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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11. 9. 23:44

쿡 애플 CEO, 잡스와 다른 변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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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강일선 특파원】고(故)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최고경영자 (CEO)가 된 팀 쿡은 직원과의 의사소통을 늘리는 등 잡스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쿡은 지난 8월 신임 CEO직에 오르면서 애플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애플은 이제 잡스의 시절과는 달리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애플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쿡은 지난 수주동안 잡스에게는 관심이 없던 임직원의 승진이나 기업보고 구조와 같은 행정문제 등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로 50세를 맞은 그는 직원들에게 여러 형태의 회사와 관련된 e메일들을 발송하는 등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을 늘리며 팀웍을 강화하고 있다.

쿡은 잡스와는 다른 기업철학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최근 새로운 자선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애플은 앞으로 종업원들이 비영리단체에 기부를 할 경우 회사에서 연간 1만달러(약1100만원)까지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는 잡스가 지난해 회의석상에서 기부를 반대한 것과 대조가 된다.

잡스는 경영문제 등에 관해선 인내심이 거의 없었던 반면 쿡은 잘 훈련된 관리자로 평가받고 있다. 

쿡은 최근 회사의 전체 조직구조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해오던 교육 부서를 대폭 손질했다. 

그는 비대해진 통합된 교육 부서를 판매와 마케팅으로 세분화하고 회사 조직들을 개편했다.

쿡은 이를 통해 애플의 구조를 재조정하고 글로벌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인 필 실러와 존 브랜든의 역할과 책임영역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애플의 교육책임자인 존 카우치는 지금까지 쿡에게 보고해 왔으나 앞으로는 실러에게 보고하게 됐다.

애플의 전직 임원들과 애플 관계자들은 과거 쿡이 투자자들에게 온화하게 대했던 것처럼 앞으로 그가 주주들과 고객들에게 보다 개방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소식통은 잡스와는 달리 그가 816억달러(89조7600억원)에 이르는 회사펀드로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금을 늘릴 지 모른다고 말했다.

/kis@fnnews.com 

잡스의 '애플 왕국'을 이끄는 숨은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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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애플은 매킨토시 컴퓨터를 시작으로 MP3플레이어 아이팟과 스마트폰 아이폰, 태블릿PC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미국내 IT업계 최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친 것은 물론, 구글, 아마존, 노키아, HP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을 변방으로 밀어냈다.

애플은 또 세계 최대의 음악관련 회사로 발돋움했고, 조만간 전자책 시장도 석권할 기세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IT업계의 주도기업이 된 애플과 이 회사를 이끄는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의 성공 뒤에는 어떤 비법이 있을까.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26일 인터넷판에서 애플의 전.현직 임직원과 지인 등의 입을 통해 전해진 잡스의 비밀을 소개했다. 

◆'비밀 보호'가 최고의 원칙 = 1990년대 말부터 애플의 브랜드 관리를 맡아온 디자인업체 에이트의 사옥 2층에는 흰색 애플 로고가 새겨진 유리로 된 사무실이 있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유리벽 안쪽에는 8명의 애플 전담팀이 주요 신제품 발표회와 각종 박람회, 그리고 287개 소매 유통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선보일 브랜드 디자인을 연구한다. 

빌헬름 오엘 수석디자이너는 "우리가 하는 일은 제품을 영웅으로 만드는 디자인의 통일성을 위해 고상함을 재정의하는 것"이라며 "마치 마술과도 같이 느껴지는 것을 잡으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굳게 닫힌 유리문은 비밀 보호에 대한 애플의 집착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단순히 편집증적 노출 회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애플은 항상 경쟁사와 분석가, 블로거, 언론 등에 적합한 의제를 주고 그 수위를 조절하지만, 이런 불투명 유리벽 뒤의 비밀장소에서만큼은 이런 이해 관계자를 잊고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

◆비민주적 의사결정 = 애플이 지난 2000년 인수한 독일 소프트웨어 업체 아스타르테의 운영담당자였던 마이크 에반젤리스트는 잡스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우리 팀은 잡스에게 보여줄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설명서를 준비 중이었는데, 잡스는 우리의 작업은 안중에도 없이 화이트보드에 직사각형을 하나 그리고는, '이것이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이다. 여기에는 창이 하나 있고, 비디오를 드래그해 창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영상이) 복제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처럼 애플은 잡스가 혼자 또는 소수의 수석 매니저들과 마련한 제품 계획을 실무진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해 개발토록 하는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논쟁 의식하지 않고 고객에 치중 = 개방형과 폐쇄형 소프트웨어의 장단점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대부분의 기술자는 개방형 소프트웨어가 더 도덕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운데 프로그램 개발자 사이에서 응용프로그램 등록 기준을 제시한 애플의 앱 스토어가 폐쇄적이어서 문제라는 불만이 팽배하다. 

애플이 앱 등록 관련 규정을 투명하게 밝히면 이런 논쟁은 상당부분 불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수용자가 누구이며, 블로거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앱 스토어가 성공을 거둔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논쟁은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경쟁자들도 앱 스토어가 유용한 정보를 아주 쉽고 재미있게 찾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것이 애플이 중시하는 유일한 철학이다.

◆고객이 왕이다 = 애플이 10년 전 소매 전략을 세우면서 세운 한가지 목표가 있다. 고객들이 다른 컴퓨터 업계의 매장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매장을 세우는 것이었다. 담당자인 론 존슨은 고객들에 대한 설문을 통해 호텔 안내 데스크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서비스 받았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런 개념은 현재 애플의 매장인 '지니어스 바(Genius Bar)'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매장은 고객이 가져온 어떤 종류의 애플의 기기도 점검해주고 심지어 기술과 관련되지 않는 서비스도 해준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를 하면서 돈을 받지 않는다. 고객이 돈을 내는 것은 보증 기간이 지난 제품을 수리했을 경우로 한정된다.

◆종교처럼 따를 상징을 만든다 = 브랜드 컨설턴트인 마틴 린드스톰은 애플 애호가들이 마치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과 유사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애플이라는 브랜드는 너무나 강력해 일부 소비자들에게는 종교와도 같다. 이는 애플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종교적인 열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의 상징주의에 대한 노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말했다.

아이팟의 흰색 헤드폰과 매킨토시 컴퓨터의 독창적인 부팅음, 맥북 후면의 독특한 모양 등이 바로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열정을 갖도록 하는 상징들이다.

◆과거는 잊어라 = 앞으로 애플이 소파에 앉아 무선 키보드로 거대한 프로젝터 모니터에 뜨는 영상을 검색하는 '데스크 프리' 컴퓨터나, 스타일러스 없이 터치스크린에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이런 새로운 제품들은 이미 최근 애플의 특허 애플리케이션에 언급된 내용들이다.

애플은 과거에 나왔던 제품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항상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이런 전략은 충직한 고객으로 하여금 새 제품을 구매하도록 했다.

최근 한 고객이 애플에 보낸 한 통의 이메일과 이에 대한 잡스의 답변은 이런 애플의 성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 고객은 2007년에 출시된 아이폰 첫 모델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고 물었고, 잡스는 "미안하지만 그럴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고객의 피드백을 영감으로 승화시킨다 =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더 빠른 말이 필요하다고 답했을 것이다" 

잡스는 종종 포드의 창업자 헨리 포드의 말을 인용해 고객의 희망사항을 반영해 영감을 얻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노트북 컴퓨터 붐이 일기 시작할 무렵 고객들은 애플에 노트북 컴퓨터를 개발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애플은 제품을 내놓지 않았고 노트북 산업을 놓치는 듯했다.

당시 잡스는 "우리는 쓰레기 같지 않은 (노트북) 제품을 500달러의 가격에 만들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는 올해 1월 아이패드라는 매력적인 태블릿 PC를 들고 나와 또 한번 시장을 뒤흔들었다. 아이패드는 그가 종종 언급하던 '빠른 말'을 넘어서는 것이다.

meolakim@yna.co.kr

[시론/신동엽]잡스, 카리스마 리더의 리스크

[동아일보] 

병가(病暇)를 내자 애플 주가가 급락하고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리더임엔 틀림없다. 1970년대 애플 창업 때부터 그는 비범했다. 다들 수익과 성장을 말할 때 갓 스물의 잡스는 “여덟 살 어린이도 쓸 수 있는 싸고 간편한 컴퓨터를 만들어 모든 개인이 컴퓨터를 가지는 시대를 열겠다”며 정보혁명을 주도했다. 승승장구하던 애플은 잡스가 떠나자 위기에 빠졌다가 돌아오자 정상으로 복귀해 모바일 혁명으로 세상을 흔들고 있다. 전 세계 조직은 그런 창조적 리더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특정 리더에 지나친 의존은 위험

그렇다면 잡스는 완벽한 리더인가? 잡스에 대해 창조성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카리스마이다. 그리스어로 ‘신이 준 능력’을 뜻하는 카리스마는 대다수 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비범한 능력을 가졌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특수한 영향력을 말한다. 카리스마적 리더는 사람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과 독특한 행동방식으로 파격적 비전을 제시해 구성원들이 자신을 맹목적이고 열광적으로 추종하게 만든다. 그 조직이나 사회는 높은 성과를 창출하게 된다. 혁명가, 창업가, 위기극복 리더, 독재자, 종교 리더 중에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많다. 잡스는 카리스마적 리더의 전형이다.

그런데 카리스마적 리더는 두 가지 치명적 한계가 있다. 첫째는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므로 잘못된 방향으로 영향력을 발휘해도 열광적으로 리더를 따르게 만드는 부정적 카리스마의 위험이다. 높은 교육 수준의 독일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에 동원된 것은 히틀러의 카리스마가 아니면 설명이 어렵다. 중국 전역의 학교를 없애고 군대 계급장을 떼며 유적을 파괴한 문화혁명체제가 10년이나 지속되었던 것도 마오쩌둥(毛澤東)의 카리스마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치명적 한계는 리더십 승계이다. 카리스마적 리더의 영향력은 대체 불가능하므로 유고 시 조직이나 사회가 갑자기 위기에 빠지게 된다. 티토라는 카리스마적 리더를 중심으로 뭉쳤던 유고슬라비아가 티토 사후 급속히 분열된 것이나 문화혁명체제가 마오쩌둥 사후 불과 1년 만에 붕괴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카리스마적 리더는 특성상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므로 후계자로 또 다른 카리스마적 리더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카리스마 개념을 정리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전근대적 사회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차이를 특정 개인이 아닌 제도 자체가 카리스마적 권위를 가지는지 여부라며 제도가 카리스마를 가지는 카리스마의 일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치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특정 리더가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부의 독립적인 3권 분립 제도가 카리스마를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조직이 리더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져야 한다는 편견으로 카리스마적 리더를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개인보다 시스템 창의성 키워야

애플은 분명 탁월한 기업이지만 잡스 병가의 충격을 보면 특정 개인의 카리스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불안정한 면도 있다. 반면 100년 이상 세계 정상을 유지해온 P&G, 듀폰, 존슨앤드존슨 등은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내지만 최고경영자(CEO)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특정 리더가 아닌 그 기업의 제도와 시스템이 카리스마를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급변하는 21세기 창조사회에서는 특정 리더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조직이나 사회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뛰어나도 한 개인의 창조성이 다양한 역량의 융복합화를 통한 시스템의 창조성을 이기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도 잡스와 같은 창조적 리더를 찾기 전에 제도와 시스템이 창조성과 카리스마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사이버 유토피아, 그건 신기루



평등의 확산 vs. 불평등의 양산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시위에 이어 국내의 '10·26 재·보선'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과시한 것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다. SNS만 있으면 앞으로 모든 독재자는 사라지게 될까. 이제 SNS로 연결된 대중은 한나라당·민주당 같은 기존 정당을 배제하고 '집권세력'이 될 수 있을까. 현장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데 반해, 학자나 전문가의 진단은 아직 항공기 속도 수준인 것이 인터넷 문화의 속성. 국내엔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올 초 미국에서 출간된 'The Net Delusion(인터넷이라는 망상)'이 비교적 흐름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어 미리 소개한다. 지난 7~8월 국내 언론학자들이 펴낸 '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 '소셜 미디어와 사회 변동'도 함께 참고로 살펴보자. /편집자

The Net Delusion (인터넷이라는 망상)

예브게니 모로조프 지음 | Public Affairs|432쪽|27.95달러


2009년 6월 이란 대선 부정에 이은 시위 사태 때 서구 언론은 트위터의 힘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위터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했고, 뉴욕타임스는 "깡패는 총알을, 시위대는 트윗을 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다. 미 국무부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덕에 이란 청년들이 국가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그 기술 덕분에 자유롭게 문자를 주고받던 많은 젊은이들이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 이란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을 가려내는 데 웹에서 찾아낸 사진과 동영상들을 이용했다. 결국 이란 정부는 반대파를 쓸어내고 살아남았다.

"트위터와 인터넷이 이란에 혁명을 일으키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거라는 건 서방의 희망사항이자 일종의 '판타지'였다."

구(舊)소련 벨라루스 태생으로 인터넷 전문가인 저자 모로조프는 애초엔 무제한적이며 검열받지 않는 정보의 흐름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독재를 흔들 거라는 '구글 독트린'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모국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억압하는 데 악용되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생각을 바꿨다.

저자는 억압적 사회에서 인터넷이 정치적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디지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인생이 권태로운 호사가들의 아침식사 약속 수단이었던 트위터가 무슨 정치 혁명의 엔진 대접을 받게 됐다. 기술의 마법에 일방통행식 찬사를 보낸 탓"이라고 꼬집는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도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신발 사듯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면 왜 우리가 군대를 보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모로조프는 인터넷 등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원래부터 친(親)민주주의적이라는 생각, '사이버 유토피아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반박한다. 이런 시각 때문에 서방의 정책 결정자들은 "자발적인 지적 장애"에 걸려 버리고, 민주주의 확산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실 권위주의 정권은 인터넷뿐 아니라 TV 등 모든 종류의 미디어를 통제하며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구동독 지역 여론조사에 따르면, TV로 미국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된 동독인들은 정치에 대한 흥미와 체제에 대한 반감을 잃고 고분고분해졌다. 한 동독 반체제 인사는 "모든 사람이 저녁 8시면 TV를 켜고 동독을 떠나 서방으로 이주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권위주의 정부는 과거의 어떤 사찰 수단보다 더 효과적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대규모 친정부 블로거 군단과 중국판 트위터를 활용해 민족주의·애국주의를 퍼뜨린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서방의 정치평론가에게 "안녕하세요, 사실은 나는 독재에 반대한답니다"라고 트위터 메시지를 보낸다. 공영매체가 신뢰를 잃은 체제하에 사는 사람들은 SNS를 통해 확산되는 친정부 프로파간다를 상대적으로 더 신뢰한다.

전신, 항공기, 라디오, TV가 나올 때도 그랬다. 그들이 모두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꿈을 낳았지만 결국 신기루로 판명 났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미얀마의 폭압 정치나 굶어 죽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보다 포르노나 귀여운 고양이 비디오 따위를 더 보고 싶어 한다. 인터넷은 분노한 정치운동가가 아니라 낄낄대며 소파에 뒹구는 게으름뱅이(couch potato)를 양산한다. 저자는 웹사이트의 고객 정보 수집에 대해서도 "맞춤형 검열(customization of censorship)"이라고 냉소한다.

저자는 '사이버 유토피아주의' 대신 '사이버 현실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은 중립적"이라느니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찬사를 늘어놓기 전에, 그 기술이 사회·정치적으로 확산되는 맥락부터 살펴보란 것이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페이스북, 트위터, 웹이 새로운 민주주의 변환의 물결을 격발할 것이라 믿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

김은미·이동후·임영호·정일권 지음 | 나남|317쪽|2만원

●소셜 미디어와 사회 변동

설진아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270쪽|2만5000원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는 2000만명. 아직은 2030세대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60대 이상의 사용도 점점 늘고 있다. '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이하 SNS) '소셜 미디어와 사회 변동'(이하 소셜)은 한국에서의 SNS 확산 과정, 한국에서의 역할, 여파를 주목한 책이다. 글쓴이들은 모두 언론학자들, 교양용으로 읽기에는 뻑뻑하다.

◇명(明)

소셜 미디어 확산으로 대중은 발언할 권리를 얻게 됐다.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평평화 효과(flattening effect)"(소셜·231쪽)다. 권리를 갖고 있으면 행사하게 된다. "나를 감시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가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 퍼져 있는 수많은 스몰브라더(small brother)들이 언제든지 정치인의 감시자나 고발자로 변신할 수 있다"(SNS·201쪽) 세상을, 사람을 다 바꾸는 잠재력을 가졌다. 그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누구도 쉽게 진단하지 못한다.

◇암(暗)

그렇지만 소셜 미디어는 어디로 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두 책은 소셜 미디어가 외려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지적한다. "기술 발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령층, 저소득층 등의 정보 빈곤층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될 가능성도 증대할 수 있다."(소셜·237쪽), "소셜 미디어에서 친구(혹은 팔로어)의 수는 단순히 교류와 소통의 활성화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보유한 사회자본의 규모를 과시하는 지표 구실도 한다."(SNS·298쪽) 즉 평등미디어가 '디지털 무산자'와 '유산자'를 가르는 신분지표가 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역설은 '소수의 장악'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과거의 권력·자원 양극화와 비슷한 상황이 소셜 미디어 세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말 없는 다수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소수에게 이용당하기만 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SNS·255쪽)

메시지의 맥락은 언제든지 과장·왜곡 될 수도 있다.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메시지 옆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도, 해석되기도 한다. 예컨대 북한의 세습에 대해 평하는 메시지 옆에 재벌의 세습에 관한 메시지가 있는지 아니면 북한의 인권에 대한 메시지가 있는지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SNS·103쪽)

정치·사회적으론 어떤 영향?

'SNS 혁명…'은 "훨씬 폭넓은 의제가 훨씬 다양한 시각에서 다뤄지도록 하는 데 소셜 미디어가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SNS의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과거 인터넷이 확산될 때 '숙의 민주주의 도래'가 성급히 예측된 예를 들며 "정치적 잠재력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고 책을 끝맺는다. 반면 '소셜 미디어…'는 긍정적 효과에 더 주목한다. "사람들이 공개된 정보를 많이 살펴보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수록 정치적 견제와 사회적 균형이 보다 잘 이뤄지고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스티브 잡스 카리스마에 가려졌던 애플의 5가지 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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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5 20:22:42 / 우예진
(w9502@betanews.net)

일본의 다이아몬드 온라인은 스티브 잡스의 사임 후 애플의 5가지 약점이 표면에 드러나면서 지금처럼 호황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은 향후 몇 년 정도는 잡스가 구축해 놓은 체제 아래서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발매하여 호황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IT 업계의 변화는 1년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잡스의 매직이 그 힘을 잃었을 때 애플은 지금처럼 강한 빛을 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잡스는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출시하여 포스트 PC 시대를 열었다. 휴대용 컴퓨터처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언제 어디서나 유저가 원하는 데이터를 꺼내어 열람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애플이 이런 지위를 독점하기 위해 특허 침해를 이유로 라이벌을 지속적으로 제소하는 등 장벽을 높이려고 하지만, 라이벌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반격을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CEO인 팀 쿡이 인솔하는 애플은 5가지 약점을 안게 되었다.

 

(1) 안드로이드에 뒤쳐진 기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는 안드로이드 기기에 있는 고품질 기술이 지원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 유저에게 꽤 인기가 높은 음성인식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지도를 호출해 가고 싶은 장소의 이름(콘서트 홀 등)을 선택하면 안드로이드 휴대폰에서는 곧바로 그 장소가 지도상에 표시된다. 이와 비슷한 음성합성기능도 애플 디바이스에서는 지원하지 않는다.


애플도 음성인식 기능을 차세대 iOS에 탑재할 계획인 것 같지만, 꽤 뒤쳐졌다고 볼 수 있다. 구글처럼 사내에서 동시에 개발되고 있는 기술을 그대로 디바이스에 접목할 수 있는 환경이 없는 약점을 어떻게 커버할 것인가?

 

(2) 클라우드 기술 역시 뒤쳐져
애플은 지금까지 클라우드 기술과 관련해 몇 차례 시도를 해왔으나 실패를 거듭해 왔다. 이번 가을 아이클라우드(iCloud)가 출범되지만 유저의 기대에 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클라우드 서비스 역시 안드로이드 휴대폰에서는 벌써 지원하고 있다.

 

(3) 소셜 네트워크 기반은?
소셜 네트워크 분야에서도 애플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핑(Ping)은 평판이 낮다.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인수에도 문제가 있다. 이에 반해 구글의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구글+(Google+)는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4) 높은 가격을 지속적으로 고수할 수 있는가?
잡스 후에 오는 큰 물결은 아마존의 안드로이드 태블릿 발매. 적자를 각오하고 출혈이 큰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은 아이패드급의 태블릿을 300달러에 판매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약 500달러인 아이패드는 판매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5) 다음의 신제품은 무엇인가?
애플에 관해서 유저들은 언제나 신기한 제품의 출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차례로 발매해온 애플은 벌써 포스트PC 시대의 제품을 모두 내놓은 감이 있다. 애플은 현재 신모델 발표로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제품 출시가 예정되어 있을까?

 

이처럼 잡스라는 존재를 제외하고 나면 애플에는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견해를 바꾸면 지금 애플에 필요한 것은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실무가의 탄생이다.

‘제2의 스티브 잡스’냐, ‘제리 양’이냐 IT 천재를 바라보는 월가의 엇갈린 시각



20년간 함께하자는 약속을 지키기엔 천재 창업주의 꿈이 너무 컸다. 10년의 ‘수렴청정’을 받은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지난 4일(현지시간) 전문경영인 에릭 슈밋(Eric Schmidt·55)에 이어 구글을 진두지휘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래리 페이지(Larry Page·38)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 본격적으로 ‘페이지 시대(The Page Era)’를 맞게 됐다. 페이지는 1998년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37)과 구글을 공동 창업한 후 벤처투자자의 요구로 슈밋을 영입하기 전까지 3년간 CEO를 맡은 적이 있다. 이후 페이지는 제품담당 사장으로 미래사업을 총괄하며, CEO 슈밋, 기술담당 사장 브린과 더불어 구글 의사결정의 최고점인 삼두체제를 구축해왔다.

페이지가 귀환한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구글이 처한 치열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로이터 통신은 “새로운 모바일 기기들이 인터넷 환경을 바꿔놓고 있고, 페이스북·그루폰 등의 소셜네트워크 및 소셜커머스 기업이 빠르게 구글의 주수입원인 온라인 광고사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방대해진 조직이 관료화되면서 최근 수년간 많은 직원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옮기는 ‘인재 유출’의 수모를 겪었다. 그들이 떠나면서 남긴 “창업 초기의 따뜻함과 창의성을 잃어버렸다”는 차가운 작별인사가 페이지에게는 무엇보다 뼈아프게 느껴졌을 법하다.

지난해에는 인터넷 검열 논란 속에 5년 만에 중국 검색시장에서 철수했다. 중국에서의 높은 실적을 기대하던 주주들은 불만스러워했다. 이 과정에서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는 구글 모토를 지키자며 철수를 요구한 브린과 실익론을 내세워 사업 지속을 주장한 슈밋의 충돌이 삼두체제의 균열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페이지가 겹겹이 쌓인 악재를 뚫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 스티븐 레비는 와이어드에 기고한 글에서 “페이지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각인될 잠재력과 개성을 갖고 있다. 페이지만큼 구글의 야망이나 가치, 세계관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반면 그가 거만하고 비밀스러운 면이 있는 괴짜라는 점을 감안하면 구글의 앞날을 예측하기는 더 힘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일단 부정적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나스닥시장에서 구글 주가는 올 1월 20일 페이지가 새 CEO가 될 거라는 발표가 나온 후부터 이달 7일까지 7.5% 하락했다. 이 기간 나스닥지수는 3.4% 올랐다.

페이지를 못 미더워하는 쪽은 10년간 공식업무를 슈밋에게 맡긴 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해왔다고 지적한다. 구글의 첫 번째 직원이었던 크레이그 실버스타인은 AP통신에 “페이지는 성격상 CEO가 되기에는 맞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CEO가 수많은 모자를 써봐야 하는 자리라고 치자. 이 경우 페이지는 어떤 모자에는 엄청난 흥미를 보이겠지만 다른 것들에는 아예 관심을 안 둘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2004년 상장 당시 애널리스트들에게 예상 실적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처음부터 월가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페이지가 단기 실적에는 별 관심이 없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대체에너지 사업과 무인로봇자동차 개발 등 ‘몽상(Pipe dream)’에 가까운 장기계획에 치중한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구글의 전 엔지니어 폴 부크하이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지에게 영업은 우선순위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페이지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구글이 페이지의 머리에서 탄생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지의 몽상이 없었다면 현재의 구글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의 아이디어가 구글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구글 신화를 이룩하는 데 핵심 기술 역할을 한 ‘페이지랭크(PageRank)’는 바로 페이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페이지가 10년간 슈밋으로부터 도제식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CEO가 될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는 주장도 있다. 구글의 전 기술담당 부사장 출신의 더글러스 머릴은 AP에 이렇게 전했다. “페이지는 이제 성숙했다. 회사의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꿰고 있고, 적재적소의 실행 방안과 예측 가능한 유행이 무엇인지도 배웠다.” 

미시간대를 졸업한 페이지의 인생은 95년 실리콘밸리의 산실인 스탠퍼드 대학원에 입학해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면서 꽃을 피웠다. 내성적인 독불장군 스타일의 페이지와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브린은 절묘하게 맞아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의 전신인 백럽(Backrub)을 탄생시켰다.

페이지와 브린은 거의 비슷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페이지가 주도하고 브린이 받쳐주는 관계다. 첫 CEO가 페이지였던 것은 물론 상장 후 워런 버핏을 본떠 주주들에게 해마다 보내는 ‘창립자의 편지’는 항상 페이지의 몫이었다. 실버스타인은 레비와의 인터뷰에서 “둘 다 과학기술에 능하고 상상력이 있지만 비전을 이끄는 쪽은 페이지다. 그는 기회가 있으면 강하게 추진하고 항상 일을 크게 만든다”고 말했다.

10년간 슈밋의 뒤에 있었지만 페이지는 구글의 핵심 사업을 추진하며 미래를 설계했다. 그는 2002년부터 모교인 미시간대의 장서를 기반으로 전자책 서비스를 추진했다. 2004년에는 지메일 무료서비스를 실시했다. 2005년 모바일 운영체제(OS) 기업 안드로이드, 2006년 무료동영상사이트 유튜브를 각각 인수해 해당 분야의 점유율 1위로 키워냈다.

지난 1월 페이지의 복귀 발표 직후 구글은 올해 연간 규모로 사상 최대인 6200명의 직원을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페이지가 본인의 시대를 맞아 인재 확충을 통해 도약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로이터는 “월가의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은 페이지가 구글의 최대 강점인 검색사업과 모바일사업을 굳건히 하는 동시에 구글의 지위를 위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가는 페이지가 애플 신화를 이룩한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될 것이냐, 복귀 후 야후 주가가 50% 이상 하락한 걸 지켜봐야만 했던 야후 공동창업자 제리 양처럼 될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평가한다.

페이지에 우호적인 투자자들은 관료화된 구글 조직에 혁신을 불어넣어 현재 약 1900억 달러인 시가총액을 훨씬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대규모 채용에 따른 비용 증가로 주당순이익이 하락하는 것부터 걱정해야 할 것”(BGC파이낸셜 애널리스트 콜린 길리스)과 같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블룸버그는 페이지가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회사 규모가 커질 때마다 우리의 변화 속도와 열정을 유지하면서 전진하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장 14일 구글의 올해 1분기 실적 발표는 CEO로서 페이지가 오르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공식석상에 나서길 꺼렸던 페이지가 콘퍼런스 콜(Conference Call·상장기업이 기관투자가와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화회의)을 주재할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비전을 전달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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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물귀신 작전’ 글로벌 비난 쇄도

‘아이폰’시리즈로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주목을 받던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졸지에 글로벌 비난의 대상이 됐다. 전 세계인의 ‘공공의 적’이 된 셈이다. 

‘아이폰4’의 수신 불량 문제를 솔직히 사과하지 않은 채 경쟁회사 제품도 똑같다고 변명을 늘어놓은 것도 모자라 한국의 아이폰4 출시 지연 원인을 한국 정부 탓으로 돌리는 등 ‘물귀신 작전’을 펴면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1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스티브 잡스가 한국을 ‘아이폰4’ 출시 국가에서 제외한 것은 한국 정부 승인과 관련된 문제라고 밝혔으나 18일 현재 애플은 한국 정부에 형식등록을 신청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또 “애플 ‘아이폰4’의 한국 출시 제외는 한국 정부의 승인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못박았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아이폰4’를 출시하기 위해 형식등록 신청도 하지 않은 애플이 한국 정부의 승인 문제로 출시를 못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글로벌 ICT 기업 CEO로서 할 일이 아니다”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스티브 잡스가 ‘물귀신 작전’에 끌어들인 블랙베리 제조사 림도 공식적으로 스티브 잡스를 비난했다. 림의 공동 CEO인 마이크 라자리디스와 짐 발실리 등은 성명을 통해 “애플이 자기방어를 위해 림을 끌어들인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대중의 안테나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왜곡하고 애플의 잘못된 상황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에서 “직접 실험해보니 옴니아2나 블랙베리도 안테나 수신 결함이 발생한다”며 “휴대폰 업계 전반의 문제”라고 말했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으로 경쟁사 제품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바 있다. 

‘아이폰4’는 지난달 24일 출시 후 ‘아이폰4’의 왼쪽 면을 잡으면 통화불량 문제가 발생해 소비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 16일 기자 간담회를 열어 “실수를 저질렀다”고 ‘아이폰4’의 통화불량 문제를 시인하면서도 소비자에 대해 진심이 담긴 사과는 하지 않은 채 “사람이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라며 수신불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커버를 무료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cafe9@fnnews.com이구순기자

■사진설명=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한국시간으로 지난 17일 새벽 '아이폰4'의 통화 수신감도 저하 문제와 관련,고무로 된 보호 케이스 '범퍼'(사진)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통화수신감도 저하 문제는 모든 스마트폰의 공통적인 문제"라며 그 사례로 림(RIM)사의 '블랙베리' 등을 직접 언급, 업계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美포춘 "스티브 잡스 프리젠테이션 황당해"


<사진/ 동영상사이트 유튜브 캡쳐>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스티브 잡스의 현실 왜곡'을 비판하고 나섰다.

포춘은 3일(현지시간) 인터넷판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아이패드2 발표와 관련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제품에 상당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사실 왜곡이 기조연설을 훼손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애플이 강조한 '아이패드2'의 핵심특징 가운데 '대량생산되는 첫번째 듀얼코어'라는 문구는 다소 황당했다고 포춘은 지적했다. 이 기사의 필자는 그 이유로 지난 1월 '듀얼 코어'를 장착한 델의 '스트릭7'에 대한 사용후기를 쓴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토로라의 태블릿PC '줌(XOOM)' 역시 듀얼 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으며, 또 대량생산 중인 만큼 첫번째 대량생산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줌은 스크린이나 카메라, 스피커 등 부품 구성면에서 아이패드를 앞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CEO 잡스는 이번 프리젠테이션에서 완전히 오역한 것으로 밝혀진 삼성전자 임원의 말도 인용했다고 포춘은 지적했다.

이날 잡스는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이 유통점 판매는 200만 대를 넘어섰지만 소비자에게 실제로 판매된 경우는 아주 적을 것'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했다. 이는 한 삼성전자 임원이 갤럭시탭 판매가 '아주 순조롭다(quite smooth)'고 한 말을 '아주 적다(quite small)'로 잘못 듣고 쓴 오보로 밝혀졌다.

포춘은 애플이 대중들을 상대로 아이패드의 경쟁 태블릿PC들이 아이패드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도의 일환으로 사실들을 비틀었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의 현실왜곡'(Steve Jobs' reality distortion)은 그가 말하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며,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만든다는 뜻으로 알려졌다.

한경닷컴 김동훈 기자 dhk@hankyung.com


 

존 본 조비, “스티브 잡스가 음악산업 쇠퇴 주범”...왜?

록밴드 본 조비의 리더 존 본 조비가 애플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를 비난했다. 음악산업 쇠퇴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15일 CBS의 보도에 따르면 존 본 조비는 최근 선데이 타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잡스가 아이튠스로 음악 산업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다.

존 본 조비는 “요즘 젊은이들은 헤드폰을 쓰고 볼륨을 올린 뒤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 경험을 잃어가고 있다”며 “어떤 음악이 수록됐는지도 모르는 채 단지 사진 몇 장만 보고 그 음반을 상상해버린다”고 말했다. 이어 “음원을 디지털로 다운로드하는 방식이 음악 산업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놨다”며 “잡스는 음악 산업 쇠퇴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존 본 조비의 이 같은 지적에 누리꾼들은 다양한 반응을 드러냈다. “예전에는 레코드가게에 가서 직접 CD를 들어보고 구입했었는데 이제는 클릭 한 번이면 하드웨어에 음원이 저장되는 시대가 됐다. 환경이 바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존 본 조비의 말도 일리는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굳이 애플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대가 변한 탓이다”라는 반응을 드러내기도 했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m.com

"잡스는 기술로, 부인은 자선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와 부인 로렌 파월 잡스(사진=블룸버그뉴스).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지난 5일 오후 3시(현지시간) 자택에서 호흡정지와 췌장암으로 사망한 56세의 스티브 잡스가 남긴 유산이 무려 70억 달러(약 8조1700억 원)다. 그러나 잡스는 공개 석상에서 '자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지난해 6월 출범시킨 '기부 서약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업으로 성공해 막대한 부를 쌓았으면서도 자선활동에 인색했다는 평가가 뒤따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는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다고 잡스가 자선사업에 인색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고 7일 소개했다. 기부활동이 기록으로 남지 않은 것은 잡스가 익명으로 기부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잡스의 유산 처리 계획이 그가 사망한 지 한참 뒤 공개될 것이라는 점 역시 익명 기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이다.

록밴드 U2의 리드싱어이자 사회활동가인 보노는 "애플이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운동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며 "다른 기업이 애플을 따라 참여하기도 했다"고 옹호했다.

잡스의 자선활동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그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지 자선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였던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부인 로렌 파월 잡스(47)의 지난 활동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

잡스 부부는 교육개혁과 여성문제에서 많은 자선활동을 펼치고 민주당 후보자들을 지원하는 등 진보운동에도 깊이 관여해 왔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1997년 로렌과 함께 교육개혁 단체 '칼리지 트랙'을 공동 설립한 카를로스 왓슨은 1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과 가진 회견에서 "로렌은 누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누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해야 하는지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며 "그는 주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한다"고 평했다.

칼리지 트랙은 지금까지 저소득층 학생 1000여 명을 공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90%는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로렌은 교육개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대다수가 흑인 혹은 히스패닉인 이들 학생과 자신의 집이나 아이의 집에서 만나 대화하며 소통했다.

로렌은 자신이 현재 이사로 있는 '뉴 스쿨스 벤처 펀드'에도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뉴 스쿨스 벤처 펀드의 테드 미첼 최고경영자(CEO)는 "로렌이 교육정책을 둘러싸고 비영리 기관과 정치인들에게 조언해왔다"고 전했다.

로렌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2005년 세계 여성의 교육 개선용으로 2000만 달러나 모금한 '여성 글로벌 펀드'(GFW)의 공동 의장직도 맡았다.

미국 뉴저지주 출신인 로렌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1980년대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와 메릴 린치에서 일했다. 이후 스탠퍼드 대학 경영학 석사 과정에 진학해 공부하다 스티브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결혼에 골인한 것은 1991년. 슬하에 3명의 자식을 뒀다.

한편 스티브의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80)는 결국 생전의 아들과 만나보지 못한 채 10일 월스트리트 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애플의 신제품이 나오면 곧바로 사는 얼리 어댑터"라며 "스티브는 천재였다"고 아쉬워했다.


"21세기 스티브 잡스는 월가 시위대 중에서 나올 것"

경제위기가 낳은 티파티와 월가 시위, 무엇이 다른가

 [프레시안 김봉규 기자]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미국에서 극우 시민 네트워크 티파티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라는 두 개의 '시민운동'을 낳은 셈이 됐다. 공화당의 편에 서서 극우적인 관점을 대변하는 티파티는 이미 지난 여름 미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선 증액 협상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의 항복을 이끌어내며 비타협적인 태도를 '과시'했다.

이에 반해 '평범한 99%'를 대표한다며 시작된 월가 시위는 당파성을 띠지 않고 미국의 경기 침체를 유발한 '1%'를 비판하고 나서 공화당 및 티파티의 대척점에 서있다. 티파티가 재계 거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반해 월가 시위가 온라인 모금 등 일반 시민들의 기부로 지속되고 있는 것도 차이점이다.

두 운동 다 미국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해법을 요구하고 있지만 표출 양상이나 관점은 이처럼 정반대로 흐르면서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메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15일 논평에서 월가 시위에 맞불을 놓는 보수 진영의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티파티는 '배제' 월가 시위는 '포용'

경제위기라는 같은 토대에서 출발한 두 운동이지만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현상에 대해 심리학자인 토드 에시그 뉴욕 의과대 교수는 '배재(exclusion)'와 '포용(inclusion)'의 정신이 둘을 가르는 근본 요소라고 분석했다.

에시그 교수는 16일 <포브스> 칼럼을 통해 우선 티파티와 월가 시위는 동기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경제위기에 따른 분노와 공포, 좌절, 그리고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한 신뢰 등은 두 운동 모두 다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제'를 앞세운 티파티는 오바마 대통령을 '미국적이지 않다'라고 여겼고 여기에는 일정 부분 인종차별적 요소가 반영됐다고 에시그 교수는 분석했다.

티파티의 배제적 태도는 또한 '미국의 중심'이 아닌 곳에서 오는 모든 것을 거부했고,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구분했다. 또한 '미국적이지 않거나 헌법에 반하는' 모든 것을 나쁜 것으로 보고 경제위기의 책임을 '우리가 아닌 그들'의 잘못이라고 규정했다. 에시그 교수는 이를 가리켜 "문을 걸어 잠근 채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고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 공화당 대선 주자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티파티 회원들. 롬니 전 주지사는 티파티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주코티 공원 '공동 부엌'이 상징하는 것

반면, 월가 시위대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었고 모두가 발언권을 가질 수 있어서 티파티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월가 시위대들에게 '우리'는 티파티의 배제주의와 달리 전 세계적인 차원의 '우리'였다는 것이다.

월가 시위대의 이러한 특징에는 민주적인 운동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과, 그릇된 관점까지도 모두 표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공존한다. 하지만 에시그 교수는 시위대에 참가한 일부가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월가 시위대는 이를 '그들'이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월가 시위대의 모습은 그간 미국에서 찾기 힘든 모습이어서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17일 <AP>는 월가 시위대가 머물고 있는 뉴욕 리버티 플라자 공원(주코티 공원)에서의 음식 조달이 이른바 '공동 부엌'을 통해 이뤄지는데 주목했다. 부엌에서 일하는 시위대는 모두 자원한 이들이며 전체를 통솔하는 리더 없이 가장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그날의 할 일을 정해준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데 익숙한 청년들이 한 공간에 오랫동안 함께 머물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시위대들이 '공동의 공간'을 점유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있고, 다른 이들의 말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됐다는 시위대의 말을 전했다.

이같은 양상에 대해 미국의 진보 논객인 나오미 클라인도 지난 6일 시위대를 상대로 진행한 연설에서 "서로 시선을 회피하며 '남들은 죽게 내버려 둬'라고 말하도록 가르치는 (미국의) 문화 속에서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라는 시위대의 문구는 매우 급진적인 선언이었다"라고 감탄한 바 있다.

▲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월가 시위대의 모습. ⓒAP=연합뉴스

"제대로 된 자본가라면 월가 시위 두렵지 않아"

에시그 교수는 티파티가 항상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세계를 바라보는 반면 월가 시위대는 공동체에 대한 약속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시위대의 성향은 타인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티파티보다는 월가 시위대에 더 가까운 성향을 가졌다고 고백하면서 월가 시위대가 반자본주의적 속성을 띄고 있다는 비판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월가 시위는 자본가들에 대한 운동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똑똑한 자본가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라며 "소수의 재벌(oligarch)들이 두려움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시그 교수는 이어 기업과 경영자들이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할 뿐 아니라 정치권에 대한 로비를 근절해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그렇게 해도 미국의 기업가 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스티브 잡스가 1960년대의 급진주의 사상과 정신 탐구 풍조에서 나온 기업가였다면 21세기의 차세대 기업인은 월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청년 중에서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월가 시위가 극단주의와 폭동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시위대의 핵심 메시지는 "로비스트의 주머니에서 월가의 돈을 빼내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며, 진짜 자본가들이 소수의 재벌을 이기게 하자"라는 것이라며, 이는 곧 희망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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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없는 애플 스티브 잡스…美 의회 청문회 준비



“신기술에 무지한 사람들이 그릇된 결론들을 내놨다”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월스트리트저널(WSJ) 온라인 매체 '올싱즈디지털'은 27일(현지시간) 애플의 스티브잡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애플의 위치추적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매체에서 잡스는 “우리는 누구의 위치도 추적하지 않았다.”며 “아이폰에 저장된 위치정보는 사용자 주변의 와이파이존과 기지국 데이터베이스”라고 전했다.

1년치 데이터가 필요하냐는 물음에는 “그것은 버그”라며 아이폰이 고객 데이터를 7일 이상 저장할 필요가 없다는 데에 애플의 공식 해명과 입장을 함께했다.

이 같은 해명을 두고 해외 외신 등은 잡스가 애플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사과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한편 미국 의회는 이번 사태를 놓고 애플과 구글 등에 공개질의와 청문회를 준비할 방침이며 국내 방송통신위원회도 최근 애플코리아 측에 공식 질의서를 보낸바 있다.

방통위는 애플의 해명과 조만간 듣게 될 답변에 따라 모바일 시큐리티 포럼, 위치정보법 연구반 등 전문가 연구반을 통해 법·제도적 검토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구글 코리아에 대해서도 공식 질의서를 보내 이용자의 위치정보보호 수준 및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위치정보법)’ 등 프라이버시 관련법의 위반여부도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포춘 "스티브 잡스 통계 왜곡" 조목조목 비판
심나영 기자 (csnews@csnews.co.kr) 2011-03-04 10:00:37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전문지인 포춘이 “아이패드2 공개 현장에서 각종 통계자료를 왜곡했다”며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잘못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포춘 인터넷판에 따르면 포춘의 IT전문 블로거인 세스 웨인트로브는 3일 '스티브 잡스의 현실왜곡이 진실을 훼손한다'(Steve Jobs' reality distortion takes its toll on truth) 제목의 기사를 통해 애플이 2일(이하 현지시간) 아이패드2 공개 현장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아이패드의 경쟁 태블릿PC들이 아이패드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도의 일환으로 사실들을 비틀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제목에 인용한 '스티브 잡스의 현실왜곡'(Steve Jobs' reality distortion)은 그가 말하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며,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만든다는 뜻으로, IT업계에 널리 알려진 말이다. 

웨인트로브는 우선 “애플이 제시한 아이패드의 핵심특징 가운데 '대량생산되는 첫번째 듀얼코어'라는 문구는 다소 황당했다”며 “지난 1월 '듀얼 코어'(두 개인 프로세서 코어를 하나로 통합, 집적화한 것)를 장착한 델의 '스트리크7'에 대한 사용후기를 쓴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 제품은 그때 이후 T-모빌에 대량 납품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서 “모토로라의 줌(XOOM) 역시 같은 듀얼 코어 프로세서를 가지고 있으며 역시 대량생산 중인 만큼 첫번째 대량생산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잡스가 이번 프리젠테이션에서 완전히 오역한 것으로 밝혀진 삼성전자 임원의 말을 인용했다”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듣는다”고 꼬집었다. 

이날 잡스는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에 대해 '유통점 판매는 200만 대를 넘어섰지만 소비자에게 실제로 판매된 경우는 아주 적을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인용했는데 '아주 순조롭다(quite smooth)'는 삼성전자 임원의 말을 '아주 적다(quite small)'로 잘못 듣고 쓴 오보라는 사실이 오래전에 밝혀진 바 있다는 것. 

아이패드가 지난해 90%의 시장점유율을 가졌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애플은 작년에 태블릿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90%가 될려면 삼성전자의 갤럭시탭과만 비교해도 최소한 320만대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웨인트로브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제품에 상당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사실 왜곡이 기조연설을 훼손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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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리포트

저커버그 "스티브잡스, 당신이 만들어낸 것은…"

빌게이츠 "그와 일한 건 큰 영광"…구글, 삼성전자, 안철수연구소도 애도

기사입력 2011-10-06 오전 11:21:43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 IT 업계의 '동업자'들이 잇달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잡스는 5일(현지시간)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스티브, 멘토가 돼 주셔서, 친구가 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며 "당신이 그리울 것"이라고 조의를 표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의 초창기,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나는 비전과 리더십에 대한 영감을 찾기 위해 쿠퍼티노(시의회, 잡스는 이곳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진행했다)를 바라봤다"면서 "스티브, 최고를 위한 당신의 열정은 내가 지금 이 메시지를 쓰고 있는 '맥북'을 포함해 애플의 제품을 만져 본 누구에게도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린은 "구글의 모든 사람들과 (IT)기술에 종사하는 광범위한 사람들 모두는 당신을 매우 그리워할 것"이라며 "(잡스의) 가족, 친구들과 애플의 동료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스티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돼 매우, 매우 슬프다"면서 "잡스는 믿기지 않을 성취와 놀라운 명민함을 지닌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기렸다.

페이지는 "내가 구글의 최고경영자가 됐을 때 잡스는 매우 친절히 대해줬고 심지어 건강이 좋지 않을 때에도 그의 지식과 조언을 들려주느라 시간을 냈다"면서 "구글 직원들과 내 심정은 잡스의 가족과 애플 직원들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새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팀 쿡은 애플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애플은 예지자이자 창조적인 천재를 잃었으며, 세계는 경이로움을 간직한 한 인간을 잃었다"면서 "스티브를 알고 그와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우리는 가까운 친구이자 영감을 주는 멘토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쿡은 이어 "스티브는 그만이 이룩할 수 있는 기업을 남겼으며, 그의 정신은 영원히 애플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쿡은 "스티브의 비범한 인생을 기리는 사내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며 "잡스에 대한 생각과 추억, 조의를 나누고 싶은 직원은 이메일을 통해 알려달라"고 말했다. 쿡은 끝으로 "스티브를 잃은 슬픔과 그와 함께 일할 기회를 가졌던데 대한 감사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은 없을 것"이라며 "그가 사랑했던 일에 더욱 매진함으로써 그에 대한 기억을 명예롭게 하자"고 덧붙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만큼 다가올 많은 세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충격을 준 이는 거의 드물 것"이라며 "그와 함께 일했던 건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잡스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개발자회의(WWDC)에서 '아이클라우드(iCloud)' 서비스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스티브 잡스. ⓒ뉴시스

한국 기업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안철수연구소는 공식 트위터(Ahnlab_man)를 통해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이라며 "하지만 그의 유산은 남아있을 것이다. 울컥하다"고 전했다.

LG전자 관계자는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이끈 천재성이 이렇게 돼 안타깝고 애도를 표한다"라고, 팬택 관계자는 "현재 모바일 업계의 큰 틀을 만든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달리해 조의를 표한다"며 "애플이 가져온 혁신과 충격의 원천은 스티브 잡스였다"고 밝혔다고 <디지털데일리>가 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자 세계 IT 업계를 이끈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조만간 공식적인 애도의 뜻을 표할 예정"이라고 <전자신문>에 말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신작 '아이폰4S'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이날 프랑스와 이탈리아 법원에 제기한 바 있다.

정치권도 반응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애도 성명을 내고 "스티브는 가장 위대한 미국의 혁신가들 중 하나였다"며 "다른 생각을 할 만큼 충분히 용감했고, 자신이 세계를 바꿀수 있다고 믿을 만큼 충분히 대담했으며, 실제로 해낼 만큼 재능이 있었다"고 추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 중 하나를 자신의 창고에서 만들어낸 잡스는 미국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며 "컴퓨터를 개인용으로 만들고 인터넷을 우리의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그는 정보 혁명을 단지 가능케 한 것이 아니라 직관적이고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잡스의 업적을 기렸다.

오바마는 "잡스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전 산업을 재정의했으며 인류 역사에 보기 드문 위업을 이뤘다"며 "그는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세계는 한 명의 공상가(a visionary)를 잃었다"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잡스가 발명한 기기로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는 것만큼 그에게 큰 찬사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의 본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州)의 제리 브라운 주지사는 "스티브 잡스는 캘리포니아의 위대한 혁신자였고 완전히 독립되고 창조적인 마음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면서 "그런 강력하고 품위 있는 인상을 우리들의 삶에 줄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 에릭 슈미트 (구글 CEO)

스티브는 다시는 없을 스타일과 기술의 세대를 정의했다.

△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CEO)

위대한 친구였고 신뢰받는 조언자였다. 그의 유산은 그가 창조해낸 상품이나 건설한 회사 그 이상이다. 그의 유산은 그가 영감을 불어 넣은 수백만의 사람들이며, 그가 바꾼 (그들의) 삶이며, 그가 정의한 문화다. 스티브는 그런 '독창적인 사람'(an "original")이었다. 그가 이룬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는 막 시작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의 죽음으로 세계는 아주 드문 독창적 인물을 잃었고, 디즈니는 가족 중 한 명을 잃었으며, 나는 훌륭한 친구를 잃었다.

△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감독)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이후 가장 위대한 혁신가였다. 그는 세계를 우리의 손가락 끝에 올려놓았다.

△ 조지 루카스 (영화감독)

스티브의 마술은, 다른 모든 이들이 현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그는 자신이 만지는 것의 모든 것의 진정한 가능성을 보았고 비전에 대해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믿기지 않는 가족과 앞으로 몇 년간 사람들에게 말을 걸 계속될 유산을 남겨두고 떠났다.

△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미국의 기업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사업관리자이며 혁신가 중 하나였다.

△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언제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며 창조자이고 기업가였던 한 인물을 잃었다.

△ 리키 마틴 (가수)

즐거움이 비롯된 곳. 우리는 당신과 같은 인물을 이번 생에서는 더 볼 수 없을 것이다. 스티브,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곽재훈 기자 메일보내기


팬택의 스티브잡스 비판 ‘살벌’…“교주 타도”

[지디넷코리아]“그는 신(神)이 아니다. 마음은 그가 입은 터틀넥처럼 검다” 

국내 휴대폰 제조 3위 팬택이 애플의 교주 스티브 잡스를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스마트폰 신작 ‘베가’ 출시를 앞두고 공격자세를 취한 것. 

팬택은 15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베가’ 발표회를 열고, 아이폰4와 정면 승부하겠다며 일종의 ‘선전포고’를 날렸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우리는 이용자들에게 제품의 특정 부위를 잡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며 “어디든 잡고 편하게 통화하라”고 밝혔다. 

이는 왼쪽 하단을 잡으면 수신감도가 떨어진다는 ‘아이폰4’의 약점을 직접 공격한 발언이다. 미국서는 잡스가 ‘아이폰4 왼쪽 하단을 잡지 말라’고 이메일을 보냈다는 루머도 돌았다.
▲ 박병엽 팬택 부회장.
팬택은 계속해서 잡스를 도마에 올렸다. 잡스가 아이폰4를 발표하는 장면을 대형 스크린에 보이며, 조목조목 오류(?)를 꼬집었다. 

우선, 잡스가 “앱스토어에 등록 신청하는 애플리케이션의 95%를 받아들인다”며 “나머지 5%는 ‘우리’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밝히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팬택 측은 “잡스가 생각하는 ‘우리’는 애플 기준에 맞춘 사람이다”, “개발자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우리’가 될 것을 강요한다”, “그 우리는 ‘돼지우리’인가” 등의 자막을 잡스 화면 아래 올렸다. 

이어 “잡스는 아이폰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하는데 2013년이면 안드로이드가 역전한다”며 “한국에서는 지난 5월 안드로이드폰 진영 점유율이 아이폰을 이겼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등장한 것은 미국서 유행하는 '잡스 조롱' 애니메이션이었다. 미국 특유의 독설이 여과 없이 나왔는데, 팬택은 이를 매우 추천하는 모습이었다. 

기본적인 내용은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심슨’이 아이폰 매니아들을 '옳은 길(?)'로 인도한다는 것. 

“과일이 그려진 500달러 폰을 들고 좋아하나요?”, “당신(잡스)의 마음은 터틀넥보다 검다”, “그가 터틀넥을 입고 나와 ‘이게 최고’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생각없이 줄을 선다”, “그는 어도비와 싸우고 기분이 상해 플래시를 빼버렸어요” 등의 대사를 행사에 참석한 기자들이 지켜봤다. 

세계 유수 휴대폰 제조사들이 ‘타도 애플’을 외치는 중이지만, 팬택처럼 잡스를 원색적으로 비판한 사례는 흔치 않다. 삼성전자도 아이폰 얘기가 나오면 거의 '노코멘트'로 일관한다. 

박 부회장은 “잡스는 존경스러운 CEO지만 우리가 반드시 잡겠다”며 “그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이 아닌 기술로 붙으면 우리가 이긴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어떤 기업과는 달리 대만이 아닌 한국서 직접 제품을 만든다”며 “한국인의 오기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아이폰4에 대해서도 인색한 평가를 내놨다. 아이폰4는 무겁고 투박하며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떨어지는 '기계'일 뿐이라는 것이 박 부회장의 생각이다. 

반면, 삼성전자 갤럭시S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 부회장은 ‘삼성답게 제대로 만든 역작’이라는 표현을 쓰며 갤럭시S를 칭찬했다.

이 밖에 LG전자 스마트폰 '옵티머스' 시리즈에 대해서는 “제가 평가하는 것이 예의에 맞지 않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도 보였다. 평소 LG전자를 이미 이겨 국내 스마트폰 2위에 올랐다고 주장해 온 박 부회장이기에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잡스, 에디슨 반열에 놓을 순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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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파이낸스]

“스티브 잡스는 천재적 혁신가이지만 토머스 에디슨, 헨리 포드, 라이트 형제 등과는 격이 다르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8일자 기사에서 사망 후 ‘위인급’ 칭송을 받고 있는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공적을 거품없이 냉정하게 평가하자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의 업계 담당 릭 뉴먼 선임기자는 잡스가 이끈 애플의 혁신이 컴퓨터를 재미있고 사용하기 쉽게 만들었지만 애플의 제품들이 자동차, 전구, 비행기와 대등한 수준의 사회적 파장을 야기한 것은 아니었다고평가했다.

뉴먼은 그러면서 잡스를 “예술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컴퓨터와 사용자 간의 매개체)를 개발할 줄 알았던 실용주의자”로 평가했다.

그는 이어 “잡스는 미국 업계 역사에서 드문 일을 해냈다”면서도 그가 한 일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잡스는 그의 아이디어를 자신이 도달한 수준 너머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많은 ‘애플의 조수들’을 남겼다”고 부연했다.

또 ‘비밀주의’와 ‘폐쇄성’ 등 애플의 기업문화에 대한 비판도 고개를 들고 있다고 CSM은 소개했다.

작가 마이클 데이지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애플 제품의 사용자들은 자기 뜻대로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없고, 애플이 통제하는 애플의 서버로부터 다운로드를 받아야 한다”며 모든 프로그램은 “애플의 통제와 검열을 받는다”고 썼다.

데이지는 또 “한때 애플의 컴퓨터는 미국에서 제조됐지만 지금 그 회사의 제품들은 노동환경이 열악한 중국에서 생산된다”고 꼬집었다. 애플이 저임금의 중국 노동력에 의지함으로써 미국 내 고용창출에 기대만큼의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세계파이낸스 뉴스팀 fn@segyefn.com

 

“스티브 잡스, 에디슨·라이트 형제보다는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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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미 언론들 ‘냉정한 평가론’

애플의 창업주인 고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의 공과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8일 시사주간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의 릭 뉴먼 선임기자의 말을 인용해 “잡스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대통령이나 교황의 수준을 뛰어넘지만 토머스 에디슨이나 헨리 포드, 라이트 형제만큼 조명을 받아야 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뉴먼은 그 이유를 “애플의 혁신은 컴퓨터를 재미있고 사용하기 쉽게 만든 점이지만 애플의 제품들이 에디슨의 발명품인 전구나 포드의 자동차만큼 사회적인 파급력을 갖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전구는 촛불이나 가스등 때문에 일어나는 화재를 방지하고 공장에서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등 제2, 제3의 변화를 이끌었지만 애플의 제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뉴먼은 그러면서 “잡스가 한 일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그를 ‘실용주의자’라고 평가했다.

‘비밀주의’와 ‘폐쇄성’으로 대변되는 애플의 기업문화도 비판의 도마에 올렸다. 

신문은 작가 마이클 데이지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인용해 “애플 제품 사용자들은 자기 뜻대로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없다. 모든 프로그램은 애플의 통제와 검열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제품들이 노동환경이 열악한 중국에서 생산된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8일 “미국 자본주의의 이 영웅(잡스)은 중국의 고용을 창출하는 공격적인 ‘외주제작인’이었다”고 꼬집었다.

<조홍민 기자 dury129@kyunghyang.com>


잡스 “MS는 지옥” 독설에 게이츠와 대담 무산될 뻔

ㆍWSJ 칼럼니스트 모스버그 ‘14년 인연’ 공개

“잡스는 내게 수시로 전화해 애플의 제품을 놓고 장시간 토론했다. 아내는 (잡스가) 우리의 주말을 망친다고 불평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정보기술(IT) 전문 칼럼니스트 월트 모스버그(64·사진)가 애플의 창업주인 고 스티브 잡스와 나눈 14년간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모스버그는 지난 6일 저널을 통해 최고경영자(CEO)로서 잡스의 면모를 전하면서 “그는 천재였고,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모스버그는 월스트리트저널 산하 IT 전문 인터넷매체인 올싱스디지털(All Things Digital)을 이끌면서 주요 제품의 사용후기와 칼럼 등으로 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모스버그는 먼저 잡스가 1997년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4~5주 연속으로 일요일 밤에 자신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잡스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면서 “비보도를 전제로 디지털혁명에서 애플 제품의 디자인·색상 등을 놓고 장시간 토론했다”고 소개했다. 

모스버그는 자신이 쓴 애플 제품 사용후기 기사를 잡스가 읽고 불평하기도 했으며 “당신의 칼럼에 대해 코멘트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고 술회했다.

일부에서는 잡스의 ‘독선적인 경영’을 비판했지만 모스버그는 “나와 대화할 때는 항상 낙관적이고 확신에 차 있었다”고 전했다. 모스버그가 자신의 관점에서 경쟁사들을 비판할 때도 잡스의 목소리는 평정심을 유지했고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또 워싱턴에 애플스토어를 처음 열 때 모스버그가 “단지 몇 개 내는 데 그칠 것 같다”고 하자 잡스는 ‘미친 것 아니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계속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당시 “실물크기의 애플스토어 모형을 만들어놓고 유리의 투명도나 나무 색깔까지 일일이 챙기는 등 내부 시설 배치에만 1년을 보냈다”고 모스버그에게 귀띔하기도 했다.

모스버그는 가끔씩 회사로 초청받아 곧 출시될 신제품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잡스는 그때마다 임원 몇몇과 함께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열정 넘치는 목소리로 제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패드를 처음 보여줄 때는 건강문제 때문에 사무실이 아닌 집으로 초대받았다”고 모스버그는 회상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와 잡스의 올싱스디지털 공개대담이 무산될 뻔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당시 모스버그는 게이츠가 대담장에 도착하기 직전 잡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애플 아이튠스가 수억대의 윈도PC에 설치되는 등 “애플이 윈도의 주요 개발자가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잡스는 “지옥에서 누군가에게 얼음물 한 컵을 주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도착한 게이츠가 이 얘기를 전해듣고 “그러면 내가 지옥에서 온 대표란 말이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잡스가 찬물 한 병을 건네주자 누그러졌고 대담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모스버그는 “대담이 끝나자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일부는 눈물을 쏟기까지 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조홍민 기자 dury129@kyunghyang.com>


입력 : 2011-10-09 21:27:25수정 : 2011-10-09 21: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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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기부에 인색' 논란



뉴욕타임즈 "공식기부 기록 없어" ...타임지 "사내 자선 프로그램도 폐지"

[워싱턴=CBS이기범 특파원] 스티브 잡스 사후 사회적 기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83억 달러(한화 9조 7천억원)로 추정되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사회적 환원을 했다는 기록이 없어 '자신의 회사를 성장시키는데는 천재였는지 몰라도 기부에는 인색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7일(한국시각) "경쟁자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는 달리 잡스는 생전에 '부의 사회환원' 서약을 하지 않았다"며 "인디애나대학 박애센터가 관리하는 1백만 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고 보도했다.

WP는 "'잡스가 돈을 기부를 했다거나 병원 또는 연구소 등을 지어 기부했다는 공식 기록도 없다'고 뉴욕타임즈가 최근 보도했으며 '애플에 복귀한 직후인 1997년 애플의 자선 프로그램을 폐지했으며 지난해 140억 달러에 이르는 흑자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복구하지 않았다'고 타임지가 보도했다"고 전했다.

WP는 자선단체 관계자의 말을 빌어 "잡스의 이런 행동은 조금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잡스의 지지자들은 '잡스가 각종 혁신적인 기기를 만들어 이미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또한 익명으로 금전기부를 했을 수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특히 애플이 자사제품 판매금액의 일부를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에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잡스가 기부에 인색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잡스는 애플에서 해고된 뒤 1985년 '스티브 잡스' 재단을 만들어 사회 기여방안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만드는 일에 얽매여 재단은 이내 문을 닫았다.

한편 그의 유산 처리여부에 대해서는 애플이나 유족 측 모두 함구하고 있다.

hope@cbs.co.kr

억만장자 '스티브 잡스' 기부에 진짜 인색했을까


<사진/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출처: 유튜브>

스티브 잡스가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하고 기부에는 인색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7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와는 달리 잡스는 이렇다할 자선활동을 하지도 않고, 자선단체에 내놓은 기부금도 눈에 띄는 것이 없어 자선에 인색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조사한 잡스의 재산은 70억 달러, 우리 돈 8조 3000억원 가량이다. 이는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 업체 '픽사'를 디즈니에 팔면서 받은 디즈니 주식 1억3800만주와 창업 당시부터 보유하고 있던 애플 주식 540만주 등 주식평가액에 따른 재산이다. 

그러나 억만장자에도 불구하고 인디애나대학 자선센터가 집계하는 1백만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에 잡스의 이름은 빠져 있다. 그는 1986년 한 때 '스티븐 P. 잡스'라는 재단을 만들기도 했지만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1997년 애플로 복귀한 뒤에는 사내 자선프로그램을 폐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난 8월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인 앤드루 로스 소킨은 "스티브 잡스의 공개 기부 관련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잡스가 천재이고 혁신가이며,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억만장자일 것"이라며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유명 자선가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소킨은 "잡스가 애플과 디즈니 주식 등을 포함해 수십 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자선기금을 냈다는 공개기록이 없다"면서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만든 '기빙 플레지'운동의 회원도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잡스가 자신의 부를 자랑한 적도 없고 애플에 재직하는 동안 연봉 1달러만 받았다"면서 "오히려 이런 점이 그가 왜 자선행위를 하지 않았는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러나 "잡스의 옹호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없다고 해서 그가 자선사업에 인색했다고 볼 수 만은 없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옹호자들의 의견은 일단 잡스가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이미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했고, 애플 역시 여러 사회활동을 했다는 것. 

영국의 록밴드 U2의 리드싱어이자 사회활동가인 보노는 "애플이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운동에 매우 귀중한 역할을 했다"면서 "애플의 기여가 다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고 옹호했다.

또 기부활동이 기록으로는 남지 않았지만 잡스가 익명으로 기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옹호자들은 보고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편집자인 데보라 제이콥스는 잡스의 익명 기부 가능성을 제기하며 "그가 자신의 돈으로 무엇을 할지는 그가 선택할 문제"라며 "이와 관련해 침묵할 권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너무 바쁘게 활동했기 때문이지 자선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스티븐 P. 잡스' 재단에 참여했던 마크 버밀리온은 "잡스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공개적인 자선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스티브 잡스 사망]그는 자선활동에 인색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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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스티브 잡스는 사업적으로 성공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자선사업에는 인색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제까지 공개된 잡스의 자선 활동이 그다지 많지 않으며 자선단체에내놓은 기부금도 이렇다 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 때문에 그가 자선사업에 인색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는 다르게 잡스는 재산의 최소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의 회원도 아니며 공개적인 기부도 거의 없었다는 것.

실제 인디애나대학 자선센터가 집계하는 100만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에 잡스의 이름은 빠져 있다.

잡스의 인색함은 지난 8월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기자이며 미국 금융위기를 다룬 소설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저자이기도 한 앤드루 로스 소킨의 인터넷 칼럼으로 이미 한차례 회자가 됐었다. 

소킨은 당시 '스티브 잡스의 공개기부 관련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잡스가 천재이고 혁신가이며,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억만장자일 것"이라며 "하지만 놀랍게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유명 자선가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소킨은 잡스가 애플과 디즈니 주식 등을 포함해 83억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자선기금을 냈다는 공개기록이 없으며,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만든 '기빙 플레지'운동의 회원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잡스는 이 운동 가입 권유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심지어 그의 이름이 들어간 병원 건물이나 대학건물도 없다고 소킨은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자선활동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필랜스로피'의 칼럼니스트인 빈센트 슈텔레는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자신들만의 특징을 살려 사회를 돕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애플의 경우는 다소 실망스러웠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잡스의 옹호자들은 눈에 보이는 활동이 없었다고 해서 잡스가 자선사업에 인색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옹호자들은 일단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이미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한 셈이라고 말하고 있다.

옹호자들은 또한 기부활동이 기록으로 남지 않은 것은 잡스가 익명으로 기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잡스의 남은 재산 처리계획도 그가 죽고 한참이 지난 뒤에나 공개될 것이란 점도 잡스의 익명 기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게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록밴드 U2의 리드싱어이자 사회활동가인 보노는 애플이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운동에 매우 귀중한 역할을 했다면서 애플의 기여가 다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고 옹호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드러난 자선활동이 없었던 것은 그가 너무 바쁘게 활동했기 때문이지 자선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지난 1985년 애플에서 나온 잡스가 만들었던 '스티븐 P. 잡스 재단'에 참여했던마크 버밀리온은 잡스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공개적인 자선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잡스, 후계자 양성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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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애플사의 전임 최고경영자(CEO)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많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아직 잡스의 후광으로 애플사의 실적은 굳건하지만 머지않아 후계자의 부재가 실적에도 반영될 수 있다고 지적됐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애플 사례를 통해 장기적인 승계 계획(Succession Plan)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배성오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7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잡스는 2004년부터 췌장암으로 투병했기 때문에 승계 계획을 세울 시간이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면서 “팀 쿡은 제품을 만드는 리더이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향후 회사의 심각한 리스크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배 연구원은 이날 ‘잡스의 죽음을 통해 본 위기관리 경영’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요 경영진의 승계 계획 실패로 경영위기를 맞았다고 했다. 월트디즈니사는 1966년 CEO인 디즈니의 사망으로 리더십 공백기를 맞았고 경영정상화에 20년이 소요됐다. 소니는 1999년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사망한 후 혁신제품 개발에 실패한 바 있다. 

배 연구원은 “일본의 경우 CEO 승계 실패로 폐업하는 기업 수가 연간 7만개에 달한다.”면서 “최근 중국의 하이얼(가전제품 제조업체), 화웨이(통신장비 제조업체), 레노버(컴퓨터 제조업체) 등도 CEO 승계가 핵심 이슈”라고 전했다.

그는 “아직은 잡스의 후광으로 애플이 건재하지만 노키아, 구글 등 반대전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추후 애플도 비슷한 경영위기를 겪을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승계 계획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승계 계획’은 후임자를 단순히 지명해 놓는 ‘대체 계획’이 아니라 후임자 후보군을 사전에 선정하고 CEO에게 필요한 역량을 갖추도록 해 체계적으로 CEO를 길러내는 개념이다. 배 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업들도 60세 이상 경영자 비율이 1993년 10.6%에서 2007년에는 17%로 급격히 늘고 있다.”면서 “하지만 승계 계획 도입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기업 GE의 유명한 CEO인 잭 웰치나 제프리 이멜트는 6년 정도의 승계 계획을 통해 육성 및 선발됐으며, 인텔은 현직 CEO가 직접 승계 후보자를 대상으로 직무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 연구원은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창업자의 리더십 부재가 경영위기가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후계자의 경영능력을 검증하고 장기적인 육성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

스티브잡스, 선구자인가 독재자인가?

<가디언>이 조명한 스티브 잡스의 일생

 [프레시안 김봉규 기자,황준호 기자(번역)]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최근 몇 년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바일 분야를 혁신하던 애플을 진두지휘했던 그의 죽음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객관적인' 부음기사로 명성이 높은 <가디언>은 이날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돌아보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신문은 잡스가 가전 분야의 성공을 넘어 개인용 컴퓨터 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재정립한 혁신적 기업가라고 평가하면서도 그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가감 없이 다뤘다.

대학 중퇴자이나 비틀스처럼 인도의 구루(guru)를 찾아 떠났던 청년 잡스는 오랜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했다. 최초의 성공과 이후의 쓰라린 실패로 애플에서 축출당했던 잡스는 특유의 혁신정신과 완벽주의로 무장하고 돌아와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로 만들었다.

신문은 그가 애플을 파산 직전에서 구해내기 위해 발휘한 수완을 높이 사면서도 그의 독재자적인 경영방식과 몇몇 과오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워즈니악은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잡스는 시장을 창조했다

췌장암으로 오랜 투병 끝에 56세를 일기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iPod)과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등으로 전 세계 전자제품 시장에 전례 없는 영향을 끼쳤다. 10여 년 동안 그는 - 자신이 1976년 세웠던 - 파산 직전의 애플을 [석유 기업] 엑손모빌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시가총액을 지닌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는 모두 상대적으로 최근에 시장에 등장했다. 이 제품들은 비쌌고, 초기 버전에서는 눈에 띄는 특징이 없었다. 그러나 애플 제품은 라이벌 기업들을 눌렀을 뿐더러 음악과 모바일 통신, 개인용 컴퓨터(PC)라는 3개의 산업 분야를 재정립했다. 또한 잡스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와 거기서 만든 <토이스토리>(1995) 등의 영화는 영화 산업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산업에 이렇게 많은 충격을 준 기업가는 헨리 포드나 [힐튼 호텔 창립자] 콘래드 힐튼 정도를 빼면 몇 되지 않는다.

잡스는 이러한 비범함으로 애플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는 주변 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사람(control freak)이었고, 완벽주의 때문에 수백 가지의 아이디어를 퇴짜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새 제품을 직접 소개했고, 그가 공들여 작성한 [기조연설문] '스티브노트(Stevenotes)'는 그를 흠모하는 대중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수백 개의 '애플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잡스는 손쉬운 사용과 간소화를 추구하기 위해 업계의 관행을 거부하고 [부품으로 쓰이는] 칩에서부터 애플스토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리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이 미국에서 출시됐을 때 하나의 이동통신업체를 통해 하나의 기본 모델로만 제공됐다. 애플은 또 온라인 앱스토어에 등록되는 애플리케이션(앱)의 인가 권한을 쥐고 이를 통제했다. 수백만 개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쓰이는 어도비(adobe)의 플래시를 아이폰에서 보려면 '탈옥'하는 수밖에 없다. 잡스는 선의의 독재자로 불렸지만, 독재자는 독재자였다.

잡스의 일생에서 초반의 45년은 전자 및 미디어 산업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생 부부의 아이로 태어난 그는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돼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을 가졌다. 실리콘벨리의 심장부인 마운틴뷰에서 자라났다.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는 팰러앨토 인근의 휴렛 패커드(HP)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고, 그곳에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아르바이트를 했다.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잡스는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있는 리드대학 인문과학대에 진학했다. 한 학기를 다니고 중퇴했지만 [대학에 남아] 몇 개의 수업을 계속 들었다. 그는 머리와 수염을 길렀고 때때로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약 11㎞ 떨어진] 하레 크리슈나 사원까지 걸어가곤 했다. 비틀스의 영향을 받았던 많은 대학 중퇴자들처럼 잡스의 꿈도 인도에 있는 구루(스승, 거장)을 만나는 것이었다. 친구 댄 코트케와 마침내 인도에 갔을 때, 만나려던 구루는 숨지고 없었다.

이 시절 잡스는 학위도, 특별한 재능도 없었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능력도 부족했다.(잡스는 나중에 [주변의 현실을 자신의 뜻으로 변하게 하는]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 공학도이자 충실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남들보다 적은 칩으로 전기 회로를 만들 수 있었고, 도전을 즐겼다. 잡스는 애플을 창업하면서 그 재능을 이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팀이었다. 잡스의 야망과 끊임없이 재촉하는 성향, 그리고 빠르게 개발시킨 디자인·마케팅 능력이 없었다면 워즈니악은 HP에서 컴퓨터를 만들며 평온한 삶을 보냈을 것이다. 워즈니악은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잡스는 시장을 창조했다.

▲ 1984년 4월 24일 애플II의 새로운 모델을 소개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왼쪽)과 존 스컬리 당시 애플 CEO(가운데), 스티브 워즈니악(오른쪽) ⓒAP=연합뉴스

애플에 대한 책 <인피니트 루프>(2000)을 쓴 마이클 말론은 "(잡스는 1976년) 여름이 시작될 때 개인용 컴퓨터에 거의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그는 업계에서 최고의 사업가가 됐다"라고 말했다. 첫 애플 컴퓨터는 조악한 나무 상자에 담긴 컴퓨터광을 위한 기계였다. 이 컴퓨터는 잡스의 부모 집에서 손으로 조립돼 666달러 66센트에 팔렸다. 이는 잡스가 경쟁을 위해서는 재정적 지원과 경험 있는 최고 경영자가 필요하다고 깨달은 계기가 됐다. 전 인텔 직원이었던 마이크 마크쿨라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마이크 스콧을 애플의 첫 CEO로 임명했다.

워즈니악의 차기작 '애플II'는 멋진 디자인과 눈에 띄는 케이스로 제작됐다. '애플II'는 확장 슬롯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어떤 용도에도 적합했다. 내장된 그래픽과 확장성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장점을 가졌고 큰 히트를 쳤다. '애플II'는 1981년 IBM의 PC가 출시되기 전까지 시장을 장악했고 수년 동안 팔려나갔다.

이로 인해 얻은 부와 명성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1981년 2월 워즈니악은 자신의 개인 비행기를 몰다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애플의 컴퓨터 개발은 그가 없는 상태에서 계속됐고, 잡스는 매킨토시를 고안한 제프 라스킨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넘겨받았다. 매킨토시는 워즈니악이 아닌 잡스의 컴퓨터가 됐다.

잡스는 '맥(Mac)'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바로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에 기반을 둔 첫 일반 대중용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제록스연구소의 앨런 케이 등의 컴퓨터 공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것이었다. 그들은 고가의 제록스 스타 워크스테이션에서 이러한 기능을 구현했고, 나중에 애플이 9995달러에 내놓은 '리사'에서도 쓰였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잡스는 맥이 컴퓨터광이나 과학자, 사업가보다는 일반적인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기기가 되길 바랐다. 이는 매력적인 외관을 갖췄지만 소비자들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앨런 케이는 자신이 남긴 메모에서 맥을 두고 "1쿼트[약 0.94리터]짜리 연료통을 단 혼다자동차"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맥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TV 광고 중 하나를 통해 선보였다. '1984'라고 이름 붙여진 이 광고는 [프로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프로그램에서 한 번 방영됐지만 미국의 주요 잡지에는 20페이지 분량의 광고가 실렸다.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빌 게이츠는 출시 행사에서 잡스와 함께 등장해 맥을 칭찬하면서 MS의 소프트웨어가 구동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MS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가 맥용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맥은 실패했다.



1985년 애플은 6개의 공장 중 절반을 폐쇄하고 전 직원의 5분의 1인 1200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1분기에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잡스는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살 건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겠나?"라고 직접 설득해 펩시에서 영입한 존 스컬리 CEO와 갈등을 빚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맥은 이전의 방식으로 다시 디자인됐고 매킨토시II가 1987년 출시됐다. 매킨토시II는 특히 디자인과 출판 업계에서 성공적이었다. 당시 <플레이보이> 인터뷰에서 잡스는 "누군가 내 복부에 주먹을 날려 숨통을 막은 기분이다. 난 불과 30살이고 제품을 만들 기회를 원한다. 내 안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훌륭한 컴퓨터[프로젝트]가 있다. 애플은 내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새로운 회사 넥스트(NeXT)를 세웠고 기업과 고등교육 [프로그램] 이용자들을 위한 유닉스(UNIX) 기반 워크스테이션을 생산했다. 그는 몇몇 애플 직원을 데려왔고 이 중에는 맥 프로젝트에 참가한 몇몇 뛰어난 인재들도 있었다. 넥스트가 많은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이들이 만든 '넥스트 큐브'로 팀 버너스-리가 '월드 와이드 웹(WWW)'을 개발했지만[첫 인터넷 브라우저와 웹 서버 개발을 말함] 판매량은 실망스러웠다. 넥스트는 하드웨어 분야를 포기하고 운영체제 판매로 전환했지만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 잡스는 변했다. 그가 영국에서 넥스트 제품을 출시할 때 그는 멋지게 차려입은 예의바른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MS가 마침내 마우스와 GUI를 이용한 윈도 95를 출시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애플의 연간 총매출은 1994년 110억 달러에서 1998년 59억 달러로 추락했다. 회사는 적자를 봤고 몇몇의 매각 시도가 있었다. 애플 이사회는 회생을 위해 길 아멜리오를 영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잡스는 나중에 "제품들이 형편없었어! 그것들은 더 이상 매력이 없었다고!"라고 말했다.

맥 컴퓨터를 위한 운영체제 개발은 중단됐고 아멜리오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사들여야 했다. 잡스 대신 매킨토시 개발 책임자가 됐던 장 루이 가시에의 BeOS를 쓰려고 했지만 1996년 말 넥스트를 사들였다. '슈퍼 세일즈맨' 잡스는 또 한 번 해냈다. 애플은 가시에가 제시한 2억7500억 달러는 너무 비싸다고 한 후에, 넥스트를 4억2900달러에 인수했다.

잡스는 아멜리오의 자문역으로 애플로 컴백했다. 그러나 공식 직함이 무엇이건 누가 쇼의 주인공인지는 분명했다. 잡스는 이사회의 쿠데타를 모의했고, 1997년 9월 '임시 CEO'가 됐다.

애플 제품에 대한 추종은 흡사 종교적인 성격을 띠어왔고,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것은 '맥 신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도 같았다. 입양된 소년이 창고에서 회사를 설립해 부와 명성을 얻고, 그 회사에서 쫓겨난 뒤 다시 개선장군으로 돌아온 잡스의 스토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었다.

애플이 경영난에서 벗어나는 일은 잡스에게도 쉬운 게 아니었다. 그는 잘 팔리지 않던 제품을 청산했고, 제품군을 극도로 단순화했고, 매력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십여 가지가 넘는 맥 모델을 아이맥(iMac)으로 단순화했고, 넥스트가 개발한 운영체제 넥스트스텝을 새로운 운영체제인 'OS X'로 개조했다.

잡스는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프로그램을 맥에서 계속 쓸 수 있게 하는 약속을 얻어 냈다. 당시 빌 게이츠는 보스턴에서 있었던 애플의 기자회견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게이츠의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은 1984년 애플 광고에 등장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잡스는 오리지널 매킨토시 때 썼던 방식을 고집했다. 대대적인 발표회와 엄청난 TV 광고를 쏟아내기 전까지 본인의 철저한 감시 하에 비밀리에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또한 컴퓨터 성능을 높이기 위해 만드는 확장 슬롯을 없애고 배터리까지 내장시키는 등 최대한 가전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만드는데 신경을 썼다. 그러나 1984년 이후 세상은 변해있었고, 테크놀로지는 더 이상 취미생활용이나 업무용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제 컴퓨터를, 나아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애플이 맥을 구했더라도 윈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별 가망이 없었을 것이다. 잡스는 넥스트가 애플에 팔리기 전에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만약 애플을 경영했더라도 매킨토시는 가능한 최대한 이용한 후에 그 다음 훌륭한 것을 만드는데 몰두했을 것이다. PC 전쟁은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래 전에 승리했다."

잡스는 자신의 말대로 다른 길로 갔다. 2001년 10월 아이팟(iPod)을 선보였고 2003년 4월에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내놨다. 그로 인해 애플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잡스는 2007년 1월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애플이란 이름의 컴퓨터는 이제 그만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2001년 80억 달러였던 연매출은 2010년 650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대부분의 컴퓨터 기업들이 IBM과 싸우고 있었지만 잡스는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기업 소니와 경쟁하길 원했다. 애플은 사용자들에게 IBM과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고 요구했다. 잡스는 분명 그렇게 한 사람이다.

잡스는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지는 못했다. 독재자 같은 운영 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애플의 하드웨어 부문 지도자인 존 루빈스타인은 잡지 <와이어드>에 "우리는 테러리스트 조직처럼 세포로 움직인다"고 말했고, 애플의 수석 에반젤리스트였던 가이 가와사키는 "스티브는 '나쁜 놈'(asshole)도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잡스가 베스트프렌드인 워즈니악이 받아야 할 보너스를 가로챈 것에 대해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잡스는 딸 리사를 한동안 자신의 딸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 지역의 사적지였던 저택을 샀는데 팰러앨토로 이사하면서 그 집을 방치했다. 그 때문에 지역의 유적보호주의자들은 잡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고, 그 집은 2011년 2월 무너져버렸다.

유족으로는 1991년 불교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로렌 파웰과 세 자녀, 전처 사이에서 난 딸 리사, 여동생인 소설가 모나 심슨이 있다.

▲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애플스토어 유리창에 한 팬이 "고마워요, 스티브"라는 글귀를 남겼다. ⓒAP=연합뉴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관련기사]

저커버그 "스티브잡스, 당신이 만들어낸 것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사망
 

손정의 제2의 스티브 잡스 중 한명 ‘혁신성 고평가’
  2011-10-10 12:41:56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가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스티브 잡스를 뒤이을 인물'에 뽑혔다. 손정의는 현재 일본 소프트뱅크의 사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넷판은 10월 9일(현지시간)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는 요건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혁신성을 제시하면서 끊임없는 혁신과 노력을 통해 다른 기업과 경쟁해온 손정의 사장을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를 인물 중 하나로 보도했다. 


특히 재일교포 3세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손정의 사장은 애플이 일본에서 아이폰을 출시할 때 대형 통신사인 NTT도코모 대신 소프트뱅크를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등 새로운 IT사업을 통해 혁신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도 월스트리트 저널은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아마존의 CEO이자 ‘킨들 파이어’로 유명한 제프 베조스도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을 혁신적 기업인으로 평가됐다.

한편 아시아권에서는 손정의 외에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그룹을 이끌고 있는 잭 마 사장이 스티브 잡스 사후 후계 인물로 꼽혔다. (사진=손정의, 뉴스엔DB)

[기술이 국력이다] (4)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소셜 네트워크로 세상을 바꾼 제‘2의 잡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생전 “마크 저커버그를 대단히 존경한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나 래리 페이지에 독설을 퍼부울 정도로 까다로운 잡스가 새파란 20대 청년에게 찬사를 보낸 것이다. 

잡스의 전기(傳記)를 쓴 월터 아이잭슨은 “잡스는 매우 성마르고 사람들에게 매우 잔인했지만, 저커버그는 기업을 팔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만들어 가려는 열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 재산 21조원…세계 최연소 갑부

올해 스물일곱 살인 마크 저커버그는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CEO다. 

페이스북은 가입자 수가 8억명에 달하며 지난 6월 월간 페이지뷰 1조를 돌파했다.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의 46.9%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는 175억달러(21조원)의 재산을 모아 세계 최연소 갑부에 등극했다. 

페이스북 기업공개(IPO)가 단행되면 저커버그의 재산은 훨씬 더 늘어난다.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저커버그는 2010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에 뽑혔다. 

타임지는 “가면 무도회 같은 인터넷 세상을 바꿨으며 사이버 공간을 훨씬 더 현실과 가깝게 만들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정작 저커버그의 모습은 거대한 제국을 이끄는 황제라기보다 평범한 20대 미국 청년에 가깝다. 

공식석상에서 후드 티에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를 신고 나타났던 일이나, 적록색맹이라 페이스북 로고를 푸른색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동거하고 있는 연인 프리실래 챈과 함께 동네 꼬마들에게 초코바를 나눠주는 사진이 올라 있다. 

페이스북의 자유로운 소통은 저커버그가 추구하는 삶과 닮았다.

# 기숙사 방에서 탄생한 페이스북

뉴욕주에서 유대교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저커버그는 13세에 유대교 성인식인 ‘바르 미츠바’까지 거쳤다. 

저커버그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다. 

그는 집과 부모가 운영하는 치과 사무실을 연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어린시절부터 천재적 기질을 발휘했다. 

고등학생 때는 인텔리전트 미디어 그룹에 고용돼 인공지능 뮤직 플레이어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미국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아메리카 온라인(AOL)이 시냅스 플레이어를 사들이고 어린 저커버그에게 정식 일자리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이를 거절하고 2002년 9월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그가 선택한 전공은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이었다.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2학년이던 2003년 10월 학교 기숙사를 해킹해 여학생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웹사이트 ‘페이스매시’를 만들었다. 

그의 당돌한 장난은 학교에 발각돼 하루 만에 폐쇄됐지만 하룻밤 사이 5000명이 몰려들었고 저커버그의 이름은 학교 전체로 퍼졌다.

이 사건으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하는 윙클보스 형제를 만난다. 

윙클보스 형제는 하버드 학생들의 데이트 사이트인 ‘하버드 커넥션’을 만들자고 제의한다. 

저커버그는 이를 바탕으로 같은 대학 친구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즈와 함께 기숙사 방에서 하버드생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웹상에 올리고 공유하는 사이트인 ‘더페이스북(theFacebook)’을 만든다. 

2004년 2월의 일이다. 

같은 해 6월 저커버그는 1년 휴학계를 내고 페이스북의 근거지를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로 옮겨 일에만 매달렸다. 이후 하버드대와 영영 이별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처럼 그는 대학을 중퇴했다. 

# 창립 멤버들과 결별

‘자유로워야 한다. 단순해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기치 아래 설립된 더페이스북은 보름 만에 5000여명의 하버드생의 놀이터로 자리잡았다. 

두 달 후에는 스탠퍼드, 예일, 컬럼비아 대학생까지 아우르면서 5만여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사이트로 성장했다.

이후 무료 음악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냅스터’의 창시자 숀 패닝이 합류하면서 그의 제안으로 ‘the’를 빼면서 오늘의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윙클보스 형제가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6500만달러를 주면서 지난한 법정 분쟁을 끝냈다. 

초창기 멤버인 세이버린과 등을 돌리는 고통도 겪었다. 

수차례 위기를 극복하고 급성장을 거듭한 페이스북은 전 세계 5억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회사로 거듭났다.

지난해 저커버그는 작가 스티븐 레비와 가진 인터뷰에서 “뭔가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이를 깨뜨리는 것도 괜찮다”며 “이것이 오늘날 페이스북을 이끄는 발상이자 가장 중요한 내 개성”이라고 밝혔다. 

# 뛰어난 인문학적 통찰력

저커버그는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지만 그의 성공 이면에는 풍부한 인문학 지식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대학 입시 원서에 영어 말고 읽고 쓸 줄 아는 언어로 프랑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를 꼽았을 정도로 서양 고전에 해박하다. 

저커버그는 어린시절부터 그리스 로마신화를 탐독했다.

페이스북 본사 사무실 복도에는 ‘우리는 기술회사인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저커버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기술을 완성한다고 본 것이다.

 타임지는 그에 대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하지 않으며 더욱 더 그 안으로 묻혀 버리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깊은 통찰력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인이 된 잡스를 이을 정보기술(IT) 영웅으로 저커버그를 꼽았다. 잡스처럼 저커버그도 대학을 자퇴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지도 모르는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일상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제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아울러 완벽주의자이며 때로는 까칠하다. 

저커버그가 잡스와 가장 닮은 점은 자신의 비전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다. 

아이폰을 기획할 때 소비자들은 많은 버튼과 하나의 착탈식 배터리를 원했지만 잡스는 아이폰의 단순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리라 생각했고 이를 강행했다. 

저커버그도 한 사람의 생각보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낫다는 ‘대중의 지혜’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동료를 잃기도 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유저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확신했고 자신의 생각이 대중과 다르더라도 이를 밀어붙였다. 

유저들이 언젠가 자신에게 감사하리라 확신한 것이다.

“나는 세계를 좀 더 열린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자기 소개글은 현실이 됐다. 20대 ‘포스트 잡스’의 세상 바꾸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홍창표의 차이나워치]스티브 잡스와 류촨즈(柳傳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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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홍창표 칼럼니스트] 혁신과 도전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드라마와 같은 짧은 삶을 마감하고 타계했다. 그가 남긴 '아이 시리즈(i-series)' 제품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화시킬 정도로 혁명적이었다. 특히 아이폰은 휴대전화의 개념 자체를 뒤흔들었고, 아이패드는 PC 수요 자체를 줄어들게 할 정도로 파급효과가 크다. 

그의 타계를 바라보는 중국 최대 PC 제조업체인 레노버(lenovo, 聯想) 류촨즈(柳傳志) 회장의 심경은 어떨까?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 자리에서 사임한 직후인 지난 9월 11일 류 회장은 스티브 잡스의 퇴진에 대해 “압박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기분이다. 그가 다시 애플에 복귀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은 세계 IT 산업의 혁명을 주도했지만 레노버 입장에서는 애플이 강력한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05년 레노버가 IBM PC부문을 인수한 이후 거둬들인 성과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대단했다. 중국 PC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수년간 고수하고 있고 조만간 델을 제치고 세계 PC 시장 2위 자리까지 넘볼 기세다. 업계에서는 향후 1년 내에 HP를 누르고 세계 최대 PC 메이커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렇게 잘나가는 레노버에게 있어서도 애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류 회장조차 “애플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린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분야에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두 회사의 관계는 갈수록 레노버가 밀리는 형국이다. 

실제 올해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 매출에서 애플은 레노버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올 2분기 애플의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무려 5배 늘어난 38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1분기 레노버의 중국내 판매액은 23.4% 증가한 28억 달러에 그쳤다. 

레노버는 애플 대항마로 자사 태블릿PC인 러(樂)패드(Le Pad)와 스마트폰 러(樂)폰(Le Phone)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소비자 반응은 미지근하다. 야심차게 출시한 러패드의 가격은 기존 2499위안에서 이달초 국경절 연휴기간 동안 1000위안으로 폭락했다. 마치 얼마 전 HP가 하드웨어 사업의 분사를 결정하면서 99달러라는 헐값에 터치패드를 떨이 판매한 것을 연상시킨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진화로 전통 PC 시장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곤혹스럽다. 류 회장은 생활필수품 화된 PC 수요는 영원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실제 시장 상황은 반대로 움직인다. 아이패드의 등장으로 넷북 판매가 감소한 것이나 가정용 PC 사용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지난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이 제철소 건설을 위해 신일본제철을 찾았을 때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과 나눴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덩샤오핑은 중국에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신일본제철에 요청했지만 이나야마 회장은 “제철소는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짓는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냐.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는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 류촨즈 회장에게 이 일화를 들려준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질까.

[열린세상] 스티브 잡스의 따뜻한 시장경제/장제국 동서대 총장

[서울신문]

“아빠, 스티브 잡스가 죽었대… 어떡하지 불쌍해서?” 한창 바빴던 지난 6일 이른 오후 초등학교 6학년인 딸로부터 온 전화였다. 스티브 잡스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어린 딸이 슬퍼하는 목소리를 듣고 그의 영향력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에 대한 책을 제법 많이 읽었던 필자 역시 그날 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스티브 잡스는 참 신비로운 존재이다. 양자로 입양되어 겪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가련함, 몇 번의 사업 실패에도 굴하지 않았던 오뚝이적 집념, 편집광적인 집착,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제조 장르의 개척, 열광하게 하는 프레젠테이션 기술, 췌장암과의 처절한 투병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는 그의 수식어가 된 지 오래다. 그의 이러한 인상은 홀연히 떠나버린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더 깊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스티브 잡스도 ‘사업가’에 불과하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고 또 그것으로 이익을 창출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살아 온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세상의 허다한 ‘장사꾼’으로 보지 않았다. 매번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신제품을 소개할 때면, 누가 ‘갑’이고 ‘을’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무대에 들어서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 마땅히 ‘갑’의 입장에 서 있어야 할 소비자들이 오히려 기립박수를 치는 주객전도의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해 왔다.

어떻게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 세계는 대공황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아우성이고,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한 주범으로 ‘가진 자’들을 지목하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 잡스도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가진 자’의 부류에 속해 있지 않은가?

시장경제 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직장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그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급료를 받고, 이를 통하여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전제가 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요즈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기대하던 ‘행복’은 찾아오지 않고, 교묘한 ‘돈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되어 간다는 느낌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결정짓는 것이 자신들의 노동이 아니라 탐욕에 젖은 자본가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지금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빈부격차의 갈등이 폭발하여 폭동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미국의 월가에서도 노동자들이 궐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의 정계와 경제계는 사태의 추이를 살피며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끊임없는 노사 갈등,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시민단체의 약진 등이 이러한 긴장의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도 돈을 버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부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가 만든 상품을 통해 무언가 모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따스함’이 있다는 점이, 부만을 좇는 여타의 ‘냉혈적’ 자본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따스한’ 감성을 불어넣은 상품 개발,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인간 행복에의 접근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지갑을 여는 것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방탕은 자본주의를 위기로 내몰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나눔을 강조하는 소위 ‘자본주의 4.0’이 새로운 담론으로 우리사회에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4.0’의 약점은 이미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의 ‘선처’와 ‘결단’에 의존해야 한다는 데 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의 축적 과정이다. 노동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 그리고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가로서의 부의 축적이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따뜻한’ 시장경제주의라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 주는 교훈인 것이다. 

잡스가 사망한 바로 다음날, 애플의 한 경쟁업체가 최근 매출 경쟁에서 아이폰을 추월했다는 보도가 날아들었는데, 그 소식이 어째 매우 진부하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일까? ‘따뜻한’ 시장경제주의가 절실한 때이다.

게이츠 “잡스의 비판? 나는 괜찮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2제

게이츠, 잡스 전기 혹평에도 “그를 존경한다” 되레 칭송

[동아일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이자 빌&멀린다게이츠 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사진)는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전기에 게이츠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이 나오는 데 대해 오히려 “그를 존경(respect)한다. (나에 대한 비난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에는 잡스가 “빌(게이츠)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발명한 게 없기 때문에 기술을 다룰 때보다는 자선사업을 하는 지금이 더 편안해 보인다”며 “그는 뻔뻔스럽게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기도 했다”고 비난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게이츠는 지난달 30일 미 ABC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해 진행자 크리스티안 아만푸어가 이런 잡스의 비난을 언급하면서 “매우 가혹한 비난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잡스의 비난이) 날 괴롭게 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어 게이츠는 “잡스는 매우 훌륭한 일을 했다”며 “지금 세상이 좋아진 이유를 생각해볼 때 인터넷, 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등 우리가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방법들은 한마디로 경이롭다”고 잡스를 칭송했다.

또 그는 “지난 30년 동안 잡스는 내게 매우 좋은 말도 해줬고 험한 말도 많이 했다”며 “또 같이 일하면서 때로는 경쟁자로서 서로를 자극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말들로 나는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빌 게이츠 “그는 훌륭한 일 했다” 잡스 두둔

빌 게이츠(사진)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주는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전기를 통해 자신을 비난했음에도 오히려 잡스를 칭찬했다고 미국 ABC방송 인터넷판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잡스는 월터 아이작슨이 쓴 자신의 전기 ‘스티브 잡스’에서 게이츠에 대해 “빌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아무것도 발명한 것이 없기 때문에 기술을 다룰 때보다 자선사업을 하는 지금이 더 편안해 보인다”며 “그는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말했다.

ABC방송 ‘디스 위크(This Week)’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게이츠는 이런 비난에 대해 “그런 것들은 나를 전혀 괴롭게 하지 않는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잡스는 훌륭한 일을 했다며 그를 두둔했다. 또 “우리는 30년 넘게 함께 일하면서 서로 고약한 말도 많이 했다”면서 “우린 경쟁자였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알려졌다. 그는 짧은 감탄사를 세 번 반복했다. 잡스는 아이들과 아내 로렌을 차례로 오랫동안 바라본 뒤 “오 와우(Oh Wow), 오 와우, 오 와우”라고 말했다. 이는 잡스의 여동생이자 소설가인 모나 심슨이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전한 내용이다. 심슨은 잡스의 생부와 생모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으로 둘은 20대 시절인 1985년 처음 만나 돈독한 형제애를 쌓았다.

"잡스, 이민정책 등 각종규제에 좌절"


스티브잡스(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안수훈 기자 =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그의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상당히 좌절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고든 크로비츠 전 월스트리트저널(WSJ) 발행인은 1일 WSJ 오피니언란에 기고한 '오바마를 위한 스티브 잡스의 조언'이란 칼럼에서 최근 발간된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시사주간 타임의 월터 아이작슨 전 편집장이 쓴 잡스의 전기에 따르면 잡스는 작년초 오바마 대통령 요청으로 이뤄진 단독면담에서 정부의 규제가 경제에 많은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당신은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잡스의 지적은 하이테크 산업이 미국 경제의 성장동력임에도 연방정부의 각종 규제가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실리콘밸리의 정보통신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워싱턴 정가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을 상징적으로 대변한 것이다.

잡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이 당면한 기술혁신으로 인한 도전과제들을 설명할 수 있도록 CEO 6-7명과 만찬을 갖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백악관 참모들이 준비과정에 개입하면서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지난 2월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존 도어의 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일부 CEO들이 참석한 소규모 만찬이 이뤄졌다. 

이 만찬에는 잡스와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 그리고 구글, 시스코, 오라클의 최고 경영진들이 참석했지만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간의 소원한 관계만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잡스는 이 만찬에서 훈련된 고학력 엔지니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 대학을 졸업한 공학도들이 미국에 남아 일을 할 수 있도록 비자를 줘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포괄적인 이민개혁안이 통과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이작슨은 전기에서 "잡스는 이 문제가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했다"면서 "잡스는 '대통령은 정말 똑똑하지만 그게 왜 안되는지 이유만을 계속 설명하려 해 짜증이 났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잡스는 미국의 일류 대학에서 교육받은 외국인 공학도들이 미국에 체류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실리콘 밸리가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만찬에 참석했던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존 도어는 미국에서 물리학과 공학 학사학위를 받은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무조건 영주권을 주자는 제안을 했던 인물.

현재 미국 대학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는 학생의 70% 그리고 공학 석사학위를 받는 학생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또 1995년 이후 기술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한 창업자의 25% 정도는 외국 태생이고,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중 절반은 외국인들이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연간 14만명에게만 영주권을 제공하고 있어 업계의 수요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주권을 받는 외국인 가운데 특정국가 국적자가 7%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어 인구가 많은 인도와 중국계는 각각 70년과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미국에서 첨단기술기업을 창업한 인도계의 비벡 와드후와는 최근 미 의회 증언을 통해 고도로 훈련받은 고학력 근로자들이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리다 좌절감을 느끼고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미국은 인도와 중국에 뜻밖의 선물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잡스는 어렸을 때 입양되기는 했지만 시리아계 이민자 출신 교수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공부한 외국인 엔지니어들을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문화는 어떤 문제에 논리적으로 접근해 최상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반면, 워싱턴 정가는 이민정책에 관해 서로 공방을 벌이고, 이민개혁안 처리가 지연되는게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는 등 문화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혁신을 강조하는 잡스 같은 사람이 워싱턴 정가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고 크로비츠는 지적했다.

ash@yna.co.kr

스티브 잡스의 유산 6조8000억원대



 고 스티브 잡스의 유산이 약 60억달러(한화 6조8000억원대)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19일(현지시각) CBS는 2주일 전 사망한 스티브 잡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 기억할 거리들이 많지만 잡스가 축적한 부 역시 관심의 대상이라고 보도했다. CBS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부터 연봉 1달러를 받았지만 그의 재산 가치는 60억달러 이상이다. 

 CBS 뉴스 컨설턴트이자 기술 분석가인 래리 매지드는 “스티브 잡스는 수십억달러 자산가”라며 “그는 애플뿐 아니라 디즈니, 픽사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로서 연간 급여는 1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애플의 주식을 550만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20억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 또 잡스의 디즈니와 픽사 지분은 대략 44억달러인 것으로 CBS는 보도했다. 

 스티브 잡스의 거주지였던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주택가는 수백만달러의 주택이 즐비한 곳이긴 하지만 그가 축적한 부에 비하면 검소하게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선기자 hspark@etnews.com


나경원 측 "스티브 잡스라면 안철수처럼 살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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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지원'에 긴장한 한나라, 안철수에 '융단폭격'

 [프레시안 선명수 기자]

 오는 26일 열릴 서울시장 선거의 '마지막 변수'였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범야권 박원순 후보를 공식 지원키로 결정한 가운데, 한나라당이 이번엔 안 원장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지원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안 원장이 마침내 박 후보 지원에 나서기로 하면서, 안 원장 지지층의 표심이 박 후보에게 향할지가 선거 막판 최대 변수가 된 것.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내심 긴장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안철수 효과'를 평가절하면서 맹공을 퍼붓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24일 YTN라디오 <강지원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억지로 안 교수가 지원하는 모양새"라며 "여론조사에서 안 교수의 효과는 반영됐다고 보며,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본다"고 깎아내렸다.

그는 "이번 선거는 정정당당하게 박원순 대 나경원의 선거여야 하며, 누구의 힘을 얻은 사람에 대해 시민들이 더 많은 표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원순 대 나경원'을 강조한 나 후보 역시 지속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을 요청해왔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에서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장한 나경원 "안철수, 상왕정치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 후보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얼마 전 작고한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를 언급하며 "스티브 잡스라면 안 교수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나 후보 선대위는 이날 논평을 통해 "(안 원장이) 막판에 초나 치겠다는 것이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 "박원순 뒤에서 상왕(上王) 정치라도 하겠다는 오만인가"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선대위는 "'철없는 철수 씨의 정치 도박'이라고 규정하기엔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면서 "박원순 바이러스에 안철수 백신이 속수무책이었다고 드러날 때 안 교수가 고개를 숙여도 때는 이미 늦을 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같은 당 홍준표 대표 역시 안 원장을 두고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것을 옳지 않다"고 비판하는 등 박원순 후보를 겨냥하던 칼끝을 이번엔 안 원장에게로 돌리고 있는 모양새다.

홍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교수가,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 교수 몇 분이 사회운동도 아닌, 특정 정파에 함몰돼 편향된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교수직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고 정치를 하려면 교수직을 버리고 정치판에 들어오길 바란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선명수 기자 (praxis@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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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관두고 창업? 젊은 직장인들 '잡스 증후군'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회사가 인재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교보생명 보험설계사들이 회사의 '가치 선포식'에서 왜 눈물을 쏟아냈을까

국순당 직원들은 왜 개량 한복을 입고 근무하며 공무원 같은 사명감을 가질까

직원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라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위대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것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대기업 7년차 최모(33·전산담당)씨는 애플 신화를 남기고 떠난 스티브 잡스의 어록을 되새기며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다. 암 투병을 하던 잡스는 생전에 "돈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회사의 부속품처럼 살기보다 잡스처럼 가슴 떨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잡스의 삶에 자극받아 진로를 고민하는 '잡스 증후군'을 앓는 젊은 직장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기업의 인재들이 이런 방황을 하고 있다면 기업 입장에선 큰 손실이다. 회사 내에서도 충분히 꿈을 펼칠 수 있음을 일깨워 줘야 한다.

◇밥벌이에 자부심을 

국순당 배중호 대표는 1992년 가업을 이어받았지만, 술을 빚는 사업이 싫었다고 한다. '술장사'라는 생각뿐 다른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직원들도 대부분 회사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했다. 배 대표는 고민 끝에 '몸에 좋은 술을 만들고, 전통주를 지켜낸다'는 기업 철학을 세웠다. 이런 기업 가치를 갖고 개발한 '백세주'는 약주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 직원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개량한복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은 '전통주에 관한 한 우리가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 책을 제작한 출판사 쌤앤파커스의 직원들은 자신의 사명을 책상 위에 걸어놓고 일한다. 일명 '사명 선언서'다. "돈과 권력에 관계없이 모든 인격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윤택한 정신세계를 가꾸도록 돕겠다" 같은 내용들이다.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는 "수습사원 기간을 마친 뒤 사명선언서 낭독식을 갖는데, 처음엔 취업이라는 개인 목적만 생각했던 젊은 직원들도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사명감을 찾고 나선 큰 열정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월급만 지급하는 것은 단순한 '노동 계약'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치를 부여하면 노동 계약은 한 차원 높아진다. 직원들이 회사와 연대감을 갖고 회사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을 하나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소외당하던 직원들도 가치를 심어주면 충성파가 된다. 2000년 외환위기 직후 적자의 늪에 빠져 있던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은 보험 설계사들을 모두 불러놓고 '가치 선포식'을 가졌다. "우리는 하찮은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은 곤경에 빠진 고객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던 주부 설계사들은 이날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고객 앞에서 당당한 열혈 직원들로 거듭난 이들은 교보생명을 업계 1위로 올려놓았다.

◇혁신의 설렘

요즘 직장인들은 잡스가 추구했던 '혁신과 변화'에 감동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긍지를 원하는 것이다.

애플이 직원을 사로잡은 방식도 그와 같았다. 아이폰을 만드는 핵심부서인 무선사업부는 1년에 고작 3일 쉬고 일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세다. 그러나 고된 업무를 견디게 하는 것은 "최고의 회사에서 세상을 바꾼다"는 자부심이다. 잡스는 직원들로 구성된 '100인 연찬회'를 개최해 인재들의 자부심을 높이기도 했다. 해마다 잡스로부터 지명된 최고의 100인들은 잡스와 3일간 토론하며 자신이 혁신의 주체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출판사 웅진씽크빅은 '혁신 3종 세트'로 성장하고 있다. 모든 직원은 일주일에 2시간30분씩 업무를 중단하고 '아이디어 모임'을 갖는다. 여기서는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아이디어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또 직원이 기발한 창업 아이디어를 내면 회사는 사내 벤처사업을 지원한다. 최대 30일간의 해외 체험활동도 지원한다. 직원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고,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사업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직원 우선주의

즐거운 회사문화로 직원들을 사로잡은 회사들도 많다.

"매일 아침 눈뜨면 회사 갈 생각에 가슴이 설레요. 주말에는 월요일이 너무 멀게 느껴져 참을 수 없을 정도예요."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Zappos)의 한 직원 말이다. 이 회사 철학은 '직원의 행복이 고객의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정한 이 회사의 10대 가치에는 '재미와 약간의 희한함을 창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사무공간을 놀이동산처럼 꾸며 놓기도 하고, '얼간이처럼 옷 입기' 같은 행사도 연다. 1999년 신발 전문 쇼핑몰로 출발한 이 회사는 10년 만에 매출 10억달러 회사로 성장했다.

인터넷 업체 넷앱은 직원들에게 마사지실과 무료 세차를 제공한다. "직원들은 더 나은 연봉이나 직책을 제안받았을 때가 아니라,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이직을 생각한다"는 경영진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도움말=김성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이정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김가영 세계경영연구원 연구원

[류정 기자 well@chosun.com]
 

[경제] ‘경영학’ 배신하고 튀는 괴짜기업들

[주간동아]

셈코(Semco). 선박용 펌프 제조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하이테크와 서비스 분야까지 진출한 브라질 상파울루 소재 회사다. 1994년 연매출이 3500만 달러였던 이 회사는 2003년에는 2억1200만 달러로 초고속 성장을 이뤘고, 현재도 매년 30% 가까운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경영방식이 기묘하다. 직원들이 자신의 근무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말이라도 날씨가 으스스하다면 놀러가는 대신 일을 하고, 맑게 갠 월요일에는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식이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화요일 오후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젊은 시절 자식을 학교에 데려다주지 못했던 중년사원은 일찍 퇴근해 손녀딸을 데리러 학교에 간다.

이 회사의 퇴직 프로그램 ‘Retire-a-Little (조금 은퇴하기)’도 이름처럼 재미있다. 건강한 20~30대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60세 전후가 되면 일에는 여유가 생기지만 체력이 뒤따라주지 않는 ‘슬픔’을 달래기 위한 제도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제도는 젊은 사원이 일주일 중 한나절 정도 원하는 만큼 퇴직 이후 시간을 구매한 뒤 이를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낚시나 정원 손질, 공부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물론 놀면 논 만큼 월급은 줄어든다.

‘고어텍스’라는 기능성 의류로 잘 알려진 미국 고어사(社)는 1958년 설립돼 2010년 기준 매출액 26억 달러를 자랑하는 대형 비상장 기업이다. 직원 수 9000명에 전 세계 30여 개 나라에서 50곳이 넘는 공장을 가동 중이다. 31년 이상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이 회사의 매출은 1969년 600만 달러에서 1990년 6억6000만 달러로 뛰어올랐지만, 부채는 하나도 없다. 이만하면 가히 이상적인 경영실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묘한 경영방식

흥미로운 점은 이 회사에는 일을 시키는 ‘보스’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장과 재무담당 임원 직함을 가진 두 사람이 있지만 대외관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만든 자리일 뿐이며, 현 사장인 테리 켈리는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뽑은 인물이다. 사업조직을 꾸리는 방식도 독특하다. 신규 아이디어를 떠올린 조직원은 동료들에게 그 가치와 성공 가능성을 설득하는데, 이에 공감하는 동료는 참여 여부를 스스로 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쏟아붓는다.

데이브 마이어스라는 연구원이 제안한 기타줄 사업이 대표적이다. 전선피복으로 사용하던 자사 재료로 자전거 바퀴살에 실험적으로 코팅을 해본 그는 보호 성능이 뛰어나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를 기타줄에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새 제품 사업팀을 꾸리려고 동료들을 규합한 그는 결국 3년 후 경쟁사 제품보다 처음의 음색이 세 배 이상 오래 유지되는 제품을 출시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기묘한 회사들을 접하고 나면 과연 이 회사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업경영 상식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 ‘조직의 업무를 세분화해 사람들에게 할당하고 규정대로 수행토록 관리한다’는 조직운영의 철칙은 20세기 초 프레드릭 테일러 이래 경영학의 정설로 군림해왔다. 전략 수립과 재원 배분을 위한 스태프 조직의 확대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한마디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경영진과 생산요소 중 하나로 관리 ‘객체’인 종업원이 명확하게 분리된 것이다. “나는 (일을 해줄) 손만 있으면 되는데 꼭 사람이 따라온단 말이야”라는 헨리 포드의 과장된 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이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분석한 관료제 조직이 기업에 적용된 결과물이다. 모든 구성원에게 분업에 따른 책임이 정의돼 있고, 직위에 따라 권한 크기가 다르며, 조직원은 기술과 교육 수준에 따라 직위를 부여받는 객관적이고 균일한 규칙의 시스템이다. 이러한 원리는 당시 프로이센 군대의 조직구성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고경영자를 뜻하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에 장교라는 의미의 ‘officer’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무려 100년 전에 만들어진 이론이 여전히 기업경영의 근간으로 사용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이에 대한 비판은 경영학 주류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적인 경영전략가 게리 하멜은 저서 ‘경영의 미래’에서 전통적인 경영방식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낸 바 있다. “기업 내의 복잡한 절차는 까다롭고 자유분방한 인간의 본성을 기준과 규칙에 순응하도록 강요해왔으며, 이는 결국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기업의 사례는 이렇듯 테일러와 베버의 방식이 과연 현재에도 유효한지 점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층층이 관리직을 만들지 않고도 수천 명 종업원의 노력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개인의 창의성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비용을 관리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러한 시도는 셈코와 고어사 외에도 미국의 홀푸드마켓이나 구글, 일본의 미라이공업과 일본전산 등 곳곳에서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들 기업이 20세기 경영학의 유산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가정과 그 관리방식에서 이전과 다른 전제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팀장은 감시하고 팀원은 감시당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통제 및 자유가 배타적이지 않은 조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평범한 기업과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기업을 가르는 셈이다.

고어사가 독창적인 경영방식을 택하게 된 데는 창립자인 빌 고어의 철학이 큰 몫을 차지했다. 빌 고어는 듀폰에서 16년을 근무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조직 계층이 개인의 창의성을 억누른다고 느꼈기 때문에 두터운 조직구조를 가능한 한 피하려 애썼다. 한 사업장의 인원규모를 150~200명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통해 구성원이 서로 잘 알고 지내도록 만든 게 대표적이다. 보스가 없으니 임금 인상 역시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하기로 하고, 종업원(Employees)이라는 말 대신 동료(Associate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셈코의 경우 새로운 경영을 도입한 것은 1980년 리카르도 세믈러가 경영을 맡은 이후부터다. 창업자의 아들인 그는 원래 자신의 사업을 하고자 했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가업을 물려받은 경우다. 취임 이후 그는 먼저 ‘직원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임원과 관리자 60%를 해고하는 일부터 했다. 그가 가진 철학의 핵심은 ‘인간의 선함과 책임감에 대한 믿음’이다. 마감이 급하다는 걸 뻔히 아는 기자가 한가하게 영화 관람을 할 리 없고, 어두운 터널을 바라보며 차를 기다리는 승객을 두고 기관사가 손녀딸을 데리러 학교에 갈 리도 없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기본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중간관리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는 이야기다.

상호협력 유전자 극대화

‘사람에 대한 믿음’은 애플의 경우에서도 확인된다. 스티브 잡스의 왼팔로 불리며 초창기 애플을 함께 이끌었던 제이 엘리엇 전 부사장은 저서 ‘아이리더십’에서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여기가 그들의 회사고, 우리 제품이 그들 자신의 제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을지, 스티브와 내가 고민한 시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애플의 사람들이 없다면 위대한 성취도 없다’는 잡스의 믿음이 성공 비결이라는 것. 이와 관련해 올해 ‘하버드비즈니스리뷰’ 8월호에 실린 ‘비이기적 인간 본성(The Unselfish Gene)’이라는 논문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30%는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지만, 더 많은 50%의 사람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기업의 독특한 경영방식은 일반 회사에서 선뜻 흉내 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경영자들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 세부 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변화를 촉발한 경영자의 인간관, 혹은 이를 직원들과 함께 구체적인 경영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모습 그 자체다. 인간의 선한 본성과 상호협력하려는 유전자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영방식이 과연 21세기에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는 경영학의 진화이자 기업의 진화이기도 하며 인류사회 전체의 진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용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yjrho@lgeri.com

 

“美, 이젠 스티브 잡스나 대박기술 불가능”

[지디넷코리아]"만일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다음 번 대박 기술(the Next Big Thing)은 물론 스티브 잡스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폴 오텔리니 인텔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만일 기업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미국기술의 미래는 어둡다며 오바마 행정부에 경고장을 던졌다. 그는 미국 정부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과도한 투자 및 공장건설관련 세금체계에 대한 변화와 탈규제를 없애지 않으면 미국 IT회사들은 모두 해외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넷은 24일(현지시간) 폴 오텔리니 인터레 CEO가 미 아스펜에서 기술정책연구원(Technology Policy Institute) 주최로 열린 아스펜 포럼 디너쇼에서 행정부에 이같은 내용으로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미국의 법적환경은 기업인들에게 아주 적대적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인해 오늘날 우리가 유럽에서 보는 것 같은 ‘어쩔 수 없는 부의 부식과 이동’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쓴 진실(Bitter Truth)'”이라고 말했다.   

오텔리니는 오래된 일도 아닌 것이 “우리의 연구센터와 같은 수준의 업체들이 없었다. 어떤 나라도 미국의 신생기업에 대한 자본투자보다 더 매력적이지 않았다....우리는 IT에 있어서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세대였던 것 같다. 이 단순한 것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미정치인들 IT인들의 권고 수용안해 

▲ 폴 오텔리니 인텔CEO
IT분야 경영자가 암울한 예측을 하고 워싱턴의 정치공작에 정치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집중하는 것은 물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2005년 부시행정부 중반, 빌게이츠 MS회장은 워싱턴의 청중들에게 이미과 해외근로자의 고삐를 죄는 것은 중국과 인도에 연구기관을 늘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보다 1년 전인 2004년. 크레이그 배럿 당시 인텔 CEO는 미국은 '극적인 교육시스템 증진'에 나서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정치가들은 "외국엔지니어들이 학위를 마치자마자 미국에서 추방시키도록 한 법을 재고하라"는 빌 게이츠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씨넷은 6년이 지나도록 커다란 개혁이 없이 지난 후 예언이 보다 비참하게 된 것은 놀랍지도 않다고 전했다.  

오텔리니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워싱턴의 정치에 대해서  “나는 이 집단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무얼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케인즈경제학이 작동하지 않는 경험으로 인해 쩔쩔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신할하게 비판했다.  

너무많은 규제에 포위된 미 기업들

지난 2008년 예외적인 급격한 경기하강으로 돌아선 이래 오바마 행정부놔 미의회의 연합군들은 경제부양을 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조원의 적자예산을 시행했다. 그러나 부시의 감세를 확대하지 않았으며 강력하고 새로운 건강보험과 기업대상의 탄소규제를 밀고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텔리니는 이에 대해 "그들은 전산학에서 말하는 두우루우프('Do'loop 제어흐름설명)흐름 속에서 답이 무엇인지 찾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 “모든 미국에서 사업가들은 내가 경력을 쌓아오면서 보았던 것보다 더욱 많은 변수들을 가지고 사업을 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오텔리니 CEO는  “만일 투자수익에 대한 세금부과와 연구개발비 공제같은 변수가 제대로 풀린다면 일자리는 미국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정치가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사람들은 미국에 투자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투자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오텔리니는 공장건설의 예를 들면서 “인텔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반도체를 제조하는데 10억달러(1조2천억원)를 투자비가 들지만 더욱 곤란한 것은 80%에 달하는 추가 비용 40억달러(5조원)는 인건비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부과하지 않는 미국의 세금체계와 규제에 맞추기 위한 비용"이라고 비판했다.  

 

■세계 2위의 기업세율-투자자를 해외로 내쫓다  

그는 또 “만일 우리의 세율이 전세계 다른 나라 수준이 된다면 기업들은 미국에 투자하는 데대한 인센티브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 오텔리니는 “하지만 미국은 전세계 선진공업국들 가운데 2번째로 높은 세율을 가진 나라여서 인텔의 투자를 요구하는 유럽과 아시아같은 지역보다 매력이 적은 나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언급은 전날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로 나선 칼리피오리나 전 HP CEO와 같은 맥락의 발언이다. 그녀는 "미국의 비자정책이 심하게 망가져서 유능한 해외기술인력을 끌어들이는 고급인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오리나는 우리의 기업세율은 세계2위로 의회가 영원히 R&D세액을 공제하는 법안을 만드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의회나 정부가 기업들이 미국이 아닌 그들을 환영하는 어디서라도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기업 수입에 대한 세금은 35%로서 선진공업국의 평균치인 18.2%를 훨씬 웃돌고 있다.) 

뉴욕소재 갬코투자사의 크리스 마랑기 포트폴리오차장은 24일“ 자본은 알 수 없다. 그것은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가장 높은 수익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많은 다른 나라들은 미국보다 더 기업 친화적인 규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수첩] 스티브 잡스의 오만, 손정의의 눈물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16일(현지시각) 애플이 예정에 없었던 기자회견을 이례적으로 열었다. 

이른바 ‘안테나게이트’로 홍역을 앓고 있는 아이폰4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였다.

이날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아이폰4의 수신불량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대책도 내놨다. 케이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논란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도한 셈이다. 그러나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어쩐지 유쾌하지 못했다.

이번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아이폰4의 수신률 불량 문제는 인정한다. ②그러나 우리 뿐 아니라 RIM, HTC, 삼성전자 스마트폰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③수신률로 문제 삼는 건 고작 0.55% 밖에 안 된다. ④이들에게는 30달러짜리 케이스를 무상으로 주겠다. ⑤그것도 싫은 이들에게는 환불해주겠다.

회견의 전반적인 톤앤매너는 매우 세련돼 보였다. 그러나 발표 내용을 곱씹어보면 잡스와 애플 특유의 오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날 회견 내내 잡스와 애플은 문제를 겪은 소비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케이스를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고, 그래도 싫다면 환불해주겠으니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애플의 주장대로 아이폰4의 수신률 문제는 이처럼 크게 다뤄질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잡스의 추측(?)으로 미뤄 짐작하면 수신률 문제를 최초 보도한 미국 블로그 사이트 기즈모도와 애플 간의 감정 싸움에 전 세계 미디어가 놀아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회견으로 확실해진 건 잡스와 애플의 오만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을 사랑하지만 싫으면 쓰지 않아도 좋다는 그의 발언은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잡지 않겠다는 데 굳이 짝사랑을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경쟁사 제품을 들먹이는 것도 여전히 마이너적인 사고다. 블렉베리와 옴니아의 테스트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들 회사의 제품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말한 것처럼 애플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할 행동이 아니다. 애플의 ‘물귀신 회견’의 피해자가 된 RIM도 가만있지 않았다. RIM은 “적어도 우리는 케이스를 씌워야할 처지는 아니다”며 애플을 비판했다.

사안이 다르지만 시스템 불통 사태에 고개 숙여 사과하고, 눈물을 흘리며 회사의 미래 비전을 설파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자세를 잡스와 애플은 배워야 한다. 

애플은 자신이 이룩한 혁신이 소비자를 붙잡는 시간은 크게 줄어들었고, 대안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건희, 스티브 잡스? 진짜 영웅은 따로 있다!

[프레시안 books] 박명준의 <사회적 영웅의 탄생>

 [프레시안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교수]

 이 책의 제목 "사회적 영웅의 탄생"은 얼핏 과대 포장 같은 느낌을 준다. 민주주의 시대에 '영웅'이라니,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대중문화의 분위기에 너무 영합하는 콘셉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길 때쯤이면 '영웅'이라는 호칭이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우리네 이웃 그러나 평범함 속에서도 보기 드문 비범함을 달성한 사회적 혁신가에게 부여될 수 있는, 적절한 호칭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될 것이다. "사회"를 강조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국가의 권위와 자원 배분에 의존하는 거대한 관료제, 공인된 전문직, 공룡처럼 커진 공공 섹터…. 이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권력과 위세를 획득하고 행사한다. 그런가 하면 시장의 강력한 조직력과 은밀한 설득력에 의존하는 거대 기업, 비즈니스 단체들, 자본가…. 이들 역시 오늘날 아주 쉽게 (흔히 국가보다 더 쉽게) 권력과 위세를 휘두르곤 한다.

이 두 영역에 비해 사회 영역은 위축되어 있거나, 국가/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거나, 아니면 시민사회라는 논쟁적 개념 뒤에서 정치적 역할을 요구받기 일쑤다. 그러니 국가/시장에 비해 발육이 떨어지고 제대로 된 지원 체계도 별로 없는 '사회' 영역에서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과도 같다.

이때 탄생한 용은 물론 전혀 다른 성격의 영웅이다. 그 용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그 용이 어떻게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는지, 그 사회적 기업이 어떤 혁신적 변화를 달성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하여 기획되고 집필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개천 출신으로 사회적 용이 된 14인의 치열한 삶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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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영웅의 탄생>(박명준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사회적 영웅의 탄생>(박명준 지음, 이매진 펴냄)은 독일의 사회적 기업가들을 다루고 있다. 어떤 외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단순한 선진국 선망, 피상적 이해를 넘어 공감의 능력을 저변에 깔고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외국 사례를 파악하는 일은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데다 해석학적 분석 수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계속 관찰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카로운 관찰자, 현지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 다른 두 사회를 균형 있게 볼 줄 아는 간문화적 전문가-관찰자가 필요해 진다. 이 책의 저자 박명준은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안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한국의 독자들은 독일의 사회적 기업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박명준은 요즘 한국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두 가지 편향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하나는 지나치게 국가가 주도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공인'하는 제도 자체가 그런 점을 방증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기업이 지나치게 고용과 경제 중심적인 틀로 이해되고 있는 점이다. 현재의 사회적 기업 인증 제도 자체가 고용과 경제적 효과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래서 좀 심하게 말하면 우리의 현재 사회적 기업 제도 하에선 사회적 하청 노동자가 나올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회적 영웅이 탄생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든다. 국가에 얽매인 '사회', 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사회라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독일의 방방곡곡을 발로 뛰어 찾아내고 만난 사회적 기업가들, 즉 독일의 사회적 기업 모델은 우리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우선 이 모델은 국가에 의해 하향식으로 지명되는 식의 해법을 추구하지 않는다. 평범한-또는 평범한 수준도 못 되는-일반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상향식으로 문제 해결을 강구하는 바탕 위에서 사회적 기업이 잉태되고 성장한다. 즉 무대는 사회이지만 문제 해결의 해법을 시장적 수단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이 되는 것이다.

또 독일의 사회적 기업가는 고용 창출이 일차적 목표가 아니라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사회적 문제의 '혁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 반기업적은 아닌" 인간형이 사회적 기업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모순적인 표현 같지만 한 장, 한 장을 읽다보면 왜 이들의 혁신 노력이 전혀 새로운 문제 해결 모델, 즉 기업적 수단을 차용하되 기존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로 귀결될 수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독일의 사회적 기업이 다루는 영역은 간단히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종다양하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정치적 활동을 한다면 한국에서는 당연히 정치 개혁 시민운동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 역시 사회적 기업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국회의원 관찰'이라는 단체의 활동이 좋은 예이다. 흔히 NGO는 공익적 주창 활동, NPO는 서비스형 제공 활동을 한다고 생각되곤 하지만 '국회의원 관찰'은 정치 활동형 사회적 기업이라는 아주 독특한 모델을 제시한다. 그리고 독일형 사회적 기업은 조직의 외형적 확대에 중점을 두지 않고 여기에 참여하는 개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창의성의 발휘를 강조하며, 사회 심리적 실천 방법론의 개발에 큰 관심을 둔다.

나는 이 점이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력화(empowerment)를 지향하는 독일형 사회적 기업의 가장 큰 특징점이라고 본다. 사회의 근본적인 얼개 마련과 축적적 지식에 기반을 둔 혁신의 누진에 능한 이 나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물론 독일형 사회적 기업이 좋은가 하는 질문과 그것을 우리가 쉽게 따라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다고 해서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사회 영역의 든든한 병풍 역할을 하면서도 민간의 자율과 독립성을 철저히 존중해 주는 분립 자율성의 전통,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 형성된 사회적 기업의 혁신 모델이 한국에서도 쉽게 실천될 수 있으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국가와 시장의 정상화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한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견디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추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이 책의 효과적 독법에 있어 핵심 사항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독일형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지성적 방법론, 그리고 사회 변동의 내인(內因)을 놓치지 않는 치밀함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전문 연구자가 집필했지만 대상 독자층을 폭넓게 겨냥한 하이저널리즘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학술적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면서도 탐사 보도의 흥미진진한 필체로 표현된,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사회학회 회장을 지낸 마이클 부라보이는 사회학적 연구가 학술사회학, 정책사회학, 비판사회학, 그리고 공공사회학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사회적 영웅의 탄생>은 공공사회학과 정책사회학을 블렌딩하면서도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려고 애쓴 책이다. 교훈적인 사례 연구들과 독특한 집필 형식이 조화된, 참고할 점이 많은 현장 보고서라 보면 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서 한국판 사회적 영웅이 많이 나온다면 그들의 탄생을 도운 산파의 역할로서 본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교수 (mal@pressian.com