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떡볶이 페스티벌, 사라진 떡볶이의 철학?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30. 13:19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는 미각을 잃게 되고 한상궁은 장금이의 미각을 살리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 장금이가 한상궁에게서 요리수련을 받는 가운데 만들게 되는 음식이 바로 '떡볶이'다. 이때 등장하는 떡볶이는 우리가 알고 붉은 고추장 떡볶이와는 매우 다르다.

 

장금은 배와 간장을 끓여서 오늘날 ´맛간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떡볶이 향신장으로 쓴다. 또한 쇠고기에 채소는 호박오가리, 표고버섯, 숙주, 양파와 당근 등을 넣는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등장하는 떡볶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물어 보나마나한 이야기다.

 

사실 1800년대의 < 시의전서 > 라는 조리서에 궁중떡볶이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궁중음식 명예보유자 고 황혜성 선생의 < 이조궁정요리통고 > 에도 궁궐 떡볶이가 나온다. 떡볶이의 시초는 17세기 무렵 파평 윤씨 종갓집이라고 한다. 떡과 소갈비를 간장양념에 볶은 것이 너무 맛이 있어 궁중에 전해졌다고 한다.

 

궁중 떡볶이는 고기와 야채, 버섯, 계란지단 등을 듬뿍 넣고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양념을 했다. 이 떡볶이는 단순히 먹을거리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철학과 혜안이 있었다. 특히 오행 사상이 버무려져 있었다. 쇠고기와 표고의 검정, 양파의 하얀색, 당근과 홍고추의 붉은색, 풋고추의 파란색, 마지막 황백지단의 고명으로 노란색을 갖추어 오장육부를 보하려 했다.

 

그런데 왜 오늘날과 같이 고추장으로 간을 하지 않고 간장으로 한 것일까? 혹시 고추가 없었던 것일까? 드라마 '대장금'은 조선조 중종(1506-1544)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최근에 임진왜란 전에도 고추나 고추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속속 연구 보고 되고 있다.

 

1487년에 발간된 ´구급간이방´에 고추의 어원인 ´고쵸´가 나와 있고, 문헌인 '훈몽자회'(1527년)에도 고추를 의미하는 ´고쵸초´(椒)가 있다. 향약집성방(1433년) 등에 ´고추장´(椒醬)이라는 표현이 있다.

 

당시에 고추가 있었음에도 고추를 사용해 매운 맛을 내지 않은 것은 매운 맛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국정 수장왕에게 감정의 동요가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떡볶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라상에서는 가급적 매운맛을 자제하는 것이 궁중요리의 기본적인 원칙이었다고 한다. 이는 음식을 통해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혜안이 느껴지게 한다. 궁중 떡볶이는 담백하기 때문에 어린이나 노인에게 좋은 적당하다.

 

어느새 떡볶이는 세 가지다. 하나는 고추장 떡볶이와 다른 하나는 궁중 떡볶이며 마지막은 둘과 서양식을 합친 퓨전 떡볶이다. 고추장 떡볶이는 한국 전쟁 당시에 부족할 먹을거리를 위해서 급조된 음식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이때 생기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추장을 사용한 비슷한 음식이 전국적으로 없었을 리는 없다.

 

다만, 신당동 떡볶이와 같이 상품화된 음식의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더구나 궁중떡볶이나 양반집 떡볶이는 일반에게 제대로 전수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어떻게 상품화하는 것이냐다. 이것이 앞으로도 여전히 고민해야 할 과제다. 70년대부터 즉석떡볶이가 등장하면서 떡보다 다른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떡볶이는 인스턴트 혹은 패스트푸드 식품이다.

 

이것은 혼란과 급격한 경제 성장의 역사와 함께 하는 셈이 된다. 그러는 사이 빨리 먹고 노동을 하는데 필요한 열량을 채우기에 더없이 좋았다. 더구나 고추의 매운 맛은 추운 날씨에 더욱 힘이 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기 처방전이었던 셈이다. 그러한 장점은 이제 한계점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전통 궁중 떡볶이는 웰빙 푸드, 나아가 채식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로하스 음식에 해당한다. 궁중떡볶이인 전통떡볶이는 멋과 영양, 그리고 철학이 있는 느림의 음식인 것이다.

 

최근에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선두 품목에 떡볶이를 넣었다. �볶이 연구소도 생기고 떡볶이 페스티벌도 열렸다. 앞으로 떡볶이 관련 애니메이션과 캐릭터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산업적인 목적도 있지만 농정도 관련되어 있다. 남은 쌀의 소비와 의무 수입쌀(MMA)의 처리를 위해서는 많은 쌀을 먹도록 해야 하는데 떡볶이가 적임인 탓이다.

 

특히 갈수록 쌀밥을 먹지 않는 젊은 층들이 그나마 많이 많이 먹는 것이 쌀떡볶이다. 퓨전 떡볶이는 새로운 시대감각에 맞게 변신하고 있다. 치즈, 짜장 등은 물론 조폭떡볶이나 떡찜라는 차원이 다른 것도 있다. 비싼 가격에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등장하는가 하면 박사들이 달려들어 만드는 떡볶이도 등장했다.

 

수많은 프랜차이즈점이 생기고 갈수록 그 가맹점은 증가일로에 있다. 한류 덕도 보고 있다. 드라마 '스타의 연인'에 등장하는 최지우와 유지태의 떡볶이 먹는 장면 때문에 일본 관광객들이 떡볶이를 많이 먹는다고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떡볶이는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이다. 비위생적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학교 위생구역 안에서 길거리 떡볶이가 추방되기도 한다. 떡볶이의 세계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궁중 떡볶이의 정신과 철학일 것이다.

 

음식을 먹는 상대방의 건강과 생활을 배려하는 느림의 요리로 거듭 부활해야 할 떡볶이, 그것은 급하게 열량을 채우고 노동을 해야 하는 발전 지상주의에 종속된 음식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과거 문화는 더 이상 청산이 아니라 미래일 수 있다. 노예의 식사였던 샌드위치보다 훨씬 철학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은 밝을 것이다.


그러나 떡볶이 페스티벌을 보면 너무나 그 가능성을 어둡고 만들고 있다. 철학도, 정신도 없으며 인스턴트의 천박한 상품화 논리만이 있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