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동방신기 ‘주문-미로틱’ 판결의 의미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 12:43

 

-가사 선정성에 대한 집착 음악적 수준 퇴행시켜

동방신기의 4집 타이틀곡 ‘주문-미로틱’이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아니라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행정 재량에 대한 법원의 판결로 앞으로 어떤 파급 효과가 있을 지 주목된다.

즉, 근래에 활발하게 심의활동을 벌이고 있는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 보호위원회(이하 청보위)가 어떤 행보를 보일 지도 궁금증을 일으킨다. 사실 청보위는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지만, 가요계에서 원망의 소리를 강하게 들을 만큼 웬만한 노래들을 다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묶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해매체물로 묶은 노래들은 이미 판매가 어느 정도 된 노래나 음반들이었다. 3월 27일 행정안전부 전자관보에 청소년 유해매체물을 고시했는데, 이번에는 싸이와 에픽하이 음반이 들어 있었다.

지난 2005년 발매한 싸이의 리메이크 앨범 ´리메이크&리믹스´ 앨범 수록곡 ´인생극장 A´형과 ´인생극장 B형´, 지난 2004년 발매된 에픽하이 2집 ´하이 소사이어티´ 수록곡 ´신사들의 절약정신´, 피해망상 Pt.3´, ´뒷담화´ , 지난 1월 발매된 애프터스쿨 싱글 수록곡 ´뉴 스쿨 걸´, 지난 2007년 발매된 다이나믹 듀오 3집 수록곡 ´그래서 난 미쳤다´ 등 국내 가요 61곡이었다.

청보위는 지난 2월 27일에도 빅뱅의 정규 2집 ‘리멤버’ 수록곡 ‘스트롱 베이비’와 리쌍 5집 ‘백아절현’ 수록곡 ‘서바이버’,’ 사람이어라’, ‘망가져가’ 등 국내 가요 35곡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묶었다.

지난해 12월 29일에는 32곡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고시했다. 박진영의 7집 수록곡 ´키스´ ´딜리셔스(니 입술이)´ ´이런 여자가 좋아´, 휘성의 ´초코 러브´, 은지원의 ´고 쇼´, 바나나걸의 ´키스해줘´는 가사의 선정적 표현이 유해매체물의 근거가 되었다. 에픽하이의 ´버터플라이 이펙트´는 섹스와 마약에 대한 표현이 문제라고 했다.

지난 11월27일에는 비의 5집 타이틀곡 ´레이니즘´과 동방신기의 4집 타이틀곡 ´미로틱´에 청소년 유해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규정행태들이 과연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를 낳고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사실 청보위의 행태에는 90년대 초반이후 풍속에 대해서 직절적이고 유연해진 가요의 가사내용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의도가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음반업자나 가수들의 판매활동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귀결되고 만다.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서 나타났듯이, 법원은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쪽에 더 무게를 내리게 되어있다. 법원 판결과 매체의 보도를 통해 결국 동방신기의 노래만 더욱 많이 알려지고 대중적으로 각인이 되어버렸다.

이런 제도론과 규제론을 벗어나 대중심리 차원에서도 살펴보자.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고, 유해하다고 하면 더 소비하는 것이 반동(Reaction)심리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내용도 없이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은 바로 국방부의 금서목록 지정 때문이었다.

별 내용은 없는 책이지만 새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말았다.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는 딱지는 오히려 그 음반들의 판매고를 올려줄 뿐이다. 실제로 판매고가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니 판매고보다는 인터넷상의 불법 다운로드를 더 부추긴다.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나보란 듯이 사기에는 아무래도 계면쩍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다 활동 할대로 뒤에 한 음반을 새삼스럽게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것은 새삼 뒤늦게 판매고를 올려주려는 심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10시 이전에 방송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재밌는 소극이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엄청난 입시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터다. 청소년들이 새벽까지 자지 않고 라디오 등을 들으며 시름을 달래고 있는데 10시 이전에 방송하지 못하게 하는 행태는 심의 활동 자체를 희화화 시켜버린다. 즉, 10시 이전에 음악을 듣기보다는 10시 이후에 더욱 많이 듣는 것이 대부분 청소년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유해매체물 지정은 결국 더욱 많이 주의 깊게 들어보라는 홍보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부는 잠 못 자게 만들고 보건복지부 청보위는 밤늦게 까지 청소년 유해매체물 음악을 들으라고 각인시켜주고 있는 꼴이 되고 만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주체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율적인 판단력을 훼손하고 상품판매에 도움만 된다면, 청보위의 존재의미가 의심스럽게 된다.

동방신기의 노래 주문-미로틱은 분명, 성적인 내용을 다분히 담고 있다. 정작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정적 장사를 하고 있는 가수나 제작자들은 이번 이러한 계기들을 통해서 노이즈 마케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문제는 대형기획사나 제작사들만이 이러한 수혜를 본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동방신기 정도 되었기 때문에 법원을 통해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는 더욱 대형기획사의 스타시스템을 공고하게 만드는 쪽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음악적 한계에 부딪힌 대중가요계가 선정적인 가사를 통해 판매고를 높이고 있는 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우리의 음악적 역량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에서 도태 될 레드오션이다. 시장의 원리에 따라서 그런 노래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를 통해서 오히려 그들의 상업적인 행태가 마치 진보적인 행태인 것으로 역활용되는 일을 막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