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소울메이트, 음악과 미술의 만남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20. 11:37

소울메이트, 음악과 미술의 만남

진회숙의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를 읽고

어느 네티즌이 겉저리와 김치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내용은 겉저리는 금방 썩어버리지만 김치는 오래가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발효식품인 김치와 달리 겉저리는 그냥 양념에 무쳐놓은 것이기 때문에 쉽게 상하고 만다. 단순히 여러 가지를 섞어 놓는다고 오래 남는 음식이나 요리가 되지 않듯이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새콤달콤한 기법들을 섞으면 당장에는 신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래 남는 좋은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발효를 위한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이들과 공연장에 가도 단순히 공연예술만 등장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장르가 혼합되어 나온다. 예컨대, 무대 위에서 회화와 음악, 그리고 연극이 버무려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중심인 예술장르가 있기 마련이다.

진회숙의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는 저자의 서문에 적은 대로 음악의 숲에서 미술을 보려는 오랜 작업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음악과 미술은 그 겉 형식은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나는 귀로 다른 하나는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명화와 명곡에서 공통의 무엇인가를 짚어내려 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림과 미술을 같이 묶을 수 있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감히 생각해보면 발효를 위한 그 무엇, 바로 영감이다. 이 책은 지식의 대융합뿐만 아니라 문화융합과 퓨전의 담론이 넘쳐나는 가운데 각 장르와 영역을 관통하는 그 무엇인가를 사색하게 만드는 통찰이 담뿍 담겨 있다.

1장, ‘전통을 파괴한 현대미술과 음악’에서는 몇 가지 키워드로 음악과 미술의 통섭을 이끌어 내려 한다. 예를 들어, ‘우연의 필연’이라는 영감에서 작곡가 존 케이지와 추상화가 잭슨 폴록은 같다. 각 작품은 우연성으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그 의미부여는 우연이 아니며, 열린 해석을 지향하는 데서 같다고 본다. 아름다운 소리만이 음악이 아니라 때려 부수는 소리도 음악이라는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소음도 음악으로 만드는 존 케이지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악기의 해체를 통해 오히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영감은 아르망의 아상블라주 기법으로 이어졌다.

또한 미술에서 도널드 저드, 댄 플라빈, 로버트 모리스 등이 주도한 미니멀리즘은 70년대 아방가르드 실험음악의 선구자인 필립 그래스 등에게 영향을 준다. 화려한 기교, 쓸데없는 형식과 군더더기를 제거한 본질에 집중하는 것은 미술이나 음악이나 같게 된다. 스트라빈스키나 피카소는 혁명적이고 전위적인 영감과 정신의 실험자로 묶을 수 있을 것이며, 기존작품의 끊임없는 패러디로 묶어보며 음악과 미술도 풍부할 것이다.

2장, ‘음악과 미술이 빚어낸 다채로운 세계’는 문화예술이 꿈꾸는 세상에 관해 음악과 미술을 통해 이야기 한다. 신화는 영원한 이상적 세계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이 세계를 음악과 미술로 구현해내고자 했다. 단순히 회화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음악에서는 오페라는 물론 가곡, 칸타타, 교양시 등으로 활발하게 형상화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은 오르페우스, 프로메테우스, 바쿠스, 파에톤에 주목한다.

한편, 빛은 화려한 이상향을 상징한다. 보티첼리는 ‘봄’, ‘비너스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통해 생생한 이상적 세계를 그려낸다. 오토리노 레스피기는 이 그림들에서 받은 영감을 통해 ‘세 개의 보티첼리 그림’이라는 관현악곡을 작곡한다.

신과 인간, 동물과 자연의 경계가 불명한 세계는 인간이 꿈꾸는 또 하나의 이상향이다. 그 이상향에 대한 욕구에서 ‘한 여름 밤의 꿈’은 시작되기에 많은 음악과 회화가 그것에 주목했다. 저자는 화가인 샤갈은 같은 제목의 작품을, 멘델스존은 극음악을 만들었으며 브리튼은 오페라를 만들기도 했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상향의 세계는 신비롭게 관능적인 꿈의 세계를 구현하는 음악과 미술을 통해 구현되기도 했다. 딱히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몽환의 그 관능성은 빛의 신비로운 움직임에서 비롯한다. 윌리엄 터너의 ‘빛과 색’은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의 음악으로 이어지고,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서 얻은 영감과 합쳐진 빛의 색감은 ‘목신 오후의 전주곡’으로 형상화되었다. 또한 드뷔시는 휘슬러의 ‘청색과 은빛의 야상곡-크레모네’의 불빛에서 영감을 얻어 ‘야상곡’도 작곡한다. 휘슬러는 거꾸로 교향곡, 야상곡, 화성과 같은 음악에 관한 음악을 빈번하게 그렸다.

3장, ‘미술과 음악에 녹아든 낭만’에서는 낭만이라는 코드로 다양한 음악가와 미술가들의 작품과 에피소드들을 엮어낸다. 낭만적 연인 사이였던 쇼핑과 상드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초상화를 통해 실제와 소망의 틀로 이미지 분석한 점은 흥미롭다. 서양 작가들의 동양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 어떻게 인상파의 일본회화 우키에요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통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있게 한다. 도시의 뒷골목 우울한 랩소디를 반영한 로트렉의 다양한 그림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 가운데 낭만의 극단인 팜므파탈을 다룬 음악가와 미술가들의 열정은 슈베르트의 겨울나무도 낭만의 시선으로 상쇄하게 만든다.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는 음악은 영혼에 영감을 준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음악이 단지 일시적일 지라도 더 다양한 방식과 강렬하게 정신을 감동시킨다고 했다. 헤겔은 더 요약적으로 음악은 신성한 것을 표현할지라도 영혼의 본질을 관통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니체는 음악가는 사회적 구원자라고 보았는지 모른다. 혼돈스러운 삶에 조화를 부여하고 실제적으로 바라는 바(욕망)와 희망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뮤지컬 일래버레이션’(Musical Elaboration)에서 음악은 사회적 역사적이라고 했다. 엄청나게 다양한 외적 요인들이 영향을 많이 미친 결과로 연주 또는 작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어디 음악뿐인가. 미술과 음악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음악과 미술의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예술적 영감의 상호성에 얽힌 사회적 역사적 에피소드와 작품의 예술적 영감의 메타 분석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주로 서양의 음악과 미술에만 한정되었다는 점이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를 보고 가곡 가운데에 가장 느리다는 이수대엽(二數大葉)을 떠올릴 수 있다. 봄 꾀꼬리의 절묘한 가락을 ‘마상청앵도’에서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곡의 반주로 거문고, 대금, 해금, 단소, 양금 등이 은은하고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 봄날의 아지랑이 같을 것이다.

김명국의 달마도는 휘몰이를 연상하게 한다. 먹을 듬뿍 찍어 굵고 빠르게 날렵하게 그려나가며 호방하게 그린 것은 가야금의 휘모리 가락 같다. 붓의 휘돌아나감과 가야금의 휘몰아 감은 가락과 붓 필치의 움직임을 같게 만든다. 시나위는 모든 악기가 합주와 독주를 번갈아 반복하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해 간다. 제멋대로 인 듯하면서도 조화스러운 것이 마치 아무렇게나 잇대고 덧댄 것 같지만, 조화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조각보의 예술과 같다.

영감은 정신 나아가 사상에서 근원이기도 한다. 유가와 도가, 그리고 불교의 사랑은 그림과 노래, 음악, 춤, 조소, 건축에 골고루 영향을 미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의 상관관계도 풀어보는 것은 역시 남겨진 흥미로운 과제이다. 물론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와 같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할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교보문고 북멘토, 문화평론가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