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2일, KBS 드라마 <각시탈>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씨에 대해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 판정을 내렸다. 60년 역사 이래 고용노동부가 처음으로 소송 없이 산업재해를 인정한 사례였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7년)은 보조출연자나 MBC 드라마 <선덕여왕>(2009년) 보조출연자의 사례는 모두 행정소송을 통한 법원의 산재인정이었다. 또한 현장 산재가 아니라 현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산재인정을 한 사례였다. 지난 5월, 엄용수 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극단적으로) 저희는 녹화하러 가다가 죽어도 산재 인정이 안돼요. 방송사가 몇 푼 주면 감사하다고 해야 하죠”라고 말한 맥락은 이 때문이었다. 2012년 7월 17일, 손바닥tv <박명수의 움직이는tv>에서 박명수는 “2kg 더 빼고 방송 중에 쓰러지겠다. 방송 중에 쓰러져야 산재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 박희석씨는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보조출연자가 노동자임을 스스로 인정한 사례이지만, 이는 보조출연자 전체를 노동자로 규정한 것은 아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개별판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쨌든 상황은 고무적이었다. 언론들은 이제 보조출연자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게 되었다면서 고무적으로 보도를 하고는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보조출연자들은 산재 보상 혜택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난 4월 18일 경남 합천의 <각시탈> 촬영현장으로 가던 버스의 전복사고에서 다친 다른 보조출연자들은 산재 신청을 했을까. 고 박희석씨 외에 그 전복버스에 탔던 보조출연자는 30여명이지만, 한명도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심한 부상을 당했어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 | | 지난 2012년 8월 KBS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 박희석씨 부인 윤아무개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 |
이렇게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소위 산재신청이 일거리를 떨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조출연자 일로 생업을 삼지 않거나 더 이상 미련이 없을 경우에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 나아가 고 박희석씨처럼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경우도 산재신청을 한다. 아예 보조예술인의 활동을 접거나 죽음에 이르면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제도적으로 산재적용을 보장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는 그 혜택이 예술노동자들에게 잘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음을 함의한다. 예술인 모두 산재 보험 들면 해결되나 예술인복지법에서 규정한 산업재해 보험에는 가입자가 임의 가입 방식으로 본인이 월 1만 1660원~5만 1930원의 보험료를 전액 납부해야 한다. 물론 예술인 활동이 증명이 되지 않으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2012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27.9%였다. 지난 4~6월 영화진흥위원회가 조사한 보조출연자 400명 중 산재보험 가입률은 33.71%였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의식해서서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는 2017년까지 3만 명의 산재보험 가입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예산이 항상 기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이나 정기저축을 들기 꺼려한다. 예컨대, 항상소득가설(permanent income hypothesis)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정하게 수입이 예상되어야 지출계획을 세운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면, 보험료납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보험료를 대신 국가예산이나 기금에서 부담을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부의 계획대로 되거나 이상의 결과가 나와 모든 예술인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한다면 문제는 해결될까? 적어도 영화계나 방송가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산재 요양 신청을 하는 경우, 바로 일거리를 잃을 수 있다는 심리적 두려움과 공포감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산재를 당한 피해 예술인이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주의 자발적인 행동을 규정해야 한다. 산재를 당한 사람이 그 산재 여부를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도 같이 신청을 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촬영장이나 공연장에서 물리적 사고가 일어날 경우 관련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먼저 신고를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신청 사안에 대해서 해당 피해자가 인정하는 형태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제도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심리 차원에서 우리가 미디어를 성찰할 필요성도 있다. 몸의 파괴를 찬양하는 미디어 지난 9월 18일 문근영은 드라마 촬영 도중 장비가 얼굴을 때려 눈에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응급실에서 상처부위를 봉합했지만 눈 부위의 멍 자국과 붓기가 생겨 촬영 일정을 취소했다. 따라서 한동안 MBC <불의 여신 정이>에 출연하지 못했다. 문근영은 완치 되지 않은 몸으로 촬영에 다시 임했다. 만약 뮤지컬이었다면, 커버 배우가 등장해서 작품진행에 무리가 없었을지 모른다. | | | MBC <불의 여신 정이> ⓒMBC | |
하지만 드라마 출연 배우는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 한 언론은 “배우 문근영이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묵묵히 드라마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바로 부상 투혼이라는 말이다. 지난 5월 <진짜 사나이>에 출연했던 김수로는 유격 훈련 중에 어깨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촬영 복귀 투혼’ 발휘라는 말이 쏟아졌다. 그러나 8월 끝내 이기자 부대 수색대대에서 어깨부상으로 강제 퇴소 조치되었고, 9월에 복귀했다. 하지만 겨울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2월 조인성은 드라마 촬영 도중 13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지만 당일 촬영을 강행했다. 역시 매체에는 투혼이라는 단어가 쏟아졌다. 이런 부상 투혼이라는 말과 함께 자주 쓰이는 말이 ‘링거투혼’이다. 지난 6월 20일경 이수근은 과로로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곧 <1박 2일> 촬영장에 나왔다. 그러자 언론들은 링거투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이수근이 남다른 책임감을 발휘해 링거투혼까지 불사르며 촬영에 임하고 있다.”라는 관계자의 발언이 실리기도 했다. 비슷한 즈음 MBC <무한도전>의 정형돈은 탈장 증세가 재발해서 녹화 중간에 합류했다. 이때 ‘링거투혼’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한 언론매체는 “촬영 중간 합류한 정형돈은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아픈 내색 없이 촬영에 임해 눈길을 끌었다”라고 보도했다. 부상을 당하거나 아파도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말이다. 이훈, 샘 해밍턴, 클라라는 물론이고 개그맨 이봉원이 다이빙 연습 도중 눈밑 뼈 골절 즉 '안와골절'을 당했던 MBC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는 처음부터 출연자들의 분투나 투혼을 극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스플래시>와 함께 출연자들의 부상이 많은 프로그램으로 MBC <아이돌 육상선수권대회>가 지목되어 왔다. 많은 아이돌들이 경기를 하다가 찰과상은 물론 허리나 다리 근육 뼈 등을 다쳐 녹화장 마저 떠나야 하는 일이 자주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었다. | | | MBC <추석특집 아이돌 육상풋살양궁 선수권 대회> ⓒMBC | |
지난 9월 27일,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은 MBC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 대해 논하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이 '아육대' 섭외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김희철은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아육대' 출연을 거절했을 때, 향후 음악방송 출연 등에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거절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그러니 대다수의 출연자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주․조연들이 몸을 부숴가며 참여하고 있다면 다른 참여자들은 더욱 더 몸을 부숴야 한다는 암묵적인 심리가 생긴다. 이런 현실에서는 보조연기자들의 몸이 어떻게 되어도 부차적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톱스타부터 그런 투혼 메커니즘을 끊어야 한다. 육체적 고통을 찬양하는 SM(가학성)의 대한민국? 스타이거나 스타가 아닌 무명 혹은 보조 출연자라고 해도 항상 두려운 것은 자신의 미래에 닥칠 위해요인이다. 즉 방송 권력 앞에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망가져도 촬영에 임해야 한다. 뜻하지 않게 위해를 당해도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권리 주장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점은 문화계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술가의 허울아래 일반고용 노동자보다 못한 고용노동자의 모순적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들은 투혼이라고 칭송한다. 홍보자료를 통해 연예인 소속사들은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구라도 목숨을 잃으면 제도적 미비점을 언급한다. 강자에게 더 많은 의무와 적극적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산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작 우리사회는 누군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현장에 임하거나 작품 활동하는 것을 찬양한다. 사도마조히즘(SM) 즉 가학성을 즐기는 대한민국일까. 잘못된 예술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예술가들이 장애와 고통을 겪어야 예술혼이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 진정한 작품인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이다. 고흐는 귀를 잘라야 하고 베토벤은 눈이 안보여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예술혼은 덜한 것이다. 그것을 미디어는 너무나도 당연히 재생산 내지 확대하고 있다. 그런 예술문화심리와 미디어의 증폭 기제가 있는 한 자기의 몸과 생명을 부숴야하는 암묵적인 강박 기제는 제도적 완비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술인들을 괴롭힐 것이다. 오디션 프로와 같은 일반인들의 참여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그것은 비단 예술인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의 생명을 언제든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