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의 문화 심리. 메디컬 콘텐츠의 새지평이 필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지식이나 복잡한 진리가 필요 없다는 말을 흔히 입에 올리면서도 쉽지 않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슬기로운’이라는 단어가 계속 유행인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 이름이 계속 회자되는 것은 해당 콘텐츠의 인기 때문도 있지만 아마도 우리 스스로 그렇게 살고 싶지만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이어 슬기로운 시리즈를 선보인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시즌2로 이어져서도 시청률을 얻고 있다. 이유는 이 드라마 콘셉트 자체가 드라마 현실에서 오히려 슬기로운 문화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특징은 기존 메디컬 드라마와 달라 보인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99학번 동기생들을 포진시켰다. 대개의 의학드라마들이 다양한 연령대를 구축하는 것과 달랐다. 이렇게 하면 자칫 드라마 시청자의 외연을 줄이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확실한 포지셔닝은 강력한 응집력을 낳는다. 30대 후반과 40대 중반의 시청자층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청률이 1~2%가 아까운 정도가 아니라 시청률 1% 드라마가 드물지 않은 현실이니 말이다. 이러한 면은 이미 오래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성공사례를 기록했다.
물론 ‘슬기로운 의사 생활 1, 2’는 응답하라 방식의 메디컬 드라마 제작 방식이지만 결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 이야기는 잠깐이고 대부분 현재 동기들이 어떻게 슬기롭게 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응답하라’에서 보여준 분위기는 변한 게 없다. 제작진과 주인공은 모두 낭만파인 듯 싶다. 과거는 항상 낭만적이다. 지나간 시절에는 현재보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제거되고, 좋았던 기억만 남는다. 그런데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과거의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닌데 낭만적이다. 또한 이상적인 등장인물의 모습이 부각된다. 다만 자신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또래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좋지만, 회가 반복될수록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제 중간관리자 이상으로 조직 생활을 하는 의사들이 이상적으로만 행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이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슬기롭게 생활을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한없이 착하고 좋은 인성만을 보여준다고 해서 슬기로운 생활인지. 이는 그간 악역이 주목을 받는 맥락과 멀어진 점이다. 이상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이 좌절되거나 그 과정에서 번민하는 모습들이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면 적절할 것이다. 더구나 갈수록 로맨티스트가 된다. 예컨대 의사 생활이나 조직 생활이 아니라 사랑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전문직 드라마에 전문직은 없고, 사랑 타령만 있다는 해묵은 비평이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문화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은 선망이 아니고 감정이입이다. 자신들의 처지와 심리, 상황에 부합해야 한다. 과거의 좋았던 시절의 낭만적 기억들을 연장하고 싶은 심리도 한번이면 족할 수 있다. 메디컬 드라마라고 하면 거의 다 의사가 주인공이다. 메디컬 드라마는 의학드라마이지 의사 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의료에 관련한 주체들이 많다.
특히 간호사들은 의료 서비스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한다. 그런 점을 생각해 슬기로운 간호사 생활이나 슬기로운 간호조무사의 생활도 가능할 것이며, 환자나 시민 입장에서 슬기로운 병원 생활, 슬기로운 환자 생활도 있어야 한다. 슬기로운00 시리즈는 계속되어야 한다. 물론 정말 슬기롭게. 우리 사회는 급변한다. 이전에는 없는 모습들이 순식간에 등장한다. 가족은 물론이고 학교, 조직 스스로도 이에 적응하기 힘들다. 각자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 점이 이상을 머리에 두고 두 발은 땅에 딛는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글/김헌식(박사, 사회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