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위에서만 보면 얼마든지 세상은 평평해 보인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5. 02:59

위에서만 보면 얼마든지 세상은 평평해 보인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를 읽고

06.03.21 19:38 김헌식 (codess)


책의 제목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는 프리드먼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지구는 둥글다고 외쳤다면 토머스 프리드먼은 콜럼버스가 찾아 헤매던 인도 방갈로에서 골프를 치다가 순간 외쳤다.

"지구는 평평하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골프장 건너편에는 골드먼 삭스와 휴렛패커드 건물이 보인다. 공의 위치를 표시하는 마커는 엡손의 제품이다. 캐디는 3M 로고가 달린 모자를 쓰고다닌다. 골프장 밖 신호등에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광고가 나붙어 있고 피자헛 광고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더구나 인도인들은 인도에 미국이 너무나 익숙하고 일상화되어 있듯이 미국식 영어를 잘 구사한다. 이러한 풍경에서 보자면 마치 인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더구나 업무상에서도 미국에 인도는 너무나 친숙해졌다. 미국인의 소득세 신고업무도 인도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회계법인이 미국 회계 법인의 하도급을 받아 미국 신고 양식대로 작성해 넘겨준다. 인도에는 미국식 이름이 유행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인도에서 미국으로 날아간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다만, 인도는 미국과 대등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기업의 일이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해야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인도에만 그런 것일까. 이제 미국 기업의 고객 불만 사항은 미국 내에서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콜센터에서 미국 IBM 고객들의 전화를 받는다. 인도 공과대학 학생들은 싱가포르 학생들에게 온라인 과외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자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벽도 산도 없어 보이니 세계는 평평하다.

어디 단순히 상호소통성의 네트워크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프리드먼이 강조하듯이 세계가 평평하다는 의미는 경제적 영역, 생산적인 영역에서 경제 가치 생산 차원에서도 이른다.

요컨대, 이제 지리적 환경이나 거리에 관계없이, 언어와 국가의 장벽을 넘어, 실시간으로 지식과 작업의 공유가 가능해졌다. 무엇을 통해서? 웹이다. 인터넷을 통해 지구적 규모의 활동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배제와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가 평평하다는 이런 의미에서 비롯했다. 여기에서 평평하다는 말은 높낮이가 없다는 말일 테다. 골프를 치다가 발견해낸 사실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게임 측면에서 공정하게 벌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에 있든 인도에 있든 모든 게임은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본다.

요컨대, 컴퓨터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개인 네트워크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지리적인 거리, 언어적 장벽이 사라지고 지구 전체가 실시간으로 지식과 작업을 공유할 수 있는 활동 공간이 창출된다. 이것이 토머스 프리드먼이 말하는 세계가 평평해졌다는 의미이다. 오로지 창조적인 상상력만이 이 평평한 네트워크시대에 중요할 뿐이라고 프리드먼은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프리드먼의 논지는 그 시선을 어디에 맞추는가에 따라 대단히 유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업가나 자본가의 처지에서 보자면 프리드먼의 논지는 열광할만하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열 가지 동력과 삼중융합은 세계가 평등하고 공평한 규칙에 따라 누구나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그가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실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었다는 이야기들을 자신의 주장에 논거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소외의 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은 반드시 던질 수밖에 없다. 과연 프리드먼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니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결국 세계화를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를 통해 많은 것을 차지해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사람들이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열망한다고 프리드먼은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 열망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모호하게 넘기고 있다.

더구나 평평한 것은 인터넷 네트워크뿐이다. 인터넷 자체는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인터넷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려면 오프라인에서 일정한 물질적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적어도 프리드먼이 강조하는 전자투자가, 혹은 경제력 금융은 여전히 많은 곳은 많고 적은 곳은 엄청나게 적다. 편중은 불균형은 여전하다. 굴곡과 계곡이 너무나 많아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더구나 농촌 국가가 바로 인터넷-디지털 국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평평할지 모르지만 인터넷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데는 많은 계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교육 자체가 이미 굴곡상태에 있지는 않은가. 처음부터 한국과 미국의 아이들은 동일선상에서 출발하고 있을까? 단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고 수험료가 나오는 것이며 자유롭게 학습을 할 수 있을까? 당장에 끼니를 잇기 위해 거리에 나서는 아이들과 미국의 토마스 프리드먼 아이는 같은 것일까? 미국의 자녀와 인도의 불가촉천민의 자녀는 과연 동등하고 평평한 기반 위에 있을까?

한 사회에는 계층, 내지 계급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상위층과 하위층이 있다. 예를 들어 공산국가인 중국에도 상위층은 있다. 이들은 미국의 어느 자본가나 부유층보다 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미국이 차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일부 계층의 문제를 가지고 미국과 인도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프리드먼의 많은 인용은 그 나라의 전체 의견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의견이 강한데 이를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인도의 모든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중국인의 모든 일상과 사고 생활이 그런 것처럼. 방갈로르와 중국 다롄에서 만난 쾌활한 CEO들과 IT 종사자들의 이야기가 일반적인 견해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인도인과 중국인들의 대부분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고 그것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은 드러내지 않는다. 장밋빛 상상력이 중요하니 말이다.

아니, 빈부격차가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면서 창조적 상상력만 풍부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전적으로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은 결국 경제적인 이익을 만들어내는 것일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가. 요컨대 돈이 되지 않는 상상력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 인도인과 중국인들이 가난하게 산다는 것,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가 밝힌 노동시장 주요지표에서 보면 전 세계 노동자의 50%인 13억 8천만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이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왜 아랍 무슬림의 원성을 사고 있는지 묵묵 무답이다. 복잡한 중동의 문제에 대고 세계는 평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이전에 미국이 잘못한 것은 거의 언급할 필요가 없는 모양이었다. 미국은 잘못한 것이 없고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가 문제다. 여전히 부시를 비판해도 그 정신을 알 수 있는 미국 중심주의. 그것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에 공통으로 작용하는 정신이다.

프리드먼이 만난 군 장성, 기업 간부, 학자, 전직 대통령과 관리, 대기업의 CEO에게 세계는 평평하게 보일지 모른다. 위에서 보니 그렇다. 골프장도 평평하지 않을진대 한가로운 골프장에서 한가하게 골프를 치는 사람에게 세계는 평평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골프장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계는 굴곡이 너무나도 심하다. 당장에 프리드먼 옆에 서 있는 골프장 캐디에게는 그 하루의 노동이 길고 임금은 짜기만 하다. 캐디와 골프 치는 금융 자본가 사이는 평평한가. 초콜릿과 커피를 만드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아이들과 미국의 아이들은 네트워크만 깔아주면 평평한 토대 위에 있게 될까. 그들의 작업 공간은 정말 네트워크로 평평한지 의문이다. 공급가치 사슬은 모두 미국을 중심으로 장악되어 있지 않은가. 평평하다는 네트워크는 결국 미국의 브라더가 아닌가.

상상력은 풍부하지만 현실적인 상상력이 아닐 경우에는 창조적 상상력이 아니다. 그것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봄직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