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 수면부족과 이상행동
글/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 교수, 정보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2023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는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영화 ‘잠’은 사건수면(Parasomnias)을 소재로 다룬 작품인데, 이를 흔히 몽유병이라고 한다. 영화 ‘잠’에서는 애초에 남편 현수(이선균)가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 장애를 겪는다. 점점 그 증세가 심해져서 자신의 볼을 심하게 긁어 피가 철철 넘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혼자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갈수록 이상 행동은 더욱 심해져서 반려견을 해치거나 나아가 아이까지 해할 정도까지 심각해진다. 이에 배우자 수진(정유미)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현수는 그런 행위를 한 기억이 없다. 영화의 중반 이후에는 생각하지 못할 상황의 반전이 있게 된다. 그런데 결말은 문제가 해결되는 긍정의 상황이 된다. 과연 영화처럼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전반적인 현실적 상황을 보면 미래에는 상당히 일반화될 수 있기에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우선 ‘사건수면(Parasomnias)'을 하는 사람들은 잠을 자면서 걸어 다니거나, 잠을 자면서 음식을 먹기도 한다. 심지어 운전하기도 한다. 또한, 옆에 있는 사람과 성관계를 시도하기도 한다. 배우자이면 그래도 낫지만, 모르는 이들에 대해서 강간을 하기도 한다. 1909~2023년 발표된 '사건 수면' 관련 논문 72편을 분석한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사건 수면'의 평생 유병률은 수면성행위(sexsomnia) 7.1%, 몽유병(수면보행증) 6.9%, 수면폭식증 4.5% 등이었다. 수면 성행위가 몽유병보다 더 높은 유병율을 보이고 있다. 범죄 행위를 하고도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그 같은 행위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다.
렘수면행동장애(Rapid Eye Movement Sleep Behavior Disorder)'라는 개념도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건수면(Parasomnias)'의 경증으로 분류되는데, 수면 중 혼잣말, 고함, 노래, 욕설 등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심지어 발로 차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목을 조르기도 하기에 매우 위험하다.
201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조셉 미첼은 자식 살해죄로 기소가 되었다. 재판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배심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수면 부족으로 몽유병이 발생, 자식을 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모두 꿈의 내용을 그대로 행위로 옮기는 가운데 발생한다. 성인의 최대 4% 정도가 몽유병 증세를 보인다는 통계도 있다. 본인 자신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프랑스 연구팀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한 번 이상은 사건 수면 증상으로 다쳤다고 한다. 2013년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에서는 한 남성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다리에 총을 쐈다.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편하게 잠을 숙면할 수 없다는 것도 의학계의 결론이다. 영화 ‘잠’에서는 본인이 나중에는 숙면하고, 배우자는 잠을 설치는 일상이 펼쳐지는데 몽유병이 심화하면 기억도 못 하는 것은 푹 자는 증거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미 렘수면이 푹 자는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는 당사자도 역시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 프랑스 연구팀에 따르면 몽유병 환자는 불면증과 우울증은 물론이고 깨어있는 상태일 때 두통을 겪는 비율이 4배, 편두통은 무려 10배 높았다. 결국, 자신의 일상생활도 영위할 수 없으므로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렘수면행동장애가 발생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수면 부족, 편두통, 수면 호흡 장애, 갑상샘항진증 등에 따라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몬트리올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수면 부족일 때 몽유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했고, 최근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안토니오 자드라(Antonio Zadra) 교수 연구팀은 부교감 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의 결함과 오작동 때문에 일어날 때 사실상 자신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설명이다.
더구나 중년 이후에 퇴행성 뇌 질환의 초기 증상이라고 한다. 영국 브리스톨대학교 약리학 및 신경과학부 연구팀에 따르면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로 진전될 수 있다고 한다. 즉, 단순히 잠꼬대가 아니라 치매 증상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심한 잠꼬대일수록 가능성이 더 커진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가오샹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렘수면행동장애는 파킨슨병 위험이 6배이었다. 서울수면센터 연구팀이 노인성 잠꼬대로 내원한 환자를 추적 관찰한 결과, 65%가 치료를 안 하면 파킨슨병, 치매로 갈 수 있는 꿈 행동 장애로 밝혀졌다.
근무 환경도 중요했다. 미국 오클랜드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 직장 상사나 동료의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불면증은 물론 몽유병 등의 수면 장애 증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잠’에서 연기에 대한 압박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이 몽유병 증상을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직장인 아내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더구나 워킹맘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었다. 업무적으로 오랫동안 참을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에게도 충분히 사건 수면으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일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도 중요 요소인 것이다.
요컨대, 수면부족과 이상행동은 영화속 소재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영화 ‘잠’에 등장하는 사건 수면-몽유병은 매우 희소한 일은 아닐 것이 분명한 미래이다. 미래에는 영화의 소재로 특이하지도 않을 것 같다. 갈수록 실적과 성과에 대한 압박감 강하고 해야 할 될 일은 개인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더구나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에 몽유병 등의 증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피해가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다. 개인이나 가족 나아가 기업,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미리 예방해야 한다. 그에 따른 치료법도 마련할 수밖에 없는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