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왜 ´악녀´ 미실에게 열광하는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1. 16. 00:20

왜 ´악녀´ 미실에게 열광하는가

-덕만보다 미실에게 모아지는 감정이입의 실체

드라마 ‘선덕여왕’ 50회에서 비담은 문서 한 장을 품속에서 꺼내들며 미실(고현정)에게 말한다. 수십 년전에 (어머니는) 죽었어야 할 목숨이라고, 그래서 불쌍하다고. 그 문서는 진흥왕의 칙서다. 미실을 척살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흥왕은 미실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조치를 취한 것이다.

진흥왕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없다면 미실은 신라의 간악한 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실은 그 명령서를 중간에서 가로채고 오히려 미실은 진흥왕을 죽인다. 오랜 시간뒤 소화가 이를 다시 가로채어 덕만에게 주고, 비담이 이를 다시 가로챈다. 이에 미실은 갈 사람에게 드디어 갔다고 말한다. 그 칙서가 신라의 본질이라는 점, 미실은 물론 비담의 운명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사실 미실이 적극적으로 선제 공격하지 않았다면 미실은 죽었을 것이며, 비담도 태어나지 못했다. 비담은 왕위를 꿈꾸지도 못했을 것이고 살아 있을 명분도 없었다. 운명을 거부하려 했던 어머니 미실 덕에 비담은 미실이 떠난 이후에도 꿈을 가질 수 있었다.

비담의 스승 문노도 결국 미실 덕분에 비담을 왕으로 만들 꿈에 부풀었고, 삼한지도를 만드는데 전력투구하면서 대업을 구성할 수 있었다. 덕만이 스스로 밝혔듯이 미실이 없었다면 리더로 성장하는 덕만은 있을 수 없었다. 모두 수십 년 전에 죽었어야 할 미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쓰레기라도 버릴 것이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일까.

역사극에는 반드시 악인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선악구도가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다. 극적 재미를 부가하기 위한 경우가 많은데, 해외에서 비판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극명한 선과 악의 구도, 해피엔딩은 단선적인 밋밋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삶이 내재하고 있는 복합성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적인 극작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켜나려고 제작진은 많은 노력을 기했다. 그런 면에서 현대적인 악녀를 그려냈다. 무엇보다 절대악인이 아니라 과정적 변화를 통한 악인의 탄생과 성장, 쇠퇴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악의 상대성은 인간에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미실의 복잡다단한 심리적 상태에 대한 묘사는 의미가 있었고, 그것이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그렇다면 미실은 과연 정말 악인일까? 우선 미실은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캐릭터는 아니다. 미실이 퇴장하는 가운데에서 이러한 점은 부각되었다. 속함성의 군사가 자신을 지키러 옴에도 불구하고 백제군의 침입을 우려하는 미실은 자신의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기 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후일을 도모하게 한다.

두번째, 아무런 노력 없이 권력을 탐한 존재는 아니다. 미실은 신라의 진흥을 진흥왕과 함께 도모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미실의 피가 신라의 영토에 묻어있다는 말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면에서 덕만은 신라에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단지 미실을 몰아내고 왕권을 되찾겠다는 것뿐이다. 물론 미실의 그같은 자부심은 자만심이 되어 시대적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무너지게 만든다.

세번째, 미실은 개인주의자이다. 개인주의자는 이기주의자와 다르다. 어떻게 보면 미실이 백성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친 것은 거의 없다. 왕권에 대립해 자신의 사람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귀족들을 자신의 편으로 삼다보니 백성들에게 피해를 준 귀족들을 용인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천문지리를 통해 속이고 왕실에게서 많은 것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왕권에 대한 복수였다. 더구나 당시 개념에서 백성과 토지는 왕의 것이었다. 미실은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와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이 왕이 되려한 것은 신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덕만은 그것이 제왕의 풍모였다고 평가했다.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이며 드라마 ‘선덕여왕’은 그것을 통해 현대인의 감정이입과 동일시를 이끌어내려 했다.

네번째, 미실은 좌절된 능력자다. 진흥왕에게 미실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위험했을 것이다. 바로 통치 질서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신분제를 미실이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점에 있다. 즉 신라는 성골을 중심으로 한 왕권세습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골인 미실은 이에 반감을 가졌고, 성골중심의 왕권체제를 흔들려고 했다.

미실은 신라의 간악한 독이라기보다는 성골 왕권에 대한 독이었다. 덕만은 성골 중심의 왕권 계승자였다. 미실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신분적 한계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이상과 능력을 펼칠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더구나 미실은 여성이었다. 여성인 덕만과 진골인 춘추가 제왕을 꿈꾸는데 자극을 받아 무리한 정변을 일으킨 모순적인 존재로 전락하기 전에는 그것은 장점이었다.

다섯번째, 미실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었다. 대개 착한 드라마는 욕망을 지닌 현실적 인간(여성)을 단순히 악당으로만 그릴 뿐이었다. 그것은 현실적 설득력을 잃기 쉽다. 미실은 인의예지와 희노애락애구오욕이라는 사단 칠정의 이와 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러한 것들을 넘어서서 현실적으로 타협하고 굴복하고 때로는 거슬러야 하는 욕망적 존재인 인간의 겪는 갈등과 고통을 드러내주었다. 현실적 상황 속에서 흙을 묻혀야 하는 범인들의 고통과 번민을 잘 담어내었기에 현대인들의 감정이입이 덕만보다는 미실에게 모아졌다.

어쨌든 욕망을 가진 여성은 악녀로 그려지는 한계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사람들은 그녀를 악녀로 기억하지 선한 주인공으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현대인을 투영시킬 미실이 사라지면서 덕만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 선덕여왕이 대중적 몰입도를 어떤 식으로 유지 혹은 증가시킬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