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대중문화 지형도. 팬덤을 위한 서비스가 우선
영화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이 개봉과 함께 흥행 몰이를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첫개봉 효과는 짧은 순간이다. 놀랍게도 역대 빌런들이 등장하고 이에 맞춰서 빌런에 대응하는 스파이더맨들도 나선다. 캐스팅만으로도 전편들을 한 곳에 모두 모은 효과다. 팬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같다. 단지 옛캐릭터들을 모아 놓은 추억세트가 아니므로 더욱 의미가 있다. 다차원, 멀티버스 설정은 흥미롭고 이에 부합하는 시각적인 효과도 남다르다. 그 가운데 단연 눈길을 잡은 것은 악당을 대하는 태도였다. 어벤져스에서 영웅들이 집단적으로 뭉쳐서 악을 향해 대항했고 이제 스파이더맨들이 뭉쳐싸운다.
악당들은 대개 두가지 특징이 있다. 매우 강하고 악독하다. 그럴수록 더욱 흥미진진하다. 관객은 얼마나 악당이 초능력이나 파괴력이 강한지 궁금해 한다. 제작진도 이에 부합하고자 고민과 모색을 줄기차게 한다. 오히려 약한 악당은 흥미도 감동도 주지 못한다. 강한 악당이라고 강조했는데 관객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니 실망을 준다. 반면에 영웅은 그 악당을 어떻게 제거하거나 파괴할지 보여주어야 한다. 어중간하거나 미지근하게 무너뜨리면 안된다. 철저히 파괴하고 고통을 주어야 한다. 그럴수록 관객들이 더욱 통쾌하게 생각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고 규정하기에는 악당들은 이제 팬들이 많다. 악당은 그냥 악인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내재 되어 있다.
악당은 그렇게 말한다. “왜 흑인 스파이더맨은 없는 거지?” 이 말은 틀린 지적이 아니다. 악당들은 나름 현실에 대한 뼈아픈 말을 남긴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이들을 다른 관점으로 대하여 신선하다. 관점의 전환은 신선할 수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시도에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 영화는 그에 관한 서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은 악당들을 치료 대상으로 여긴다. 무조건 파괴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의 질병이나 장애, 고통으로 오작동을 일으킨다고 본다. 물론 피터 파커의 의도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도 된다. 하지만 끝내 그는 자신이 품고 있던 신념에 따라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의 공간으로 되돌려 보낸다. 오히려 그는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뭔가 큰 희생을 해야 한다. 아무도 죽는 사람이 없는 액션 오락 영화 그것도 악당과 영웅의 대결에서 그런 사례는 없었다. 물론 자칫 악한 범죄에 면죄부를 줘서는 곤란할 것이다. 치료에 관계없이 그냥 나쁜 짓을 하는 행위자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혼동되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악당들이 정말 그렇게 순순히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영웅에게 집단적 대결을 요청하는 날이 않기를 바란다.
글/김헌식(평론가, 박사, 대구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