓰고 있는 삼성 등 파트너 업체들과 1년 넘게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의 특이한 식습관도 전기에 기록됐다. 잡스는 시리얼이나 당근만 먹었다. 때로는 자신의 회사 이름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듯 사과만 먹기도 했다.

잡스의 친구이자 애플 초창기 임원이었던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는 굶주려 있다가도 폭식을 했다”면서 “나는 한동안 그가 폭식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 국민일보 쿠키뉴스(www.kuk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스티브 잡스 전기]밥 딜런은 우상, 비틀스는 애플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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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에 든 음악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전기 집필자 월터 아이작슨이 만난 스티브 잡스의 아이팟에는 2004년에 채워둔 밥 딜런의 해적판 음반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애플 창업을 함께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잡스는 이 음반들이 정식 발매되기 이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 음악을 담아왔다. 잡스는 이 음악들을 들으며 딜런을 숭배했다. 비틀스도 딜런과 함께 잡스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 음악가였다.

음악은 그의 비즈니스와 연결되기도 했다. 잡스는 딜런의 모든 노래 773곡을 모아 아이튠스에서 199달러에 패키지로 판매하기도 했다. 비틀스는 애플의 제품 제조 철학을 확립하는 데 지침을 주었다. 잡스는 비틀스가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라는 곡을 수정하는 과정을 10번에 걸쳐 트랙에 나눠 담은 해적판 CD를 소중히 여겼다. “곡을 완벽히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앞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애플에서 물건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잡스는 앨범은 개별곡 단위로 해체될 수 있다고 믿었으나 딜런과 비틀스의 음악만은 대부분 전곡을 담았다. 롤링스톤스를 비롯한 다른 음악가들의 앨범은 서너 곡만 골라 넣었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선곡을 보면 주로 1960년대 음악을 들으며 1970년대 청소년기를 보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재생목록에 랩 음악은 없었다. 잡스는 에미넴의 콘서트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공감할 수 없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다만 2011년 3월, 아이패드2가 출시될 무렵 만난 만년의 잡스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성가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잡스는 첼리스트 요요마를 좋아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결혼식 연주를 부탁했고, 암 투병 중에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스티브 잡스 전기]“양부모가 1000% 부모, 생부모는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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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됐다는 사실을 안 것이 제게 독립성을 키워주었을지는 모르지만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빠진 적은 없었어요. 저는 항상 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부모님이 그렇게 느끼도록 해주셨어요.” 

스티브 잡스는 전기에서 생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된 사실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견해를 적극 반박했다. 잡스는 버림받은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폴 잡스, 클라라 잡스)를 “1000퍼센트 제 부모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지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라고 밝혔다.

잡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예닐곱 살 때 옆집 여자아이에게서 “너네 진짜 부모님은 널 원하지 않았던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집에 울며 들어온 잡스에게 그의 부모는 “그게 아니란다.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라고 말한다. 버림받은 게 아니라 특별한 아이로 선택받았다는 격려였다.

잡스는 장인정신을 중시하던 아버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전기에서 그는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쓰면서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전기공학을 잡스에게 처음 가르쳐준 사람도,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소에 데려가 컴퓨터 단말기를 볼 수 있게 한 이도 그의 아버지였다.

잡스는 열세 살 때 스스로 교회를 그만둔다.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사진에 충격을 받은 잡스는 이를 주일학교 목사에게 보여주며 “하나님은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아시겠네요”라고 묻는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목사의 말에 잡스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일과는 어떠한 관련도 맺기 싫다고 선언하고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잡스는 천재적 두뇌와 장난기 덕분에 학교의 전설로 남은 졸업생 선배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난다. 후배의 소개로 만난 그들은 장난기와 함께 전자공학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있어서 금세 친해졌다. 훗날 애플의 공동창업주가 된 워즈니악을 잡스는 “전자공학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워즈가 처음이었다”고 평가했다.

전기에는 잡스가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도 나온다. 잡스는 대학교 1학년 때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과 아르놀트 에렛의 <디톡스 식습관의 치유 체계> 등을 읽으면서 야채와 과일만 먹는 채식에 빠져들었고, 장기단식을 정기적으로 해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잡스는 전기에서 “단식에 들어가서 일주일이 지나면 정말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소화시킬 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비롯되는 엄청난 활력을 얻을 수 있단 얘깁니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과일 위주의 채식주의 식습관이 체취도 막아준다고 믿어 정기적으로 샤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잡스가 환각제의 일종인 LSD에 빠진 과정도 전기에 들어 있다. 잡스는 고교 고학년 무렵에 영성과 깨달음에 심취하면서 LSD에 빠져들었다. 잡스는 “LSD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할 수 없었지만 뭔가를 보았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에서 LSD가 심오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의 하나였다고 회고한다.

잡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선불교와의 인연과 생각도 자세히 나온다. 청년 시절 7개월간 인도 순례 여행을 다녀온 잡스는 “서구사회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다”면서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선불교는 제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구술했다. 실례로 잡스는 선불교의 영향으로 물질적 소유에 무관심해 집에 최소한의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가구를 들이지 않았다.

<주영재 기자 jyeongj@kyunghyang.com>
 

스티브 잡스, 그가 강조한 것은 '애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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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중역 회의에서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월터 아이작슨이 집필해 24일 전 세계 공동 출간된 스티브 잡스의 첫 자서전 ‘스티브 잡스’에는 잡스가 팀 쿡과 조니 아이브 등 차세대 애플을 이끌 수석 경영자들에 애플의 미래를 강조한 부분이 나온다. 이 밖에도 그의 자서전에는 애플의 기업공개 당시 스톡옵션을 둘러싼 뒷이야기와 유독 디자인에 집착했던 그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많이 있다.

◆ 애플의 미래를 강조한 중역회의

스티브 잡스는 매주 월요일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서너 시간씩 이어지는 중역 회의에서 언제나 미래를 강조했다. 팀 쿡이 10분동안 차트를 보여주며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나면 중역들은 회사의 제품 각각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을 시작했다. 팀 쿡과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를 포함해 아이폰 소프트웨어 책임자 스콧 포스톨, 마케팅 책임자 필 실러, 맥 하드웨어 담당자 밥 맨스필드, 인터넷 서비스 책임자 에디 큐, 최고재무책임자(CFO) 피터 오펜하이머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토론의 주요 주제는 각 제품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하며 어떤 제품이 새롭게 개발되어야하는지 등이었다. 잡스는 이 미팅을 통해 애플의 모두가 사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화하고 통제력을 중앙으로 모으며 업무의 초점을 강화했다. 팀 쿡은 “우리들은 잡스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우리들의 아이디어를 반박하고 기꺼이 논쟁을 벌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잡스는 일부러 논쟁을 벌이려고 반대입장을 취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나오게 한다”고 말했다.

◆ 애플의 기업공개와 스톡옵션

1980년 잡스가 25살이던 무렵 애플이 기업공개(IPO)를 단행했을 때 애플의 기업가치는 17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지분을 받은 300만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창업주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의리’는 달랐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 초창기 시절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발기인주’를 주지 않았다. 잡스와 대학과 인도, 그리고 올 원 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절친한 친구 대니얼 콧기는 애플의 기업공개 당시 회사의 시급제 직원으로 근무했지만, 스톡옵션을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워즈니악은 잡스와 정반대였다. 그는 주식 공개를 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2000주를 중간급 직원 40명에게 아주 낮은 가격에 팔기로 했다. 그들 대부분은 나중에 집을 장만할 정도로 많은 돈을 손에 쥐었다. 또 워즈니악은 콧기, 페르난데스, 위긴턴, 에스피노사를 비롯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에게 자기 지분을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이에 비해 잡스는 상당히 약삭빠른 편이었다. 그는 크리스앤 브레넌의 부양과 관련해 그녀와 딸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기업공개 이전에 정하고 서명까지 받아뒀다.

◆ 매킨토시 디자인은 포르쉐처럼

잡스는 유독 디자인에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81년 맥 컴퓨터를 디자인할때 잡스는 크리에이티브 서비스 책임자 제임스 페리스에게 폭스바겐의 비틀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느낌을 주문했다. 페리스가 페라리처럼 선이 관능적이어야 하냐고 묻자 잡스는 차라리 포르쉐랑 더 닮아야 한다면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자신의 포르쉐 자동차를 보여줬다. 그때 잡스의 자가용은 포르쉐928이었다.

잡스는 디자이너들이 갖고 온 맥 컴퓨터 모델 디자인에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잡스는 팰러앨토에 있는 메이시스 백화점에 들어 전자기기들을 살펴봤고 디자인팀에게 쿠진아트의 제품을 하나 사오게 해 그것의 선과 곡선, 빗면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안을 여러 내놓았다. 잡스는 컴퓨터가 친근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계속 우겼고 그결과 디자인이 점점 진화해 컴퓨터가 사람 얼굴 같아졌다. 디스크드라이브를 화면 밑에 장착한 그 컴퓨터는 다른 대부분의 컴퓨터들보다 더 높았고 폭이 좁았다. 밑부분에 움푹 들어간 곳은 부드러운 사람 턱을 떠올리게 했다. 그결과 맥 디자인에 대한 특허 신청에는 제리 매넉과 테리 오야마의 이름은 물론이고 스티브 잡스의 이름도 함께 올라갔다.

◆ 매킨토시를 둘러싼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그들이 매킨토시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도용해 자신들만의 버전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로 잡스뿐만 아니라 게이츠 역시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가 미래의 운영체제라고 믿었고, MS도 애플만큼이나 제록스 PARC에서 개발한 것을 모방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애플은 MS와 함께 1983년 1월 매킨토시가 출시되면 이후 1년이 지날때까지 MS는 누구에게도 그래픽 기반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수 없다고 계약을 맺었고 게이츠는 그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윈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잡스와 게이츠를 거센 논쟁을 벌였지만, MS는 결국 1985년 가을 윈도 1.0을 출하했고 이를 끈기있게 개선한 끝에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이에 대해 잡스는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실제로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게이츠의 말이 맞았지만, 애플이 나중에 깨달았듯이 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모습과 느낌’은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보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10년 후 “MS의 유일한 문제는 미적감각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내가 문제삼는 것은 그저 그들이 삼류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이라고 불평을 내뱉었다.

[우고운 기자 woon@chosun.com]

 

"스티브 잡스, 산소마스크도 디자인 마음에 안 든다며 골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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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오늘 동시에 출간된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에는 그의 가치관과 사생활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스티브 잡스 전기' 한국어판을 번역한 안진환 씨는 YTN 뉴스Q에 출연해 "이번 책에는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주변인들과 적까지 모두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평소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스티브 잡스가 이번 책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배경에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무엇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는지 이해를 구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자신이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책을 쓸 텐데 엉뚱하고 허황된 얘기를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책 내용을 보면 "주변인들이 이상하고 괴팍하고 냉혹하다고 평가하는 데 대해 스티브 잡스가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해명·변명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잡스는 이사회에서도 억울하면 눈물을 쏟을 정도로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언제든 마음에 있는 생각을 밝히는 성격이 일반적 기준에서는 지나치다고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잡스는 병원에 입원해 산소마스크를 써야 할 상황에서도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병원에 있는 산소마스크를 다 가져오도록 한 뒤 마음에 드는 것을 쓰겠다고 했다"며, "그만큼 제품 디자인의 완벽함에 대해 집착이 강했고 그런 게 애플 제품에 모두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안 씨는 "이번 책은 잡스가 사망하기 전인 7월 하순에 원고를 받아 비밀 유지 각서를 쓴 뒤 번역에 들어갔다"며 작업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착잡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안드로이드 괴멸 위해 핵전쟁까지 불사할 것”
기사입력 2011-10-24 15:47 최종수정 2011-10-24 17:08
전기서 적개심 분출… 삼성 상대 특허소송으로 이어져
차세대 스마트 혁명 “대단한 TV 어떻게 만들까 해결했다”
[경제투데이 한지운 기자]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인 ‘스티브 잡스’(사진)가 24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됐다.  

이 책은 ‘타임’의 전 편집장인 월터 아이작슨이 스티브 잡스 사망 전 인터뷰를 통해 쓴 공식 전기로, 당초 11월 출시될 계획이었으나 한 달여를 앞당겨 출시됐다. 아이작슨은 2009년부터 2년간 잡스와 함께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거나 함께 산책을 하며 그를 40여 차례 인터뷰했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 뿐 아니라 그에게 반감을 가진 인물이나 경쟁자까지 포함하여 100여명의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전기에는 화려하지만, 베일에 감춰져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면면을 그대로 그려낸다. 특히 책 일부분에는 삼성전자와의 치열한 특허공방을 벌인 배경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한 적개심도 기술돼 있다.

잡스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출시하는 것을 보고 큰 배신감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의 최고 경영자(CEO)인 에릭 슈밋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애플 이사회의 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안드로이드는 훔쳐간 제품”이라고 말하며 분노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나의 마지막까지 호흡을 쓸 것이고, 은행에 있는 애플의 400억 달러 중, 1페니까지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드로이드는 훔쳐간 제품이기 때문에 이를 괴멸시킬 것이고, 핵전쟁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애플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선두주자인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특허공세를 펼치기 시작했고, 현재 9개국에서 31건의 특허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또 잡스는 MP3플레이어와 스마트폰, 태블릿에 이어 차세대 스마트 혁명을 TV에서 일으킬 생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잡스는 TV가 리모컨 없이도 아주 단순하고 우아하게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기를 원했다. 잡스는 "대단한 TV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결국 해결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용자들이 더 이상 DVD와 케이블 채널들을 작동하기 위해 복잡한 리모컨을 조작할 필요 없이, 가장 간단한 UI(사용자 환경)을 이용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잡스가 그렸던 스마트TV가 어떤 제품인지는 아직 애플이 출시하지 않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4~5년 후 출시할 제품까지 잡스가 간여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조만간 애플은 잡스가 그린 새로운 TV를 선보일 것이며, 이 경우 현재 한국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전세계 TV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잡스는 자신의 췌장암 수술을 늦춘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다. 잡스는 췌장암 판정을 받는 뒤 수술을 거부했고, 수술이 아닌 대체의학 또는 영적인 방식으로 치료할 것을 원했다. 그는 결국 9개월 후에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로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암세포가 몸 전체로 퍼진 뒤였다. 아이작슨은 “그는 질병의 심각성을 경시했고, 결국 수술을 늦춘 그의 결정에 대해 후회했다”고 말했다.

한편,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아이폰, 아이패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전자책 뷰어인 ‘아이북스’용 전자책으로도 출간됐다. 한국에서는 11월 말 아이북스에서 잡스의 전기를 전자책으로 구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fn스트리트]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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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은 디자인이 아주 단순하고 깔끔하다.사용방법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소비자 중심의 편익성과 실용성을 최대한 배려한 디자인의 산물이다.소비자가 주저없이 화면을 확대 또는 축소할 수 있는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는 애플의 디자인 특성을 대변한다.

애플의 이같은 디자인 전략은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철학에서 나왔다고 24일 전세계 20여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된 그에 자서전 '스티브 잡스'에 자세히 소개했다.이자서전을 쓴 타임의 전 편집장 월터 아이작슨은 애플의 디자인 원천이 독일 바우하우스 양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잡스는 '디자인은 표현정신을 담으면서 단순해야 한다'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에 빠졌다고 한다. 

잡스는 한 강연에서 "우리는 깔끔한 패키지에 제품을 담아 소비자들이 이 패키지만 보고도 하이테크 제품임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란 애플의 홍보 슬로건은 잡스의 이런 디자인 철학을 담은 것이다.

암 투병중이던 잡스에게 의사가 산소호흡기를 씌우려 할때 그는 그것을 벗어 던지면서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어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그러면서 모양이 다른 다섯개쯤 가져 오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호흡기의 디자인을 문제삼을 정도라면 디자인에 대한 그에 집착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즐겨 입던 검은색 터틀넥에서도 그에 디자인관을 읽을 수 있다.검은 색 터틀 넥은 그가 일상생활에 편리하면서 자신의 특징적 스타일을 표현하는 유니폼으로 만든 옷이다.이 옷은 잡스의 부탁을 받고 디자이너 이세이가 무려 100벌의 검은 색 터틀넥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잡스는 이 옷을 옷장에 쌓아 두고 골라 입었다.

잡스가 미완의 과제로 남긴 '최후의 계획'에도 그만이 구상했던 신선한 디자인이 담겨 있다. 잡스의 꿈은 아주 사용이 쉬운 TV이었다.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없앤 것처럼 TV에도 리모콘 대신에 터치 기능을 장착하는게 한가지 방식이다.지난 2007년 출시한 '애플TV'에 아이클라우드로 다른 기기와 무선 연동되는 단순한 사용자 환경(UI)을 적용한 것은 'TV 혁명'의 맛보기 이었을 것이다. 

잡스는 인생이 그냥'딸깍!'누르면 바로 꺼지는 전원 스위치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이 때문인지"애플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다고 봅니다"라고 자서전 말미에 고백했다.잡스의 인생관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의 원천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혹평한 경영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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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가’ 스티브 잡스는 주변인들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잘나가던 IT기업들이 쇠퇴하는 원인인에 대해 “세일즈맨이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뒤 스티브 발머의 마이크로소프트(MS)를 혹평했다.

잡스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혁신을 꾀하고 독점에 가까운 기업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제품의 질을 경시하기 시작하고 훌륭한 세일즈맨들에게 가치를 두기 시작한다”며 “IBM의 존 에이커스는 환상적인 세일즈맨이었지만 제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제록스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실수로 존 스컬리가 영입됐을 때 애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고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맡았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애플은 운이 좋아 재기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발머가 운영하는 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존 스컬리는 “평생 설탕물이나 팔겠는가”라며 잡스가 직접 애플로 영입했던 인물이지만 잡스는 후일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난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대화에서도 솔직했다. 잡스는 오바마에게 “대통령께선 지금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 행정부가 더 기업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속수무책으로 낡았고 교원 노조 때문에 절름발이가 됐다”며 “학교장이 능력에 따라 교사를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훗날 자신을 찾아온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에게 잡스는 “구글이 어떤 회사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파악해라.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MS처럼 될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 않은 제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좀 더 철학적인 문제들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이상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경영수업만 열심히 받지, 철학적 문제들에 시간을 쏟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물질주의적이고 경력이나 취업에만 신경을 쓰는 젊은이들에게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잡스가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사랑 고백은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는 “20년 전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린 그저 직감에 끌렸고 당신은 나를 황홀하게 했다”며 “아와니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눈이 내렸고, 수년이 지나 아이들이 태어났고, 행복한 적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빴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2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좀 더 늙고 좀 더 현명해지고 얼굴과 가슴에 주름도 늘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비밀, 경이로움을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잡스는 이 메시지를 다 읽은 다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홍석희 기자 @zizek88> hong@heraldm.com

 

[커버스토리] IT생태계 확 바꾼 스티브 잡스 경영학

잡스에 대한 경영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천재적인 혁신가이자 위대한 기업가임이 틀림없지만 그의 경영 스타일은 기존 경영학 이론으로 풀어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는 것이 많은 경영학자들의 분석이다. 경영의 기본인 리더십을 발휘할 때도 잡스는 인센티브를 강조해 직원 사기를 북돋으면서도 일을 잘 못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해고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혁신적인 제품 개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것에 한 가지를 더해 완전히 새로운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전문가들은 조금씩 관점이 다르긴 했지만 공통적으로 "스티브 잡스는 경영자보다는 혁신가였고, 전략가보다 철학자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또 얼핏 보면 기존 경영학 틀로 분석하기 어렵지만 하나 하나의 성공비결을 따지고 보면 가장 경영학 원칙에 충실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잡스 경영은 앞으로 두고두고 연구해볼 대상이라는 것이 경영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과 환경을 조합해 제품에 덧붙이는 혁신' '신비주의라 불릴 정도로 정보를 숨겼다가 결국 소비자는 물론 경쟁자까지도 경외감을 갖도록 만드는 오섬 마케팅' '통섭과 소통으로 모두와 함께 만들어낸 위대한 제품'을 잡스 경영의 핵심으로 꼽았다.

◆ 'One more thing!' 경영

경영자들에게 혁신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화두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잡스식 혁신, 주변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을 조합하거나 변형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추가하는 창조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혁신의 키워드는 '+1(플러스 원)'이다. 잡스는, 그리고 애플은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걸 발명하지 않고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을 조합해 '기가 막힌 하나'를 덧붙였고, 그게 곧 성공의 핵심이 됐다. 작고 예쁜, 그리고 음질이 뛰어난 MP3가 넘쳐나던 시대에 잡스는 '심플'한 디자인의 아이팟을 내놨고 합법적인 음악 다운로드 시장 '아이튠스'를 덧붙였다. 마침 확산되기 시작한 무선인터넷과 함께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즐기는 방식이 바뀌었고 그게 곧 아이팟의 성공비결이 됐다. 이미 스마트폰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이튠스의 기억은 아이폰이라는 전화에 앱스토어가 더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게 '진짜 스마트폰'이었다.

IT산업 전문가인 안준모 건국대 경영대 교수는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은 물론 제품 혁신에 있어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나 환경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탁월한 무엇인가를 도출해 제품에 부가하는 방식이 경영학자나 경영자들이 연구하고 적용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 'Awesome' 마케팅

"잡스가 무대에 올라 새로운 제품을 소개한다. 블로거들이 말도 안 되는 제품이라고 맹렬히 비난한다. 제품이 출시되고 일반 대중이 매료되면서 비판론자들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애플 경쟁자들은 막 애플이 만들어낸 것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포그가 말하는 애플 제품 출시 후 나타나는 일종의 패턴이다. 소비자와 비판자, 그리고 결국 경쟁사들까지도 애플 제품을 경외하도록(Awesome) 만드는 힘의 핵심은 '신비주의'와 이를 통한 '서프라이즈 전략' 그리고 '일관성'이다.

김경훈 베인&컴퍼니 이사는 "경영학 측면에서 애플은 마케팅에 있어 베스트 프랙티스를 보여준다"며 "전략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적용하는 공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중선 모니터그룹 이사는 "스토리텔링에 강한 잡스식 프레젠테이션과 키노트 PT 이전까지 철저히 제품을 숨기는 방식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제품 발표회 현장에서 일종의 재미있는 서프라이즈 파티가 열린다는 의미다. 여기에 제품 외양부터 판매가 이뤄지는 공간까지 일관된 디자인과 컨셉트로 이어지는 일관성, 특히 사용자 경험에 기반을 둔 디자인은 사람들이 애플식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 소통과 융합으로 만든 위대한 제품

잡스의 통섭적인 통찰력은 이제 모든 경영자들에게 화두가 됐다. 하지만 잡스 개인이 아닌 '잡스 경영학' 관점에서 이를 보면 '소통과 융합의 경영학'이라 부를 수 있다. 그가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던 100인 그룹에 속한 다양한 분야 인재들이 벌이는 난상토론, '브레인 스토밍'은 애플 제품의 혁신에 기초가 됐고, 콘텐츠 사업자ㆍ앱 개발자와 소통하고 이익을 통 크게 나누며 만들어낸 새로운 방식의 IT 생태계는 애플 제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미치도록 위대한(insanely great)' 제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몇몇 전문가들이 잡스 이후에도 애플이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라고 점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 낸 IT 생태계 때문이다. 시장 환경 자체가 변하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기업이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기업이 살아남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공생 시스템을 구축해 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 <용어설명>

'Awesome' 'Insanely great' 'One more thing'은 스티브 잡스가 생전 자기 키노트 PT에서 언제나 최소 한 번 이상씩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일종의 '마법 단어(magic words)'였다. 제품 기능이 어떤 것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직접 시연하는 과정에서 주로 사용됐으며 특히 '한 가지 더(one more thing)'는 PT 마지막 부분에 소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때 자주 사용됐다.

[고승연 기자 / 황미리 연구원]

 


●영속하는 기업이 핵심

“마이크로소프트(MS)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MS의 DNA에는 인간애와 인문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맥을 보고도 제대로 모방하지도 못했다.…월트 디즈니, 휼렛과 패커드, 인텔은 단순히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 영속하는 기업을 구축했다. 애플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나는 내가 사람을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형편없으면 그저 면전에 대고 얘기하는 것뿐이다.”

책 말미에 실린 잡스가 직접 쓴 글 일부다. 그리고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에게 한 유명한 말인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실은 히피족 몽상가 스튜어트 브랜드가 카탈로그에 쓴 문구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위대한 혁신도 실패에서 시작…"잡스의 실패작들"



 위대한 혁신가, 독창성의 원조, 창의적이지 않으면 제품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는 스티브 잡스. 하지만 창의적인 제품이 항상 세상의 환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도 실패했던 제품이 있다. 

 물론 이 실패작들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21세기 혁신 ‘아이콘’을 위한 밑밥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력을 중시했고 기존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개발해낼 필요가 없다고 혁신을 독려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칭송받는 진정한 이유는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결국 ‘팔리는’ 혁신 제품을 만들어낸 그의 의지에 있다. 

 특히 그의 실패작들을 살펴보면, 사용자의 사용 편이성(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성능이라는 두 가지 공통점이 제품을 관통한다. 이러한 실패작들을 거쳐 맥북에어에 이은 아이폰, 아이패드에 와서 ‘뛰어난 사용 편이성’으로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아래는 스티브 잡스도 실패했던 작품들이다. 사진은 맨 위부터 애플 리사, 넥스트, 애플III, 20주년 기념 매킨토시, 파워맥 G4 큐브, 휴대폰 락커, 모바일미 <자료:PC매거진>. 

 ▶락커(ROKR) : 마치 90년대 후반에 출시되었던 노키아 휴대폰 같지만 애플 아이튠즈 라이브러리를 통해 음악을 실행시킬 수 있다. 모토로라와의 협력 산물로 2005년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단지 100개의 노래를 저장할 수 있으며 전송 속도 또한 대단히 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락커에서부터 아이폰이 발표된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또한 현재 모토로라가 애플의 최대 경쟁사 중 하나인 구글에 인수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대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파워맥 G4 큐브 : 이제는 애플을 모바일 컴퓨팅 단말기 회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애플은 그래픽 작업에 강점을 가진 매킨토시 회사로 더 유명했다. 지금이야 모바일에서 플래시 폄하 발언으로 어도비와 아옹다옹하는 사이지만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등 어도비의 그래픽 소프트웨어와 매킨토시 하드웨어가 만나 수많은 그래픽 창조 작업을 거들었다. 

 그러나 2000년에 발표된 파워맥 G4 큐브는 매킨토시 성공가도에 발목을 잡았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프로세서와 시스템의 엄청난 발열 때문에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균열이 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크기는 작게, 성능은 강하게”라는 모토는 지금도 애플 맥북에어와 아이패드, 아이폰 제품에 유전되고 있다. 

 ▶모바일미(MobileMe) : 아이클라우드의 전신이지만 모바일미의 발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원래 원격에서 이메일, 일정, 사진, 파일 등에 액세스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였지만 모바일미 런칭 시 서비스는 버그투성이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책임자 집단을 대회의실에 모이게 한 뒤 책임자 직위를 박탈하고 새로운 책임자를 선임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포브스에 인터뷰하면서 “잡스는 그 사람들에게 애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격노했다”며 “당신들은 상호 실망시켰다는 점에서 서로 미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리사 : 1983년 발표된 애플 리사. 당시 획기적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에 기반을 두었지만 가격이 무려 1만 달러에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20년 전 1만달러는 오늘날 2만 2000달러와 맞먹는 가치다. 

 ▶넥스트(NeXT) : 스티브 잡스가 잠시 애플을 떠나 설립했던 회사가 넥스트다. 넥스트에서는 PC 운용체계와 워크스테이션 제품을 만들었는데, 다소 성공을 거뒀지만 일부 얼리어답터의 사용에 그쳤다. 

 ▶애플III : 8비트 컴퓨터인 애플 I, II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애플 III는 그렇지 않다. 애플III는 1980년대 애플 마케팅 부서가 요구해 개발되었는데 시스템 불안정으로 1년만에 단종되었다. 

 ▶20주년 기념 매킨토시 : 애플이 창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표한 매킨토시다. 고급장서와 같이 황금과 초록색 케이스, 키보드의 가죽 손목 보호대, 보스 스피커 등 호화로운 외양을 자랑했다. 

 박현선기자 hspark@etnews.com

 

‘혹’ 떼려다 ‘혹’ 붙인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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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4 수신불량 문제에 대한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애플이 리콜 대신 무상 케이스를 제공하기로 한 데 대해 “최소의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충성스런 애플 팬들 역시 케이스 지급 방안에 만족하며 안테나 이슈가 아이폰4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잡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섰다. 

반면 미 현지 언론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다. 뉴욕타임즈는 “애플이 아이폰4의 안테나 문제를 마케팅 이벤트의 하나로 돌려버렸다”고 꼬집었고,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잡스는 안테나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모든 스마트폰의 문제일 뿐이라며 과장됐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운영하는 웹진인 ‘슬레이트’는 “잡스, 당신은 망쳐 버렸어, 우리가 알고 당신도 알아. 그냥 받아들여”라고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애플 경쟁사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비판 의견을 쏟아냈다. 잡스가 기자회견 와중 “안테나 이슈는 모든 스마트폰의 문제”라며 “블랙베리, 드로이드 에리스, 옴니아 2 등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경쟁사 제품을 끌어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블랙베리 제조사인 캐나다 림社는 잡스의 회견 직후 공식 성명서를 내고 “애플이 자체 문제에 대해 림을 직접 언급하며 해당 이슈에 끌어들인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림은 “림 제품에 대한 애플의 언급은 안테나 디자인 이슈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왜곡시키기 위한 의도적 시도”라며 “당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계획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모토로라도 “모든 스마트폰이 안테나 이슈를 가지고 있다는 잡스의 발언은 솔직하지 못하다”면서 “테스트에 따르면 소비자가 기기를 쥐었을 때 우리의 드로이드X 스마트폰이 아이폰4보다 더 나은 수신감도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노키아는 “안테나 작동은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단말기를 세게 꽉 쥐었을 때 영향을 받는다”면서 “이 때문에 노키아 제품은 실제 생활 속에서 만족스러운 안테나 성능을 보장하도록 디자인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인보다는 안테나 성능을 중시한다는 얘기로 아이폰4가 지나치게 디자인만을 고려했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한편 안테나 이슈를 이유로 아이폰4를 구매 추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던 ‘컨슈머리포트’는 “고객들에게 무상 케이스를 지급하기로 한 애플의 결정은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케이스를 9월 30일까지 한정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을 봤을 때 이것은 장기적인 문제 해결 방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컨슈머리포트는 이어 “아이폰4는 여전히 우리의 구매 추천 대상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