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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을 거부한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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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을 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승진을 해도 스트레스는 있다. 높은 지위에 가면 더 낫다는게 통상적인 관념이기에 승진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없어도 일단 승진을 하려 하려 한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승진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 인물이 최근 개봉한 영화에는 등장한다.

그녀는 왜 승진을 거부했을까?

'더 리더(The Leader)'에서 주인공 한나 슈미츠(케이트 웬슬렛)는 전차 차장으로 일하다가 근무성적이 좋다는 평가를 얻어 승진 통보를 받는다. 승진의 내용은 사무직으로 발령받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 같으면 뛸 듯이 기뻤겠지만, 그녀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린 연인 마이클(랄프 파인즈)에게 대신 신경질을 낸다. 그들은 결국 헤어지게 되고 짧은 여름 동안의 로맨스도 끝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8년이 지난뒤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수업의 연장으로 법정 참관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치 협력자로 살인죄로 기소된 일련의 피고군에서 한나를 보게 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는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제의를 뿌리치고 SS즉 나치 친위대(Schutzstaffel)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태인을 관리하고, 아우슈비츠에 아이들을 보낸 혐의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수용소 유태인 300명이 불에 타죽에 만든 혐의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녀가 올린 최종보고서였다. 그때 당시 같이 일했던  SS 경호원들은 그녀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자였다고 주장했다. 마이클은 그녀가 책임자가 아니며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왜 그녀는 사무실 승진을 뿌리치고 SS에 들어갔는지를 알아야 한다. 영화의 제목은 '더 리더'이다. 책읽는 사람이다. 리더는 소년 마이클이었다. 그녀는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자였기 때문에 어린 소년인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전차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승진하자 문맹이라는 사실이 탄로나게 생겼기에 그만둔 것이다. 그리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나치 친위대(Schutzstaffel)의 경호원이 된 것이다.  따라서 수용소 수용자들의 화재사망 사고의 최종 보고서를 그녀가 작성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무기형을 받고 마이클이 끊임없이 보내주는 녹음 테이프를 듣고 1980년 후반에 들어서야 문맹에서 탈출할 뿐이었다.

 

물론 마이클이 법정에서 참고인 진술을 했다면, 그녀는 무기형까지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 그녀와 가진 로맨스의 내용을 공개해야 했다. 그것은 자신의 수치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는 없었다. 마이클은 자신의 로스쿨 동기와 같이 동침을 해서 한나에 대한 사랑을 떨쳐버리려 한다. 그리고는 그녀를 법정 판결대로 받게 내버려 둔다.

 

여기에서 한나와 마이클은 공통점이 있었다. 글씨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때문에 나치 친위대에 들어갔고, 법정 판결에서도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를 두려워했다. 마이클도 어린 나이에 연상의 연인과 가졌던 관계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숨겼다. 그 결과 그녀는 20여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 때문에 마이클은 가책을 느끼게 된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는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이혼하고 만다. 그리고 한나에게 책을 낭독한 것을 녹음해서 끊임없이 보내준다. 한나는 이를 통해 점차 글자를 알아가고 마침내 편지까지 쓰게 된다.

 

드디어 출소를 앞두었다는 연락이 마이클에게 온다. 마이클은 고민하게 되고, 마침내 그녀를 만나러 가게 된다. 막상 수십 년만에 만난 두 사람. 마이클은 그녀에게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기뻐하는 것도 잠시, 한나는 어린 마이클에게 자신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을 알게 된다. 감옥 안에서 출소 전날 자살해 버린다.

 

 만약 한나가 문맹을 넘기 위해서 마이클과 같이 글을 배우고 승진을 수용했다면 그들의 운명만이 아니라 한나의 생도 달라졌을 것이다. 한나가 두려워 한 것은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비슷한 수치와 부끄러움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은 영화 '올드보이'보다 뛰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사소한 심리와 판단, 행동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려 있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비슷한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똑같은 키워드를 '올드보이'는 가족을 넘어선 사랑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더 리더'는 나이에 관계없는 사랑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나는 나치 친위대원이며 살인죄로 20여년을 살고 이제 막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노인 전과자로 마이클은 이혼한 변호사로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사랑을 갈라놓는 현실의 벽은 슬프고도 먹먹하다. 이러한 먹먹함을 박찬욱의 '박쥐'는 보여줄 수 있을까. 연상 작용에 따라 다시금 기대를 해보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뱀파이어라는 환타지로 날나가 현실과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좁힐지 큰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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