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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랜스포머>에 숨겨진 유전자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4. 16:32



더 이상 로봇 애니메이션은 없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결론 아닌 결론이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디셉티콘의 대결은 큐브(흥행)를 두고 벌이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싸움인지 모른다.

디지털 시각 효과는 이제 애니메이션 효과를 정복했다. 그것이 선한 세력이 악의 세력을 이긴 것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는 옵티머스 프라임의 선의와 진정성을 갈파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영화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영화 <트랜스포머>는 더 이상 인간과 기계간의 디스토피아는 없다고 말한다. 큐브를 찾아 우주를 지배하려는 디셉티콘을 막으려는 선의 세력의 리더인 옵티머스가 보이는 가치관은, 영화의 중심 코드일 뿐만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완결된 깔끔한 정리다.

그는 너무 진보된 이성을 가진 존재로 보여 계몽 군주로 보이기도 한다. 기계와 인간간의 디스토피아가 없는 이유의 출발은 기계 로봇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외계의 문명에서 오히려 인간이 힌트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화 <트랜스포머>의 가정은 그렇다. 더 이상 로봇은 자신의 주인인 인간과 적대적 관계에 빠질 일이 없어진다. 또한 인간에게 로봇은 더 이상 인간 소외의 증상도 아니고 언제인가 주인인 자신들을 파괴할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영화 <트랜스포머>는 인간과 기계에 대한 논쟁 하나를 꺼내든다. 기계와는 다른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는 인간이 육체와 구별되는 신성하며 비물리적이고, 불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존재들과 구별된다고 했다.

그러나 과학은 이러한 믿음을 깨트렸다. 김경욱의 신작 소설 <천년의 왕국>에 이러한 대목이 있다. “해부학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종교적 해명을 뿌리 채 흔들었다. 머리는 영혼의 집이 아니라 쭈글쭈글한 덩어리를 담은 그릇이었고 심장은 마음의 온상이 아니라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펌프에 불과했다.” 인간의 기계적 속성을 드러내주는 말이다.

크릭(Crick)은 “우리의 즐거움, 슬픔, 소중한 기억, 포부, 자신의 개성에 대한 인식 자유의지 등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신경세포의 거대한 집합 또는 그 신경세포의 연관 분자들의 작용에 불과하다. 즉 우리들은 뉴런 덩어리들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기도도 <레이첼의 눈물>에서 “인간은 뉴런 덩어리이고, 인간도 일종의 기계”라고 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기계, 즉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 분자를 외부세계로부터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로보트”라고 했다. 인간은 하나의 물리적 기계, 로보트에 불과하므로 인간의 이성과 마음조차 그 불멸성을 의심받기에 이른다. 이는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의심이다.

하지만 인간은 무기물을 통해 유기체를 구성하고, 분명 물질에서 이성, 정신 현상을 만들어낸다. 육체와 이성, 마음은 둘일 수 없다. 인간의 몸이나 로봇의 몸이나 다를 바 없다. 로봇의 몸에서 이성이나 마음 현상이 나오지 말라는 절대적 진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로봇이 이성을 지닌 고도의 생명체로서 움직이는 것이 전혀 얼토당토하지 않은 일인지 모른다.

<트랜스포머>는 금속성 체험을 제공한다.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관절의 움직임과 닮았다. 오히려 인간의 몸은 약하기만 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외부 수단을 통해 자신을 보호한다, 그것 중에 하나가 기계, 로봇이다. 로봇이 인간에 합치한 것이 ‘사이보그’라면 트랜스포머는 로봇 자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서 인간을 능가하고 있다.

사이보그들은 인간이 되지 못하는 한(限)을 달래지만, 트랜스포머들은 우월한 위치에서 인간을 보듬고 아우르려 한다. 인간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블레이드 러너>의 기계-사이보그보다 트랜스포머들은 더 인간적이다. 물론 선한 트랜스포머들이다. 인간이 학습시키지 않아도 생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선험적인 그들은 이점에서 인간에서 비롯한 터미네이터보다 낫다. 터미네이터는 인간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인간 같지 않다. 트랜스포머들은 기계의 몸을 하고 있지만, 기계 같지 않다.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철처럼 인간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비밀프로젝트팀 요원-인간들은 비인간적이다. 로봇이 잡혀가는 장면에서 인간은 잔혹하고, 로봇은 애처로운 연민의 생명체가 된다. 로봇은 인간의 친구 이상으로 인간 보다 진화된 존재다. 진화된 존재가 진화되지 않은 존재를 보호한다.

인간 진화의 종착역은 이 트랜스포머인지 모른다. 이성과 마음은 현재의 인간보다 더 뛰어나고, 인간적이며 사물에 대한 자유자재의 스캐닝을 통해 변신하면서 물리적인 강고함도 막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 한계의 극복이자 진화의 목표인지 모른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 영화에는 교묘한 유전자가 숨겨져 있다. 아날로그적 향수는 디지털 기법을 통해 탄생한 이 영화의 골간인데, 전투 로봇을 친구 삼는 것은 외계인을 친구 삼는 것과는 다른 열광적 정서를 내포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소년 소녀들의 꿈의 실현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자동차 로봇 범블비(Bumblebee)가 소년 윗위키(샤이어 라버프 분) 곁에 남겠다고 한 이유가 된다.

그 꿈 자체는 선과 악의 이분법에 근거한다. 악의 세력을 막는 선한 막강한 로봇이 나의 친구라니 신나는 일이 아닌가. 영화는 줄거리도 단순 명확하고 볼거리는 충만한 가운데, 로봇 만화의 핵심인 명확한 선악 구도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선한 세력은 각종 막강한 첨단무기로 무장한 국가-미국의 군대와 동일시된다.

무기들은 자국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선한 세력의 수호 군대다. 아랍에 주둔한 군대는 석유전쟁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어느새 외계의 침략자를 막는 군대로 트랜스된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개봉할 만큼 영화에서 모든 세상의 중심은 미국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트랜스포머는 어느새 미국인들을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스캐닝을 하고 있다. 지구를 지키는 것은 미국이기에 영화는 미국식 이기적 유전자를 옮기기 위한 하나의 기계적 육체인지 모른다.

07.06.29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