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여성기업가들은 왜 악녀로 그려지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12. 17:46

´뉴욕은 언제나 사랑중´,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쇼퍼홀릭´ 등 칙릿소설을 원작으로한 영화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국내 소설인 ´스타일´, ´압구정 다이어리´는 드라마ㆍ영화로 만들어진다. 칙릿 소설은 대개 20-30대 여성의 사랑과 성, 직장 생활을 그린다. 직장생활에서 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직장상사와 벌이는 갈등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직장상사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는 강하고 독하고 모진 여성 캐릭터다. 물론 이러한 소설에서 상사는 악마가 된다. 주인공의 삶을 연민하게 만들지만, 여주인공 자신도 그런 악마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하거나 자신은 영원한 선한 자라는 도식에 갇히기 일쑤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 리더, 경영자들은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인물들로 서슴없이 그려진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과 ‘미워도 다시 한 번’에는 공통으로 여성 CEO가 등장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CEO의 개념에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지만, 여성 경영자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미르백화점 회장인 한명인(최명길)은 얼음 같은 차가운 이미지를 풍긴다. ‘아내의 유혹’에서 신애리(김수형)는 악녀의 전형성을 내보이는데 공교롭게도 여성 기업인이다. 이들은 자기의 사업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듯 보인다. 사업체는 자신의 욕망 그 자체다. 이러한 드라마만이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성 경영자들은 대개 악녀 같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데카르트 마케팅에서 가장 많이 선호되는 작가 쿠스타브 클림트의 ‘유디트Judith1’는 도발적이고 매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팜므파탈(Femme fatale)의 새로운 전형성을 보이면서 많은 인기를 누려왔다. 그런데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성이라기보다는 여성일 수 있다. 팜므파탈의 이면에 숨겨진 칼날에 남성들은 기가 죽는다.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도발적인 매혹에 희생을 당한 것은 남성이었다. 유디트는 자신의 외모로 홀린 후 적장의 머리를 잘라버린 여성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유디트는 강력한 힘을 상징한다. 남성들을 뇌쇄적으로 매혹 시킨 뒤 자신의 통제감을 발휘해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상징기호로 보인다. 하지만, 악녀형 CEO들은 여성 내부를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치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상식적인 관념을 재확인하는 듯싶다. 악녀는 여성의 힘에 대한 선망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특히 통속극에서 여성 기업인은 그것에서 예외인 모양이었다.

왜 여성 리더나 기업인은 악녀로 그려지는 것일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여성은 대개 악녀로 그려져 왔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문화 배경 때문이다.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다른 이들을 우선하는 것이 여성의 미덕인 것처럼 그려져야 한다는 문화적 강박 같은 것이 존재했다. 이러한 문화적 강박의 실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여성이 사업을 하거나 일선에 나서는 것을 부덕의 소치로 여기는 분위기다. 여기에 계층적인 적대감이 작용할 수도 있다. 부유층에 대한 적대감은 대개 부유층 여성들의 심성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그려지게 마련이다. 사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모두 가지고 있다면 한 가지쯤은 결핍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대개 성격적인 결함으로 묘사된다. 즉 지나치게 도도하거나 오만스럽거나 차가운 면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기업인으로 성장하려면 어렵기 때문에 독해져야 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조강지처클럽´, ´두번째 프러포즈´, ´불량주부´에서 처럼 실력을 인정받아 일정한 지위에 오르는 주인공은 선한 캐릭터를 지닌다. 서민출신들은 일정한 성공을 거두어도 선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 빠지고 만다. 지나친 무산자 다수주의와 서민 코드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대중 문화에 팽창할수록 현실을 간과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데, 그것 가운데 하나가 여성 기업혹은 리더에 대한 획일적으로 왜곡된 묘사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악녀에 대한 변화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는 안티히어로 같은 측면을 많이 부각시키는 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싶다. ´내남자의 여자´에서 김희애가 보여준 것도 안티히어로 같은 이미지였다. 자신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행복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대중들은 열광하고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지듯이 베트맨과 죠커의 모습에서 절대적인 영웅이 없듯, 절대적인 악녀도 없는 것이다.

신애리(김수형)는 현실적인 악녀일 수 있다.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드러내면서 인간적인 연민의 정을 느끼게도 한다. 악녀가 정작 인기 끄는 이유는 바로 누구나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인간의 실존적 고민의 부각 때문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한명인의 캐릭터는 이점을 잘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절대적 악인보다는 우리 모두 악당이 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적 조건에 대한 추적과 비판이 오히려 현실적인 설득력과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여성 기업인을 이기적이고,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하는 것에서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악녀의 변화는 클림트의 유디트처럼 화려한 이면의 치명성과 함께 불안과 우울이 존재하는 현실적 인간의 모습이 악녀, 안티히어로로 비쳐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김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