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확실한 행동
-재밌게 시도하는 변화적 적응역량이 미래 자산이다.
글/ 김헌식 (박사, 평론가, 미래 학회 연구 이사]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했다. 또한, 미래의 수용과 창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주어지는 미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대응해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왔다. 그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온 이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온 것이다. 이는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더욱더 뚜렷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심리학에서는 ‘회복력’에 대해 한 사람이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그 속에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능력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실패에 이르러도 다시 극복하고 성공하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할 때 회복력(resilience)의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회복력은 어떤 일정한 패턴이 있는 시대와 상황에서는 적절해 보였다. 예컨대 20세기의 학교 교육-직장 생활-은퇴라는 단일한 라이프 사이클 패턴에서는 회복력이 매우 중요했다. 학교 교육에서 일탈했어도 이를 회복하거나 직장 생활에서 물러나게 되었어도 재빨리 다른 직장에 가는 능력의 함양이 중요했다. 회복력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일정한 생활 패턴으로 돌아갈 수 있게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에 부합한다. 삶의 질서가 뒤틀려지거나 흐트러져도 이를 복원하는 일에 재빠를수록 좋았다.
하지만 이러한 20세기의 삶의 패턴은 달라지고 있다. 달라진 패턴을 재빨리 회복해 유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선사하시는 않게 되었다.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지는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생계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불행한 지경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전과는 다른 삶의 환경이 경제 사회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하는 일들은 단일하지 않아 평생 공부해야 한다. 교육 기간이 매우 길어지기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시 다른 교육을 이수하거나 수료해야 한다. 일을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일을 하나만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한 개의 조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직에 걸쳐 있는 삶이 된다. 거쳐 가는 조직이 있을 수도 있고 하나의 중간 매개 고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좀 더 나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경험을 쌓기 위한 조직과 사회관계는 당연시되고 있다. 은퇴한다고 해도 완전히 사회적 활동에서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과 사회 그리고 관계들을 형성하고 유지 확장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우리가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개념보다는 석학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의 말대로 오히려 상황을 돌파해가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상황이란 위기의 상황을 말한다. 돌파는 바로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전환을 가리킨다. 예컨대, 급격히 발달하는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하기보다 인공지능과 협업을 해야 한다.
실제로 조사 데이터를 보면 일자리에 관한 미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한 직장이나 일에 연연해서 하지 않고 여러 분야에 걸쳐 시도하는 모습은 변화에 적응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관련 설문 조사를 보면 변화된 인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10월, 취업 포털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은 여러 직업을 가진 ‘N잡러’를 희망을 했다. 다만, 원하는 N잡 유형 1위는 ‘재능 공유 형태 파트타이머’(41.2%, 복수 응답)였다. 이런 응답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N잡러는 자신의 가능성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시험대로 향후 새로운 창업이나 직장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종사하고 있는 본업 외에 다른 일을 하며 새 일을 할 기회를 만들거나 장기적인 직업을 만들어나가는 직장인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N잡은 다양한 자아 정체성을 드러내 줄 수 있다. 가면을 쓰고 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하나같은 상황이다. 취업포털 조사에서 77.6%가 회사의 내 모습이 평소 자신과 다르다고 응답했다. 일종의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여러 일을 동시에 시도하는 것은 자신을 억제하는 태도를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으며, 좌절했거나 포기된 꿈을 실현해 볼 수 있게 한다. 그 꿈은 단지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만은 아니다. 좋아했던 취미를 통해 자아실현은 물론 덕업일치를 이룰 수도 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미래에 자기 업이 되는 일은 이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N잡러는 대세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에 임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2021년 2월 취업 포털 조사에 참여한 직장인 중 89.7%가 ‘향후 N잡러가 더 늘어날 것’이라 답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N잡러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 ‘N잡러가 더 늘어 날 가장 큰 이유’에 관해서는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어 정년 없는 일자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 26.4%로 가장 높았다. 또한, 다음으로 많은 응답도 눈길을 끌만 했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 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직업)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3.8%이었다. 평균수명의 증가로 은퇴가 정해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 아니면 현재의 본업을 하면서 다른 여러 일에 도전하고 성취해나가는 것이 더 미래에 성공적일까. 돌파하는 힘이라고 말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과감함을 생각하기 쉽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관련해 2014년 전문 경영 학술지에 발표한 위스콘신대 조세프 라피(Joseph Raffiee) 교수팀의 연구는 특히 스타트업의 생태계인 실리콘 밸리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연구팀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직장에 사표 내고 창업가가 된 20~50대 약 5천 명을 조사했는데, 직장을 다니며 창업한 사람들의 성공 확률이 좀 더 높았고, 실패 확률도 33% 정도 낮았다. 이렇게 말하면 직장 다니며 창업 준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연구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위험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 가는가였다. 퇴사의 욕구도 창업의 유혹도 위험이다. 요컨대, 창업에 성공한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 아닌 오히려 위험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위험 감수자(Risk Taker)가 아니라 리스크 매니저(Risk Manager)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리스크 매니저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다든(Darden) 경영대학원 MBA의 사라스 사라바스(Saras Saravathy) 교수는 ‘감당할 수 있는 손실’(Affordable Loss)을 말한다. 자신이 받게 될 기회의 크기를 우선하기보다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불리한 면’(Downside)를 보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수많은 위기(Risk)를 만나게 되고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노력과 실수(Trial & Error)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때 최대한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한 번의 노력(Trial)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갑자기 모험적이거나 급격한 시도를 하지 않고, 일상적인 패턴화를 평소에 하는 것이 방법이다. 그런 유형 가운데 하나가 '리추얼 라이프(Ritual Life)'다.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 의례를 뜻하는 '리추얼(Ritual)'과 일상을 뜻하는 '라이프(Life)'가 합쳐진 말로 자신의 일상과 자기 발전을 중요시해 규칙적인 습관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가꾸는 모습을 가리킨다. 늘 여러 일을 시도하는 것은 변화 시도의 습관화다. 여기에 소소한 것들에서 성취감을 일정하게 추구하는 갓생살기와 고통 속이 아닌 즐거움 속에서 목표를 이루는 헬시 플레져가 결합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으니 이는 불확실한 미래에 우리가 무리하지 않으며 견디고 돌파하며 위험을 관리할 힘의 원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