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전문]
문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고 개선 방안을 생각해보는 <문화로 읽는 세상>.
오늘은 젊은 작가들이 문학계에 만연한 구태와 관행을 거부하고 나섰다는 소식,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평론가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최근 김금희 작가에 이어 최은영, 이기호 등의 작가들이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고 하던데, 이유가 뭔가요?
▶불합리한 계약 논리에 저항을 한 것입니다. 이상 문학상의 주최측이 문학사상사가 작가들에게 작품의 권리에 관해 3년 동안 양도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 작품집의 표제작으로 쓸 수 없고, 단행본에 넣을 수도 없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이상문학상은 1977년에 시작해 수상작은 연초에 발간합니다. 올해 다섯 명의 수상작가 가운데 세 명이 수상을 거부했기 때문에 작품집 발간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출판사측에서는 직원의 실수와 혼선이 빚어낸 일이라고 했습니다. 엄격하게 적용할 생각은 없고 언제든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작가들의 거부는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직원의 실수와 혼선에 전가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대상 수상작을 우수상 수상작으로 확대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이 3년 간의 저작권 양도인데, 이는 법적으로 무효에 해당한다면서요?
▶정상적인 계약관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수상과 동시에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부분은 사실 약관에 해당합니다. 출판사가 다수의 작가와 맺으려고 만든 계약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약관 관련법에 따라 적용됩니다. 그런데 이 법에서 출판사는 사업자 그리고 제안을 받은 작가는 고객이 됩니다. 작가가 고객이 되는 기묘한 상황입니다. 만약 이 약관에 작가가 서명을 했다고 해도 공정성을 잃었기 때문에 법원에서 무효판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약관법 6조에는 신의성실에 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은 무효라고 규정합니다. 수상과 저작권을 연결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별도의 대가를 주고 계약을 따로 맺어야 합니다. 수상상금은 저작권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학상은 자사 문예지 작품을 중심으로 상을 준다는 지적도 있던데, 실제로 그런가요?
▶2017년 문예 연감에 따르면, 문학상은 270개입니다. 3대 문학상은 이상, 현대, 동인문학상이 있는데 동인 문학상은 단행본, 이상과 현대 문학상은 문예지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합니다.2010년에서 2019년 사이에 발간된 문학상 수상작을 보면 대개 자사의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들이 수상작이 되었습니다. 이상문학상의 경우 열편의 대상작 중에 6편이 자사 문예지 문학사상에 실린 작품이었습니다. 현대문학상은 4편이 현대문학지에 실린 작품이었습니다. 이상문학상에는 계간 문학동네, 계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에 실린 작품은 하나도 없었고 현대문학은 한 편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자신들의 문학 권력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문학상을 운영한다는 비판을 면키는 힘들 것입니다.
2000년에는 이상문학상이 큰 문제를 일으켰는데 수상 대상 작품은 전년도 1월부터 12월 작품까지인데 당해 2000년 1월에 발표한 ‘시인의 별’을 수상작에 넣었습니다. 이유는 1월호라고 해도 전년도 12월에 발행하기 때문이라고 밝혀 해당 작품의 시인에게 상을 주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선정과 시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 보이는군요. 그리고 한 시인이 원고료 없는 청탁을 거절해 주목을 받았다는데, 원고료로 인한 시인들의 고통이 그만큼 심해서인가요?
▶주로 원고분량이 많지 않은 시인들이 원고료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더 심한 현실에 저항을 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자인 차도하 시인이 원고료를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을 거절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편당 3만 원이라는 사실을 전해 받고도 거절을 했습니다. 원고료를 밝히지 않는 깜깜이 청탁이나 매우 적은 원고료는 작가들을 말 못하게 괴롭혀왔습니다.
소정의 고료라는 말이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터무니 없는 액수인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문예지 구독권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고 원고료 없이 책 한권을 주겠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우에 대해서 특히 신인작가들은 감내해 왔는데 이번에 차도하 시인이 이러한 관행에 저항을 한 것입니다. 원고료를 준다고 해도 원고료가 시인 등급에 따라 차등 등급으로 매겨진다고도 합니다. 원고료가 밀려서 입금이 되어도 항의를 하지 못하고 맙니다. 문단에서 배제될까봐 두려워하는 신인들에게는 말 못할 고통이 가중됩니다. 신인들에게 가중되는 이런 고통을 개선하지 않으면 훌륭한 작가들이 문단에 들어올지 의문입니다.
▷신인 시인들이 신춘문예당선 시집 게재를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죠? 또 이 시집은 이상문학상 수상집과 함께 새해 문학 도서 판매를 견인하는 그런 책이었다고요?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인 이원석 작가, 2019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자인 조우용씨도 신춘문예당선작 작품집에 작품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당선작 시집을 펴내는 문학세계사가 성폭력 가해자와 관련된 출판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출판사의 대표 아들이 가해자를 것입니다. 2017년 강제추행죄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성다영 시인이 작년에 혼자 거부했지만 올해는 차도하 시인 등 세 사람으로 늘었습니다. 신춘문예작품집은 30년된 발간물로 최대 1만부까지 판매되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인데 이를 거부한 것입니다.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학상은 물론이고 문단 자체 그리고 등단 제도에 불신이 커져가다 보니까요. 스스로 길을 찾는 작가들도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가요?
▶기존의 발표된 작품을 모아서 상을 주고 작품집을 만들어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인들이 생각하는 문학상 자체의 신뢰성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2013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서 문인 70여명에 문학상이 공정하게 시상되고 있는가, 선정 과정이 공정한가라고 물었는데 13명(18.6%)만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등단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어왔습니다. 박지용 시인은 아예 등단을 거부하고 독립문학을 선언했습니다. 백인경 시인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출판 비용을 모으고 그 후원에 힘입어 독자들에게 시집을 안겨주었습니다. 등단에 관련한 개념에 저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미등단이라는 말 대신 비등단이라는 말을 쓰는 젊은 문인들도 있습니다. 문학상을 웹소설 플랫폼에서 인수하고 상금을 올리면 지금보다 더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가 돕니다. 여러모로 낡은 관행과 체제, 운영방식은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단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항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인 듯한데 어떤가요?
▶과거에는 정치적인은 억압이나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2013년 현대문학상 사태가 있었는데 이 때 편집위원이 사퇴하고, 문인 70여명이 기고 거부를 했으며 황정은 작가와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현대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현대문학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쓴 에세이를 게재하고 유신을 비판한 원고를 게재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작가들이 여러 억압과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저항입니다. 과거에는 외부의 억압과 대항했다면 지금은 내부의 갑질, 성폭력 처벌, 정당한 대가 기준과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 등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이렇게 문단에 대한 저항이 강해진 배경과 이유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위선적이고 모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국가에 공정과 정의에 관해서 묻던 문단이 스스로 반성과 성찰 개선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상적으로는 문단의 권위 실추입니다. 2015년 신경숙 작가 표절 사태에서 보여준 문단의 태도가 많은 영향을 미쳤고 뒤이어 미투운동도 문단의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공론화의 수단이 확보된 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가 있어도 혼자만의 고민과 고통이었다고 하면 요즘은 SNS등을 통해 공론화하고 중지를 모을 수 있는 수단과 공간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젊은 작가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권위에 복종하고 관행을 묵인하는 악습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는 지위를 주는 건데 이것을 거부하는 건 정말 대단한 용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20-01-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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