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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도세자·개 그림, 이 모든게 영조 때문일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9. 25. 16:46

▲ 영화 '사도'의 한 장면 ⓒ타이거 픽쳐스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서 비극적 결과는 대개 영조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 '사도'의 스토리에서 주요 맥락은 영조의 콤플렉스와 욕심때문에 사도 세자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영조의 뜻을 따르고 그에 부합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언제나 번번이 그에 못미치고 만다. 영조의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 그 원인으로 대개 영조가 무수리 출신의 후궁 최숙빈의 자식이기 때문에 신하들에게 열등감을 많이 느낀 점을 꼽는다.

이 때문에 학문에서 신하들에게 지지 않으려 할 뿐더러 아들에게도 그러한 학문적인 태도와 성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화'사도'는 이런 열등감에 우선하여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42살에 얻은 귀한 자식이자, 자신의 여망을 실현시켜줄 장자로 보였다. 특히, 남성들은 아들을 또다른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킬 또다른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들이 주체적인 존재임을 간과할 수 있다. 때문에 부자관계는 갈등관계로 자칫 서로 존재와 존재를 죽이는 전쟁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영조도 자신의 생각과 여망을 좀 더 우선하는 모습을 강하게 보이고 사도세자는 이에 저항한다.

특히 영화에서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기대가 높은데 특히 공부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사도세자는 갈수록 부담감을 느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부각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왕과 세자의 관계가 아니라 가장과 가족의 일원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맥락이다. 공부하라는 아버지 말을 어기고 따르지 않은 아들 사도세자였대 하지만,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한다는 영조의 주장은 신하를 이기고 견제하기 위한 공부였다.

때문에 정조에 저항한 것이 사도세자가 비단 공부를 싫어했기 때문인지 의문이다. 사도세자가 실제로 공부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사도세자에게 공부는 영조가 말하는 학문 특히 성리학의 경전 공부가 아니었다.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것을 좋아하고, 문화예술을 그런 관점에서 사랑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개그림을 싫어했지만, 사도세자에게 그것은 팝아트와 다름 없었다. 이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다름에 대해 반감을 나타낸다. 다름에 대한 반감은 시기일 수도 있다. 내게 없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은 낯설지만 선망이되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못남을 도드라지게 할수록 시기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도세자는 한문경전 암기보다는 소설을 좋아하고 풍류를 알았다. 대중적인 그림을 잘 그렸을 뿐더러 활동적인 풍모를 지녔다. 예술도 알고 무술도 알았다. 하지만 영조는 그런 감각과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시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젊은 아들에 대한 노쇠한 아버지의 저항이 발생한 지경인지 모른다.

더구나 다가올 미래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것이 대세가 될 미래에 대한 현재를 소유한 아버지의 저항이다. 단지 아들에 대한 불만족이 아들에 대한 압박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시기심과 경쟁의식은 못난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래저래 영조는 불행한 사람이다.

못난 아비와 불행한 아들, 이런 아들과 아버지의 갈등관계에서 그것을 완화해줄 수 있는 것은 손자일 수 있다. 당장에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아들의 아들이기 때문에 손자에게 쏟아지는 압박감은 덜할 수 있었다. 그것이 정조가 사도세자와는 달리 덜 압박감을 가지면서 영조가 원하는 결과와 성취를 보여준 이유일 것이다.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정조와 어떤 관계일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의 교육과 학습의 시스템에 반발했던 사도세자는 정조에게 무한한 교육의 자유를 주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사도세자나 정조나 조종시스템안에서 왕과 신하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만 둘을 볼 수 없는 이유다.

또한 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점도 살펴야 한다. 그들을 존립하게 만드는 사회적 관계성의 중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보통은 왕이나 그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왕과 세자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궁중의 나인들에게 사도세자는 적어도 살인자였다. 광증으로 인하여 많은 궁중 사람들을 살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병증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도하게 해친 것은 다름 아닌 영조에게 핍박받은 사도세자였다. 부정적인 순환의 인과관계가 환원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살상한 영조가 세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을 뒤주에 가두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들을 죽인 아버지라는 오명을 각오한 것이고, 그 오명은 스스로 아들을 그런 무도한 살인자로 만든 책임을 스스로 진 것이다. 그들은 왕과 세자, 아버지와 아들을 넘어 궁을 중심으로 신하와 궁궐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부를 왜 하는가도 중요한 이유이다.

글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