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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은 ‘편견’을 입는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0. 2. 12. 18:19

‘알파걸’은 ‘편견’을 입는다

::사회와 매체가 조종하는 알파걸

임현정 기자 / pooh2202@snu.ac.kr

알파걸, 오메가걸, 골드미스, 실버미스, 알파맘, 베타맘, 슈퍼우먼, 워킹맘, 싱글맘…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특정 여성을 가리키는 용어들이다. 여자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XX염색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으며 별명을 얻는다. 이 별명들이 여러 입에서 오르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매체가 있다는 사실은 눈치챘는지.

여성은 사회가 ‘이름붙이기’ 나름?

알파걸이니 골드미스니 최근에도 여성들을 부르는 별명이 계속 생기고 있다. 배은경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이와 관련해 1920년대에는 ‘신여성’, 1960·70년대에는 ‘여성상위시대’가 있었다며 여성에게 유행어가 따라다니는 것이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배 교수는 “여성이 전통적이길 바라는 보수적 시각이 남녀 간 사회적 지위 변화를 유행어로서 여성에게 투사하는 경향을 낳았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게 알파걸이라는 특정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가 생긴 현상에 대해 홍석우(수의예 07) 씨는 “자기 능력에 따라 과실을 얻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따로 알파걸이라고 이름을 붙일 필요 없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보편적인 현상이 별난 현상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원 문화평론가 역시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젠더의 관점을 벗어나 한 개인의 능력의 차이로 바라봐 주길 주장했다.

알파걸 수입과정,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조선일보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뛰어난 능력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는 알파걸.

알파걸이란 딱지는 미국의 아동 심리학자인 댄 킨들런이 2006년에 저술한 <새로운 여자의 탄생 : 알파걸>이란 책에서 처음 언급됐다. 이 책은 ‘공부, 운동, 리더십 모든 면에서 남학생들을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들’을 알파걸이라 칭한다. 교육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가진 10대 소녀들인 이들에게 남녀 역할, 의존과 독립, 지배와 복종 같은 전통적인 사회 구도는 전혀 상관없다. 이 단어가 한국으로 수입되면서 20·30대 직장을 다니는 능력 있는 여성까지 포함하게 됐다. 한 예로 민경선(인문 09) 씨는 알파걸에 대해 “과거처럼 가사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는 여성 아닐까요”라며 가정보단 직장을 우선시 하는 여성을 떠올렸다.

2007년, 이 책이 한국판으로 번역되면서 알파걸은 미국에서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아직까지 남성우월주의가 팽만한 한국사회는 매체가 여초현상이란 이슈를 던지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선진국에 대한 식민지성도 일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렇게 알파걸을 몇 년 동안 여러 매체에서 쓸 줄 몰랐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알파걸이란 단어는 성적, 학생회장, 사회적 지위 등 사회적 성공을 기준으로 한다. 그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여성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이루고 행복하게 살면 의미있는 삶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알파걸 담론은 항상 일등을 해야 할 것 같고,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지위에 올라가야 할 것 같게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일등주의, 최고주의를 강조하는 한국사회이기에 알파걸이 이만큼 확산된 것이다. 이처럼 우월한 여성이라는 담론이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는 현상은 여성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교보문고
 

<알파걸들에게 주눅 든 내 아들을 지켜라> 역시 알파걸 현상을 성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알파걸 현상의 배후세력, 매체

과거에 비해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성취 및 참여율이 높아졌다며 알파걸의 강세, 여풍현상, 여초현상이라 말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경준(경영 06) 씨는 “여성의 비율이 당연히 50%가 돼야한다”며 여성의 강세를 당연하고 정상적인 현상으로 바라봤다. 반면, 김원 평론가는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되, 젠더의 관점이 아닌 개인의 성취로 봐야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김헌식 평론가는 “여풍 같은 용어는 사회와 매체가 남성들의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데서 왔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파이를 빼앗아 먹고 있다’고 매체가 부추기면, 남성들은 독기를 일으키도록 말이다. 매체가 이런 용어를 선택해 사람들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해석했다.

문화적 영역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초기에 등장한 윤지후의 첫사랑 그녀, 서현(한채영 분)은 알파걸이라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종영된 드라마 ‘뉴하트’에서도 흉부외과 수석은 알파걸 남혜석(김민정 분)이었다. 심지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당당하고 능력 있는 여주인공들은 알파걸의 바이블이라 말하기도 한다. 최근 1월 개봉한 영화 <롤라>의 주인공은 20대의 자신감 넘치고 자신도 사랑할 줄 아는 업그레이드된 알파걸이다. 이렇게 매체는 알파걸이 사회에 만연된 듯이 자주 다룬다. 이와 관련해 김헌식 평론가는 “현실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은 불이익을 받고 있지만 매체는 이런 점을 부각시켜주지 않고 있다. 골드미스와 화려한 싱글로 예를 들면 매체는 마치 모든 여성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것처럼, 싱글들은 다 행복한 것처럼 다룬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과 연결된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덧붙여 “알파걸들의 화려한 성공 이야기보다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능동적인가를 폭넓게 보여준다면 더 좋을 것”이라며 매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광고계 역시 알파걸 현상에서 빠질 수 없다.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는 광고가 안 붙는다는 소리를 들어봤는가. 실질적으로 소비를 좌지우지하는 주체는 여자인데,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 대부분이 남자들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이처럼 광고계는 여성의 트렌드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알파걸을 블루오션이라며 마케팅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기업은 ‘여성은 제품디자인을 중시한다, 가격과 유행에 민감하고 고급매장을 선호한다, 쇼핑 시 타인의 의견에 쉽게 귀 기울인다’ 등 여성의 소비패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마케팅전략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SERI 마케팅전략실 이민훈 연구원의 글에 따르면 ‘자기표현이 분명한 알파걸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 일색이던 유아용품 컬러 선정식의 전략은 더 이상 어필하지 못할 것이다. 이 연구원은 “기업은 기존 여성의 소비패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알파걸의 취향을 염두에 둔 제품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헌식 평론가는 알파걸이 마케팅 대상이 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알파걸을 뛰어난 여성으로 위하는 것처럼 포장해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마케팅은 알파걸을 ‘여성의 상품화’에 이용한 단면”이라 비평했다.

 

“알파걸이란 용어가 있는 것 자체가 남성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고, 이런 말이 없을수록 양성평등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김헌식 문화비평가.

보수정권과 경기불황에 치이는 알파걸

언론 매체는 정치와 경제에 밀접히 연관돼있다. 김헌식 평론가에 의하면 방송국 국장이 어느 정권의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바뀌는가에 따라 프로그램이 영향을 받는다. 과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처럼 진보적이고 다양성을 용인하는 정권의 신임을 받을 때는 방송국들이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이영애 분), ‘서동요’의 선화공주(이보영 분), ‘워킹맘’의 주인공 최가영(염정화 분) 등에서처럼 여성의 진취적인 사고, 다양한 사회 진출을 대개 용인했다. 하지만 보수정권에서는 여성들은 소극적이고 지고지순한 이미지로 고착시키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토대로 김헌식 평론가는 “예전에는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성공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이와 반대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또한 최근 경기침체 이후로 작년부터 영화부문에서 <쌍화점>, <미인도>, <과속스캔들>등 선정적인 제목이나 장면을 포함한 영화가 대세다. 대게 불황기에는 감각적이고 원초적인 컨텐츠가 각광을 받는다는 설이 있다. 김헌식 평론가는 “요즘 18금 마케팅이 인기다. 자칫 여성들은 일종의 섹슈얼리티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은 여자였다는 플롯전개가 이루어진다. 이는 섹슈얼리티 요소를 부과하며 보수적인 정치권과 불황 경제 속에서 서민들의 원초적 감각을 자극해 흥행을 꾀하는 것”이라며 최근의 경향을 설명했다. 이어서 “매체들은 잠시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만들어진 당찬 알파걸을 더 이상 즐기지 않을 수도 있다”며 알파걸의 미래를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