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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와 문화]정치 논객과 김구라의 닮은 점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1. 1. 22:38

[시사와 문화]정치 논객과 김구라의 닮은 점

기사입력 2008-07-24 13:26
김구라의 사과 퍼레이드는 독설의 의미를 되짚게 한다. 독설을 뿜을 때는 언제고 이제 사과인가. 물론 빤한 것. 그는 유명해지기 위해 독설을 이용했다. 어디 김구라만일까. 한국 사회는 어쨌든 유명해지면 그만인 ‘셀레브리티’의 천국 아닌가.

무명의 김구라는 연예 스타들을 겨냥한 막가파 독설로 독보적인, 이른바 독설 논객형 엔터테이너였다. 그는 독설로 인지도를 높여 마침내 지상파 메인 오락프로그램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는 논객활동을 하던 이가 정치권에 진입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정치 논객의 행보와 닮은 점이 많다.

논객들은 하찮은 인물이나 단체를 독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절대 권력일수록 사람들은 그 영향력 때문에 위축된다. 속으로 불만은 팽창한다. 논객은 그들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셈이니 주목받으며 인지도를 높여간다. 김구라의 스타 독설이 통한 이유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확고한 스타 파워와 스타 시스템 구축 때문이다. 어느새 스타는 단순히 딴따라가 아니었다. 기획사 권력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보호막인 팬클럽들도 잔뜩 포진하고 있다.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그들에게 대중의 불만도 커졌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대리 표출한 것이 김구라다.

논객과 정치인이 같은 조직에 담고 있다면 논객은 정치인을 비난하지 못한다. 권력자의 시각에서 논객은 백수일 뿐이다. 김구라의 활동무대가 스타와 같다면 비판할 수 없었다. 김구라는 지상파가 아닌 인터넷 라디오에서 독설을 뿜었다. 논객의 원동력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무소유는 논객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김구라도 잃을 것이 없었다. 그는 유명한 개그맨도 아니었고, 주류 방송국에서 축적된 네트워크도 없었다.

무욕과 무소유의 독설은 논객을 정치권에 진입시키는 요인이 된다. 눈치 보지 않는 독설 토크로 김구라는 마침내 주류 방송에 진입했다. 그러나 논객은 곧 과거의 독설들을 버리고 그가 비판했던 이들과 파안대소한다. 김구라는 자신이 과거에 비난했던 스타 앞에서 사과한다. 독설은 진실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유명해지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이러다가는 김구라가 얼마 안 있어 MB 비판에 대해서도 사과할 판이다.

논객과 김구라는 이제 잃을 게 너무 많다. 아니 더 많이 갖고 싶어한다. 갖고 싶은 게 많을수록 눈치를 본다. 그럴수록 과거의 독설을 스스로 배신한다. 결국 둘은 독설은 유명해지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며 대중적으로 독설의 불신을 크게 할 것이다. 다만 논객 출신들은 국정 운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의정 수행에서 죽쑤지만, 김구라는 그래도 남을 웃기는 실력이라도 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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