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잡스이즘

애플, 흡혈 오징어인가 원탁의 기사인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2. 2. 3. 18:08

잘나가는 기업을 비판하는 행위는 종종 오해를 산다.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돼기도 하고, '잘나가는 기업'에 갖은 이해관계가 걸린 기득권들은 무책임한 선동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경기 침체를 불러오면서, 과거 비판 대상이었던 대기업들은 이제 어려운 경제를 이끌어나가는 첨병이 됐고, 이들에 대한 분노는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을 드러냈던 금융자본으로 쏠린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에는 삼성이, 미국에는 애플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2일과 26일 두 편의 기사를 통해 IT 
기기의 첨단을 선도하는 아이폰 아이패드에 중국 노동자의 희생이라는 숨겨진 비용이 있음을 폭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애플 제품의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애플의 제품을 위탁 제조하는 대만 기업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 사고가 터진 게 2009년부터니, 새삼스럽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애플이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조사하고 시정을 요구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삼성전자가 공장에서 희귀질병을 얻어 사망한 노동자들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지난해 6월 판결에 대한 항소심을 포기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삼성의 노동 탄압 의혹이 전면 해소되는게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는가에 있다.

저명한 반세계화 운동가인 월든 
벨로 필리핀 교수는 1일(현지시간)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 웹사이트에 올린 칼럼에서 금융위기와 애플, 중국의 노동자는 동떨어진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벨로 교수는 미국의 
제조업이 수십년 전부터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줄어든 이익을 금융자본의 신용 창출로 메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출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 이 시스템은 효과를 발휘했으며, 경기 침체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우려하던 미 정부도 주택대출 요건을 완화하며 신용 창출 대열에 합류했다. 늘어난 신용은 자산 가격의 상승을 부르고, 투기자본은 '저위험 고수익'의 호기를 맞았다.

지난달 29일 영국 <옵서버>가 사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관련 기사) 애플은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을 이용해 가격경쟁력을 낮췄다.(물론 애플이 가진 제품 경쟁력과 혁신 정신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애플의 성공 뒤에는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가진 빈약한 구매력이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애플은 앞으로도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남아있을 수 있겠지만 애플의 시스템이 자본주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 된다면, 경제 위기라는 근본적인 위기의 해법은 난망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표면적인 위상과 업적에 감탄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이유다. 다음은 월든 벨로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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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사망한 애플 창업자 스티븐 잡스가 애플 아이폰을 들고 있는 모습은 혁신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애플의 '혁신'은 제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AP=연합뉴스
"애플이 자본주의의 정점이라면…"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시작된 이후 비판적인 분석과 대중의 증오는 모두 투기 자본에 초점을 맞췄다. 대중의 시각에서 보면 경제 붕괴를 이끈 규제 완화 속에서 은행들이 벌인 행태는 숨이 멎을 만한 속임수였다.

기생적이며 해로운 금융경제는 실제로 상품을 만들고 가치를 창출하는 실물 경제와 대조된다. 금융 분야에서 자원은 투기 활동에 쓰이며 실물 경제의 활력을 저해한다. 결국 위기의 절정에 접어들면 신용이 깎이고, 파산과 대량 해고를 유발한다.

흡혈 오징어와 원탁의 기사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주된 악당 역할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맡는다. 이 월스트리트 생물체의 이미지는 <롤링스톤>의 매트 타이비 수석 정치기자가 말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돈 냄새만 나면 어디든 주둥이를 꽂는 흡혈 오징어"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진보 진영의 오랜 비판 대상이었던 초국적 기업은 이러한 설명에서 조용히 뒤쪽으로 사라진다. 게다가 초국적 기업은 흔히 쓰이는 '비금융 기업'이라는 용어를 통해 실물 경제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파생상품 같은 가상의 제품을 만드는 투자은행과는 반대의 의미에서 초국적 기업은 애플의 아이패드와 아이폰 같은 '진짜 제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불린다. 골드만삭스가 흡혈 오징어로 그려지는데 반해 애플은 소비자들의 광활한 욕망을 채워주는 원탁의 기사 갤러해드의 이미지를 갖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6%가 애플에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뉴욕타임스>가 애플에 대해 쓴 두 편의 기사는 우리에게 초국적 기업과 그들의 외주화 정책이 현재 경제 위기 상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일깨웠다. 외주화 문제가 단지 제너럴모터스(GM)나 보잉같이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전하는 '굴뚝 기업'뿐 아니라 지식산업 분야의 기업들에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해외 위탁 전략(offshoring strategy)을 펴는 기업들의 대부분은 정보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산업 분야에 속한다. 하지만 휴렛패커드(HP)나 델(Dell) 같이 다른 업체들이 외주화라는 말과 곧잘 연계되는데 반해, 애플은 대중의 상상력을 포착해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 때문에 '노동 수출업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애플과 외주화

애플은 지난해 직원 1명당 40만 달러(약 4억4732만 원)의 이익을 올렸다. 골드만삭스나 석유기업 엑손보다 높다. 하지만 지난 수년 간 애플이 본거지이자 주된 시장인 미국 안에서 창출한 일자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가 추산한 수치를 보자. "애플은 미국에서 4만3000명, 해외에서 2만 명을 고용했는데 1950년대 4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던 GM, 1980년대 수십만 명을 고용했던 제너럴일렉트릭(GE)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숫자다. 애플과 계약한 하청업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아이패드와 아이폰 등 애플의 제품을 조립하는 이들과 엔지니어는 7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가 미국 대신에 아시아, 유럽 등지의 다른 외국 기업의 공장에서 일한다. 이들 기업은 거의 모든 전자기기 디자인업체가 제품 생산을 의지하는 곳이다."

사실 금융 위기의 기원은 애플과 같은 실물 경제 행위자들의 전략적 움직임과 따로 떨어질 수 없다. 본거지이자 국내 시장인 미국을 벗어나려는 그들의 행동이 위기의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신용의 창출은 실물 경제에서의 이러한 경향과 금융의 활력 사이의 핵심 연결 고리였다. 그러나 이 고리를 살펴보기 전에 외주화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

1979년 6월부터 2009년 12월 사이에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800만 개가 사라졌다. 한 보고서는 이를 산업공동화(deindustrialization)가 우울하게 진행되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2008년 은행 붕괴가 있기 한참 전에 기계장치, 가전, 자동차 부품, 가구, 통신기기 등 한 때 세계 시장을 평정했던 미국의 중요 산업은 붕괴됐다. 제조업 일자리는 2000년 10월에서 2009년 10월 사이 1170만 개로 550만 개(32%) 감소했다. 그 이전에 제조업 분야 일자리가 1200만 개 밑으로 떨어졌을 때는 1941년이었다. 2009년 10월 기준 제조업 노동자보다 더 많은 인구(1570만 명)가 실업 상태였다."

실물 경제의 외주화와 경기침체

급여 수준이 괜찮았던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제조업 분야에 가해진 '대량 학살'은 미국의 소득과 구매력 정체에 핵심 역할을 했다. 로버트 라이시 미 버클리대 교수는 2008년 경제 위기 이전 30년 동안 일반적인 노동자의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으며, 심지어 2000년대에 들어서는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러한 소득 정체는 기업과 국가 양쪽에 위협을 가했다. 먼저 수요 부문의 낮은 성장률은 과잉생산으로 이어졌고, 기업의 핵심 시장에서 이익을 낮췄다. 국가 입장에서는 사회 갈등과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원인이 됐다.

시장이 정체되면서 민간 부문에 은행의 막대한 신용이 창출됐다. 은행은 낮은 이자율로 수백만 명의 소비자를 낚아채 여러 개의 신용카드를 만들게 했고,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흘러나온 돈으로 자금을 충당했다. 신용 경제는 소비 수준을 유지시켰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경제 붐을 일으켰다.

미국 정부는 이 '대중 신용 확장' 전략을 수용함으로써 경기 침체에 대한 정치적 분노를 피하려 시도했다. 프레디맥(연방주택대출저당공사)과 패니메이(연방저당권협회)가 저소득층의 주택 구입을 위해 대출 여건을 완화한 것이다. 그 결과 정치적 안정이 도래했을 뿐 아니라 투기 자본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로부터 더 많은 돈이 저소득 계층의 주택 공급에 투입되면서 민간 부문도 가세했다. 그들은 주판알을 굴려 정부의 행위 뒤에 숨은 정치적 충동이 곧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정부 기관의 지원 하에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받기는 더 쉬워질 것이고, 집값이 상승할 것이다. '저위험 고수익'처럼 민간 부문이 열망하는 게 있을까?"

애플-중국 커넥션

신용 확장을 통한 대중 끌어들이기 전략은 2008년 금융 위기로 붕괴됐다. 오늘날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일자리가 없고 끔직한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이 보여주듯 '일자리의 수출' 경향은 수그러들지 않고, 중국은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로 남아있다.

중국 남부가 중요한 투자처로 유지되는 이유 중 일부는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이곳에 공장을 밀집시켜 공급 체인을 만들어 운송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추기 때문이다. 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신속한 조립을 가능케 해 기록적인 시간 내에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소비자들을 만족시킨다.

애플의 전설적인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애플 경영진은 잡스가 자신이 사용하던 아이폰의 화면에 긁힌 자국이 났다며 흠집이 나지 않은 유리로 아이폰을 다시 만들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교체 작업을 6주 안에 끝내길 원했다. 애플의 한 전직 임원은 <뉴욕타임스>에 그 회의가 끝난 후 중국으로 가는 비행편을 예약했다며 "잡스가 완벽을 원하면 중국 외엔 달리 갈 곳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공급 부문을 장악했다는 점만이 잡스와 애플이 중국을 선호했던 이유는 아니다. 핵심 이유는 중국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값싼 노동력이다. 애플은 자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고 항변함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하청업자들과 협상을 진행할 때 빡빡하게 굴면서 이윤의 여지를 별로 남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래서 하청업체들은 종종 작업절차를 무시하고, 비싼 화학물질의 대체품을 찾으며 노동자들이 더 빨리, 오래 일하게 했다.

아이패드를 공급하는 한 업체 경영자는 "애플과 일하면서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은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거나 더 싸게 일하는 길을 찾아내는데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고 나면 다음 해 그들(애플)이 돌아와 가격을 10% 더 깎으려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놀랄 것도 없이, 애플의 하청업체들은 안전사고와 폭발 사고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전 애플 임원이 "이익을 쥐어짜내려 한다면 안전을 희생해야 한다"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비용 감축의 결과는 안전사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저항으로도 번졌다. 2009년과 2010년 악명 높은 위탁 제조업체 폭스콘 공장에서처럼 몇몇 노동자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길을 택했고, 다른 이들은 노동 쟁의를 벌였지만 사측과 중국 정부에 강제로 진압됐다.

애플의 제품은 뛰어난 디자인과 공학 기술, 개성과 '혼'이 담겼다는 평을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다. 그러나 시장의 패권을 향한 애플의 행진에는 미국과 중국 노동자의 막대한 희생이 함께하고 있었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은 공학기술이 빚은 걸작이다. 그러나 이 상품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다. 이 상품들은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구현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노동에는 강력한 통제를 가하고 자본에는 자유를 주는 중국과, 우리 시대의 최첨단 기업이 된, 만족할지 모르는 기업 애플의 결합을 상징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의 수석 경제정책보과관을 맡았던 자레드 번스타인은 <뉴욕타임스>에 "만약 애플 시스템이 자본주의의 정점이라면,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봉규 기자(번역)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