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왜 우리는 ´명품녀´에 휘둘려야 하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02

<김헌식 칼럼>왜 우리는 ´명품녀´에 휘둘려야 하나

입력 2010.09.17 14:38




[김헌식 문화평론가]국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세청장은 이른바 명품녀에 대한 조사 여부를 밝혀야 했다. 케이블 TV 출연자에 대한 조사가 매우 중대한 기획재정위 아젠다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안이 이 정도 되면 케이블 TV 프로그램의 기획, 제작진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셈이 된다. 국회기획재정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될 정도라면 그 이전에 인터넷 상에서 무수한 논란이 있을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논란은 곧 시청률과 인지도와 비례한다. 그 비례는 수익과 맞물리는 문제가 될 것이다. 

명품녀라는 단어 자체가 여성에 대한 비하의 뉘앙스가 강하게 담겨 있기는 하다. 적어도 명품남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녀라는 키워드와 비난의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세력은 남성이라는 지적이 맞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명품녀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심리는 간단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명품녀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매우 복잡하다.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인지 구분할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논란을 움직이는 심리는 간단할 수 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부모의 재산으로 흥청망청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양극화와 사회계층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증상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년 고용과 실업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 수억원의 액세서리를 걸치고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기름에 불을 지른 격이 되었다. 

당사자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전가를 하지만 실제 자신의 생활상이 방송을 통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지 않고 발언을 하지 않은 당사자나 그것을 방조한 방송 제작진의 책임은 면피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방송제작진은 출연자 김씨 본인의 말에 전적으로 토대를 두었다고 하면서 출연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위화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은 방송에서 다룰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른바 명품녀 발언에 대해서 이미 예측한 상태에서 방송을 제작하고 노출시켰기 때문에 더욱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처음부터 명품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은 논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정말 자신의 고급자동차에 명품이 그득하고, 부모와 전 남편의 재산이 많았는지 여부는 맥락에 맞지 않다. 비록 그것이 거짓이라고 해도 부모님 때문에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십수억원어치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말을 방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결국 눈길을 끌기위한 과도한 컨셉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기획과 제작을 감행한 것이다. 그것을 감행한 것은 시청자의 반응 즉 격노와 분노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김씨의 발언이 돌출 발언이 아니라 사회적 위화감, 박탈감,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고, 이를 인지, 확인한 상태라면 그것은 김씨의 발언이 실제와 부합하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방송법에 저촉될 수 있다. 제5조(방송의 공적 책임) 1항은 세대간 성별간 계층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방송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명품녀 발언을 방송에 그대로 포함시킨 것은 젊은 여성에 대한 세대간 성별간 갈등일 불러일으키고, 상하 계층간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거나 그것에 기대어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이 된다. 사실 이러한 점은 방송 시청자보다는 포털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미디어에 크게 논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명품녀라고 칭해지는 김씨의 개인적 인격과 사생활을 파탄시키는 형태의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상황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김씨가 잘못한 것은 자신의 발언이 미칠 파장에 대해서 간과하고 미디어에 영합하려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방송이나 출연자나 철이 없는 셈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양극화와 계층간의 불신이 팽배하게 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돌아보아야 한다. 부의 형평성과 분배의 재순환이 맑고 투명한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점이 국가적인 문화로 시스템화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유층이나 지도층조차 무각해진다. 승자독식과 결과주의만을 옳게 여기는 풍토에서는 명품과 부유함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은 무시한다. 

자신의 노동과 노력으로 얻은 결과물이 아니어도 쉽게 편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라는 가치전도의 사회가 되어 버린 한국사회의 심각한 모순의 징후가 명품녀 논란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와 아픔을 건드려 일정한 수익을 올리려는 행태도 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인터넷을 꽉 채운 분노와 갈등의 심리를 상품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