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 미켈라(Lil Miquela)과 새로운 디지털 휴먼 시대
한 해 130억 원을 벌고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300만 명을 훌쩍 넘는 릴 미켈라(Lil Miquela)는 가상 인간이다. 디지털 휴먼이라는 고상한 말도 붙는다, 현실에 없는 가짜 인간인데도 웬만한 연예인보다도 더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릴 미켈라는 보통의 모델과 다르다. 미국에는 살지만, 브라질 태생이면서 외모가 일단 기존 모델과는 거리가 있다. 주근깨에 코가 지나치게 크고 치아도 가지런하지도 않다.
한국에도 가상 인간 열풍인데. 로지, 김래아, 루이, 네온 등의 가상 인간은 릴 미켈라와 다르다. 20대 여성이라는 점은 같지만 모두 빼어난 몸매에 출중한 미모를 갖고 있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성형외과의가 만든 듯싶다. 그런데 생각해야 할 점은 이런 가상 인간 캐릭터를 누가 소비하는가이다.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 소비의 주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에 한국의 가상 인간은 너무 예쁘기에 동일시와 감정이입에 한계가 있다. 다만, 그래픽 수준에 약간 놀랄 뿐이다. 너무 예쁜 여성들은 오히려 고객들의 반감을 산다는 심리실험 연구결과도 있다. 영화 ‘말레나’에서 너무 예쁜 여성의 운명은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불행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흔히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골때리는 그녀들’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블랙핑크’의 전세계적인 인기 현상의 중심에는 여성 중심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 내재하고 있다. 이제 더는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도 우월한 미인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외모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명품을 소비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 젊은 세대들은 비정규직 알바생이어도 명품에 지른다. 릴 미켈라는 보통 여성들의 대리 실현자다. 릴 미켈라는 구찌, 샤넬, 프라다와 같은 명품 업체들의 패션모델이 된 이유다. 유명 브랜드의 패션을 미모의 가상 인간만이 입는다면 이는 현실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제 가상 인간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동일시와 감정이입의 대상이다. 가상 인간들이 별나라 환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평범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이유다. 가상 인간의 얼굴과 몸매 등은 현실에 있을까 말까인데, 일상생활만 보통 사람들과 같다면 이는 불균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상 인간의 도래는 캐릭터의 시대에 자아실현에 더 열망하는 세대 감수성이 충만한 현상이다. 스토리가 먼저가 아니라 캐릭터가 먼저인 시대가 된 배경이다.
1990년대 후반 가상 인간이 나온 이래 다시금 이런 가상 인간이 재부각의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인공지능에 컴퓨터 그래픽 테크닉이 진일보했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을 사전에 촬영하여 그 표면에 컴퓨터 그래픽과 딥러닝으로 학습한 표정과 행동 패턴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가상 인간을 구동한다. 자연스러운 표정만이 아니라 대화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전체 몸을 다 구동시키기에는 막대한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아직 원활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서 21세기 가상 인간의 성공요건이 있다. 이미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이 그렇지만 상호작용이야말로 모바일 문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표정을 짓는 가운데 언캐니(Uncanny) 현상만 없다고 사람들이 추종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제 메타버스 안에서 자신이 그러한 가상 인간으로 마음껏 활동하기를 원한다. 곧 한류스타 김수현의 가상인간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런 셀럽 가상 인간과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유롭게 어울리는 일반 이용자들의 가상인간 캐릭터가 구동될 때, 메타버스의 진가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단계가 아니라면 또 하나의 버블에 불과할 뿐이다.
/김헌식(박사, 시사문화평론가)
*<머니 투데이>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